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 8명 관리하면서 놓치고 있는 게 뭘까
- 23 Dec, 2025
팀원 8명 관리하면서 놓치고 있는 게 뭘까
오늘도 체크리스트
아침 9시. 출근하자마자 노트 펼친다.
- 김대리 코드리뷰 (완료)
- 이주임 1on1 (완료)
- 박사원 프로젝트 진행 체크 (완료)
- 팀 주간회의 (완료)
- 최과장 휴가 승인 (완료)
다 했다. 그런데 뭔가 불안하다.

파트장 된 지 1년 반. 처음엔 이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코드리뷰 빡세게 하고, 1on1 정기적으로 하고, 회의 잘 진행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근데 최근 들어 자꾸 드는 생각.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 아냐?”
팀원들 얼굴은 다 밝다. 불만도 없어 보인다. 프로젝트도 잘 굴러간다. 그런데 이 불안은 뭔가.
코드리뷰는 하는데
매일 오후 2시. 코드리뷰 타임이다.
김대리 PR 열었다. Django ORM 쿼리 최적화. 깔끔하다. “LGTM” 찍는다.
이주임 PR. React 컴포넌트 리팩토링. 가독성 좋다. “Good job” 코멘트 남긴다.
박사원 PR. 신규 API 엔드포인트. 테스트 코드까지 완벽하다. 승인한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
“얘네 요즘 어떤 게 재밌을까?”
코드는 본다. 기능은 확인한다. 성능도 체크한다. 근데 이 사람이 이 코드 짜면서 뭘 배웠는지, 뭐가 힘들었는지, 뭐가 재밌었는지는 모른다.
김대리는 요즘 GraphQL 공부한다던데. 그게 이번 프로젝트랑 연결되나? 물어본 적 없다.
이주임은 프론트엔드 아키텍처에 관심 많던데. 지금 하는 작업이 커리어에 도움이 되나? 확인 안 했다.
박사원은 신입인데 벌써 1년 차다. 성장 곡선이 적절한가? 답답한 건 없나? 체크 안 했다.
코드는 봤는데 사람은 못 봤다.
1on1은 하는데
격주 금요일 오후. 1on1 시간이다.
최과장이랑 30분. 회의실 들어간다.
“요즘 어때요?” “잘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진행은요?” “순조롭습니다.” “힘든 거 없어요?” “괜찮습니다.”
15분 지났다. 할 얘기 없다.
“음… 요즘 관심사가 뭐예요?” “글쎄요. 특별히 없는데요.”
20분 지났다. 어색하다.
“커리어 목표 같은 거 있어요?” “음, 잘 모르겠습니다.”
30분 채우고 나온다. 뭔 얘기를 한 거지.

1on1 양식도 있다. 질문 리스트도 만들었다. 구글 캘린더에 다 박혀있다.
근데 형식은 갖췄는데 내용이 없다.
최과장은 15년 차 시니어다. 나보다 나이도 많다. 근데 이 사람이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른다. 회사에서 뭘 이루고 싶은지 모른다. 3년 후에 뭐 하고 싶은지 모른다.
“별일 없으시면 됐습니다” 하고 끝낸다. 서로 편하다. 근데 이게 맞나.
정민 사원이랑 1on1도 그렇다. 신입이니까 물어볼 게 많을 줄 알았다.
“적응은 잘 되고 있어요?” “네.”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요.” “네.”
끝이다.
나중에 복도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정민이가 한 말.
“저 요즘 Rust 공부하는데 재밌어요.”
어? 그런 거 1on1 때 얘기하지 그랬어. 근데 내가 물어본 적 없구나.
질문이 틀렸다. “어때요?” “힘든 거 없어요?”는 답이 “네” “아니요”로 끝난다.
진짜 물어야 할 건. “요즘 뭐가 재밌어요?” “어떤 걸 더 해보고 싶어요?” “3개월 후엔 뭘 하고 싶어요?”
근데 이런 질문은 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Rust로 프로젝트 하나 해보고 싶어요” 하면 내가 해줄 수 있나? 팀 로드맵이랑 안 맞으면? 설득할 자신 있나?
그래서 안 물었나보다.
회의는 하는데
월요일 오전 10시. 주간 회의다.
지난주 리뷰. 이번 주 목표. 이슈 공유. 40분 딱 맞춰서 끝낸다.
효율적이다. 회의록도 남긴다. 액션 아이템도 명확하다.
근데 회의 끝나고 복도에서 들린 대화.
“아까 그거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회의 때 얘기 안 하던데?” “분위기상 말하기 그랬잖아.”
아.
회의실에서는 안 나온 얘기가 복도에서 나온다. 화장실에서 나온다. 점심 먹으면서 나온다.
회의를 하긴 했는데 진짜 중요한 얘기는 안 한 거다.
내가 “다른 의견 있어요?” 물어보면 다들 고개 젓는다. 근데 사실은 있다. 말 안 할 뿐이다.
왜 안 할까.
분위기? 내가 무섭나? 아닌 것 같은데.
시간? 40분은 짧나? 더 하면 비효율이라던데.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다. 파트장 되기 전에. 회의 때는 말 안 하고 나와서 동기들한테 털어놨다.
“저거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맞아. 근데 회의 때 말하기 그랬잖아.”
왜 그랬지. 혼자 생각해봤다.
아. 내 의견이 틀릴까봐. 괜히 분위기 깰까봐. 혼자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가 싶어서.
그럼 지금 우리 팀원들도 그런가.
회의 효율은 높아졌는데 심리적 안전감은 낮아진 건가.
숫자는 보는데
분기 말이다. KPI 정리한다.
- 스프린트 완료율: 94%
- 코드 커버리지: 82%
- 배포 성공률: 98%
- 버그 발생률: 0.3%
좋다. 다 목표치 이상이다.
팀장님한테 보고하니까 “잘하고 있네요” 한다. 뿌듯하다.
근데 저녁에 혼자 생각해봤다.
김대리는 행복한가? 이주임은 성장하고 있나? 박사원은 번아웃 안 왔나? 최과장은 의미 느끼면서 일하나? 정민이는 계속 다닐 마음이 있나?
이건 숫자로 안 나온다.
퇴사율은 0%다. 올해 아무도 안 나갔다. 좋은 거 맞다. 근데 이게 만족해서인지, 이직 준비 중인데 아직 안 나간 건지 모른다.
연차 사용률은 68%다. 나쁘지 않다. 근데 32%는 왜 안 쓸까. 바빠서? 눈치 봐서? 쓸 이유가 없어서?
야근 시간은 월평균 8시간이다. 적은 편이다. 근데 김대리는 0시간인데 박사원은 20시간이다. 평균은 8시간이다. 이게 문제 아닌가.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 근데 진실도 안 말해준다.
칭찬은 하는데
수요일 오후. 슬랙 DM 보낸다.
“이주임님 오늘 리팩토링 좋았어요 👍”
답장 온다.
“감사합니다 😊”
끝이다.
목요일. 또 보낸다.
“김대리님 쿼리 최적화 완벽했습니다 👏”
“넵 ㅎㅎ”
끝이다.
칭찬은 한다. 근데 진심인가.
“좋았어요” “완벽했습니다” 이런 말은 AI도 한다. ChatGPT한테 물어봐도 나온다.
진짜 칭찬은 뭘까. 생각해봤다.
예전에 팀장님이 나한테 한 말이 기억난다.
“박시니어. 이번 DB 마이그레이션, 다운타임 30초로 줄인 거 봤어. 주말에 시뮬레이션 3번 돌렸지? 로그 다 남아있더라. 그 집요함 때문에 무사고로 넘어간 거야. 고마워.”
이 말은 지금도 기억한다. 5년 전인데.
왜 기억나나. 구체적이어서. 봤다는 게 느껴져서. 진심이 전해져서.
그럼 나는?
“좋았어요”는 뭐가 좋았는지 모른다. “완벽했습니다”는 뭐가 완벽한지 모른다.
이주임 리팩토링 좋았다고 했는데, 정확히 뭐가 좋았지? 함수 분리? 네이밍? 테스트 추가?
모른다. 그냥 코드가 깔끔해 보여서 좋았다고 했다.
김대리 쿼리 최적화도 마찬가지다. 뭘 어떻게 최적화했는지 자세히 안 봤다. 실행 시간 줄어든 거 확인하고 “완벽” 했다.
칭찬은 하는데 관심은 없었다.
문제는 해결하는데
박사원이 찾아왔다.
“파트장님, 이번 기능 구현이 좀 막히는데요.”
“어디?”
화면 보여준다. 설명한다.
나는 10분 만에 해결책 알려준다. 20년 차니까. 이런 건 눈 감고도 푼다.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감사합니다!”
박사원 돌아간다. 문제 해결됐다.
효율적이다. 빠르다. 좋다.
근데 며칠 뒤.
또 찾아온다. 비슷한 문제다.
“파트장님, 이것도 좀…”
또 알려준다. 10분 만에.
일주일 뒤.
또 온다. 또 비슷한 거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문제를 해결해줬다. 근데 박사원은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물고기를 잡아줬는데 물고기 잡는 법을 안 가르쳤다.
왜 그랬나.
빨라서. 내가 알려주는 게 10분이면 되는데, 스스로 찾게 하면 2시간 걸린다. 비효율 아닌가.
근데 2시간 씨름하고 나면 진짜 배운다. 다음엔 혼자 해결한다. 그게 성장이다.
나는 효율을 높였는데 성장은 막았다.
공정하게 대하는데
팀원 8명.
김대리, 이주임, 박사원, 최과장, 정민사원, 송대리, 윤주임, 한사원.
다 똑같이 대한다. 공정하게. 차별 없이.
코드리뷰도 똑같은 기준. 1on1도 똑같은 시간. 업무 분배도 공평하게.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
근데 어느 날.
송대리가 퇴사 의사 밝혔다.
“왜요?”
“더 성장하고 싶어서요.”
“여기서도 성장할 수 있잖아요.”
“네… 근데 제가 원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아서요.”
“어떤 방향인데요?”
“음… 백엔드 아키텍처 쪽으로 가고 싶은데, 여기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송대리가 백엔드 아키텍처에 관심 있는 줄 몰랐다. 1on1 때 한 번도 안 나온 얘기였다.
아니다. 나온 적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못 들었을 수도 있다.
공정은 좋다. 근데 공정이 무관심이 되면 안 된다.
8명을 똑같이 대했다. 근데 8명은 다 다른 사람이다.
김대리는 20대 후반, 성장 욕구 강함, GraphQL 배우고 싶어 함. 이주임은 30대 초반, 결혼 준비 중, 워라밸 중요하게 생각함. 박사원은 신입, 기본기 쌓는 중, 인정받고 싶어 함. 최과장은 40대, 안정적인 것 선호, 새로운 거 배우기 부담스러워 함. 정민사원은 20대 초반, Rust 공부 중, 트렌디한 기술 좋아함.
다 다르다.
똑같이 대하면 안 된다. 각자 다르게 대해야 한다.
그게 진짜 공정이다.
보고는 잘 받는데
프로젝트 진행 상황.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팀원들이 보고한다.
“이번 주 완료했습니다.” “다음 주 계획입니다.” “이슈 없습니다.”
좋다. 깔끔하다.
근데 월요일 아침.
긴급 이슈 터졌다. 금요일엔 없던 문제다.
“왜 금요일에 얘기 안 했어요?”
“그때는 몰랐어요.”
“언제 알았는데요?”
“금요일 저녁에요…”
“왜 연락 안 했어요?”
“주말에 제가 해결하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아.
보고는 잘 받는다. 근데 보고 시스템이 틀렸다.
금요일 오후 4시. 이건 “보고하는 시간”이다. 문제가 생기는 시간이 아니다.
문제는 금요일 저녁에도 생기고, 토요일 아침에도 생기고, 일요일 밤에도 생긴다.
근데 팀원들은 “금요일 오후 4시에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 문제는 주말 내내 혼자 씨름하다가 월요일에 폭탄이 된다.
내 잘못이다.
“문제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말은 했다. 근데 분위기는 안 만들었다.
주말에 슬랙 보내면 “주말인데 왜 연락해” 하는 분위기. 퇴근 후에 전화하면 “워라밸이 뭐야” 하는 분위기.
안 그렇다고 아무리 말해도, 분위기가 그러면 연락 안 한다.
진짜 중요한 건 시스템이 아니라 심리적 안전감이다.
피드백은 주는데
분기별 평가 시즌이다.
정민사원 평가 면담.
“이번 분기 잘했어요. 근데 코드 퀄리티를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아… 네.”
“테스트 커버리지가 60%인데, 80% 이상으로 올려봐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변수명 네이밍도 좀 더 명확하게 하고요.”
“네…”
끝났다. 피드백 줬다.
근데 다음 분기.
정민이 코드 퀄리티 그대로다. 테스트 커버리지 62%. 변수명 여전히 애매하다.
왜 안 바뀌지.
생각해봤다.
“코드 퀄리티를 신경 써야 한다” - 이게 뭔 소린가. “테스트 커버리지 80% 이상” - 왜 80%인가. “변수명을 명확하게” - 뭐가 명확한 건가.
추상적이다. 구체적이지 않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왜 그래야 하는지 안 알려줬다.
테스트 커버리지가 왜 중요한가. 그냥 숫자 채우기용인가. 아니면 진짜 버그 방지하려고인가.
변수명이 왜 명확해야 하나. 혼자 코딩할 때도 중요한가. 협업할 때만 중요한가.
이유를 모르면 안 바뀐다.
“해야 한다”는 명령이다. “왜 해야 하는지”는 설득이다.
명령은 잊어버린다. 설득은 기억한다.
시간은 쓰는데
계산해봤다.
코드리뷰: 하루 1시간 × 5일 = 5시간
1on1: 주 4명 × 30분 = 2시간
주간회의: 1시간
월간회의: 1시간
기타 미팅: 3시간
주당 12시간. 팀 관리에 쓴다.
적은 시간 아니다.
근데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12시간을 “체크”하는 데 썼다.
코드 체크. 진행 체크. 이슈 체크.
체크는 했는데 대화는 안 했다.
김대리가 요즘 뭐 생각하는지 모른다. 이주임이 어떤 고민 있는지 모른다. 박사원이 회사생활 재밌는지 모른다.
체크리스트는 완벽한데 팀원들은 모른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초.
목표 세웠다.
“좋은 파트장 되기”
그래서 했다.
코드리뷰 열심히. 1on1 정기적으로. 회의 효율적으로. 업무 공정하게. 피드백 명확하게.
다 했다.
근데 송대리는 나갔다.
정민이는 성장 정체됐다.
윤주임은 최근 의욕 없어 보인다.
뭐가 문제지.
체크리스트는 완벽했다. 근데 사람은 놓쳤다.
형식은 갖췄는데 본질은 없었다.
매뉴얼대로 했는데 마음은 안 통했다.
놓친 것들
밤 11시. 퇴근 전에 혼자 정리해봤다.
내가 놓친 것들.
관심. 코드는 봤는데 사람은 안 봤다.
경청. 질문은 했는데 답은 안 들었다.
맥락. 숫자는 봤는데 이유는 안 봤다.
신뢰. 시스템은 만들었는데 안전감은 안 줬다.
개별화. 공정하게 대했는데 다르게는 안 대했다.
의미. 피드백은 줬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안 알려줬다.
시간. 많이 썼는데 제대로는 안 썼다.
완벽한 파트장이 되려고 했다. 근데 완벽한 체크리스트만 만들었다.
좋은 리더가 되려고 했다. 근데 좋은 관리자만 됐다.
내일부터
월요일 아침.
노트 펼친다. 새로 쓴다.
- 김대리한테 GraphQL 프로젝트 기회 만들어주기
- 이주임이랑 1on1 때 “요즘 뭐가 재밌어요?” 물어보기
- 박사원한테 답 알려주지 말고 힌트만 주기
- 최과장한테 진짜 하고 싶은 거 물어보기
- 정민이가 Rust로 뭐 하고 싶은지 듣기
- 주간회의 때 “다른 의견?” 대신 “여기서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 뭐예요?” 물어보기
- 칭찬할 때 구체적으로 뭐가 좋았는지 3문장 이상 쓰기
- 송대리 나가기 전에 왜 못 잡았는지 복기하기
완벽해지려는 건 포기한다.
대신 관심 갖는다.
체크리스트 완성하려는 건 그만둔다.
대신 대화한다.
시스템 개선하려는 건 멈춘다.
대신 신뢰 쌓는다.
관리는 잘했다. 이제 리더 해본다.
8명 다 챙기는 건 불가능하다. 근데 8명 다 신경 쓰는 건 가능하다. 그 차이가 뭔지 이제 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