관리직인가, 개발직인가 - 파트장이라는 정체성의 혼란

관리직인가, 개발직인가 - 파트장이라는 정체성의 혼란

관리직인가, 개발직인가 - 파트장이라는 정체성의 혼란

파트장이라는 애매한 자리

작년에 파트장 달았다. 승진 축하한다고 팀장이 저녁 쏘고. 집에 와서 명함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개발 파트장. 이게 관리직인가, 개발직인가.

월요일 아침부터 회의다. 주간계획, 분기목표, 리소스배분. 10시부터 12시까지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점심 먹고 오후 2시, 또 회의. 타팀 협업 논의.

코드 짤 시간은 언제 나오나.

퇴근 전에 IDE 켰다. 일주일 전에 만들던 기능. 코드 보는데 뭘 하려던 건지 기억이 안 난다. 주석도 안 써놨다.

6시 반, 후배가 퇴근 인사하고 나간다. 나는 이제 시작인데.

코드 리뷰는 언제

후배들이 PR 올린다. 하루에 10개씩 쌓인다.

아침에 출근하면 슬랙 알림 15개. “파트장님 코드리뷰 부탁드립니다”

점심시간에 본다. 급하게 본다. 제대로 못 본다.

어제 승인한 코드에서 버그 났다. 내가 놓친 거다. 후배한테 미안하다.

“괜찮습니다”라고 하는데. 괜찮을 리가 없다.

예전엔 코드리뷰가 즐거웠다. 후배 코드 보면서 “이렇게 하면 더 좋아” 알려주고. 같이 고민하고.

지금은 체크리스트 확인하듯 본다. 테스트 있나, 네이밍 괜찮나, 로직 문제 없나. 5분 안에 끝낸다.

이게 리뷰인가 싶다.

팀장한테 말했다. “코드리뷰 시간이 부족합니다”

“회의 줄여볼게요”

다음 주에 회의 하나 더 생겼다.

1on1은 또 언제

팀원 8명. 한 달에 한 번씩 1on1 한다.

“요즘 어때요?” “괜찮습니다”

괜찮을 리 없다는 거 안다. 근데 물어볼 시간이 없다.

1on1 30분 잡는데. 10분은 근황 얘기. 10분은 업무 얘기. 나머지 10분에 진짜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다음 미팅 시간이라 이만”

끊기는 거다.

신입 후배 하나가 있다. 작년에 들어왔다. 코드 짜는데 어려워한다.

“시간 날 때 같이 짜봅시다”

석 달째 시간이 안 난다.

어제 그 후배가 또 PR 올렸다. 똑같은 실수가 있다. 지난번에도 지적했던 거다.

“이 부분 다시 확인해 주세요”

댓글 달고 나서 죄책감 든다. 내가 제대로 안 가르쳐줘서 그런 건데.

예전엔 후배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화면 보면서. “여기 이렇게, 저기 저렇게” 했는데.

지금은 댓글로 끝이다.

내 코드는 언제 짜나

이번 분기 목표가 있다. 신규 기능 개발. 내가 맡았다.

설계는 한 달 전에 끝났다. 구현은 아직 시작도 못 했다.

매일 “오늘은 코딩한다” 다짐한다. 출근하면 메일부터 본다. 답장하다 보면 1시간.

슬랙 확인한다. 긴급한 거 처리한다. 또 1시간.

회의 시간이다.

점심 먹고 오후. 후배가 질문한다. “이 부분 어떻게 하면 될까요?”

30분 같이 본다.

다른 후배가 온다. “배포 이슈 있습니다”

로그 확인한다. 원인 찾는다. 1시간 지났다.

6시다. 이제 코딩 시작할까.

팀장이 부른다. “내일 발표 자료 좀 봐줘요”

8시 되어서 퇴근한다. 코드 한 줄 못 짰다.

집에 와서 노트북 켠다. 피곤하다. 잠깐만 누웠다가.

새벽 2시에 깬다. 내일도 회의다.

개발자인가 관리자인가

기술 블로그 본다. 요즘 트렌드가 뭔지.

“Rust로 고성능 API 만들기” “Kubernetes 실전 가이드” “AI 시대의 백엔드 아키텍처”

읽다가 만다. 읽을 시간도 없고. 읽어도 써먹을 곳이 없다.

우리 팀은 Java Spring이다. 15년 된 레거시다. 바꿀 수도 없고. 바꿀 이유도 없다.

그래도 읽는다. 뒤처지는 게 무섭다.

기술 면접관 들어간 적 있다. 지원자가 물었다. “요즘 MSA 전환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답하다가 막혔다. 이론은 안다. 실무는 모른다.

지원자가 나보다 더 잘 알았다.

합격시켰다. 그 사람 지금 우리 팀에 있다. 기술적인 건 그 후배한테 물어본다.

이게 맞나 싶다.

친구 만났다. 대학 동기다. 걔는 CTO다.

“요즘 뭐 해?” “회의하고, 리뷰하고” “코딩은?” “못 한다”

친구가 웃었다. “넌 관리자야”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개발자인가. 관리자인가.

둘 다 아닌 것 같다.

승진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작년 이맘때. 팀장이 불렀다.

“파트장 제안이 들어왔어요”

고민했다. 파트장 되면 연봉 오른다. 팀원 관리도 해야 한다. 코딩은 줄어든다.

“며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틀 고민했다. 아내한테 물었다.

“연봉 얼마나 올라?” “1000만원쯤” “해”

승진했다.

첫 달은 괜찮았다. 회의도 신선하고. 팀 관리도 재미있고.

두 번째 달부터 이상했다. 코딩할 시간이 없다. IDE 켜는 횟수가 줄었다.

석 달 지나니까. 내가 개발자가 맞나 싶었다.

동료들이 축하한다. “승진 축하해요” “이제 편하시겠어요”

편할 리가 없다.

더 바쁘다. 더 피곤하다. 더 불안하다.

코드 짜는 시간은 줄었는데. 책임은 늘었다.

팀원이 실수하면 내 책임. 일정 밀리면 내 책임. 장애 나면 내 책임.

예전엔 내 코드만 책임지면 됐다. 지금은 8명 코드를 책임진다.

밤에 잠 안 올 때가 있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승진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다.

팀원들의 눈빛

신입 후배가 물어본다. “파트장님은 어떻게 공부하세요?”

대답이 막힌다.

“틈날 때 블로그 보고…”

거짓말이다. 요즘 공부 안 한다.

다른 후배가 말한다. “저도 나중에 파트장 되고 싶어요”

웃으면서 답한다. “열심히 해봐”

속으로 생각한다. “안 되는 게 나을 거야”

팀원들이 나를 본다. 궁금해한다. 저 사람은 코드를 짜나. 저 사람은 개발자가 맞나.

증명하고 싶다. “나도 개발자야”

근데 증명할 방법이 없다.

예전엔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코드 잘 짜고. 문제 잘 해결하고. 기술 리드하고.

지금은 직급으로 인정받는다. 파트장이니까. 경력 20년이니까.

실력은 모른다. 나도 모른다.

무서운 거다.

어디로 가야 하나

임원 제안 들어왔다. 내년쯤.

승진하면 연봉 1억 넘는다. 개발은 영영 못 한다.

고민 중이다.

임원 되면 완전히 관리자다. 전략 짜고. 예산 관리하고. 경영진 미팅하고.

코드는 못 본다. 기술은 몰라도 된다.

이게 내가 원하던 길인가.

20년 전에 개발 시작했다. 처음 코드 짤 때. “Hello World” 찍을 때.

그때가 좋았다.

밤새 코딩하고. 새벽에 배포하고. 에러 잡고.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지금은 재미가 없다. 회의록 쓰고. 일정 관리하고. 보고서 만들고.

이게 내가 하고 싶던 일인가.

퇴사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작은 회사 가서. 다시 개발자로.

근데 현실이다. 나이 45에. 연봉 9500에.

다시 개발자로 취직되나. 아니, 개발자로 일할 수 있나.

체력도 문제다. 밤샘 코딩은 이제 못 한다.

그냥 이 길로 가는 거다. 파트장에서 임원으로. 관리자로.

개발자는 아닌 사람으로.

그래도

어제 신입 후배가 PR 올렸다. 내가 조언했던 거 반영했다. 코드가 깔끔했다.

칭찬 댓글 달았다. “잘했어요”

후배가 답했다. “파트장님 덕분입니다”

기분이 좋았다. 조금.

오늘 회의에서. 내가 제안한 아키텍처. 팀장이 채택했다.

“역시 박 파트장”

기분이 좋았다. 조금.

퇴근 전에 코드 짰다. 30분. 겨우 30분.

그래도 짰다. IDE 켜고. 함수 하나 만들고. 테스트 돌리고.

손에 익은 동작들.

이게 좋다. 아직은.

파트장이 뭔지 모르겠다. 개발자인지 관리자인지 모르겠다.

그냥 하는 거다. 오늘도. 내일도.

회의하고. 리뷰하고. 가끔 코딩하고.

이게 내 일이다. 지금은.


파트장 1년 차.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