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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기 모임, 임원 둘에 창업가 하나 (나는?)

대학 동기 모임, 임원 둘에 창업가 하나 (나는?)

20년 만의 모임토요일 저녁 7시. 강남역 근처 삼겹살집. 동기 모임이다. 대학 졸업하고 20년. 문 열고 들어가니 셋이 먼저 와 있다. "야, 박시니어!" 민호다. 임원 달았다는. "오랜만이다." 악수했다. 손에 힘이 있다. 옆에 앉은 게 준석. 얘도 임원. "형님, 요즘 어때?" 형님이라니. 대학 땐 그냥 이름 불렀는데. "그냥 그렇지 뭐." 마지막이 성우. 창업했다는 애. "박시니어, 너 아직도 코딩해?" "응." "대단하다. 나는 손 뗀 지 5년 됐어." 소주 두 병 시켰다. 삼겹살 구워진다. 임원 A와 임원 B민호가 명함 꺼냈다. "이거 새로 만들었어." 전무이사. 대기업 계열사. "와, 전무네." "올해 달았어. 겨우." 겨우라니. 45살에 전무면 빠른 거다. 준석도 명함 내밀었다. "나도 올해." 상무. 역시 대기업. "연봉은?" 민호가 웃는다. "2억 좀 넘어. 스톡옵션 포함이면 3억?" 준석이 고개 끄덕인다. "나도 비슷해. 근데 세금 떼면..." 둘이 웃는다. 연봉 얘기를 농담처럼. 나는 소주 한 잔 마셨다. 9500만원. 내 연봉. 절반도 안 된다. "박시니어 너는?" "비슷해." 거짓말이다. 전혀 안 비슷하다. "아직도 코딩해? 관리는 안 해?" "파트장이야. 8명 관리." "오, 그래도 코딩?" "응. 저녁에." 민호가 고개를 젓는다. "나는 코드 본 지 3년 됐어. 볼 시간이 없어." 준석도 맞장구. "나도. 하루 종일 회의." 성우가 끼어든다. "나도 마찬가지. 창업하면 코딩 못 해." 셋이 웃는다. 나만 웃지 않았다. 창업가의 이야기 성우 얘기가 시작됐다. "작년 매출 50억." "대박." "올해는 100억 목표." "직원은?" "30명. 개발자가 20명." 민호가 감탄한다. "잘됐네. IPO는?" "내년쯤 준비하려고." 준석이 묻는다. "지분은 얼마 들고 있어?" "40%. 공동창업자랑 반반." 계산해봤다. 기업가치 500억이면 200억. 성우 혼자 200억이다. "힘들지 않아?" 내가 물었다. "힘들지. 개발자 뽑기도 어렵고." "연봉 얼마 줘?" "시니어급은 1억 넘게. 안 주면 안 와." 1억. 내가 받는 돈보다 많다. 내가 20년 개발한 값보다 신입 시니어가 비싸다. "박시니어, 너 올래? 우리 회사." 농담이다. 진담 같기도 하다. "생각해볼게." 역시 농담으로 받았다. 성우가 웃는다. "CTO 자리 비어 있어. 1억 5천." 1억 5천만원. 내 연봉의 1.5배다. "근데 야근 많아. 주말도 일해." "그럼 됐어." 진담이다. 나는 뭔가화장실 갔다. 거울 봤다. 45살. 주름 생겼다. 흰머리 보인다. 파트장. 20년차. 9500만원. 민호는 전무. 2억. 준석은 상무. 2억. 성우는 대표. 200억. 나는? 개발자. 코딩하는 개발자. 손 씻으면서 생각했다. 뭔가 잘못된 건가. 20년 전 같은 학교 다녔다. 같은 교수 밑에서 배웠다. 같은 알고리즘 문제 풀었다. 20년 후 차이가 이렇게 크다. 내가 게으른 건가. 아니다. 나도 열심히 했다. 밤새 코딩했다. 주말도 일했다. 20년 동안 한 번도 안 쉬었다. 그런데 왜. 화장실 나왔다. 셋이 웃고 있다. "박시니어, 괜찮아?" "응." 앉았다. 고기 구웠다. 코딩이 좋은 이유 민호가 물었다. "너 임원 안 달아?" "모르겠어." "승진하면 개발 못 하잖아." "그게 문제지." 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그랬어. 근데 어쩔 수 없어." "왜?" "먹고살아야지." 성우가 끼어든다. "박시니어는 개발 진짜 좋아하나 봐." "응." "부럽다. 나는 이제 싫어." "왜?" "손 떼니까 재미가 없어. 근데 돌아갈 수도 없고." 민호도 동의한다. "맞아. 나도 가끔 코드 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준석이 웃는다. "우리 다 똑같네." 셋이 웃는다. 나도 웃었다. 진짜 웃음이다. 돈은 적게 번다. 임원도 아니다. 창업도 안 했다. 근데 나는 코딩한다. 저녁 6시 넘어서. 팀원들 퇴근하고. 혼자 IDE 켜고 코드 짠다. 새로운 기능 만든다. 버그 고친다. 리팩토링한다. 테스트 짠다. 그게 좋다. 코드가 돌아가는 게 좋다. 문제가 해결되는 게 좋다. 20년 해도 안 질린다. 이게 내 답이다. 집 가는 길 모임 끝났다. 11시. 택시 잡았다. 민호가 먼저 탔다. "박시니어, 나중에 또 보자." "그래." 준석이 손 흔든다. "다음엔 내가 살게." "알았어." 성우가 악수했다. "진짜 올 생각 있으면 연락해." "그럴게." 거짓말이다. 안 갈 거다. 지하철 탔다. 2호선. 창밖 봤다. 강남 빌딩들 반짝인다. 저 안에서 민호가 일한다. 준석도 일한다. 성우 회사도 저 어디쯤 있다. 나는 판교에서 일한다. IT 자회사. 9층 건물. 내 자리는 7층 구석. 듀얼 모니터. 기계식 키보드. IntelliJ 켜놓고 코드 짠다. 그게 내 자리다. 20년 동안 지킨 자리. 돈과 코드 집 도착했다. 12시. 아내가 자고 있다. 아이들도. 침대에 누웠다. 오늘 생각했다. 돈. 민호 2억. 준석 2억. 성우 200억. 나 9500만원. 차이가 크다. 부럽다. 솔직히. 2억 받으면 뭐 할까. 집 바꾼다. 차 바꾼다. 아이들 학원 더 보낸다. 근데 그게 다인가. 코드는? 코드는 못 짠다. 민호 말대로 시간이 없다. 준석 말대로 어쩔 수 없다. 성우 말대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럼 난? 돈은 적게 번다. 근데 코드는 짠다. 매일 짠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키보드 두드린다. 화면에 글자 찍힌다. 빌드 돌린다. 테스트 돈다. 성공한다. 그게 좋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거. 내일도 내일 월요일이다. 출근한다. 메일 50개 읽는다. 회의 3개 한다. 점심 먹고 1on1 한다. 코드리뷰 한다. 저녁 6시 넘어서 코드 짠다. 민호처럼 2억은 못 번다. 준석처럼 상무는 아니다. 성우처럼 200억은 없다. 근데 괜찮다. 나는 코드 짠다. 45살. 20년차. 아직도 현역이다. 키보드 두드리는 개발자다. 그게 내 정체성이다. 돈 많이 버는 것도 좋다. 임원 달는 것도 좋다. 창업하는 것도 좋다. 근데 나는 이게 좋다. 코드 짜는 게 좋다. 20년 후에도 짤 거다. 65살까지 짤 거다. 은퇴하는 날까지. 그게 내 길이다.동기들은 다들 임원이고 대표다. 나는 여전히 개발자다. 부럽지만, 내 길이 틀린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