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세대차이
- 09 Dec, 2025
9500만원 연봉, 이게 천장인가 시작인가
9500만원 연봉, 이게 천장인가 시작인가 급여명세서를 볼 때마다 매달 25일. 급여명세서가 온다. 세전 791만원. 세후 손에 쥐는 건 570만원쯤.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좋은 편이다. 대한민국 상위 5% 안에 든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답답할까.임원 승진 대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다는 걸 들었다. 지난주 임원 회의록을 실수로 받았는데, 거기 내 이름이 있었다. "박 파트장, 차기 임원 후보로 검토" 그 순간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바로 답답해졌다. 1억의 무게 임원이 되면 연봉이 1억 2천쯤 된다고 한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선배들 통해 들은 거다. 거기에 스톡옵션, RSU 같은 거 붙으면 실제론 더 많다. 월급이 세후 700만원 넘는다. 지금보다 130만원 더 많다. 130만원. 우리 집 관리비 + 통신비 + 아이들 학원비다. 아내한테 말했다. "임원 제안 들어올 것 같아." "오빠, 대박이네! 받아야지." "근데... 그럼 개발은 못 해." "개발은 왜 못 해? 임원이면 더 많이 하는 거 아니야?" 설명했다. 임원은 관리다. 전략이다. 보고서다. 임원 회의다. 본사 임원들 상대다. 코딩은 안 한다. 못 한다. 시간이 없다. 아내는 이해 못 했다. "그래도 연봉이 더 많으면 좋은 거 아니야?"그렇다. 좋은 거다. 객관적으로는. 그런데 주관적으로는 모르겠다. 코딩이 좋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20년 전, 처음 회사 들어왔을 때. 난 코딩이 일이었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해서 하는 거였다. 10년 차쯤 됐을 때. 코딩이 편해졌다. 손에 익었다. 그래도 여전히 일이었다. 15년 차. 팀장 달았다. 관리 업무가 늘었다. 코딩 시간이 줄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코딩이 좋다. 회의하고, 보고서 쓰고, 일정 조율하고, 인사평가하고. 이런 걸 하다가 저녁 6시 넘어서 혼자 IDE 켜고 코드 짤 때. 그때가 제일 편하다. 문제를 코드로 푸는 게 좋다. 컴파일 에러는 명확하다. 뭐가 잘못됐는지 알려준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 미팅에서 "검토하겠습니다"는 YES인지 NO인지 모른다. 코드는 거짓말을 안 한다. 돌아가면 돌아가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다.지난주에 신입이 물어봤다. "파트장님, 이 로직 어떻게 짜야 할까요?" 같이 앉아서 2시간 짰다. 리팩토링하고, 테스트 케이스 만들고, 최적화하고. 그 2시간이 행복했다. 그 순간만큼은 파트장도 아니고, 관리자도 아니고, 개발자였다. 임원실에서 코드를 짜는 사람은 없다 우리 회사 임원 7명. 다들 개발자 출신이다. CTO도, 부사장도, 전무도. 그중에 코드 짜는 사람은 0명이다. 작년에 CTO가 개발팀 회의에 왔다. "요즘 개발 트렌드가 어떤가요?" 물어보는 거다. 요즘 개발 트렌드를. 개발 총괄한테. 그때 알았다. 저 자리에 가면 나도 저렇게 된다. "요즘은 뭐가 유행인가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된다. 선배 임원 한 분이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코딩하고 싶어. 근데 시간이 없어. 하루 종일 회의야. 본사에서 자료 달라면 만들어야 하고. 주말에 집에서 코딩해볼까 했는데, 환경 세팅하다가 포기했어." 그분은 지금 연봉이 1억 8천이라고 한다. 부럽냐고? 글쎄. 9500만원이 적은 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자. 연봉 9500만원.서울 강남 아파트 중형 대출 이자 낸다 아이 둘 사교육 시킨다 부모님 용돈 드린다 1년에 해외여행 한 번 간다 노후 준비 조금씩 한다다 된다. 빠듯하지만 된다. 1억 2천 되면 뭐가 달라지나.아파트를 조금 더 큰 걸로 갈아탄다 아이 학원을 한두 개 더 보낸다 여행을 일 년에 두 번 간다 노후 준비를 조금 더 빨리 한다그게 다다. 삶의 질이 20% 올라간다. 그런데 일의 만족도는 50% 떨어진다. 계산이 안 맞는다. 아내는 이해 못 한다. "그래도 돈이 많으면 좋잖아." 맞다. 좋다. 그런데. 45세, 다시 개발자가 되려면 만약 임원 됐다가 다시 개발자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될까. 불가능하다. 일단 시장에서 안 받아준다. "임원 하다가 왜 다시 개발자로?" 의심한다. 설령 받아준다 해도 연봉이 깎인다. 임원 1억 2천에서 시니어 개발자 8천으로. 그리고 가장 큰 문제. 기술 따라잡기가 힘들다. 지금도 버거운데. Next.js, Rust, Go, K8s, MSA... 요즘 채용공고 보면 모르는 게 반이다. 3년 동안 임원실에서 보고서 쓰다가 나오면? 5년 전 기술로 무장한 개발자다. 그걸 45세에 따라잡는 건. 솔직히 자신 없다. 그래서 지금이 갈림길이다 임원 승진 제안이 오면. 받으면: 개발자로서의 삶은 끝난다. 연봉은 오른다. 명함은 좋아진다. 코딩은 못 한다. 거절하면: 개발자로 남는다. 연봉은 여기서 정체한다. 후배들은 빠르게 추격한다. 임원 기회는 다시 안 온다. 둘 다 리스크가 있다. 선배한테 물었다. 55세에 임원 은퇴한 분. "형, 후회 없으세요?" "후회는... 글쎄. 돈은 많이 벌었어. 근데 개발은 못 했지. 지금 다시 하려니까 엄두가 안 나." "그럼 후회하는 거 아니에요?" "후회라기보단... 아쉽지. 가끔 코드 짤 때가 그리워." 그분은 지금 작은 스타트업에서 고문 한다. 개발은 안 하고 자문만 한다. 월 200만원 받는다. 아들이 물어봤다 "아빠, 회사에서 뭐 해?" "음... 여러 가지. 회의도 하고, 개발도 하고." "개발이 뭔데?"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거야." "아, 코딩? 쿨하다! 나도 배우고 싶어." 그 순간. 알았다. 내가 아들한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건 "코딩한다"는 거였다. "회의한다", "보고서 쓴다"는 자랑할게 못 된다. 아들이 "우리 아빠는 임원이야"라고 자랑할까, "우리 아빠는 개발자야"라고 자랑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근데 나는 후자로 불리고 싶다. 동기들 모임 대학 동기 5명. 한 달에 한 번 만난다.A는 작은 회사 대표. 연봉 개념 없음. 잘될 땐 잘되고 안 될 땐 월급도 못 받음. B는 대기업 임원. 연봉 2억. 스톡옵션 5억. C는 공무원. 연봉 6천. 정시 퇴근. 연금 보장. D는 프리랜서 개발자. 연봉 1억 2천. 프로젝트 따라 들쭉날쭉. 나는 파트장. 연봉 9500.누가 제일 행복한가. 글쎄. B는 돈은 많은데 주말에도 일한다. 밤 11시에 슬랙 온다. C는 칼퇴근하는데 하는 일이 재미없다고 한다. D는 자유로운데 불안정하다. 내년에 일 있을지 모른다. A는 도전적인데 스트레스가 심하다. 작년에 위궤양 걸렸다. 나는? 애매하다. 안정적이지만 자유롭지 않다. 돈은 괜찮은데 천장이 보인다. 개발은 하는데 점점 못 하게 된다. 그날 D가 말했다. "야, 너 임원 안 돼? 그럼 나처럼 프리랜서 해." 웃었다. 45세에 프리랜서. 용기가 안 난다. 결국 선택의 문제 누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임원이 정답인 사람도 있다. 개발자가 정답인 사람도 있다. 나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1억 2천을 벌면서 불행한 것보다, 9500을 벌면서 행복한 게 낫다. 이건 맞다. 그런데 또 확실한 건. 돈이 많으면 선택지가 넓어진다. 아이들 교육, 부모님 건강, 내 노후. 이것도 맞다. 둘 다 맞으니까 고민이다. 며칠 전, 신입이 물었다. "파트장님은 앞으로 뭐 하고 싶으세요?" 대답을 못 했다. "글쎄... 개발도 하고 싶고, 임원도... 음." 신입이 웃었다. "둘 다 하시면 되죠." 그게 되면 얼마나 좋겠냐. 9500, 천장인가 시작인가 제목으로 돌아왔다. 9500만원. 이게 내 천장인가, 아니면 1억 2천으로 가는 시작인가.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알게 된 건. 천장이든 시작이든, 그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의 문제다. 무엇으로 정의되고 싶은지의 문제다. 나는 "임원이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아니면 "개발자였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당장 답은 안 나온다. 임원 제안이 정식으로 오면 그때 결정해야지. 다만 확실한 건.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할 거다. 선택하지 않은 길이 궁금할 거다. 그게 인생이니까.오늘도 6시 넘어서 코드를 켰다. 내일도 그럴 거다. 이게 계속될 수 있을까.
- 02 Dec, 2025
후배 코드 리뷰, '이게 뭐지?' 하는 순간들
후배 코드 리뷰, '이게 뭐지?' 하는 순간들 출근했다. 10시 30분. 회의 3개 캔슬했다. 코드 리뷰 하는 날이니까. 후배 준호가 PR 올렸다. 제목은 "Next.js 마이그레이션 - ISR 최적화". 나는 Java 개발자다. Spring 안에서 20년을 살았다. 그게 자랑스러웠다. 한때는. 지금은 이 PR 앞에서 마우스만 움직인다. 화면 켰을 때의 그 느낌 export async function getStaticProps(context) { const { revalidate } = context.params; const data = await fetchUserData(revalidate); return { props: { data }, revalidate: parseInt(revalidate) || 3600, }; }뭐다? ISR? Incremental Static Regeneration? 스프링에서는 요청 올 때 마다 컨트롤러 탄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20년간. 근데 이건 빌드 타임에 정적으로 생성하고 주기적으로 리제너레이트 한다고? 부분적으로? 콤마 몇 개 더 치고 '음, 좋은 시도'라고 댓글 달 수도 있다. 근데 난 팀장이다. 파트장이다. 이게 맞는 구조인지 왜 이렇게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물어보면 내가 모르는 게 탄로난다. 좋다. 조금 더 읽어보자.과신은 어제의 나 작년만 해도 나는 싹싹했다. 후배들 코드 봐도 '아, 이건 이렇게 하면 더 좋지', '동시성 이슈 여기 있네', 이 정도면 지적했다. 경험에서 나오는 당당함. 그게 리더십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준호의 코드를 보고 있으면 다섯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첫째, '오, 이건 좋네'라는 생각. 둘째, '근데 이게 맞나?'라는 의심. 셋째, '혼자 공부하기엔 시간이 없는데?'라는 패배감. 넷째, '물어봐도 되나?'라는 초초함. 다섯째, '내가 리드할 수 있나?'라는 불안감. 다섯 가지가 한 번에 온다. 커피 한 모금 마신다. 세 번째 커피다. 아직 11시 30분. 리뷰를 달아야 한다. 뭔가 말을 해야 한다. 팀장이 조용히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래서 일반적인 조언을 단다. "성능 고려했으니 좋네", "테스트 코드는?", "에러 핸들링 여기 확인해봐". 이건 모든 코드에 통하는 말이다. 경험의 본질인 척 하면서 실은 피하는 것 같은 느낌. 싫다. 모르는 게 쌓일 때 슬랙에 핑. 수진이다. 러스트로 뭔가 새로 만들고 있다고. 성능이 좋다고. 러스트는 뭐야? 뭐 하는 언어야? 동료들은 이미 다 안다. 20대 개발자들은 당연히 안다. 심지어 인턴도 안다. 나만 모른다. 모르는데 일이 자꾸 몰려온다. "박시니어, 이 러스트 코드 한번 봐주실래요? 성능 체크." 봐줄까? 못 봐줄까? 봐줄 수도 없으니 못 봐주지. 근데 말을 해야 한다. "일단 올려봐. 주말에 한번 봐볼게." 거짓말이다. 주말엔 아들 수학 봐주고, 딸 학원 픽업하고, 아내 병원 동반 가고. 주말에 새로운 언어 배울 시간은 없다. 근데 그렇게라도 말해야 팀장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책임과 무지의 타협점 회의실. 4시간 스프린트 계획 회의. 아, 내일 기술 스택 결정 회의도 있다. 마이크로프론트엔드 도입 검토. 누가 주도할 거냐고? 당연히 나다. 파트장이니까. 근데 난 마이크로프론트엔드 논문 안 읽었다. 사례 연구도 안 했다. 유튜브 영상 하나 봤나? 그것도 작년 영상이다. 명일 회의에 가서 뭐 할 거냐고? 다들 한 바퀴 말하게 듣고, 좋은 질문 하는 척 몇 개 던지고, "좋은 의견들 많네요. 이건 좀 더 깊게 검토하고 주 목요일에 최종 결정"이라고 말할 것 같다. 이게 리더십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근데 이 정도면 일은 돌아간다. 팀이 움직인다. 후배들은 '아, 파트장이 고민 중이시네' 정도로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는 누도 모른다. 왜냐면 나도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르니까.정직하고 싶은데 리더는 못 할까 어제 준호한테 따로 말했다. 커피 마시면서. "준호, ISR 구현 좋네. 근데 왜 이 방식으로 했어? 다른 옵션도 생각했어?" 준호가 웃었다. "파트장님도 궁금하신 거죠? 저도 처음엔 몰랐거든요.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 봤는데, 우리 상황하고 비슷해서." 그럼 돼. 정직했다. 난 몰랐고, 준호는 알았다. 그게 끝이다. 그래서 더 물었다. "그럼 성능 개선은 얼마나 됐어?" "로딩이 40% 빨라졌어요." "숫자 좋네. 모니터링은?" "대시보드 연결했습니다." 이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이 기술을 완벽하게 몰라도, 준호는 알고 있고, 결과는 나왔고, 리스크는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게 리더십 아닐까. 모든 걸 아는 리더가 아니라, 모르는 걸 인정하고 팀을 믿는 리더. 근데 이게 얼마나 오래갈까. 5년? 10년? 기술은 계속 변한다. 매 6개월마다 뭔가 새로 나온다. 모르는 게 자꾸만 쌓인다. 언젠가는 이 불안감이 팀에 들릴 거다. "파트장님, 이건 어때요?" 물을 때, 내 대답이 자꾸 일반적일 거다. 구체적이지 않을 거다.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없을 거다. 그럼 내가 뭐냐. 그냥 세션 잡는 관리자냐. 싫다. 뒤처진다는 건 틀렸다는 게 아니고 금요일. 야근 했다. 준호 코드 다시 봤다. 이번엔 프리젠테이션 영상 보고. 유튜브에서 ISR 강의 찾아서 봤다. 30분짜리 영상인데, 처음 10분만 봤다. 졸렸다. 그런데 조금 느껴졌다. ISR이 뭔지. 왜 필요한지. 준호가 왜 이렇게 했는지. 모든 걸 이해하진 못했다. 상세한 메커니즘은 여전히 모호하다. 근데 충분히 이해했다. 월요일 회의 때 질문할 수 있을 정도로는. 좋은 질문을요. 정직한 질문을. 아, 그리고 깨달았다. 20년 경력이 무색한 게 아니라, 개발 방식이 달라진 거다. 내가 배운 건 서버 중심. 요청-응답. 상태 관리. 이건 클라이언트 중심. 정적 생성. 캐시 전략. 완전 다른 세상이다. 근데 컴퓨터 공학의 본질은 같다. 효율성, 확장성, 안정성. 그것만 봐도 된다. 도구는 바뀌어도 사고 방식은 통한다. 이 정도면, 리더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게 계속 될까. 매번 이렇게 주말에 공부해야 하나. 야근하고 영상 봐야 하나. 음. 일단은 그런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모른다고 팀이 멈추진 않는다는 거다. 준호는 준호대로 커간다. 수진이는 러스트로 뭔가 만든다. 후배들은 후배들 속도대로 간다. 나는 내 속도대로 따라가면 된다. 모를 때도 있지만, 가끔 알 때도 있으니까.모르는 게 있으면, 아는 척하지 말고 배우자. 그게 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