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코드 리뷰, '이게 뭐지?' 하는 순간들
- 02 Dec, 2025
후배 코드 리뷰, ‘이게 뭐지?’ 하는 순간들
출근했다. 10시 30분. 회의 3개 캔슬했다. 코드 리뷰 하는 날이니까. 후배 준호가 PR 올렸다. 제목은 “Next.js 마이그레이션 - ISR 최적화”.
나는 Java 개발자다. Spring 안에서 20년을 살았다. 그게 자랑스러웠다. 한때는. 지금은 이 PR 앞에서 마우스만 움직인다.
화면 켰을 때의 그 느낌
export async function getStaticProps(context) {
const { revalidate } = context.params;
const data = await fetchUserData(revalidate);
return {
props: { data },
revalidate: parseInt(revalidate) || 3600,
};
}
뭐다? ISR? Incremental Static Regeneration?
스프링에서는 요청 올 때 마다 컨트롤러 탄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20년간. 근데 이건 빌드 타임에 정적으로 생성하고 주기적으로 리제너레이트 한다고? 부분적으로?
콤마 몇 개 더 치고 ‘음, 좋은 시도’라고 댓글 달 수도 있다. 근데 난 팀장이다. 파트장이다. 이게 맞는 구조인지 왜 이렇게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물어보면 내가 모르는 게 탄로난다.
좋다. 조금 더 읽어보자.

과신은 어제의 나
작년만 해도 나는 싹싹했다. 후배들 코드 봐도 ‘아, 이건 이렇게 하면 더 좋지’, ‘동시성 이슈 여기 있네’, 이 정도면 지적했다. 경험에서 나오는 당당함. 그게 리더십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준호의 코드를 보고 있으면 다섯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첫째, ‘오, 이건 좋네’라는 생각. 둘째, ‘근데 이게 맞나?‘라는 의심. 셋째, ‘혼자 공부하기엔 시간이 없는데?‘라는 패배감. 넷째, ‘물어봐도 되나?‘라는 초초함. 다섯째, ‘내가 리드할 수 있나?‘라는 불안감.
다섯 가지가 한 번에 온다. 커피 한 모금 마신다. 세 번째 커피다. 아직 11시 30분.
리뷰를 달아야 한다. 뭔가 말을 해야 한다. 팀장이 조용히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래서 일반적인 조언을 단다. “성능 고려했으니 좋네”, “테스트 코드는?”, “에러 핸들링 여기 확인해봐”.
이건 모든 코드에 통하는 말이다.
경험의 본질인 척 하면서 실은 피하는 것 같은 느낌. 싫다.
모르는 게 쌓일 때
슬랙에 핑. 수진이다. 러스트로 뭔가 새로 만들고 있다고. 성능이 좋다고.
러스트는 뭐야? 뭐 하는 언어야?
동료들은 이미 다 안다. 20대 개발자들은 당연히 안다. 심지어 인턴도 안다. 나만 모른다. 모르는데 일이 자꾸 몰려온다.
“박시니어, 이 러스트 코드 한번 봐주실래요? 성능 체크.”
봐줄까? 못 봐줄까? 봐줄 수도 없으니 못 봐주지. 근데 말을 해야 한다.
“일단 올려봐. 주말에 한번 봐볼게.”
거짓말이다. 주말엔 아들 수학 봐주고, 딸 학원 픽업하고, 아내 병원 동반 가고. 주말에 새로운 언어 배울 시간은 없다. 근데 그렇게라도 말해야 팀장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책임과 무지의 타협점
회의실. 4시간 스프린트 계획 회의. 아, 내일 기술 스택 결정 회의도 있다. 마이크로프론트엔드 도입 검토.
누가 주도할 거냐고? 당연히 나다. 파트장이니까.
근데 난 마이크로프론트엔드 논문 안 읽었다. 사례 연구도 안 했다. 유튜브 영상 하나 봤나? 그것도 작년 영상이다.
명일 회의에 가서 뭐 할 거냐고? 다들 한 바퀴 말하게 듣고, 좋은 질문 하는 척 몇 개 던지고, “좋은 의견들 많네요. 이건 좀 더 깊게 검토하고 주 목요일에 최종 결정”이라고 말할 것 같다.
이게 리더십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근데 이 정도면 일은 돌아간다. 팀이 움직인다. 후배들은 ‘아, 파트장이 고민 중이시네’ 정도로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는 누도 모른다. 왜냐면 나도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르니까.

정직하고 싶은데 리더는 못 할까
어제 준호한테 따로 말했다. 커피 마시면서.
“준호, ISR 구현 좋네. 근데 왜 이 방식으로 했어? 다른 옵션도 생각했어?”
준호가 웃었다. “파트장님도 궁금하신 거죠? 저도 처음엔 몰랐거든요.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 봤는데, 우리 상황하고 비슷해서.”
그럼 돼. 정직했다. 난 몰랐고, 준호는 알았다. 그게 끝이다. 그래서 더 물었다.
“그럼 성능 개선은 얼마나 됐어?”
“로딩이 40% 빨라졌어요.”
“숫자 좋네. 모니터링은?”
“대시보드 연결했습니다.”
이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이 기술을 완벽하게 몰라도, 준호는 알고 있고, 결과는 나왔고, 리스크는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게 리더십 아닐까. 모든 걸 아는 리더가 아니라, 모르는 걸 인정하고 팀을 믿는 리더.
근데 이게 얼마나 오래갈까. 5년? 10년?
기술은 계속 변한다. 매 6개월마다 뭔가 새로 나온다. 모르는 게 자꾸만 쌓인다. 언젠가는 이 불안감이 팀에 들릴 거다.
“파트장님, 이건 어때요?” 물을 때, 내 대답이 자꾸 일반적일 거다. 구체적이지 않을 거다.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없을 거다.
그럼 내가 뭐냐. 그냥 세션 잡는 관리자냐.
싫다.
뒤처진다는 건 틀렸다는 게 아니고
금요일. 야근 했다. 준호 코드 다시 봤다. 이번엔 프리젠테이션 영상 보고. 유튜브에서 ISR 강의 찾아서 봤다. 30분짜리 영상인데, 처음 10분만 봤다. 졸렸다.
그런데 조금 느껴졌다. ISR이 뭔지. 왜 필요한지. 준호가 왜 이렇게 했는지.
모든 걸 이해하진 못했다. 상세한 메커니즘은 여전히 모호하다. 근데 충분히 이해했다. 월요일 회의 때 질문할 수 있을 정도로는. 좋은 질문을요. 정직한 질문을.
아, 그리고 깨달았다. 20년 경력이 무색한 게 아니라, 개발 방식이 달라진 거다. 내가 배운 건 서버 중심. 요청-응답. 상태 관리. 이건 클라이언트 중심. 정적 생성. 캐시 전략.
완전 다른 세상이다. 근데 컴퓨터 공학의 본질은 같다. 효율성, 확장성, 안정성. 그것만 봐도 된다. 도구는 바뀌어도 사고 방식은 통한다.
이 정도면, 리더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게 계속 될까. 매번 이렇게 주말에 공부해야 하나. 야근하고 영상 봐야 하나.
음. 일단은 그런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모른다고 팀이 멈추진 않는다는 거다. 준호는 준호대로 커간다. 수진이는 러스트로 뭔가 만든다. 후배들은 후배들 속도대로 간다.
나는 내 속도대로 따라가면 된다. 모를 때도 있지만, 가끔 알 때도 있으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아는 척하지 말고 배우자. 그게 리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