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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 26 Dec, 2025
'내가 젊을 때는' 이라는 말을 참아내는 법
"내가 젊을 때는" 입에서 맴도는 순간 회의 중이었다. 신입이 물었다. "파트장님, 이 기능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나요?" 입이 근질거렸다. "내가 젊을 때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걸..." 혀끝까지 올라왔다. 삼켰다. "응, 레거시 코드가 그렇게 돼 있어서. 리팩토링하면 좋긴 한데." 무난하게 넘어갔다. 다행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왜 그 말을 참았을까. 사실이긴 한데. 20년 전 내가 짰던 시스템은 지금보다 훨씬 복잡했다. 문서도 없었다. 레퍼런스도 없었다. 스택오버플로우도 없었다. 그냥 책 보고, 야근하고, 부딪히면서 배웠다. 지금 애들은 유튜브에 튜토리얼도 있고, GPT한테 물어보면 코드도 나오고.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참는 게 습관이 됐다 요즘 나는 그 말을 하루에 5번쯤 참는다. "이 정도 야근은..." "옛날엔 주말에도..." "우리 때는 문서 같은 거..."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에 브레이크 밟는다. 꼰대 되기 싫어서. 점심시간에 후배들이 회사 욕한다. "업무 강도 너무 세요." "야근 많아요." "번아웃 올 것 같아요." 나는 고개만 끄덕인다. "그래, 힘들지." 속으로는 생각한다. 우리 때는 9시 출근 11시 퇴근이 기본이었는데. 주말에도 나왔는데. 그래도 말 안 한다.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 그냥 꼰대 소리만 들을 텐데. 1on1 때도 그렇다. 5년차 개발자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파트장님, 저 기술 스택이 너무 빨리 변해서 따라가기 힘들어요." "응, 나도 그래."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다르다. "나는 20년 동안 자바 하나로 먹고 살았어. 너는 5년 만에 벌써 3개 언어 하잖아. 그래도 잘하고 있어."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또 '옛날 자랑'이 된다. 그냥 짧게 끝낸다. "힘들면 말해. 같이 고민하자."그런데 그 경험이 쓸모없나 어제 코드리뷰 했다. 3년차가 짠 API였다. "이거 트랜잭션 처리 이렇게 하면 동시성 이슈 생길 것 같은데." "아, 그런가요? 테스트는 통과했는데요." "응, 트래픽 적을 때는 괜찮아. 근데 사용자 많아지면..." 설명했다. 10년 전에 내가 똑같이 삽질했던 이야기. 새벽 3시에 장애 터졌던 이야기. 그때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후배는 고쳤다. 장애는 안 났다. 나는 생각했다. 이게 '내가 젊을 때는' 인가, 아닌가. 경험을 말한 건데. 자랑한 건 아닌데. 실제로 도움이 됐는데. 그런데 왜 찝찝할까. 기술 회의 때도 그렇다. 아키텍처 논의 중이었다. "마이크로서비스로 가는 게 어떨까요?" 젊은 팀장이 제안했다. 다들 좋다고 한다. 트렌드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서비스 규모에서 그게 필요할까? 모노리스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파트장님, 요즘은 다 MSA로 가는 추세잖아요." "응, 맞아. 근데 우리가 10년 전에 SOA 비슷하게 했다가 운영 지옥이었거든." 말해놓고 후회했다. 또 '10년 전' 얘기했다. 꼰대 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모노리스로 갔다. 6개월 후 다들 '다행'이라고 했다. 내 경험이 도움이 됐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찝찝했다.선 긋기의 기술 이제는 기준이 생겼다. '내가 젊을 때는'을 말해도 되는 순간이 있다. 말해도 되는 때:구체적 문제에 구체적 해결책이 있을 때 물어봤을 때 실패 경험을 공유할 때"10년 전에 이렇게 했다가 장애 났어. 이렇게 하면 안 돼." 이건 괜찮다. 도움이 된다. 말하면 안 되는 때:요즘 문화를 비판할 때 누가 힘들다고 할 때 내가 더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을 때"우리 때는 야근을 해도..." 이건 안 된다. 아무도 안 궁금하다. 기준은 간단하다. 이 말이 상대에게 도움이 되나, 아니면 내 자존감만 채우나. 도움이 안 되면 입 닫는다. 세대 차이는 현실이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답답할 때가 있다. 요즘 애들은 9시 출근 6시 퇴근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주말 출근?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야근? 보상받아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100%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못 살았다. 그게 잘못된 거였다는 걸 이제 안다. 그래서 후배들은 다르게 살면 좋겠다. 근데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그렇게 야근하고 주말 날려서, 지금 이 회사가 있는 거 아닌가. 지금 애들이 9시 6시 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시스템 다 만들어놨기 때문 아닌가. 이런 생각 하면 꼰대다. 아는데. 그래도 가끔 든다. 팀원이 야근 싫다고 한다. "알겠어, 내일 하자." 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밤 10시까지 남아서 한다. 이게 맞나 싶다. 후배들은 워라밸 지킨다. 나는 파트장이라서 책임진다. 이게 공평한가. 그런데 뭐 어쩌겠나. 세대가 다르다. 시대가 바뀌었다. 나도 적응해야 한다. 결국 참는 게 맞다 생각해봤다. 정말 많이. 내 경험은 소중하다. 20년이 헛되지 않다. 실제로 도움이 될 때도 많다. 그런데 그걸 '내가 젊을 때는'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순간, 다 망한다. 상대는 듣고 싶지 않다. 비교당하고 싶지 않다. 평가받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 문제를 같이 풀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문장을 바꿨다. "내가 젊을 때는" →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우리 때는" → "이런 경우도 있었어" "요즘 애들은" → 아예 안 함 조금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이게 맞다. 어차피 전달하고 싶은 건 경험이지, 비교가 아니니까. 회의 중이다. 또 신입이 물었다. "이거 왜 이렇게 복잡해요?" "옛날 코드가 그래. 근데 최근에 비슷한 케이스 리팩토링한 적 있어. 같이 보자." 이렇게 말했다. 신입이 고맙다고 한다. 입에서 맴돌던 말은 그냥 삼켰다. "내가 젊을 때는 이보다 훨씬..." 삼키는 게 습관이 됐다. 나쁘지 않다. 때로는 말해야 할 때도 그런데 가끔은 말한다. 후배가 번아웃으로 힘들어한다. "그만두고 싶어요." 이럴 때는 말한다. "나도 8년차 때 그랬어. 진짜 그만둘 뻔했어. 그때..." 경험을 공유한다. 내가 어떻게 이겨냈는지. 뭐가 도움이 됐는지. 이건 '내가 젊을 때는'이 아니다. 그냥 선배로서 도움이다. 신입이 실수로 장애 냈다. 새벽 2시에 전화 왔다. 울먹인다. "파트장님, 죄송해요. 제가..." "괜찮아. 나도 5년차 때 DB 날린 적 있어. 그것보단 낫다." 실패 경험을 말한다. 완벽하지 않았던 나를 보여준다. 후배는 조금 안심한다. "정말요?" "진짜다. 같이 복구하자." 이런 건 말해도 된다. 아니, 말해야 한다. 기준은 여전히 같다. 이 말이 상대에게 도움이 되나. 도움이 된다면, '내가 젊을 때는'도 괜찮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기 45살이다. 개발 20년 했다. 후배들은 나를 보고 '경력자'라고 한다. 예의상 '선배님'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꼰대 되기 직전'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젊지 않다. 체력도 떨어진다. 최신 기술은 애들이 나보다 더 잘 안다. 그래도 20년은 20년이다. 그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 경험은 쌓였다. 실패도 많이 했다. 성공도 했다. 그걸 잘 전달하는 게 내 역할이다. 우쭐대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도움이 되게. "내가 젊을 때는"이라는 말을 참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문장으로 바꾸는 거다. 그게 진짜 시니어 개발자다. 꼰대는 경험을 무기로 쓴다. 시니어는 경험을 도구로 쓴다. 나는 시니어가 되고 싶다. 오늘도 참았다 퇴근길이다. 피곤하다. 오늘도 "내가 젊을 때는"을 4번쯤 참았다. 대신 후배한테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이런 적 있었어. 이렇게 해봐." 후배는 고맙다고 했다.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집에 왔다. 맥주 한 캔 땄다. 나쁘지 않은 하루다. 내일도 참을 것 같다. 괜찮다. 익숙해졌다. 그리고 가끔은, 정말 필요할 때는, 말할 것이다. "내가 젊을 때는" 대신, "내 경험으로는"이라고.20년 경력은 무기가 아니라 나침반이다. 방향만 알려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