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부모님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
- 13 Dec, 2025
토요일 오전 10시
일어났다. 토요일이다. 아내가 부산하다.
“오늘 부모님 댁 가는 거 알죠?”
안다. 달력에 표시해뒀다.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 토요일.
아들이 거실에서 게임 중이다. 딸은 아직 잔다.
“야, 11시까지 준비해.”
“에이 아빠, 꼭 가야 돼?”
가야 한다. 내가 45살 때까지 내 부모님한테 했던 질문이다.
차에 짐 실었다. 과일 두 박스, 건강식품, 엄마 좋아하시는 한과. 25만원 들었다. 매달 이렇다.
아내가 김밥 쌌다. “점심 때 되면 배고프시잖아요.”
고맙다. 근데 엄마가 또 밥 차려놓으셨을 거다.

차 안 1시간
고속도로 탔다. 1시간 거리다.
아들이 에어팟 끼고 있다. 딸은 틱톡 본다.
“야, 할머니 할아버지 뵈면 인사 잘 해.”
“네.”
대답은 하는데 눈은 폰이다.
우리 세대는 달랐다. 차 안에서 부모님이 “저기 봐” 하면 봤다. 지금 애들은 폰이 세상이다.
아내가 옆에서 말한다.
“어머님 요즘 허리 안 좋으시대요.”
안다. 지난주에 전화로 들었다.
“병원 모시고 가야 하나…”
“이번 주는 안 되고, 다음 주 평일에…”
평일에. 회사 휴가 써야 한다. 연차 17개 남았다. 아껴야 한다. 애들 방학 때도 써야 하고.
부모님이 아프시면 내가 간다. 형은 미국에 있다. 5년째 못 왔다. 명절 때 전화만 한다.
그래서 다 내 몫이다.

부모님 댁
도착했다. 30평 아파트. 30년 사셨다.
초인종 눌렀다. 엄마가 나오셨다.
“어머, 왔어?”
아빠는 안방에 계신다. TV 본다. 요즘 거동이 불편하시다.
“아버지, 왔어요.”
“그래, 왔나.”
시선은 TV다. 트로트 프로그램이다.
엄마가 상 차리신다. 김밥 가져왔는데 이미 음식이 가득이다. 불고기, 잡채, 전, 나물 반찬 여섯 가지.
“엄마, 이거 언제 준비하셨어요?”
“새벽부터 했지.”
새벽부터. 칠순 넘으신 분이.
우리 보려고.
가슴이 먹먹하다.
아들 딸이 젓가락 든다. 먹는다. 맛있다고 한다. 엄마가 웃으신다.
“많이 먹어라.”
애들은 10분 먹고 폰 본다. 엄마 표정이 조금 굳는다.
내가 말한다.
“야, 폰 그만 봐.”
“할머니 댁에서는 예의 좀 지켜.”
아들이 툴툴거린다. 딸은 모른 척한다.
30년 전, 내가 똑같았다. 할머니 댁 가서 심심해했다. 빨리 가고 싶어 했다.
지금 엄마가 우리 할머니였다.
돌고 도는 거다.
오후 2시
아빠랑 얘기한다.
“요즘 회사 어떠냐.”
“그냥 그렇죠.”
“임원은 언제 되냐.”
또 그 얘기다. 아빠는 임원 되는 게 중요하시다. 50년 전 기준이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 안다. 올해 안에 결정 난다. 되면 1억 넘는다. 안 되면 이 회사 10년 더 다녀야 한다.
근데 임원 되면 개발 못 한다. 그게 싫다.
아빠는 이해 못 하신다.
“임원 되면 좋은 거 아니냐.”
“뭐가 싫어.”
설명할 수 없다. 세대가 다르다.
아빠 세대는 직급이 전부였다.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올라가는 게 성공이었다.
우리 세대는 다르다. 직급보다 뭘 하는지가 중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근데 아들 세대는 또 다르다. 걔는 유튜버 되고 싶다고 한다.
세 세대가 한 집에 앉아 있다. 각자 다른 세상에 산다.

엄마와 부엌에서
설거지 도왔다. 엄마가 말리신다.
“괜찮아, 내가 할게.”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한다. 엄마가 옆에서 닦는다.
“너 요즘 힘들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얼굴이 피곤해 보인다.”
거울 안 봐도 안다. 피곤하다. 매일 피곤하다.
“회사 일이 좀 많아요.”
“몸 챙겨라. 건강이 최고다.”
이 말을 몇 번 들었나. 30년은 들었다.
예전엔 잔소리였다. 지금은 걱정이다.
엄마가 물었다.
“우리 너무 짐 되나?”
심장이 뜁니다.
“무슨 소리세요.”
“한 달에 한 번도 힘들지?”
힘들다. 솔직히 힘들다. 토요일 오전 일어나서 ‘오늘 쉬고 싶다’ 생각한다.
근데 할 수 없다.
엄마는 나 때문에 70평생 사셨다. 학교 보내시려고, 대학 보내시려고, 결혼 시키시려고.
이제 내 차례다.
“아니에요. 자주 올게요.”
거짓말이다. 자주는 못 온다. 한 달에 한 번도 빠듯하다.
엄마는 안다. 표정으로 안다.
“고맙다.”
그 말에 눈물 날 뻔했다.
오후 4시
돌아가려고 짐 챙긴다.
엄마가 또 짐을 싸주신다. 반찬 통 다섯 개. 과일 한 박스. 김 세 봉지.
“엄마, 이거 너무 많아요.”
“가져가. 애들 먹여.”
차 트렁크 열었다. 올 때보다 짐이 더 많다. 항상 그렇다.
아빠가 나오셨다. 지팡이 짚고.
“조심히 가거라.”
“네, 아버지.”
차에 탔다. 시동 걸었다. 백미러로 부모님 보인다.
손 흔드신다.
작아 보인다. 언제 이렇게 작아지셨나.
30년 전엔 크셨다. 무서우셨다. 지금은 작고 여리다.
차 출발했다. 아내가 말한다.
“어머님 많이 힘드셔 보여.”
안다. 나도 봤다.
근데 어쩔 수 없다. 나도 힘들다.
집 가는 길
고속도로 탔다. 저녁때라 차가 막힌다.
아들이 물었다.
“아빠,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되는 거야?”
“뭐가?”
“할아버지처럼. 늙고, 아프고.”
“그렇지.”
“그럼 아빠도?”
“당연하지.”
“나도?”
“너도.”
침묵이다.
딸이 말한다.
“아빠, 나중에 나 자주 올게.”
“뭐?”
“아빠 할아버지 되면, 나 자주 올게. 한 달에 한 번 말고.”
목이 멘다.
“그래, 고맙다.”
근데 안다. 못 온다. 애도 45살 되면 바쁘다. 회사 다니고, 애 키우고, 살기 바쁘다.
한 달에 한 번도 잘 오면 효자다.
나처럼.
집 도착
7시에 도착했다. 피곤하다.
반찬 통 꺼냈다. 냉장고에 넣었다. 가득 찼다.
아내가 저녁 차렸다. 엄마가 싸준 반찬이다.
먹는다. 맛있다. 30년 먹은 맛이다.
아들이 말한다.
“할머니 음식 맛있다.”
맞다. 맛있다.
근데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10년? 20년?
계산하기 싫다.
폰에 알람 설정했다. ‘다음 달 부모님 댁’. 3주 후 토요일.
또 간다. 25만원 쓰고, 4시간 쓰고, 체력 쓰고.
힘들다.
근데 할 거다.
부모님이 날 키우셨다. 45년 동안.
나도 부모님 모신다. 남은 시간 동안.
그게 내 세대의 책임이다.
위로는 부모님, 아래로는 애들. 샌드위치다.
눌리면서 산다.
일요일 아침
일어났다. 9시다.
아들이 또 게임한다. 딸은 틱톡 본다.
거실 청소했다. 설거지했다. 빨래 돌렸다.
일주일이 시작된다.
내일이면 월요일이다. 회의 여섯 개다. 코딩은 못 한다.
근데 괜찮다.
토요일에 부모님 뵀으니까.
그거면 됐다.
다음 달에 또 간다.
부모님 댁 다녀오면 항상 피곤한데, 안 가면 더 불편하다. 그게 45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