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후배들의 칼같은 퇴근 시간, 부럽고 야속한 이유

MZ 후배들의 칼같은 퇴근 시간, 부럽고 야속한 이유

6시 10분

퇴근 시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퇴근 시간은 아니다.

신입 김대리가 가방을 챙긴다. 6시 5분이다. 노트북 덮고, 슬랙 상태 ‘자리비움’으로 바꾸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선이 깔끈하다. 연습한 것처럼.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내 대답도 연습한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제 익숙하다.

3년 전만 해도 달랐다. 6시에 가방 챙기는 후배 보면 속으로 ‘저게 뭐야’ 했다. 입 밖으로는 안 냈지만. 지금은 그냥 당연하다. 아니, 당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창밖을 본다. 아직 해가 있다. 6월이니까.

나는 9시쯤 나갈 것이다. 특별한 일 없어도. 습관이다.

나 때는

2005년이었다.

신입사원 박시니어. 첫 출근. 선배가 말했다.

“우리 팀은 10시 출근 10시 퇴근이야. 참고로 오전 10시, 저녁 10시.”

웃으면서 했던 말인데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로 밤 10시에 퇴근했다. 매일. 금요일도.

야근 수당? 없었다. 대신 야식은 나왔다. 치킨이나 족발. 밤 9시쯤 시켜 먹으면서 ‘이거라도 건지는 거지’ 했다.

주말 출근도 많았다. 특히 배포 있는 주는 거의 확정. 토요일 오전에 나와서 배포하고, 모니터링하고, 오후 5시쯤 퇴근. 그게 일상이었다.

불만? 당연히 있었다. 근데 다들 그랬다. 선배들도, 동기들도. ‘원래 그런 거’ 였다.

그렇게 10년을 했다.

20대가 다 갔다. 연애? 주말에 했다. 결혼? 30 넘어서 했다. 아이? 35에 낳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깝다. 그 시간.

근데 그땐 몰랐다. 다들 그러니까.

변화의 시작

2018년쯤부터였나.

신입들이 달랐다. 면접 볼 때부터 물어봤다.

“야근 많나요?” “주말 출근 있나요?” “워라밸은 어떤가요?”

처음엔 당황했다. ‘이걸 면접에서 물어?’ 싶었다. 근데 점점 많아졌다. 이제는 안 물어보는 애가 이상한 정도.

그리고 입사하면 진짜로 6시에 퇴근했다. 일 끝나면. 아니, 일 안 끝나도.

“내일 하면 안 되나요?”

처음 들었을 때 할 말이 없었다.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급한 거 아니면.

팀장들 모임에서 얘기 나왔다.

“요즘 애들 야근 안 하더라.” “주말 출근 부탁하면 거절해.”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다들 비슷했다. 불만 반, 부러움 반.

부럽다

솔직히 부럽다.

김대리는 저녁 7시면 헬스장 간다. 주 3회. 몸도 좋다. 나는 헬스장 등록만 3번 했다. 한 번도 석 달 못 채웠다.

이과장은 퇴근하고 영어 학원 다닌다. 회사 돈으로. 근데 진짜 실력 늘었다. 지난번 화상회의 때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거 봤다. 나보다 잘한다.

최주임은 주말마다 등산 간다. SNS에 사진 올린다. 정상에서 찍은 셀카. 맑은 눈. 나는 주말에 소파에서 넷플릭스 본다. 아니면 잔다.

부럽다. 20대를 제대로 사는 것 같아서.

나는 20대를 회사에 줬다. 돌려받은 건 경력과 연봉. 나쁘지 않다. 근데 가끔 아깝다.

지금 김대리 나이 때 나는 뭐 했나. 코딩하고, 야근하고, 치킨 먹고. 그게 다였나.

야속하다

근데 야속하기도 하다.

프로젝트 데드라인 코앞인데 6시에 퇴근하는 거 보면. 솔직히 화난다. 참는다. 티 안 낸다. 근데 속으로는 ‘저게 뭐야’ 한다.

“내일까지인데 오늘 좀 더 하면 안 돼?”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요. 내일 아침 일찍 와서 하겠습니다.”

약속. 친구 만나는 거래. 급한 것도 아니고.

참았다. ‘내가 꼰대가 되는 건가’ 싶어서.

근데 다음 날 아침. 10시에 출근했다. 일찍 온다며? 코어타임이 10시니까 지각은 아니래.

그날 저녁에 내가 야근했다. 12시까지. 혼자.

다음 날 김대리한테 말했다.

“어제 내가 마무리했어.”

“아, 감사합니다. 제가 했어야 하는데.”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녁 6시 10분. 퇴근했다. 역시.

내가 틀렸나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야근한 20년. 그게 맞았나.

회사는 내게 연봉 줬다. 경력 줬다. 파트장 직함 줬다. 공정한 거래 아닌가.

근데 내 20대는 안 줬다. 건강도 안 줬다. 작년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나왔다. 허리디스크도 있다.

아내한테 물어봤다.

“당신은 어때? 요즘 젊은 애들.”

“부러워.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어.”

“우리 때랑 다르지?”

“다르지. 근데 걔네가 맞는 것 같아.”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가 틀렸던 건가. 아니면 시대가 바뀐 건가.

파트장의 딜레마

요즘 고민이다.

팀원 8명. 반은 MZ. 반은 30대 후반.

MZ는 칼퇴근. 30대는 눈치 본다. 어정쩡하게.

박차장이 물어봤다.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6시 퇴근.”

“나쁘지 않지. 일 끝나면.”

“근데 다 같이 있어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때는 부탁해야지.”

“부탁하면 거절하던데요.”

할 말이 없었다.

관리자로서는 난감하다. 프로젝트는 돌아가야 하는데, 강제할 수도 없고.

근데 개발자로서는 이해한다. 나도 6시에 퇴근하고 싶다.

이게 파트장의 딜레마다.

세대 차이

지난주 회식 때였다.

김대리가 물어봤다.

“팀장님은 왜 매일 늦게 퇴근하세요?”

“일이 있어서.”

“내일 해도 되는 일 아닌가요?”

순간 뜨끔했다. 솔직히 맞는 말이었다.

“습관이야. 오래 된.”

“불편하지 않으세요?”

“익숙해서 안 불편해.”

거짓말이었다. 불편하다. 매일.

이과장이 끼어들었다.

“저희 세대는 달라요. 일은 일, 삶은 삶.”

“부럽네.”

“팀장님도 하시면 되잖아요.”

안 된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안 된다.

바뀌려고 노력 중

작심삼일을 여러 번 했다.

‘이번 주는 7시에 퇴근하자’ - 화요일에 포기.

‘주말은 쉬자’ - 토요일 오전에 출근.

‘연차 다 쓰자’ - 올해도 5일 남았다. 12월인데.

안 된다. 몸이 안 움직인다.

근데 조금씩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후배들 6시 퇴근할 때 ‘잘 가’ 한다. 진심으로.

금요일엔 먼저 말한다. “주말 출근 없으니까 푹 쉬어.”

회의 시간도 줄였다. 1시간 회의 30분으로. 30분 회의 15분으로.

급하지 않은 슬랙은 ‘내일 답장해도 돼’ 라고 쓴다.

작은 변화지만 변화다.

인정하는 중

받아들이기로 했다.

MZ의 칼퇴근. 그게 맞다. 우리가 틀렸다.

일과 삶의 균형. 듣기만 해도 좋다. 나도 하고 싶다.

부럽고 야속한 감정. 그게 내 문제다. 걔네 문제 아니다.

바뀌려고 노력 중이다. 천천히.

어제는 8시에 퇴근했다. 9시보다 1시간 빨랐다.

오늘은 7시 반 목표다.

언젠가는 나도 6시에 퇴근할까.

모르겠다. 근데 해보려고 한다.

후배들이 부럽다. 솔직히. 많이.

그래도 괜찮다. 부러워하는 거.

인정하는 게 시작이니까.


오늘도 9시 퇴근. 목표는 7시 반이었는데. 내일은 진짜 해보자.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