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는 밤새 코딩했는데, 45세 이후는 10시 반이면 지쳐
- 04 Dec, 2025
10시 반이면 지친다
새벽 3시의 추억
30대 때는 가능했다. 새벽 3시까지 코딩하고 4시간 자고 출근. 점심에 캔커피 한 잔 마시면 또 밤까지 버텼다.
지금은 10시 반만 넘으면 모니터가 흐릿해진다. 눈이 먼저 포기한다. 키보드 두드리는 손가락도 느려진다.
어제 긴급 배포가 있었다. 밤 11시까지 작업했다. 집에 가서 씻고 누웠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은 새벽 2시에나 들었다.
오늘 아침 8시 알람이 울렸다. 몸이 안 일어났다. 5분만 더, 5분만 더 하다가 9시에 눈 떴다. 회사 도착은 10시.

점심 먹고 오후 회의. 1시간 내내 졸았다. 파트원이 발표하는데 내용이 하나도 안 들어왔다. 커피를 세 잔 마셨다. 소용없었다.
저녁 6시. 드디어 코딩할 시간. IDE를 켰다. 화면을 봤다. 집중이 안 됐다. 30분 동안 10줄 짰다. 지웠다. 다시 짰다.
체력은 거짓말을 안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44세와 45세의 차이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
주말에 농구하던 걸 끊었다. 월요일에 출근 못 할 것 같아서. 계단 오르면 숨이 찬다. 우리 사무실은 7층인데 엘리베이터가 느려서 가끔 걸어 올라갔었다. 이제는 무조건 엘리베이터다.
점심 먹고 나면 졸립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요즘은 화장실 가서 변기 뚜껑 닫고 10분 눈 붙인다. 타이머 맞춰놓고. 안 그러면 오후를 못 버틴다.

후배 김대리가 물었다. “파트장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안 좋으신데.”
“어, 그래? 괜찮아. 어제 좀 늦게 잤어.”
“요즘 야근 많으시죠? 저희가 더 할 수 있는데.”
고맙긴 한데. 내가 안 하면 불안하다. 그게 더 문제다.
야근의 대가
월요일에 야근했다. 화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온몸이 뻐근했다.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파스를 붙이고 출근했다.
화요일에 또 야근했다. 수요일은 하루 종일 멍했다. 회의 때 내가 뭔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점심 메뉴도 기억 안 난다.
수요일 저녁에 와이프가 말했다. “여보, 요즘 너무 피곤해 보여. 좀 쉬어.”
“다음 주 배포 끝나면 쉴게.”
“지난주에도 그렇게 말했잖아.”
맞는 말이다.
목요일 오후 3시. 갑자기 어지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휘청했다. 벽을 짚었다.
옆자리 이대리가 놀라서 물었다. “파트장님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잠깐 어지러웠어.”
“병원 가보세요.”
“아니야,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9시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았다. 팀원들은 다 퇴근했다. 6시 반에. 칼퇴했다.
나는 아직 코딩 중이다. 리팩토링하고 있다. 이 코드가 맘에 안 든다. 3년 전에 내가 짠 건데 지금 보니까 엉망이다.
시계를 봤다. 9시 10분. 배가 고프다.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었다. 사무실 서랍에 초코바가 있다. 꺼내서 먹었다.

모니터가 흐릿해진다. 눈을 비볐다. 코드가 안 보인다. 아니다. 보이는데 이해가 안 된다. 내가 뭘 짜고 있었지?
저장하고 껐다. 집에 가야겠다.
일어서려는데 다리에 힘이 없다. 의자를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가방을 챙겼다. 노트북을 넣었다. 무겁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누가 봐도 피곤해 보인다. 45세 개발자의 얼굴이다.
30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30대 때는 체력이 자산인 줄 몰랐다. 무한정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밤새 코딩하고 아침에 헬스장 가고 저녁에 술 마시고. 다음 날 멀쩡했다.
35세까지는 그랬다. 36세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술 마신 다음 날 힘들어졌다. 38세에는 야근하면 이틀이 갔다. 40세 넘어서는 주말에 쉬어야 월요일을 버텼다.
42세에 건강검진 받았다. 의사가 말했다. “혈압이 높네요. 스트레스 받으세요?”
“개발자인데요.”
“아, 그러시구나. 운동 좀 하세요.”
운동할 시간이 어딨나.
43세에 허리가 아팠다. 디스크 초기래. 물리치료 3개월 받았다. 지금도 가끔 아프다. 의자에 오래 앉아있으면.
44세에는 눈이 침침했다. 안경을 바꿨다. 도수를 올렸다. 모니터 보는 시간을 줄이라고 했다. 불가능하다.
45세인 지금. 10시 반이면 지친다.
그래도 코딩은 해야 하는데
관리 업무만 하면 편할까. 아니다. 더 답답하다.
회의만 하고, 보고서만 쓰고, 일정만 관리하면. 그게 개발자인가. 파트장이라는 직함이 붙었지만 나는 개발자다. 코드를 짜야 개발자다.
근데 체력이 안 따라준다. 이게 문제다.
오전에는 회의. 오후에는 이메일 답장하고 코드리뷰하고 1on1 하고. 실제로 코딩할 시간은 저녁 이후다. 그때는 이미 지쳐있다.
주말에 하면 되지 않냐고? 주말에는 가족이 있다. 아들 학원 데려다주고 딸 학교 행사 가고 와이프랑 마트 가고. 그것도 해야 한다.
틈틈이 기술 공부도 해야 한다. 요즘 애들이 쓰는 거 모르면 뒤처진다. Next.js도 봐야 하고 Rust도 봐야 하고 Kubernetes도 제대로 공부해야 하고.
시간은 24시간인데 해야 할 건 48시간 치다. 체력은 12시간 치다.
현실을 인정하는 중
어제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유튜브를 봤다. 개발자 유튜버가 말했다. “40대 개발자는 체력 관리가 중요합니다.”
맞는 말이다. 근데 어떻게 관리하나.
운동? 시간이 없다. 식단 관리?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이고 저녁은 편의점이다. 수면? 11시에 자면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새벽 1시에 자면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야근을 줄이는 것뿐이다. 근데 그러면 일이 안 끝난다. 팀원들한테 더 시킬 수도 없다. 다들 자기 일도 바쁘다.
결국 나한테 돌아온다. 파트장이니까. 책임자니까.
그래서 야근한다. 체력이 딸려도 한다. 다음 날 피곤해도 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
근데 이게 맞나 싶다. 45세에 이렇게 살아야 하나. 50세 되면 어떻게 하나. 55세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나.
답은 없다. 알고 있다.
오늘도 10시 반
지금 시각 10시 27분. 졸립다. 코드를 짜고 있는데 집중이 안 된다. 이 함수를 왜 짜고 있는지 까먹었다. 위로 스크롤해서 주석을 읽었다. 아, 맞다. 이거 하고 있었지.
다시 코드를 짠다. 5줄 짰다. 컴파일 에러. 오타다. 고쳤다. 다시 컴파일. 성공.
테스트 코드를 돌렸다. 실패. 로직이 틀렸다. 어디가 틀렸지. 디버거를 켰다. 한 줄씩 따라갔다. 아, 여기다.
고쳤다. 다시 테스트. 성공.
시계를 봤다. 10시 43분. 16분 동안 한 일이 이게 다다. 30대 때는 5분이면 끝났을 일.
저장하고 푸시했다. 노트북을 껐다. 가방을 챙겼다.
내일도 10시 반이면 지칠 것이다. 모레도. 다음 주도.
그래도 출근한다. 코딩한다. 개발자니까.
45세 개발자의 하루는 그렇다.
체력은 거짓말을 안 한다. 45세의 10시 반은 30대의 새벽 3시보다 힘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