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 개발 파트장의 급여표 - 선택지 읽기

45세 개발 파트장의 급여표 - 선택지 읽기

금요일 저녁, 급여표를 열었다

7시다. 팀원들 다 갔다.

인사팀에서 온 메일이다. “2025년 직급별 예상 급여표”. 임원 트랙과 전문직 트랙이 나뉘어 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커피를 다시 탔다. 네 번째다.

위로 가는 길 - 임원 트랙

계산했다. 진지하게.

현재: 파트장 (부장급)

  • 연봉 9500만원
  • 팀원 8명 관리
  • 코딩 시간 하루 2시간
  • 회의 하루 4시간

다음: 팀장 (상무급)

  • 예상 연봉 1억 3000만원
  • 파트 3개 관리 (약 25명)
  • 코딩 시간 거의 없음
  • 회의 하루 6시간+
  • 임원 대우 시작 (전용 주차, 별도 식당)

그 다음: 본부장 (전무급)

  • 예상 연봉 1억 8000만원
  • 부서 전체 책임 (100명+)
  • 코딩? 그게 뭐죠
  • 회의 하루 종일
  • 골프 필수
  • 사내 정치 필수

어제 상무님 통화 들었다. 새벽 1시에 임원 회의 준비한다고. 주말에 골프 약속 3개.

그분 작년에 코드 짠 거 본 적 있나? 없다.

위로 가는 길의 디테일

금전적 보상

  • 연봉 3500만원 상승 (세후 2200만원)
  • 스톡옵션 가능성
  • 퇴직금 급증 (5년 더 하면 2억+)
  • 복지: 임원 전용 뭔가 많음

비금전적 대가

  • 개발 완전 포기
  • 기술 트렌드에서 멀어짐
  • 정치 능력 필수
  • 책임 범위 극대화 (뭐만 하면 너 책임)
  • 스트레스 레벨 상승
  • 언제든 잘릴 수 있음 (임원은 계약직 성격)

어제 점심에 팀장님이 말했다.

“박 파트장, 위로 가려면 코드 내려놔야 해. 진짜로.”

알고 있다. 그게 싫어서 10년 버텼는데.

계산기를 두드렸다. 월 290만원 더 받는다. 세금 빼면 180만원.

이게… 개발 포기할 가치인가?

아래로 가는 길 - 전문직 트랙

우리 회사에 있다. “수석 개발자” 제도.

수석 개발자 (Principal Engineer)

  • 예상 연봉 1억 1000만원
  • 관리 업무 없음
  • 코딩 하루 6시간+
  • 기술 리더십 (멘토링, 아키텍처)
  • 회의는 필요한 것만
  • 승진 압박 없음

작년에 김 수석이 우리 팀 왔었다. 49세.

그 양반, 오후 내내 코드 짰다. 회의 거절했다. “제 시간이 비싸거든요.” 멋있었다.

근데 연봉은 나보다 1500만원 더 받는다. 임원은 아니다.

아래로 가는 길의 현실

전문직 트랙 신청했다는 동기한테 물었다.

“솔직히 어때?”

그 친구 말이다.

좋은 점:

  • 코딩 실컷 함
  • 회의 압박 없음
  • 기술 공부에 집중
  • 스트레스 적음
  • 일찍 퇴근 가능
  • 나이 들어도 존중받음

안 좋은 점:

  • 연봉 천장 낮음 (최대 1억 3000만원)
  • 승진 기회 없음 (여기가 끝)
  • 사내 영향력 제한적
  • 팀원들이 “저분 왜 파트장 아니지?” 함
  • 동기들 임원 되면 미묘함
  • 평생 “기술자” 이미지

그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행복해. 진짜로.”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급여표 계산 - 10년 후

엑셀을 켰다. 진지하게 계산했다.

임원 트랙 (55세 본부장 가정)

  • 10년 누적 연봉: 약 15억
  • 스톡옵션: 추가 2억?
  • 퇴직금: 3억
  • 합계: 20억

전문직 트랙 (55세 수석 개발자)

  • 10년 누적 연봉: 약 12억
  • 스톡옵션: 없음
  • 퇴직금: 2억
  • 합계: 14억

차이는 6억이다.

6억.

아파트 한 채 값이다.

근데 이게 행복의 차이일까?

화요일 점심, 후배와의 대화

32살 김 대리가 물었다.

“파트장님은 어디로 가실 거예요?”

“모르겠어.”

“전 전문직 갈 거예요. 코딩하고 싶어서 이 일 시작했거든요.”

이 친구, 연봉 6000만원이다. 나 32살 때보다 1500만원 많다.

“근데 결혼하고 애 낳으면 생각 바뀔 수도 있어.”

“그럴까요? 파트장님은요?”

나는 15년 전을 떠올렸다.

결혼식 날. 아내한테 말했다. “나 평생 개발자로 살 거야.”

지금은? 하루 2시간 코딩한다. 그마저도 회의 때문에 끊긴다.

“나는… 생각이 바뀌더라.”

김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믿지 않는 표정이다.

10년 후에 보자.

목요일 밤, 아내와의 대화

아내한테 물었다.

“임원 되면 연봉 3500 오르는데.”

“좋네.”

“근데 코딩은 못 해.”

”…”

아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당신 요즘 행복해 보여?”

대답을 못 했다.

“임원 되면 더 안 행복해질 거 같은데.”

“그래도 돈은…”

“우리 지금도 충분해. 애들 대학까지 다 계산했잖아.”

맞다. 계산했다. 지금 연봉이면 된다.

“근데 동기들은 다 임원이야.”

“동기들이 당신 인생 사나?”

말문이 막혔다.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밤에 코딩할 때 제일 행복해 보여. 나는 그게 좋아.”

금요일 오전, 인사팀장과의 면담

인사팀장이 불렀다.

“박 부장님, 트랙 선택하셨어요?”

“아직이요.”

“이번 달까지 결정하셔야 해요.”

테이블 위에 두 장의 문서가 있다.

왼쪽: 임원 트랙 신청서 오른쪽: 전문직 트랙 신청서

“참고로, 임원 트랙 가시면 내년 승진 대상이에요.”

심장이 뛴다.

“전문직 가시면… 승진은 없어요. 대신 편하시죠.”

편하다는 게 좋은 말인가, 나쁜 말인가.

“고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손이 떨린다.

그날 저녁, IDE를 켰다

팀원들 다 갔다.

IntelliJ를 켰다. 새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개인 공부용이다. Kotlin + Spring Boot. 요즘 애들이 쓰는 거.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 코딩했다.

아무도 방해 안 한다. 슬랙도 조용하다.

함수를 짰다. 테스트를 통과했다. 리팩토링했다.

행복했다.

3시간 동안 급여표 생각 안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생각했다.

“이게 내 일이었지.”

월요일 아침, 결정

인사팀에 메일을 보냈다.

제목: 전문직 트랙 신청

본문은 한 줄이다.

“코딩하고 싶습니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심장이 뛴다. 후회될까? 모르겠다.

점심 때 동기한테 전화가 왔다. 이번에 전무 된 친구다.

“야, 너 전문직 간다며?”

“어. 들었어?”

“미쳤냐. 임원 트랙 가면 나랑 같이 갈 수 있는데.”

“난 코딩이 좋아.”

”…그래. 근데 나중에 후회하지 마.”

“너는 후회 안 해?”

침묵.

”…가끔. 코드 짜고 싶을 때.”

전화를 끊었다.

2주 후, 발령

공지가 떴다.

“박시니어 부장, 수석 개발자(Principal Engineer) 선임”

관리 업무 없음. 기술 자문 역할.

연봉은 1000만원 올랐다. 임원 트랙보다 2500만원 적다.

팀장님이 찾아왔다.

“고생 많았어요. 이제 편하게 코딩하세요.”

“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괜찮아요? 임원 트랙 가실 수 있었는데.”

“전 이게 맞는 것 같아요.”

팀장님이 웃었다.

“부럽네요. 저는 이미 늦었어요.”

그날 저녁, 관리 업무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1on1 일정, 평가 자료, 회의록 템플릿.

후임 파트장한테 넘긴다.

짐을 덜어내는 기분이다.

한 달 후, 수석 개발자의 하루

오전 10시 출근. (코어타임만 지키면 됨)

메일 10개. 슬랙 20개. 30분이면 끝.

오전 내내 코딩. 새 아키텍처 설계.

점심 먹고 1시간 산책. 기술 팟캐스트 들음.

오후 코딩. 후배 멘토링 1시간.

6시 퇴근.

저녁에 기술 블로그 쓰거나 공부.

이게 내 일이다.

주말에 컨퍼런스 갔다. 발표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어느 회사세요?”

“대기업 IT 자회사요.”

“직급이?”

“수석 개발자요.”

“멋있네요.”

임원이라고 했을 때보다 반응이 좋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3개월 후, 후회는

후회할까 봐 걱정했다.

안 한다.

아니, 가끔 한다.

동기들 임원 소식 들을 때.

“이사 승진”, “본부장 발령”.

그때는 ‘내가 잘한 걸까’ 싶다.

근데 다음 날 아침.

IDE 켜고 코드 짤 때.

‘잘했다’ 싶다.

지난주 아들이 물었다.

“아빠, 회사에서 뭐 해?”

“코딩해.”

“멋있다!”

이게 답이다.

임원이라고 했으면 “멋있다” 안 했을 거다. “바쁘겠다” 했겠지.

6개월 후, 급여표를 다시 봤다

연말이다.

작년 이맘때 봤던 그 급여표를 다시 열었다.

내가 선택한 길:

  • 연봉 1억 500만원
  • 관리 업무 없음
  • 코딩 하루 6시간
  • 회의 주 3시간
  • 저녁 있는 삶
  • 주말 온전히 내 시간

내가 포기한 길:

  • 연봉 1억 3000만원 (차이 2500만원)
  • 임원 대우
  • 더 높은 퇴직금
  • 사내 영향력
  • 승진 기회
  • 동기들과의 동급

2500만원 차이.

월 200만원이다. 세후 120만원.

이 돈으로 뭘 살 수 있나?

행복? 못 산다.

나는 이미 있으니까.

1년 후, 전 동료를 만났다

작년에 임원 된 전 동료를 만났다.

“어때? 임원 생활.”

“죽겠어. 골프 주 2회, 회식 주 3회.”

“코딩은?”

“그게 뭐야. 이제 못 해.”

“후회해?”

그 친구가 잠시 멈췄다.

”…아니. 이게 내 선택이니까.”

“나도.”

우리는 웃었다.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게 중요하다.

카페를 나서면서 그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너 부럽다. 코딩하잖아.”

“너도 부러워. 연봉 많잖아.”

”…”

“농담이야. 나 안 부러워.”

진심이다.

지금, 금요일 저녁

7시다. 자리를 정리한다.

노트북을 닫는다. 개인 맥북이다. 회사 업무용이 아니라.

주말에 할 개인 프로젝트가 있다.

Go 언어로 CLI 툴 만들기. 재미로.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어서.

연봉? 직급? 중요하지 않다.

내가 뭘 하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개발자다.

45세 개발자.

앞으로 10년, 20년 더 코딩할 거다.

그게 내 길이다.

급여표는 접었다. 서랍에 넣었다.

다시 볼 일 없다.


결국 급여표는 숫자일 뿐이다. 내 하루를 채우는 건 코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