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이직하면 받아주나? - 현실적 고민
- 09 Dec, 2025
링크드인을 켰다
링크드인을 켰다. 3개월 만이다.
알림이 47개다. 대부분 광고다. “시니어 개발자 구합니다” 메시지가 2개 있다. 열어봤다. 하나는 스타트업. 연봉 6000만원. 웃겼다. 하나는 외국계. 연봉은 협의. 영어 면접 본다고 한다.
프로필을 봤다. 마지막 수정이 2021년이다. 기술스택에 Spring 3.0이라고 써있다. 지금 5.x 아닌가. 경력은 화려하다. 20년. 프로젝트 10개. 수상 3번.
근데 이걸 누가 보냐.

옆팀 김 부장이 이직했다. 작년에.
50살이었다. 핀테크 스타트업 갔다. CTO로. 3개월 만에 돌아왔다. 정확히는 못 돌아왔다. 우리 회사는 안 받아줬다. 지금 중견기업에 있다. 연봉은 2000 깎였다고 들었다.
“거기 애들이 말을 안 들어” 그가 말했다. 술자리에서.
“CTO인데요?”
“CTO가 뭐 대단해. 평균 나이 29살인데. 내가 꼰대지.”
그는 소주를 마셨다. “여기가 낫다. 진짜로.”
우리 회사 채용공고를 봤다
인사팀에 물어봤다. “혹시 외부에서 파트장급 뽑나요?”
“왜요? 이직하시게요?” 농담조였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
“거의 안 뽑아요. 뽑아도 내부 승진 우선이고.”
“그럼 외부는?”
“음… 35세 미만? 시니어급으로 데려와서 키우죠.”
35세 미만.
나는 45살이다.

점심시간에 채용 사이트를 봤다. 원티드. 로켓펀치. 프로그래머스.
“시니어 백엔드 개발자” 검색했다. 200개 나왔다.
조건을 봤다.
- 경력 5~10년
- 나이 제한 없음 (거짓말)
- 최신 기술스택 필수
클릭했다. 10개. 우대사항을 봤다.
- MSA 구축 경험 (있다)
- 클라우드 아키텍처 설계 (있다)
- 팀 리딩 경험 (있다)
- Kotlin, Go 능숙자 (없다)
- 스타트업 문화 적응 가능자 (??)
마지막 게 뭐냐.
“빠른 의사결정, 수평적 문화, 능동적 업무 태도”
번역하면 야근이다. 주말 출근이다. 칼퇴 없다는 뜻이다.
헤드헌터가 전화했다
작년 말이었다. 번호 모른다고 뜨는데 받았다.
“박 파트장님?”
“네.”
“저는 ㅇㅇ헤드헌팅 이 대리라고 합니다. 혹시 이직 의향 있으신가요?”
심장이 뛰었다. “어… 일단 들어볼게요.”
“네. 저희 클라이언트가 시니어 개발자를 찾고 있습니다. 금융권입니다. 연봉은 현재 대비 120% 수준으로 제안 가능하고요.”
계산했다. 9500의 120%. 1억 1400만원.
“나이는 괜찮나요?”
“네? 아 네. 경력이 중요하죠.”
이력서 보냈다. 3일 뒤 전화 왔다.
“죄송한데요. 클라이언트가 40세 이하를 원한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괜찮다고.”
“제가 잘못 파악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끊었다.
이력서에 생년월일이 있었다.

동기 녀석이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대학 동기 단톡방이 있다. 8명.
작년에 한 놈이 썼다. “삼성 계열사에서 연락 왔는데 갈까?”
“연봉?”
“1억 5000.”
“ㅅㅂ 가라”
“근데 나 43인데 괜찮으려나”
“너 경력이 얼만데. 걱정 마.”
그 놈은 네이버 출신이다. 10년 있었다. 지금은 게임 회사 팀장이다.
결국 갔다. 삼성 계열사로.
나도 축하한다고 썼다. 근데 속으로 생각했다.
‘네이버 출신이니까 가능한 거지.’
우리 회사 이름 대면 “아 거기요?” 반응이다. 좋은 의미 아니다.
이직 준비를 해봤다
1월에 각오했다. “올해는 이직하자.”
깃헙을 정리했다. 커밋이 드문드문하다. 회사 일은 회사 깃랩에 있다. 개인 프로젝트가 없다.
토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Next.js로. 3일 하고 멈췄다. 문법이 낯설다. 공식 문서 읽는데 2시간 걸렸다. 이거 언제 완성하냐.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만들려고 했다. 레퍼런스를 찾았다. 다들 20대 30대다. 깔끔하다. 세련됐다. 애니메이션 화려하다.
따라 하기 시작했다. 디자인 센스가 없다. 10년 전 느낌이 난다.
한 달 뒤 포기했다.
면접 기출 문제를 봤다
카카오 코딩 테스트 기출이 있다. 유튜브에.
풀어봤다. 첫 문제. 1시간 걸렸다. 정답은 20분 컷이란다.
두 번째 문제. 못 풀었다. 해설을 봤다. DP였다. Dynamic Programming. 학교 다닐 때 배웠다. 기억 안 난다.
댓글을 봤다.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요?”
“30분 컷 했습니다”
“저 고3인데 20분 걸렸어요”
고3이 나보다 빠르다.
알고리즘 책을 샀다. “이것이 코딩 테스트다”. 700쪽. 하루에 10쪽 읽으면 70일. 두 달 반.
30쪽 읽고 덮었다.
회사 일하랴. 팀원 관리하랴. 이거 공부할 시간 없다.
현실을 계산했다
냉정하게 봤다.
내가 45살에 이직하면.
연봉은 깎인다. 거의 확실하다. 유지되면 감사다. 올라가면 기적이다.
직급도 애매하다. 파트장? 그냥 시니어? 책임? 회사마다 다르다.
팀은? 새로 적응해야 한다. 내가 막내일 수도 있다. 파트장이 35살일 수도 있다.
기술은? 배워야 한다. 회사마다 스택이 다르다. 3개월은 적응 기간이다. 그 기간에 나는 짐이다.
문화는? 우리 회사는 느리다. 안정적이다. 새 회사는? 빠르다. 역동적이다. = 야근 많다.
건강은? 지금도 피곤하다. 새 회사 가면? 더 피곤하다.
계산 끝났다.
답은 명확하다.
안 된다.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정말 경쟁력 없나?’
20년 경력이다. 큰 프로젝트 10개 넘게 했다. 장애 대응 경험 수십 번. 코드 리뷰 수천 개. 후배 육성 수십 명.
이게 시장에서 무가치한가?
외국은 다르다던데. 실리콘밸리는 시니어를 우대한다던데. 한국만 유독 나이 차별이 심하다던데.
근데 나 영어 못 한다. 이력서를 영어로 못 쓴다. 면접을 영어로 못 본다.
결국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
한국 시장의 룰을 따라야 한다.
그 룰은 명확하다.
“개발자는 35살까지”
예외는 있다. 네이버 출신. 카카오 출신. 쿠팡 출신. 토스 출신.
우리 회사 출신은 없다.
옆팀 막내가 이직했다
28살이다. 경력 3년.
“토스 붙었어요!”
축하해줬다. 진심이었다.
“연봉 얼마나 올랐어?”
“2000 올랐어요.”
2000만원.
나는 파트장 달고 500 올랐다.
쓴웃음 나왔다.
“거기 힘들다던데?”
“괜찮아요. 배울 게 많대요.”
배울 게 많다. 좋은 말이다.
나는 뭘 배우나. 요즘.
회의하는 법? 보고서 쓰는 법? 정치하는 법?
코드는 안 배운다.
그 애가 떠난 자리에 신입이 왔다. 25살. 코딩 테스트 만점이란다.
내가 면접 봤다. 물어봤다.
“MSA 경험 있어요?”
“아뇨. 근데 배우고 싶어요.”
“Kafka는?”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실무는?”
“빨리 하고 싶습니다.”
열정이 있다. 눈빛이 다르다.
나도 저랬나. 20년 전에.
팀장이 물어봤다
1on1 시간이었다.
“요즘 어때요?”
“괜찮습니다.”
“얼굴이 안 좋아 보이던데.”
“피곤해서 그래요.”
“무슨 고민 있어요?”
말할까 말까 했다. 했다.
“팀장님. 솔직히 물어봐도 돼요?”
“그럼요.”
“저 같은 나이에 이직 가능할까요?”
팀장은 48살이다. 나보다 3살 많다. 이 회사 20년 다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글쎄요. 어렵죠.”
“어렵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죠. 솔직히.”
“왜요?”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봐요. 45살 뽑을 바엔 30살 뽑죠. 10년 더 부릴 수 있잖아요.”
논리적이다. 반박할 수 없다.
“근데 경력은?”
“경력은 중요해요. 근데 나이도 중요해요. 현실이 그래요.”
“그럼 여기서 계속?”
“그게 답이죠. 제 생각엔.”
팀장이 웃었다. 쓸쓸한 웃음이었다.
“저도 고민했어요. 5년 전에. 근데 안 갔어요.”
“후회해요?”
“글쎄요. 갔으면 어땠을까 싶긴 해요. 근데 안 간 것도 후회는 아니에요.”
애매한 대답이다.
그게 정답인 것 같기도 하다.
아내한테 말했다
저녁 먹다가 꺼냈다.
“여보. 나 이직할까?”
“갑자기?”
“요즘 생각이 많아.”
“연봉 더 주는 데 있어?”
“글쎄. 찾아봐야지.”
“나이 때문에 안 뽑는 거 아냐?”
직설적이다. 근데 맞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왜 가려고?”
“여기 있으면… 발전이 없어.”
“발전이 뭔데. 돈 잘 벌잖아.”
“돈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럼 뭐가 중요한데?”
대답 못 했다.
뭐가 중요하지?
성장? 45살에 성장? 우습다.
도전? 무슨 도전? 누구한테?
자아실현? 개발자로서의 자존심? 허세다.
“그냥 있어. 애들 대학 보내야지.”
아내 말이 맞다.
현실적이다.
근데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주말에 코딩했다
혼자 있고 싶었다. 카페 갔다. 노트북 켰다.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간단한 거. Todo 앱.
“또 Todo냐” 싶지만 뭐 어쩌겠나.
React로 만들었다. Next.js 말고 그냥 React. 익숙한 거.
4시간 만들었다. 완성했다.
추가 기능 넣었다. 드래그 앤 드롭. 날짜 필터. 로컬 스토리지.
배포했다. Vercel에.
URL 복사했다. 톡방에 공유 안 했다. 창피해서.
혼자 봤다. 새로고침 했다. 잘 된다.
뿌듯하다.
20년 만에 혼자 뭔가 만들었다.
회사 일 아니고. 평가 안 받고. 보고 안 하고.
그냥 내가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다.
이 느낌.
이게 개발자지.
결론은 안 났다
아직도 모르겠다.
이직할까 말까.
알고리즘 문제를 더 풀어볼까.
포트폴리오를 다시 만들어볼까.
헤드헌터한테 적극적으로 연락해볼까.
아니면 그냥 여기 있을까.
파트장 달고. 연봉 조금씩 올리면서. 임원까지 노려볼까.
답이 없다.
45살 개발자의 이직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다.
확률의 문제다.
10% 될까? 5%? 1%?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0%는 아니라는 것.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것.
어디선가 누군가는 나를 원할 수도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이.
나를 괴롭힌다.
이직은 안 할 것 같다. 근데 링크드인은 계속 켤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