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 100개 알림, 진짜 중요한 건 뭐지?
- 07 Dec, 2025
슬랙 100개 알림, 진짜 중요한 건 뭐지?
오전 9시 10분.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슬랙이 뜬다. 빨간 숫자가 보인다. 127개.
“어제 퇴근할 때 다 읽었는데.”

127개의 정체
스크롤을 내렸다.
- 전사 공지 8개
- 다른 팀 채널 잡담 40개
- 내 팀 채널 업무 15개
- DM 12개
- 멘션 6개
- 리액션 알림 46개
리액션이 거의 반이다. “누가 내 메시지에 👍 눌렀습니다” 알아서 뭐하나.
멘션 6개부터 읽었다. 진짜 중요한 건 2개였다. 나머지는 “파트장님 의견 궁금합니다” 류. 의견 안 내도 진행되는 것들.
DM 12개. 급한 건 1개. “통화 가능하세요?” 30분 전 메시지다. 이미 해결됐을 거다.
읽는 데 1시간
9시 10분에 시작했다. 10시 5분에 끝났다. 55분 걸렸다.
읽기만 한 게 아니다.
- 답장 8개
- 리액션 20개
- “확인했습니다” 5개
확인했다는 답장을 안 하면 불안하다. “파트장님 못 보신 건가” 생각할까봐.

10시 5분. 이제 일을 시작한다. 아, 10시 30분에 회의가 있다. 25분 남았다.
코드를 짤까? 25분이면 뭘 하나. 환경 세팅만 10분이다.
메일이나 볼까. 메일 47개. 됐다.
2시간 뒤
회의 끝났다. 12시 20분. 점심 먹고 왔다. 1시 30분.
슬랙을 켰다. 42개. 1시간 30분 만에 42개.
계산해봤다. 하루 8시간이면 약 224개. 실제로는 퇴근 후에도 온다. 자기 전까지 치면 300개는 된다.
예전엔 이메일이었다. 하루 한두 번 확인하면 됐다. 지금은 실시간이다. 5분마다 확인 안 하면 불안하다.
“나만 그런가?”
팀원들 보면 다들 슬랙 켜놓고 산다. 알림 소리 나면 바로 본다. 나도 봐야 하나?

코딩하려고 하면
2시. 드디어 코딩 시간이다. 레거시 리팩토링 작업. 집중이 필요하다.
IntelliJ를 켰다. 코드를 읽기 시작했다. “이 로직은…”
띵. 슬랙이다. “파트장님 잠깐 봐주세요”
링크가 있다. 클릭했다. 코드 리뷰 요청이다.
리뷰했다. 10분 걸렸다. 다시 내 코드로 돌아왔다. “아, 뭐 보고 있었지?”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띵. 또 왔다. “프로덕션 에러 확인 부탁드립니다”
로그를 봤다. NullPointerException. 원인을 찾았다. 15분. “수정해서 배포하세요” 답장.
다시 내 코드. “이 메서드가…”
띵띵. 두 개가 동시에 왔다.
포기했다.
진짜 중요한 건
저녁 6시. 팀원들이 하나둘 퇴근한다. “먼저 가겠습니다” “들어가세요”
6시 30분.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슬랙도 조용하다.
이제 코딩한다. 집중한다. 드디어 된다.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끊김 없이 짰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생산적인 시간.
9시 10분. 퇴근 준비. 슬랙을 봤다. 저녁 6시 이후 메시지 3개.
3개. 낮 8시간 동안 200개. 저녁 3시간 동안 3개.
“진짜 중요한 메시지는 하루에 몇 개나 될까?”
계산해봤다. 오늘 받은 슬랙 300개 중
- 내가 직접 답해야 하는 것: 15개
- 시급한 것: 3개
- 나만 할 수 있는 것: 5개
진짜 중요한 건 5개였다. 나머지 295개는 뭐였나.
30대 후배의 말
어제 후배랑 술 마셨다. 35살 시니어 개발자. 잘한다. 실력 있다.
“형, 슬랙 알림 다 꺼놨어요” “네?” “DM하고 멘션만 켜놨어요”
충격이었다. “그럼 팀 채널은?” “점심 먹고 한 번, 퇴근 전에 한 번만 봐요”
“급한 건 어떡하는데?” “진짜 급하면 전화 와요” ”…”
“형도 그렇게 하세요” “내가 파트장인데 그래도 되나?”
“더 그래야죠. 형이 계속 답장하니까 애들도 물어보는 거예요” ”…”
맞는 말이다. 내가 5분 안에 답장하니까 팀원들도 5분 안에 답 기대한다.
악순환이다.
실험
오늘 실험했다. 알림을 껐다. 멘션만 남겼다.
불안했다. 10분마다 슬랙을 켰다. 습관이다.
참았다. 30분에 한 번만 봤다. 급한 건 없었다.
점심 먹고 한 번 봤다. 밀린 메시지 47개. 중요한 건 2개. 10분 만에 처리했다.
오후 3시에 한 번 봤다. 32개. 중요한 건 1개.
놀라운 건 세상은 잘 돌아갔다. 내가 즉답하지 않아도 팀원들은 알아서 했다.
오히려 좋았다. “파트장님 의견 듣고 결정할게요” 대신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가 늘었다.
코딩 시간
알림을 끈 첫날. 오전에 2시간 코딩했다. 끊김 없이.
20년 개발했다. 코딩은 몰입이 중요하다. 15분 집중하면 로직이 보인다. 1시간 집중하면 구조가 보인다.
5분마다 끊기면 영원히 15분을 못 채운다. 겉핥기만 하다 끝난다.
요즘 퇴근 후에 집에서 코딩한 이유가 이거였다. 낮엔 집중을 못 하니까.
근데 이제 낮에도 된다. 알림만 껐을 뿐인데.
파트장의 역할
고민했다. “파트장이 메시지 늦게 확인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아니다. 파트장의 역할은 즉답이 아니다.
- 방향 잡아주기
- 막힌 거 뚫어주기
- 의사결정하기
- 성장 도와주기
이걸 하려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슬랙 100개 읽을 시간 말고.
즉답은 주니어도 한다. “스펙 확인했고, 코드 짰고, PR 올렸습니다” 빠르다. 정확하다.
파트장은 다른 걸 해야 한다. “이 방향이 맞나?” “3개월 뒤를 보면?” “기술 부채가 쌓이진 않나?”
이런 생각은 슬랙 알림 띵띵 울릴 때 안 된다.
규칙을 만들었다
팀 회의에서 얘기했다. “슬랙 사용 규칙 만들자”
- 긴급: 전화 또는 멘션
- 중요: DM
- 참고: 채널 메시지
- 잡담: 따로 채널 만들기
“슬랙은 실시간 답장 기대하지 않기” “1시간 내 답장 없어도 재촉 안 하기” “급하면 전화하기”
팀원들 반응이 좋았다. “사실 저도 슬랙 스트레스였어요” “알림 때문에 집중이 안 돼요”
다들 불편했던 거다. 말을 안 했을 뿐.
2주 후
규칙 만든 지 2주 됐다. 슬랙 메시지가 줄었다.
하루 평균 300개에서 150개로. 반으로 줄었다.
중요한 건 늘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의 질이 올랐다. “급한데 봐주세요” 가 사라졌다.
코딩 시간이 늘었다. 낮에 3시간은 집중한다. 예전엔 불가능했다.
팀원들 표정도 좋아졌다. “요즘 일하기 편해요” “집중이 잘 돼요”
전화는 늘었나? 아니다. 오히려 줄었다. 진짜 급한 일이 별로 없었던 거다.
다른 팀 파트장
옆팀 파트장이 물어봤다. “요즘 슬랙 적게 쓰네?” “알림 껐어요”
“그게 되냐?” “되던데요”
“나도 해볼까…” “해보세요. 팀도 편해져요”
2주 뒤에 다시 만났다. “진짜 되네” “그죠?”
“근데 처음엔 불안했어” “저도요. 일주일 적응 기간 필요해요”
“애들이 자기들끼리 해결하더라” “원래 할 수 있었던 거죠”
우리가 너무 빨리 답해줘서 팀원들이 생각할 기회를 못 가진 거다.
임원의 슬랙
우리 임원은 슬랙을 안 한다. 메일만 한다. 하루 두 번 확인한다.
예전엔 답답했다. “왜 슬랙 안 보세요?”
이제 안다. 저래야 맞다.
임원은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슬랙 100개 읽을 시간에 전략을 짜야 한다.
파트장도 마찬가지다. 코드 짜고 방향 잡을 시간이 필요하다. 슬랙 읽느라 하루 가면 안 된다.
20대의 슬랙
팀 막내가 말했다. “저는 슬랙이 편한데요”
“응?” “이메일보다 빠르고 가볍잖아요”
맞다. 그건 맞다. 하지만.
“너 하루에 슬랙 몇 개 와?” “음… 한 200개?”
“다 읽어?” “대충요. 중요한 것만”
“중요한 거 몇 개?” “10개요?”
“나머지 190개는?” “그냥… 스쳐 지나가요”
그렇다. 20대는 스쳐 지나간다. 45세는 다 읽는다.
이게 차이다.
세대 차이
30대 중반부터는 슬랙에 피로하다. 40대는 슬랙이 고역이다.
20대는 즉각 반응한다. 40대는 숙고하고 답한다.
20대는 동시에 10개 처리한다. 40대는 하나씩 깊게 판다.
틀린 게 아니다. 다른 거다.
근데 회사는 20대 방식을 요구한다. “빠른 소통” “실시간 협업”
40대는 적응해야 한다. 아니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결론
슬랙 100개. 진짜 중요한 건 5개다.
나머지 95개는
- 정보 공유
- 단순 확인
- 리액션
- 잡담
다 필요하다. 하지만 즉각 반응할 필요는 없다.
파트장의 일은 모든 슬랙에 답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5개에 집중하는 거다.
알림을 껐다. 하루 3번 확인한다. 급하면 전화 온다.
코딩 시간이 늘었다.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팀원들도 만족한다.
20년 개발했다. 이제 안다.
빠른 답장보다 깊은 생각이 중요하다.
슬랙은 껐다. 근데 이메일이 늘었다. 이것도 줄여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