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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차이
- 27 Dec, 2025
야근한 다음 날, 하루 종일 피곤한 이유
어제 야근했다 어제 밤 11시까지 남았다. 긴급 배포. 사실 긴급도 아닌데 팀장이 긴급이라고 했다. 집에 와서 씻고 누웠더니 12시 반. 눈을 감았는데 코드가 보인다. while문이 돌아간다. 잠이 안 온다. 결국 잔 건 새벽 2시. 알람은 7시. 5시간 잤다.출근길부터 이상하다 지하철에서 졸았다. 평소엔 안 그런다. 기사 읽거나 메일 체크한다. 오늘은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종점까지 갈 뻔했다. 회사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봤다. 눈 밑이 까맣다. "파트장님 안색이..." 하는 후배를 웃으면서 지나쳤다. 괜찮다고 했다. 전혀 괜찮지 않다. 오전 회의가 지옥이다 9시 30분 주간 회의. 1시간짜리. 15분 지나니까 머리가 무겁다. 30분 지나니까 눈꺼풀이 감긴다. 회의실 온도는 24도. 딱 좋은 온도다. 졸기 딱 좋다는 뜻이다. "파트장님 의견은 어떠세요?"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뭘 물어본 거지. 5초 멍했다. "아 그거... 두 가지 다 검토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만능 답변이다. 20년 차의 지혜다.30대 때는 아니었다 30대 초반엔 이틀 밤샘도 했다. 금요일 밤 야근하고 토요일 오후까지 일하고, 집 가서 씻고 또 일요일 나와서 오후까지. 그리고 월요일 정상 출근.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다. 그런데 그때는 했다. 할 수 있었다. 월요일에 좀 피곤하긴 했다. 그래도 오후 되면 괜찮아졌다. 지금은? 하루 야근했는데 이틀째 끌고 간다. 체력의 문제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점심 먹고 나니까 식당 갔다. 된장찌개 먹었다. 밥 한 공기 다 먹었다. 자리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았다. 5분 후 정신을 차렸다. 졸았다. 앉아서. 모니터에 슬랙 알림 17개. 아무것도 안 읽혔다. "파트장님 커피 드실래요?" 고맙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얼음 빼고. 마셨다. 30분 후에 각성 효과가 올 것이다. 그 30분이 길다.오후 3시, 최악의 시간 지금 3시 10분이다. 하루 중 가장 졸린 시간이다. 평소에도 3시는 좀 졸리다. 오늘은 정도가 다르다. 눈을 뜨고 있는 게 고통이다. 아니, 눈을 뜨고 있는 게 불가능하다. 화장실 갔다 왔다. 찬물로 세수했다. 5분간 효과 있었다. 자리 돌아와서 앉으니까 다시 졸립다. 코드 리뷰 해야 하는데 한 줄 읽고 딴 생각한다. 다시 읽는다. 이해가 안 된다. 또 읽는다. 평소 같으면 10분이면 끝날 리뷰를 30분째 하고 있다. 예전엔 다음 날 운동도 갔다 30대 중반까지는 야근하고 다음 날 헬스장 갔다. "어제 늦게까지 했는데 운동까지 하네?" 하던 후배들. "체력이 국력이지" 하면서 웃었다. 지금은 그 후배가 팀장이다. 여전히 야근하고 다음 날 운동 간다. 나는 지금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다. 체력의 차이다. 10년의 차이다. 저녁 6시, 드디어 정규 업무 시간 끝났다. 평소 같으면 7시까지는 남아서 일한다. 오늘은 못 하겠다. "먼저 들어갑니다" 슬랙에 올렸다. "파트장님 어제 늦게까지 하셨으니까요" 팀원이 답했다. 고맙다. 눈물 날 것 같다. 가방 챙겼다. 노트북 덮었다. 일어섰다. 일어서는데 허리가 뻐근하다.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엘리베이터 탔다. 거울 봤다. 아침보다 더 안 좋다. 집에 와서 현관문 열었다. 아내가 "일찍 왔네" 한다. "응 오늘 일찍 나왔어" 신발 벗었다. 양말 벗었다. 거실 소파에 그대로 누웠다. "저녁 먹어?" "응... 10분 후에" 눈을 감았다. 정신을 차리니까 8시였다. 2시간 잤다. 소파에서. 저녁 먹고 씻고 침대에 누웠다. 9시 반. 아들이 방문 열고 "아빠 이거 좀 봐줘" 한다. "내일..." 하고 눈을 감았다. 미안하다. 정말 못 하겠다. 결국 인정하는 수밖에 이제 45다. 20대처럼 못 한다. 30대처럼도 못 한다. 야근하면 다음 날 망한다. 이틀은 끌고 간다. 주말에 쉬어도 월요일까지 피곤하다. 이게 현실이다. "나이 들면 체력 관리 해야지" 하던 선배들 말이 이해된다. 그때는 "저는 괜찮은데요" 했다. 지금 그 나이가 됐다. 전혀 괜찮지 않다. 그래도 해야 한다 인정은 했다. 그런데 일은 해야 한다. 긴급 배포는 또 온다. 야근은 또 한다. 다만 이제는 안다. 다음 날 대가를 치른다는 걸. 그래서 야근 다음 날은 중요한 미팅 안 잡는다. 기술 검토 같은 것도 다음다음 날로 미룬다. 오후 3시에는 일어나서 걷는다. 10분이라도. 커피는 2시 이후로 안 마신다. 마시면 밤에 잠을 못 잔다. 적응하는 중이다. 나이 드는 것에. 후배들에게는 "야근 최대한 하지 마" 한다. "정말 급한 거 아니면 내일 해" "집에 가서 쉬어" 그렇게 말한다. 나처럼 되지 말라는 뜻이다. 20년 동안 야근하면서 체력 갈아넣지 말라는 뜻이다. 후배들은 "네 알겠습니다" 하고 칼퇴한다. 잘한다. 진짜 잘한다. 나는 그 시간에 남아서 일한다. 파트장이니까. 웃긴다.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내가 하고 있다. 내일은 금요일이다 다행이다. 내일 하루만 버티면 주말이다. 주말에는 12시간 잘 것이다. 토요일 오전은 통째로 잔다. 일어나서 밥 먹고 또 낮잠 잘 것이다. 그렇게 해야 월요일에 정상이다. 이게 45세의 주말이다. 20대 때는 주말에 등산 갔다. 30대 때는 축구했다. 지금은 잔다. 체력 회복에 쓴다.야근 한 번에 이틀이 간다. 이게 40대다.
- 25 Dec, 2025
45세 개발 파트장의 급여표 - 선택지 읽기
금요일 저녁, 급여표를 열었다 7시다. 팀원들 다 갔다. 인사팀에서 온 메일이다. "2025년 직급별 예상 급여표". 임원 트랙과 전문직 트랙이 나뉘어 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커피를 다시 탔다. 네 번째다.위로 가는 길 - 임원 트랙 계산했다. 진지하게. 현재: 파트장 (부장급)연봉 9500만원 팀원 8명 관리 코딩 시간 하루 2시간 회의 하루 4시간다음: 팀장 (상무급)예상 연봉 1억 3000만원 파트 3개 관리 (약 25명) 코딩 시간 거의 없음 회의 하루 6시간+ 임원 대우 시작 (전용 주차, 별도 식당)그 다음: 본부장 (전무급)예상 연봉 1억 8000만원 부서 전체 책임 (100명+) 코딩? 그게 뭐죠 회의 하루 종일 골프 필수 사내 정치 필수어제 상무님 통화 들었다. 새벽 1시에 임원 회의 준비한다고. 주말에 골프 약속 3개. 그분 작년에 코드 짠 거 본 적 있나? 없다.위로 가는 길의 디테일 금전적 보상연봉 3500만원 상승 (세후 2200만원) 스톡옵션 가능성 퇴직금 급증 (5년 더 하면 2억+) 복지: 임원 전용 뭔가 많음비금전적 대가개발 완전 포기 기술 트렌드에서 멀어짐 정치 능력 필수 책임 범위 극대화 (뭐만 하면 너 책임) 스트레스 레벨 상승 언제든 잘릴 수 있음 (임원은 계약직 성격)어제 점심에 팀장님이 말했다. "박 파트장, 위로 가려면 코드 내려놔야 해. 진짜로." 알고 있다. 그게 싫어서 10년 버텼는데. 계산기를 두드렸다. 월 290만원 더 받는다. 세금 빼면 180만원. 이게... 개발 포기할 가치인가? 아래로 가는 길 - 전문직 트랙 우리 회사에 있다. "수석 개발자" 제도. 수석 개발자 (Principal Engineer)예상 연봉 1억 1000만원 관리 업무 없음 코딩 하루 6시간+ 기술 리더십 (멘토링, 아키텍처) 회의는 필요한 것만 승진 압박 없음작년에 김 수석이 우리 팀 왔었다. 49세. 그 양반, 오후 내내 코드 짰다. 회의 거절했다. "제 시간이 비싸거든요." 멋있었다. 근데 연봉은 나보다 1500만원 더 받는다. 임원은 아니다.아래로 가는 길의 현실 전문직 트랙 신청했다는 동기한테 물었다. "솔직히 어때?" 그 친구 말이다. 좋은 점:코딩 실컷 함 회의 압박 없음 기술 공부에 집중 스트레스 적음 일찍 퇴근 가능 나이 들어도 존중받음안 좋은 점:연봉 천장 낮음 (최대 1억 3000만원) 승진 기회 없음 (여기가 끝) 사내 영향력 제한적 팀원들이 "저분 왜 파트장 아니지?" 함 동기들 임원 되면 미묘함 평생 "기술자" 이미지그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행복해. 진짜로."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급여표 계산 - 10년 후 엑셀을 켰다. 진지하게 계산했다. 임원 트랙 (55세 본부장 가정)10년 누적 연봉: 약 15억 스톡옵션: 추가 2억? 퇴직금: 3억 합계: 20억전문직 트랙 (55세 수석 개발자)10년 누적 연봉: 약 12억 스톡옵션: 없음 퇴직금: 2억 합계: 14억차이는 6억이다. 6억. 아파트 한 채 값이다. 근데 이게 행복의 차이일까? 화요일 점심, 후배와의 대화 32살 김 대리가 물었다. "파트장님은 어디로 가실 거예요?" "모르겠어." "전 전문직 갈 거예요. 코딩하고 싶어서 이 일 시작했거든요." 이 친구, 연봉 6000만원이다. 나 32살 때보다 1500만원 많다. "근데 결혼하고 애 낳으면 생각 바뀔 수도 있어." "그럴까요? 파트장님은요?" 나는 15년 전을 떠올렸다. 결혼식 날. 아내한테 말했다. "나 평생 개발자로 살 거야." 지금은? 하루 2시간 코딩한다. 그마저도 회의 때문에 끊긴다. "나는... 생각이 바뀌더라." 김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믿지 않는 표정이다. 10년 후에 보자. 목요일 밤, 아내와의 대화 아내한테 물었다. "임원 되면 연봉 3500 오르는데." "좋네." "근데 코딩은 못 해." "..." 아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당신 요즘 행복해 보여?" 대답을 못 했다. "임원 되면 더 안 행복해질 거 같은데." "그래도 돈은..." "우리 지금도 충분해. 애들 대학까지 다 계산했잖아." 맞다. 계산했다. 지금 연봉이면 된다. "근데 동기들은 다 임원이야." "동기들이 당신 인생 사나?" 말문이 막혔다.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밤에 코딩할 때 제일 행복해 보여. 나는 그게 좋아." 금요일 오전, 인사팀장과의 면담 인사팀장이 불렀다. "박 부장님, 트랙 선택하셨어요?" "아직이요." "이번 달까지 결정하셔야 해요." 테이블 위에 두 장의 문서가 있다. 왼쪽: 임원 트랙 신청서 오른쪽: 전문직 트랙 신청서 "참고로, 임원 트랙 가시면 내년 승진 대상이에요." 심장이 뛴다. "전문직 가시면... 승진은 없어요. 대신 편하시죠." 편하다는 게 좋은 말인가, 나쁜 말인가. "고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손이 떨린다. 그날 저녁, IDE를 켰다 팀원들 다 갔다. IntelliJ를 켰다. 새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개인 공부용이다. Kotlin + Spring Boot. 요즘 애들이 쓰는 거.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 코딩했다. 아무도 방해 안 한다. 슬랙도 조용하다. 함수를 짰다. 테스트를 통과했다. 리팩토링했다. 행복했다. 3시간 동안 급여표 생각 안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생각했다. "이게 내 일이었지." 월요일 아침, 결정 인사팀에 메일을 보냈다. 제목: 전문직 트랙 신청 본문은 한 줄이다. "코딩하고 싶습니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심장이 뛴다. 후회될까? 모르겠다. 점심 때 동기한테 전화가 왔다. 이번에 전무 된 친구다. "야, 너 전문직 간다며?" "어. 들었어?" "미쳤냐. 임원 트랙 가면 나랑 같이 갈 수 있는데." "난 코딩이 좋아." "...그래. 근데 나중에 후회하지 마." "너는 후회 안 해?" 침묵. "...가끔. 코드 짜고 싶을 때." 전화를 끊었다. 2주 후, 발령 공지가 떴다. "박시니어 부장, 수석 개발자(Principal Engineer) 선임" 관리 업무 없음. 기술 자문 역할. 연봉은 1000만원 올랐다. 임원 트랙보다 2500만원 적다. 팀장님이 찾아왔다. "고생 많았어요. 이제 편하게 코딩하세요." "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괜찮아요? 임원 트랙 가실 수 있었는데." "전 이게 맞는 것 같아요." 팀장님이 웃었다. "부럽네요. 저는 이미 늦었어요." 그날 저녁, 관리 업무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1on1 일정, 평가 자료, 회의록 템플릿. 후임 파트장한테 넘긴다. 짐을 덜어내는 기분이다. 한 달 후, 수석 개발자의 하루 오전 10시 출근. (코어타임만 지키면 됨) 메일 10개. 슬랙 20개. 30분이면 끝. 오전 내내 코딩. 새 아키텍처 설계. 점심 먹고 1시간 산책. 기술 팟캐스트 들음. 오후 코딩. 후배 멘토링 1시간. 6시 퇴근. 저녁에 기술 블로그 쓰거나 공부. 이게 내 일이다. 주말에 컨퍼런스 갔다. 발표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어느 회사세요?" "대기업 IT 자회사요." "직급이?" "수석 개발자요." "멋있네요." 임원이라고 했을 때보다 반응이 좋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3개월 후, 후회는 후회할까 봐 걱정했다. 안 한다. 아니, 가끔 한다. 동기들 임원 소식 들을 때. "이사 승진", "본부장 발령". 그때는 '내가 잘한 걸까' 싶다. 근데 다음 날 아침. IDE 켜고 코드 짤 때. '잘했다' 싶다. 지난주 아들이 물었다. "아빠, 회사에서 뭐 해?" "코딩해." "멋있다!" 이게 답이다. 임원이라고 했으면 "멋있다" 안 했을 거다. "바쁘겠다" 했겠지. 6개월 후, 급여표를 다시 봤다 연말이다. 작년 이맘때 봤던 그 급여표를 다시 열었다. 내가 선택한 길:연봉 1억 500만원 관리 업무 없음 코딩 하루 6시간 회의 주 3시간 저녁 있는 삶 주말 온전히 내 시간내가 포기한 길:연봉 1억 3000만원 (차이 2500만원) 임원 대우 더 높은 퇴직금 사내 영향력 승진 기회 동기들과의 동급2500만원 차이. 월 200만원이다. 세후 120만원. 이 돈으로 뭘 살 수 있나? 행복? 못 산다. 나는 이미 있으니까. 1년 후, 전 동료를 만났다 작년에 임원 된 전 동료를 만났다. "어때? 임원 생활." "죽겠어. 골프 주 2회, 회식 주 3회." "코딩은?" "그게 뭐야. 이제 못 해." "후회해?" 그 친구가 잠시 멈췄다. "...아니. 이게 내 선택이니까." "나도." 우리는 웃었다.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게 중요하다. 카페를 나서면서 그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너 부럽다. 코딩하잖아." "너도 부러워. 연봉 많잖아." "..." "농담이야. 나 안 부러워." 진심이다. 지금, 금요일 저녁 7시다. 자리를 정리한다. 노트북을 닫는다. 개인 맥북이다. 회사 업무용이 아니라. 주말에 할 개인 프로젝트가 있다. Go 언어로 CLI 툴 만들기. 재미로.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어서. 연봉? 직급? 중요하지 않다. 내가 뭘 하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개발자다. 45세 개발자. 앞으로 10년, 20년 더 코딩할 거다. 그게 내 길이다. 급여표는 접었다. 서랍에 넣었다. 다시 볼 일 없다.결국 급여표는 숫자일 뿐이다. 내 하루를 채우는 건 코드다.
- 22 Dec, 2025
기술 선택 회의에서 '내 의견은 이거야' 못 하는 날들
오늘도 회의 오전 10시. 아키텍처 회의. 신규 프로젝트 기술 스택 결정하는 자리다. "파트장님 의견은요?" 5초 침묵했다. 20년 차가 5초 침묵했다."둘 다 장단점이 있어." 또 이 말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내 대답이다. 예전엔 안 그랬다 30대 때는 달랐다. "이거 쓰면 됩니다" 단칼에 정했다. 근거도 명확했다. 경험했으니까. 지금은? 경험했는데 확신이 없다. 작년에 Go 도입 회의 때였다. "Go 괜찮습니다. 동시성 처리 좋고요." 김대리가 말했다. 27살. 나도 Go 안다. 토이 프로젝트로 3개월 써봤다. 근데 실무는 다르잖아. "음... 러닝 커브는?" "저희 팀원들 금방 배웁니다." 맞는 말이다. 근데 3년 뒤는? 유지보수는? 이직으로 사람 빠지면?질문만 10개 했다. 대답은 다 들었다. 그래도 결정 못 했다. "다음 주까지 검토하고 다시 모이자." 회의 끝나고 혼자 남았다. 예전엔 내가 답을 줬는데. 지금은 내가 시간을 번다. 확신이 사라진 순간 정확히 언제부턴가. 아마 40 넘어서부터. 새 기술 나올 때마다 공부했다. React, Vue, Next.js, Nest.js. 다 해봤다. 블로그도 읽었다. 근데 실무 투입은 못 해봤다. 회의만 하고, 검토만 하고, 승인만 한다. 이게 문제다. 코드를 안 짜니까 감이 없다. 작년에 React 18 나왔을 때. 김대리가 "Suspense 진짜 좋습니다" 했다. 나는 문서만 읽었다. "좋긴 한데... 레거시랑 호환은?" "마이그레이션 플랜 세우면 됩니다." "공수는?" "한 달 정도요." 한 달. 이 친구 말이 맞을까. 경험해본 나라면 알텐데. 결국 "좀 더 검토해보자" 했다. 김대리 표정이 묘했다. 실망? 답답함?그날 저녁에 혼자 코드 짜봤다. React 18로 샘플 프로젝트. 3시간 걸렸다. "아, 이거 괜찮네." 근데 이미 늦었다. 회의는 끝났고, 검토 기간 2주 잡혔고. 내가 시간 끈 거다. 내가 병목이다 요즘 자주 느낀다. 내가 속도를 늦춘다. 후배들은 빠르다. 새 기술 나오면 주말에 써본다. 월요일에 "이거 좋습니다" 한다. 나는? 월요일에 문서 읽기 시작한다. 수요일에 "검토 중" 이다. 금요일에 "다음 주에" 한다. 2주 지나면 후배들 의욕 떨어진다. 당연하다. 지난달에 TypeScript 5.0 도입 건. 박주임이 제안했다. 29살. "Decorator 개선됐고, Enum 성능 좋아졌습니다." 나는 4.9까지만 써봤다. 5.0은 릴리즈 노트만 읽었다. "기존 프로젝트 영향도는?" "CI/CD 파이프라인은?" "타입 체킹 시간은?" 질문만 쏟아냈다. 박주임이 다 조사해서 가져왔다. 그래도 "한 번 더 보자" 했다. 왜? 확신이 없어서. 집에 와서 아내한테 말했다. "나 요즘 일 못 하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파트장까지 달았잖아." "그게 문제야. 파트장이니까 결정해야 하는데." 아내는 이해 못 한다. 나도 설명 못 한다. 20년 경력의 무게 경력이 길수록 신중해진다. 이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실패를 많이 봤다. 잘못된 기술 선택으로 프로젝트 망한 거. 유행 따라갔다가 유지보수 지옥 된 거. 다 겪었다. 2010년에 NoSQL 열풍 때. MongoDB 도입했다가 1년 만에 MySQL 복귀. 마이그레이션에 3개월 걸렸다. 2015년에 마이크로서비스 전환. 모놀리스를 20개 서비스로 쪼갰다. 결과는? 장애 추적 지옥. 이런 거 겪으니까. 새 기술 앞에서 겁이 난다. 근데 후배들은 모른다. 실패를 안 겨봤으니까. 그래서 자신감 넘친다. 누가 맞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실패 경험이 나를 신중하게 만들었는데. 그게 지금은 나를 느리게 만든다. 회의 중 내 모습 요즘 회의 때 내 모습."좋은데, 리스크는?" "괜찮은데, 검증은?" "나쁘지 않은데, 레퍼런스는?"부정 먼저 나온다. 의도는 아닌데 습관이다. 김대리가 GraphQL 제안했을 때. "REST보다 유연하고, 오버페칭 없고..." 나는 들으면서 생각했다. '쿼리 복잡도 관리는? N+1 문제는? 캐싱은?' 입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말이야..." 김대리 표정 굳었다. 또 시작이구나. 그 표정이었다. 회의 끝나고 복도에서. "파트장님은 뭘 원하세요?" 순간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모르겠다. 안전한 선택? 검증된 기술? 그럼 계속 Java Spring만? 아니면 새 기술? 배우고 적응하고? 근데 실패하면 책임은 내가? 밤에 혼자 코딩할 때 집에 와서 10시. 아이들 재우고. 노트북 켰다. GraphQL 튜토리얼. 1시간 따라 했다. "오, 이거 진짜 편한데?" 근데 이건 토이 프로젝트. 실무는 다르다. 트래픽 1000 RPS 때는? 데이터베이스 10개 조인 때는? 모른다. 해봐야 아는데 해볼 시간이 없다. 새벽 1시. 더 하고 싶은데 내일 회의 있다. 잤다. 다음 날 회의. "GraphQL 제안 건, 좀 더 검토하고..." 또 미뤘다. 김대리가 물었다. "언제까지 검토하세요?" "2주?" "파일럿이라도 해보면 안 될까요?" 좋은 제안이다. 근데 파일럿 리소스는 어디서? 실패하면 그 시간은 누가 책임지나? "검토하고 얘기하자." 회의실 나오면서 느꼈다. 나는 결정을 회피하고 있다. 파트장의 역설 파트장이 됐다. 의사결정권을 받았다. 근데 결정을 못 한다. 권한은 있는데 확신이 없다. 이게 역설이다. 부장님한테 물어볼까. "GraphQL 도입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장님은 더 모른다. 10년 전에 개발 그만뒀다. 나한테 물어본다. "박 파트장 판단에 맡기지." 결국 내가 정해야 한다. 근데 못 정한다. 팀원들은 기다린다. 2주, 4주, 6주. 그 사이 다른 팀은 이미 적용했다. 페이스북에 사례 올라온다. "GraphQL 도입 후기" 우리 팀은 아직 검토 중. 어느 금요일 저녁 퇴근 30분 전. 김대리가 들어왔다. "파트장님, 시간 있으세요?" "어, 말해봐." "GraphQL 건인데요." 또 이거다. "제가 주말에 PoC 만들어봤습니다." 노트북을 돌렸다. 코드가 보였다. "기존 REST API랑 성능 비교했고요." 그래프가 보였다. 응답 속도 30% 개선. "에러 핸들링도 구현했고." 코드 설명했다. 진짜 잘 만들었다. "캐싱 전략도 정리했습니다." 문서 10페이지. 내가 물었던 것들 다 답했다. 5분 동안 설명 들었다. 할 말이 없었다. "좋네." "그럼 적용해도 될까요?" 여기서 또 막혔다. 좋은데, 그래도, 만약에... "한 번만 더 보자." 김대리 표정. 실망을 숨기려고 애쓴다. "네, 알겠습니다." 나갔다. 혼자 남았다. 모니터를 봤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저 친구가 날 믿고 3주 기다렸다. 주말 반납하고 PoC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걸 다 준비했다. 근데 나는 또 "한 번 더"다. 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김대리한테 슬랙 보냈다. "GraphQL 적용하자. 파일럿으로 한 API부터." 답장 10초 만에 왔다. "감사합니다!" 회의 소집했다. "GraphQL 파일럿 프로젝트 시작한다." 김대리가 발표했다. 일정 2주, 범위 유저 API 3개, 모니터링 1주. 나는 들으면서 생각했다. '진작 이렇게 할 걸.' 근데 또 불안하다. 만약 실패하면? 성능 안 나오면? 장애 나면? 고개를 저었다. 그만 생각하자. 후배를 믿어야지. 내가 다 확신할 수는 없다. 20년 경력이 다 아는 게 아니다. 그냥 인정하자. 모르는 게 있다고. 후배가 나보다 잘 아는 게 있다고. 2주 후 GraphQL 파일럿 완료. 결과 보고 회의. 성능 개선 25%. 에러율 0.3% (허용 범위). 응답 속도 평균 150ms → 110ms. 성공이다. 김대리가 보고했다. 나는 옆에서 들었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부장님이 물었다. "다른 API도 확대 적용하죠?" 내가 대답했다. "네, 진행하겠습니다." 이번엔 확신 있게 말했다. 결과를 봤으니까. 회의 끝나고. 김대리가 커피 사왔다. "파트장님, 처음엔 왜 그렇게 신중하셨어요?" 솔직하게 말했다. "확신이 없었어. 내가 안 해봐서." "그래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희가 잘해줘서 가능했지." 둘 다 웃었다. 깨달은 것 나는 모든 걸 알 수 없다. 20년 경력도 마찬가지다. 후배들이 아는 게 있다. 새 기술, 새 트렌드. 그들이 현장에 더 가깝다. 내 역할은 뭘까. 모든 걸 결정하는 게 아니다. 방향을 제시하고, 리스크를 관리하고, 실패를 받아주는 것. 확신 없어도 괜찮다. 대신 믿어줘야 한다. 후배를 믿고. 데이터를 믿고. 결과를 보고 수정하면 된다. 완벽한 결정은 없다. 빠른 실행과 빠른 수정. 이게 답인 것 같다. 요즘 회의에서 바뀐 것. "둘 다 장단점이 있어. 근데 일단 해보자." 한 줄 추가했다. "일단 해보자."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확신은 없어도 실행은 할 수 있다.경력이 길수록 겸손해진다. 그게 약점일 수도, 강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 12 Dec, 2025
아침 회의, 점심 회의, 저녁 회의 - 코딩할 시간은?
오늘의 캘린더아침 9시. 캘린더를 켰다. 빨간색 블록 3개. 파란색 블록 4개. 노란색 블록 2개. "오늘도 회의 9개네." 커피를 마신다. 첫 잔. 9시 30분, 주간회의. 10시 30분, 기획팀 미팅. 11시, 임원 보고. 점심 먹고 1시, 협력사 미팅. 2시, 기술검토 회의. 3시, 1on1. 4시, 전사 타운홀. 5시, 긴급 이슈 회의. "코딩은 언제 해?" 6시 이후만 비어있다. 그것도 '긴급 회의 없으면'. 파트장 된 지 1년. 이게 맞나 싶다. 회의의 종류회의는 크게 3종류다. 첫째, 내가 있어야 하는 회의. 기술 검토, 아키텍처 결정, 코드리뷰. 이런 건 파트장이 빠지면 안 된다. 전체 회의의 30% 정도. 둘째, 내가 없어도 되는 회의. 정보 공유, 진행상황 보고, 일정 조율. 이메일이나 슬랙으로 되는데 왜 모이나. 40% 정도. 셋째, 뭐하는 건지 모르겠는 회의. 시작할 때는 A 얘기, 끝날 때는 Z 얘기. 결론 없음. 다음 회의 약속만 생김. 나머지 30%. 오늘 오전 회의 3개 끝났다. 첫째 유형 1개, 둘째 유형 1개, 셋째 유형 1개. 코딩한 시간: 0분. 작성한 코드 줄 수: 0줄. 마신 커피: 3잔. 점심시간의 함정 점심 먹고 돌아왔다. 12시 50분. "1시 회의까지 10분 남았네." IDE를 켠다. 어제 하던 코드 열었다. public class UserService { // TODO: 리팩토링 필요TODO 주석을 본다. 언제 달았더라. 지난주? 손가락을 올린다. 키보드 위에. 슬랙 알림. "박 파트장님, 1시 회의 5분 전인데 자료 미리 보시면..." 자료를 연다. PDF 37페이지. 1시 회의 시작. "오늘은 30분이면 끝날 것 같습니다." 2시에 끝났다. 다음 회의까지 1시간. 이제 코딩 가능. IDE를 켠다. 다시. public class UserService { // TODO: 리팩토링 필요손가락을 올린다. "박 파트장님, 잠깐 여쭤볼 게 있는데요..." 후배가 온다. 책상으로. "이 부분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까요?" 설명한다. 20분. 시계를 본다. 2시 30분. 다음 회의까지 30분. "30분이면 뭘 하나." 메일을 확인한다. 47개. 3시 회의 시작. 저녁이 되면6시 15분. 마지막 회의 끝. 사무실이 조용하다. 후배들은 다 퇴근했다. "이제 코딩 시작이네." IDE를 켠다. 세 번째. public class UserService { // TODO: 리팩토링 필요손가락이 움직인다. 30분 지났다. 코드 50줄 짰다. 1시간 지났다. 테스트 코드 작성 중. 1시간 30분 지났다. 리팩토링 완료. "이 맛이지." 시계를 본다. 8시. 배가 고프다. 점심 이후 아무것도 안 먹었다. 피곤하다. 회의 9개 했다. 집에 가야 한다. 아들이 기다린다. 하지만 지금 집중된다. 이 흐름을 끊고 싶지 않다. 30분만 더. 이 기능만 끝내면. 9시에 퇴근했다. 오늘 작성한 코드: 150줄. 오늘 참석한 회의: 9개. 오늘 코딩한 시간: 3시간. "뭔가 이상한데." 20년 전과 지금 20년 전, 신입 때. 출근하면 코딩. 점심 먹고 코딩. 저녁 먹고 코딩. 회의는 주 1회. 그것도 30분. 하루 코딩 시간: 8시간 이상. 코드 리뷰는 옆자리 선배한테 바로. 5분이면 끝. 이슈 생기면 팀원들 모아서 화이트보드 앞에서 토론. 30분 안에 결정. 빠르고 단순했다. 지금은 뭐든 '회의'다. 코드 리뷰 회의. 30분. 기술 검토 회의. 1시간. 이슈 대응 회의. 1시간 30분. "회의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계산해봤다. 회의 9개 × 평균 50분 = 450분 = 7시간 30분. 회의 자료 준비, 사전 검토, 사후 정리까지 합치면 9시간. 근무시간 9시간. "아, 그래서 코딩을 못 하는 거구나." 파트장의 역설 후배가 물었다. 지난주에. "파트장님은 요즘 코딩 많이 하세요?" "응... 저녁에 좀 하지." "부럽다. 저는 하루 종일 코딩만 해요." "..." 부러운 건 나다. 파트장 달기 전에는 나도 하루 종일 코딩했다. 지금은 하루 종일 회의한다. 아이러니다. 개발 경력 쌓아서 파트장 됐는데, 정작 개발은 못 한다. 기술 실력 인정받아서 올라왔는데, 정작 기술은 녹슨다. "이게 승진인가, 퇴보인가." 동기한테 말했다. 전화로. "그게 관리자야.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시키는 거지." "난 시키고 싶어서 개발자 된 게 아닌데." "그럼 임원 승진 포기해." "..." 딜레마다. 임원 되면 연봉 오른다. 1억 넘는다. 하지만 개발은 진짜 못 한다. 회의만 더 늘어난다. 평 개발자로 남으면 코딩 할 수 있다. 하지만 45살 평 개발자.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회의 중독 사회 우리 회사만 그런 게 아니다. 지인들 만나면 다들 비슷하다. 대기업은 더 심하다. 회의의 회의, 보고의 보고. 스타트업도 요즘 그렇다. '애자일'이라면서 매일 스탠드업, 스프린트 리뷰, 레트로스펙티브. "회의가 업무가 된 거다." 실제 일은 회의 시간 외에. 개발은 저녁에. 기획은 야근 시간에. 디자인은 주말에. 정규 근무시간은 회의로 가득 차고, 실제 업무는 그 외 시간에 하는 시스템. "이게 정상인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하지만 아무도 바꾸지 못한다. 왜냐면 모두가 회의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도 만든다. 이번 주에 회의 2개 잡았다. "필요해서 잡았는데..." 정말 필요한가? 솔직히 슬랙으로 물어보면 될 것도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정하려면' 회의를 한다. 그렇게 회의가 늘어난다. 악순환이다. 6시 이후의 개발자 요즘 깨달았다. 나는 '낮의 개발자'와 '밤의 개발자'가 다르다. 낮의 나: 회의 참석자, 의견 제시자, 조율자, 관리자. 밤의 나: 프로그래머. 낮에는 말을 한다. 많이. 밤에는 코드를 짠다. 조용히. 낮에는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밤에는 에너지가 생긴다. "본업은 밤에 하는 거네." 이상하다. 개발자인데 개발은 부업 시간에 한다. 본업 시간에는 회의를 한다. "이러다 진짜 개발 못 하는 관리자 되겠다." 두렵다. 10년 후, 55살. 임원 달고 회의만 하는 '전직 개발자'. 코드는 읽을 수 있지만 짤 수는 없는 사람. 기술은 아는데 적용은 못 하는 사람. "그건 되고 싶지 않은데." 작은 저항 이번 주부터 실험 중이다. '코딩 타임' 블록을 캘린더에 넣었다. 매일 오후 4시~6시. 2시간. 빨간색으로 표시. 제목은 "Focus Time - 회의 불가". 첫날, 누가 4시 30분에 회의 잡으려고 했다. "죄송한데 그 시간은 어려워서요." "아, 네. 그럼 6시 이후로 할까요?" "6시 이후도 어렵습니다. 내일 오전은 어떠세요?" 회의가 미뤄졌다. 신기했다. 거절할 수 있구나. 둘째 날, 4시에 슬랙이 왔다. "파트장님, 급한 건데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10초 고민했다. 답장했다. "6시 이후 통화 드릴게요. 급하면 메시지로 먼저 남겨주세요." 메시지로 왔다. 읽어보니 그렇게 급한 건 아니었다. 6시에 전화했다. 5분 만에 해결. "2시간 회의할 뻔했네." 셋째 날, 4시부터 6시까지 코딩했다. 방해 없이. 집중해서. 200줄 짰다. "이 맛이었지." 불편한 진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코딩 타임'을 지키려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한다. 저녁 약속은 늘어난다. 4시 회의가 6시로 밀리니까. 급한 이슈는 대응이 늦어진다. 2시간 후에야 보니까. 팀원들은 답답해한다. 바로 물어볼 수 없으니까. "이기적인 건가?" 고민된다. 파트장이 2시간씩 연락 안 되면, 팀 운영에 문제 생긴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나는 개발을 못 한다. 어디까지가 파트장의 책임이고, 어디까지가 개인의 권리인가. 정답은 모르겠다. 그냥 해보는 거다. 실험. 망하면 방법을 바꾸면 된다. 숫자로 보는 현실 지난달 통계를 냈다. 실제로. 총 근무 시간: 220시간 (주 55시간 × 4주) 회의 시간: 143시간 (65%) 코딩 시간: 48시간 (22%) 이메일/슬랙: 22시간 (10%) 기타: 7시간 (3%) "회의가 3분의 2네." 신입 때 통계도 찾아봤다. 20년 전 기록. 총 근무 시간: 240시간 (야근 많았음) 회의 시간: 8시간 (3%) 코딩 시간: 210시간 (88%) 기타: 22시간 (9%) "코딩이 거의 9할이었네." 20년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코딩 88% → 22% 회의 3% → 65% "이게 성장인가, 변질인가." 동료들의 선택 팀장급 동료들과 술 먹었다. 지난주. A형: "나는 포기했어. 코딩은 후배들이 잘해. 난 방향만 잡아주면 돼." B형: "새벽에 해. 5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집에서 코딩." C형: "휴가 쓰고 코딩해. 일년에 휴가 10일은 코딩용." D형: "이직했어. 작은 회사로. 회의 적은 데로." 다들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나는 어떤 타입일까. A형은 되기 싫다. 아직. B형은 체력이 안 된다. 새벽 5시는 무리. C형은... 가족한테 미안하다. D형은 용기가 안 난다. 45살 이직. "5번째 타입을 만들어야 하나." 후배에게 들은 말 1on1 하다가 들었다. 29살 후배. "파트장님은 코딩 안 하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왜?" "관리하시잖아요. 방향 정하시고, 리뷰하시고." "나도 코딩하고 싶은데." "그럼 파트장 안 하시면 되죠." "..." 틀린 말은 아니다. 파트장 달면 회의가 많은 거 알고 올라왔다. 코딩 시간 줄어드는 거 알고 승진했다. "내가 선택한 거잖아." 하지만 이렇게까지 줄어들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그리울 줄도 몰랐다. 코딩이. 이번주 목표 캘린더를 본다. 이번 주. 빨간색 블록 15개. 회의. 파란색 블록 5개. 새로 만든 '코딩 타임'. "5일 × 2시간 = 10시간." 10시간이면 뭘 할 수 있나. 리팩토링 하나 끝낼 수 있다. 새 기능 하나 만들 수 있다. 기술 부채 하나 갚을 수 있다. "해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10시간이 5시간이 돼도 괜찮다. 지금보다 나으면 된다. 회의는 줄이지 못해도, 코딩은 늘릴 수 있다. 관리자가 돼도, 개발자는 유지할 수 있다. "아직은."회의 9개 하고 코드 150줄. 이게 정상은 아닐 것 같다.
- 09 Dec, 2025
9500만원 연봉, 이게 천장인가 시작인가
9500만원 연봉, 이게 천장인가 시작인가 급여명세서를 볼 때마다 매달 25일. 급여명세서가 온다. 세전 791만원. 세후 손에 쥐는 건 570만원쯤.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좋은 편이다. 대한민국 상위 5% 안에 든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답답할까.임원 승진 대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다는 걸 들었다. 지난주 임원 회의록을 실수로 받았는데, 거기 내 이름이 있었다. "박 파트장, 차기 임원 후보로 검토" 그 순간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바로 답답해졌다. 1억의 무게 임원이 되면 연봉이 1억 2천쯤 된다고 한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선배들 통해 들은 거다. 거기에 스톡옵션, RSU 같은 거 붙으면 실제론 더 많다. 월급이 세후 700만원 넘는다. 지금보다 130만원 더 많다. 130만원. 우리 집 관리비 + 통신비 + 아이들 학원비다. 아내한테 말했다. "임원 제안 들어올 것 같아." "오빠, 대박이네! 받아야지." "근데... 그럼 개발은 못 해." "개발은 왜 못 해? 임원이면 더 많이 하는 거 아니야?" 설명했다. 임원은 관리다. 전략이다. 보고서다. 임원 회의다. 본사 임원들 상대다. 코딩은 안 한다. 못 한다. 시간이 없다. 아내는 이해 못 했다. "그래도 연봉이 더 많으면 좋은 거 아니야?"그렇다. 좋은 거다. 객관적으로는. 그런데 주관적으로는 모르겠다. 코딩이 좋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20년 전, 처음 회사 들어왔을 때. 난 코딩이 일이었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해서 하는 거였다. 10년 차쯤 됐을 때. 코딩이 편해졌다. 손에 익었다. 그래도 여전히 일이었다. 15년 차. 팀장 달았다. 관리 업무가 늘었다. 코딩 시간이 줄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코딩이 좋다. 회의하고, 보고서 쓰고, 일정 조율하고, 인사평가하고. 이런 걸 하다가 저녁 6시 넘어서 혼자 IDE 켜고 코드 짤 때. 그때가 제일 편하다. 문제를 코드로 푸는 게 좋다. 컴파일 에러는 명확하다. 뭐가 잘못됐는지 알려준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 미팅에서 "검토하겠습니다"는 YES인지 NO인지 모른다. 코드는 거짓말을 안 한다. 돌아가면 돌아가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다.지난주에 신입이 물어봤다. "파트장님, 이 로직 어떻게 짜야 할까요?" 같이 앉아서 2시간 짰다. 리팩토링하고, 테스트 케이스 만들고, 최적화하고. 그 2시간이 행복했다. 그 순간만큼은 파트장도 아니고, 관리자도 아니고, 개발자였다. 임원실에서 코드를 짜는 사람은 없다 우리 회사 임원 7명. 다들 개발자 출신이다. CTO도, 부사장도, 전무도. 그중에 코드 짜는 사람은 0명이다. 작년에 CTO가 개발팀 회의에 왔다. "요즘 개발 트렌드가 어떤가요?" 물어보는 거다. 요즘 개발 트렌드를. 개발 총괄한테. 그때 알았다. 저 자리에 가면 나도 저렇게 된다. "요즘은 뭐가 유행인가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된다. 선배 임원 한 분이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코딩하고 싶어. 근데 시간이 없어. 하루 종일 회의야. 본사에서 자료 달라면 만들어야 하고. 주말에 집에서 코딩해볼까 했는데, 환경 세팅하다가 포기했어." 그분은 지금 연봉이 1억 8천이라고 한다. 부럽냐고? 글쎄. 9500만원이 적은 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자. 연봉 9500만원.서울 강남 아파트 중형 대출 이자 낸다 아이 둘 사교육 시킨다 부모님 용돈 드린다 1년에 해외여행 한 번 간다 노후 준비 조금씩 한다다 된다. 빠듯하지만 된다. 1억 2천 되면 뭐가 달라지나.아파트를 조금 더 큰 걸로 갈아탄다 아이 학원을 한두 개 더 보낸다 여행을 일 년에 두 번 간다 노후 준비를 조금 더 빨리 한다그게 다다. 삶의 질이 20% 올라간다. 그런데 일의 만족도는 50% 떨어진다. 계산이 안 맞는다. 아내는 이해 못 한다. "그래도 돈이 많으면 좋잖아." 맞다. 좋다. 그런데. 45세, 다시 개발자가 되려면 만약 임원 됐다가 다시 개발자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될까. 불가능하다. 일단 시장에서 안 받아준다. "임원 하다가 왜 다시 개발자로?" 의심한다. 설령 받아준다 해도 연봉이 깎인다. 임원 1억 2천에서 시니어 개발자 8천으로. 그리고 가장 큰 문제. 기술 따라잡기가 힘들다. 지금도 버거운데. Next.js, Rust, Go, K8s, MSA... 요즘 채용공고 보면 모르는 게 반이다. 3년 동안 임원실에서 보고서 쓰다가 나오면? 5년 전 기술로 무장한 개발자다. 그걸 45세에 따라잡는 건. 솔직히 자신 없다. 그래서 지금이 갈림길이다 임원 승진 제안이 오면. 받으면: 개발자로서의 삶은 끝난다. 연봉은 오른다. 명함은 좋아진다. 코딩은 못 한다. 거절하면: 개발자로 남는다. 연봉은 여기서 정체한다. 후배들은 빠르게 추격한다. 임원 기회는 다시 안 온다. 둘 다 리스크가 있다. 선배한테 물었다. 55세에 임원 은퇴한 분. "형, 후회 없으세요?" "후회는... 글쎄. 돈은 많이 벌었어. 근데 개발은 못 했지. 지금 다시 하려니까 엄두가 안 나." "그럼 후회하는 거 아니에요?" "후회라기보단... 아쉽지. 가끔 코드 짤 때가 그리워." 그분은 지금 작은 스타트업에서 고문 한다. 개발은 안 하고 자문만 한다. 월 200만원 받는다. 아들이 물어봤다 "아빠, 회사에서 뭐 해?" "음... 여러 가지. 회의도 하고, 개발도 하고." "개발이 뭔데?"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거야." "아, 코딩? 쿨하다! 나도 배우고 싶어." 그 순간. 알았다. 내가 아들한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건 "코딩한다"는 거였다. "회의한다", "보고서 쓴다"는 자랑할게 못 된다. 아들이 "우리 아빠는 임원이야"라고 자랑할까, "우리 아빠는 개발자야"라고 자랑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근데 나는 후자로 불리고 싶다. 동기들 모임 대학 동기 5명. 한 달에 한 번 만난다.A는 작은 회사 대표. 연봉 개념 없음. 잘될 땐 잘되고 안 될 땐 월급도 못 받음. B는 대기업 임원. 연봉 2억. 스톡옵션 5억. C는 공무원. 연봉 6천. 정시 퇴근. 연금 보장. D는 프리랜서 개발자. 연봉 1억 2천. 프로젝트 따라 들쭉날쭉. 나는 파트장. 연봉 9500.누가 제일 행복한가. 글쎄. B는 돈은 많은데 주말에도 일한다. 밤 11시에 슬랙 온다. C는 칼퇴근하는데 하는 일이 재미없다고 한다. D는 자유로운데 불안정하다. 내년에 일 있을지 모른다. A는 도전적인데 스트레스가 심하다. 작년에 위궤양 걸렸다. 나는? 애매하다. 안정적이지만 자유롭지 않다. 돈은 괜찮은데 천장이 보인다. 개발은 하는데 점점 못 하게 된다. 그날 D가 말했다. "야, 너 임원 안 돼? 그럼 나처럼 프리랜서 해." 웃었다. 45세에 프리랜서. 용기가 안 난다. 결국 선택의 문제 누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임원이 정답인 사람도 있다. 개발자가 정답인 사람도 있다. 나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1억 2천을 벌면서 불행한 것보다, 9500을 벌면서 행복한 게 낫다. 이건 맞다. 그런데 또 확실한 건. 돈이 많으면 선택지가 넓어진다. 아이들 교육, 부모님 건강, 내 노후. 이것도 맞다. 둘 다 맞으니까 고민이다. 며칠 전, 신입이 물었다. "파트장님은 앞으로 뭐 하고 싶으세요?" 대답을 못 했다. "글쎄... 개발도 하고 싶고, 임원도... 음." 신입이 웃었다. "둘 다 하시면 되죠." 그게 되면 얼마나 좋겠냐. 9500, 천장인가 시작인가 제목으로 돌아왔다. 9500만원. 이게 내 천장인가, 아니면 1억 2천으로 가는 시작인가.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알게 된 건. 천장이든 시작이든, 그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의 문제다. 무엇으로 정의되고 싶은지의 문제다. 나는 "임원이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아니면 "개발자였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당장 답은 안 나온다. 임원 제안이 정식으로 오면 그때 결정해야지. 다만 확실한 건.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할 거다. 선택하지 않은 길이 궁금할 거다. 그게 인생이니까.오늘도 6시 넘어서 코드를 켰다. 내일도 그럴 거다. 이게 계속될 수 있을까.
- 02 Dec, 2025
후배 코드 리뷰, '이게 뭐지?' 하는 순간들
후배 코드 리뷰, '이게 뭐지?' 하는 순간들 출근했다. 10시 30분. 회의 3개 캔슬했다. 코드 리뷰 하는 날이니까. 후배 준호가 PR 올렸다. 제목은 "Next.js 마이그레이션 - ISR 최적화". 나는 Java 개발자다. Spring 안에서 20년을 살았다. 그게 자랑스러웠다. 한때는. 지금은 이 PR 앞에서 마우스만 움직인다. 화면 켰을 때의 그 느낌 export async function getStaticProps(context) { const { revalidate } = context.params; const data = await fetchUserData(revalidate); return { props: { data }, revalidate: parseInt(revalidate) || 3600, }; }뭐다? ISR? Incremental Static Regeneration? 스프링에서는 요청 올 때 마다 컨트롤러 탄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20년간. 근데 이건 빌드 타임에 정적으로 생성하고 주기적으로 리제너레이트 한다고? 부분적으로? 콤마 몇 개 더 치고 '음, 좋은 시도'라고 댓글 달 수도 있다. 근데 난 팀장이다. 파트장이다. 이게 맞는 구조인지 왜 이렇게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물어보면 내가 모르는 게 탄로난다. 좋다. 조금 더 읽어보자.과신은 어제의 나 작년만 해도 나는 싹싹했다. 후배들 코드 봐도 '아, 이건 이렇게 하면 더 좋지', '동시성 이슈 여기 있네', 이 정도면 지적했다. 경험에서 나오는 당당함. 그게 리더십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준호의 코드를 보고 있으면 다섯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첫째, '오, 이건 좋네'라는 생각. 둘째, '근데 이게 맞나?'라는 의심. 셋째, '혼자 공부하기엔 시간이 없는데?'라는 패배감. 넷째, '물어봐도 되나?'라는 초초함. 다섯째, '내가 리드할 수 있나?'라는 불안감. 다섯 가지가 한 번에 온다. 커피 한 모금 마신다. 세 번째 커피다. 아직 11시 30분. 리뷰를 달아야 한다. 뭔가 말을 해야 한다. 팀장이 조용히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래서 일반적인 조언을 단다. "성능 고려했으니 좋네", "테스트 코드는?", "에러 핸들링 여기 확인해봐". 이건 모든 코드에 통하는 말이다. 경험의 본질인 척 하면서 실은 피하는 것 같은 느낌. 싫다. 모르는 게 쌓일 때 슬랙에 핑. 수진이다. 러스트로 뭔가 새로 만들고 있다고. 성능이 좋다고. 러스트는 뭐야? 뭐 하는 언어야? 동료들은 이미 다 안다. 20대 개발자들은 당연히 안다. 심지어 인턴도 안다. 나만 모른다. 모르는데 일이 자꾸 몰려온다. "박시니어, 이 러스트 코드 한번 봐주실래요? 성능 체크." 봐줄까? 못 봐줄까? 봐줄 수도 없으니 못 봐주지. 근데 말을 해야 한다. "일단 올려봐. 주말에 한번 봐볼게." 거짓말이다. 주말엔 아들 수학 봐주고, 딸 학원 픽업하고, 아내 병원 동반 가고. 주말에 새로운 언어 배울 시간은 없다. 근데 그렇게라도 말해야 팀장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책임과 무지의 타협점 회의실. 4시간 스프린트 계획 회의. 아, 내일 기술 스택 결정 회의도 있다. 마이크로프론트엔드 도입 검토. 누가 주도할 거냐고? 당연히 나다. 파트장이니까. 근데 난 마이크로프론트엔드 논문 안 읽었다. 사례 연구도 안 했다. 유튜브 영상 하나 봤나? 그것도 작년 영상이다. 명일 회의에 가서 뭐 할 거냐고? 다들 한 바퀴 말하게 듣고, 좋은 질문 하는 척 몇 개 던지고, "좋은 의견들 많네요. 이건 좀 더 깊게 검토하고 주 목요일에 최종 결정"이라고 말할 것 같다. 이게 리더십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근데 이 정도면 일은 돌아간다. 팀이 움직인다. 후배들은 '아, 파트장이 고민 중이시네' 정도로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는 누도 모른다. 왜냐면 나도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르니까.정직하고 싶은데 리더는 못 할까 어제 준호한테 따로 말했다. 커피 마시면서. "준호, ISR 구현 좋네. 근데 왜 이 방식으로 했어? 다른 옵션도 생각했어?" 준호가 웃었다. "파트장님도 궁금하신 거죠? 저도 처음엔 몰랐거든요.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 봤는데, 우리 상황하고 비슷해서." 그럼 돼. 정직했다. 난 몰랐고, 준호는 알았다. 그게 끝이다. 그래서 더 물었다. "그럼 성능 개선은 얼마나 됐어?" "로딩이 40% 빨라졌어요." "숫자 좋네. 모니터링은?" "대시보드 연결했습니다." 이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이 기술을 완벽하게 몰라도, 준호는 알고 있고, 결과는 나왔고, 리스크는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게 리더십 아닐까. 모든 걸 아는 리더가 아니라, 모르는 걸 인정하고 팀을 믿는 리더. 근데 이게 얼마나 오래갈까. 5년? 10년? 기술은 계속 변한다. 매 6개월마다 뭔가 새로 나온다. 모르는 게 자꾸만 쌓인다. 언젠가는 이 불안감이 팀에 들릴 거다. "파트장님, 이건 어때요?" 물을 때, 내 대답이 자꾸 일반적일 거다. 구체적이지 않을 거다.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없을 거다. 그럼 내가 뭐냐. 그냥 세션 잡는 관리자냐. 싫다. 뒤처진다는 건 틀렸다는 게 아니고 금요일. 야근 했다. 준호 코드 다시 봤다. 이번엔 프리젠테이션 영상 보고. 유튜브에서 ISR 강의 찾아서 봤다. 30분짜리 영상인데, 처음 10분만 봤다. 졸렸다. 그런데 조금 느껴졌다. ISR이 뭔지. 왜 필요한지. 준호가 왜 이렇게 했는지. 모든 걸 이해하진 못했다. 상세한 메커니즘은 여전히 모호하다. 근데 충분히 이해했다. 월요일 회의 때 질문할 수 있을 정도로는. 좋은 질문을요. 정직한 질문을. 아, 그리고 깨달았다. 20년 경력이 무색한 게 아니라, 개발 방식이 달라진 거다. 내가 배운 건 서버 중심. 요청-응답. 상태 관리. 이건 클라이언트 중심. 정적 생성. 캐시 전략. 완전 다른 세상이다. 근데 컴퓨터 공학의 본질은 같다. 효율성, 확장성, 안정성. 그것만 봐도 된다. 도구는 바뀌어도 사고 방식은 통한다. 이 정도면, 리더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게 계속 될까. 매번 이렇게 주말에 공부해야 하나. 야근하고 영상 봐야 하나. 음. 일단은 그런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모른다고 팀이 멈추진 않는다는 거다. 준호는 준호대로 커간다. 수진이는 러스트로 뭔가 만든다. 후배들은 후배들 속도대로 간다. 나는 내 속도대로 따라가면 된다. 모를 때도 있지만, 가끔 알 때도 있으니까.모르는 게 있으면, 아는 척하지 말고 배우자. 그게 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