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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 Dec, 2025
주말 기술 블로그, '나 뒤처지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
주말 기술 블로그, '나 뒤처지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 토요일 아침 10시 아내가 나갔다. 아이들도 학원. 집에 혼자다. 커피 내렸다. 노트북 켰다. 습관처럼 북마크를 연다. "기술 블로그" 폴더. 안 읽은 글이 47개다. 지난주에도 47개였는데. 요새 핫하다는 Rust 글. Bun 성능 벤치마크. React 19 무슨 기능. 전부 읽어야 할 것 같다. 근데 읽으면 뭐가 달라지나. 20년 전엔 이렇지 않았다. 자바 새 버전 나와도 몇 달 뒤에 봐도 됐다. 지금은? 어제 나온 기술을 오늘 모르면 뒤처진 것 같다. 스크롤을 내린다. "2024년 개발자가 알아야 할 10가지." 클릭했다가 닫았다. 작년 글도 못 봤는데.읽기 시작하면 첫 문단은 괜찮다. "Rust는 메모리 안전성을..." 알겠다. 이건 안다. 두 번째 문단. 코드가 나온다. async fn, await, Arc<Mutex<T>>. 뭔지는 알겠는데 손으로 쳐보진 않았다. 세 번째 문단. 실전 예제. 200줄짜리 코드. "이렇게 하면 제로 카피가..." 머리가 아프다. 아들이 "아빠 이거 어떻게 해?" 하면 10분 안에 답 준다. 근데 Rust 배우려면 몇 시간이 필요한가. 아니, 몇 달. 탭을 하나 더 연다. "Next.js 14 서버 컴포넌트." 이것도 읽어야 한다. 우리 회사는 Next.js 12 쓴다. 14는 언제 쓰나. 15분 지났다. 아직 한 글도 제대로 안 읽었다. 그냥 훑었다. 훑는 것도 읽는 거라고 우기면 되나.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2010년쯤. Spring 3.0 나왔을 때. 레퍼런스 문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토요일 오후 통째로 썼다. 코드도 따라 쳤다. 그때는 재밌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이걸 월요일에 써먹어야지" 했다. 실제로 썼다. 지금은? Next.js 배워도 쓸 데가 없다. 우리 프로젝트는 JSP다. 레거시 유지보수가 80%다. Rust 배워도 마찬가지. 회사에서 자바 쓴다. 개인 프로젝트? 할 시간이 없다. 그럼 왜 읽나. 불안해서다. "요즘 개발자는 이거 다 안다"는 말이 무섭다. 면접관으로 들어간 적 있다. 27살 지원자가 말했다. "Rust로 CLI 툴 만들어봤습니다." 나는 Rust로 Hello World도 안 해봤다. 면접 끝나고 검색했다. "Rust 기초." 그 지원자 붙였다. 나보다 잘하니까. 근데 기분은 이상했다. "내가 뒤처졌구나."후배들은 당연하게 월요일 출근. 막내가 물었다. "파트장님, Bun 써보셨어요?" "아니. 그게 뭔데." "Node.js 대체하는 런타임이요. 엄청 빠르대요." "음. 우리 프로젝트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궁금해서요." 그냥 궁금해서. 이 말이 부럽다. 나도 예전엔 "그냥 궁금해서" 새 기술 공부했다. 지금은 "이거 실무에 쓸 수 있나"부터 생각한다. 쓸 수 없으면 안 본다. 근데 그러면 영영 모르는 기술이 된다. 후배는 주말에 Bun으로 토이 프로젝트 만들었단다. "3시간 걸렸어요." 나는 주말에 뭐 했나. 밀린 드라마 봤다. 틀린 건 아니다. 쉬는 것도 중요하다. 근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나만 안 쉬는 건가" 싶다가도 "나만 공부 안 하는 건가" 싶다. 읽은 척하기 팀 회의. 누가 말했다. "요즘 React Server Component가 대세래요." "맞아. 나도 봤어." 거짓말이다. 제목만 봤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장단점이 있지. 서버 부하는 늘어날 수 있고." 대충 얼버무렸다. 다행히 더 안 물었다. 회의 끝나고 검색했다. "React Server Component란." 10분 읽었다. 대충 알겠다. 아니, 대충 아는 척할 수 있을 정도로. 이게 요즘 내 공부법이다. 모르는 기술 나오면 10분 검색. 키워드만 익힌다. "SSR", "hydration", "streaming". 이 단어들 넣어서 말하면 아는 것처럼 들린다. 진짜 아는 건 아니다. 코드 못 짠다. 근데 회의에서 막히진 않는다. 이게 맞나. 모르겠다. 근데 다른 방법도 없다. 전부 깊게 공부할 시간은 없다.진짜 배우려면 Rust 제대로 배우려면 시간이 얼마나 드나. 책을 봤다. "The Rust Programming Language." 600페이지. 하루 10페이지 읽으면 2개월. 근데 읽기만 하면 안 된다. 코드 쳐야 한다. 에러 보고 고쳐야 한다. 그럼 4개월. 4개월 동안 매일 1시간. 가능한가. 평일엔 야근. 주말엔 가족. 1시간 내기도 어렵다. 그럼 짬짬이? 출퇴근 지하철에서? 가능하다. 근데 피곤하다. 지하철 타면 졸린다. 핸드폰으로 유튜브 보다가 내린다. 점심시간? 밥 먹고 나면 30분. 커피 마시면 10분. 10분으로 뭘 배우나. 퇴근 후? 9시에 집 도착. 씻고 밥 먹으면 10시. 가족이랑 얘기하면 11시. 그때부터 공부? 30분 하면 졸린다. 계산해보면 답 없다. 시간이 없다. 근데 "시간 없어"라고 하면 핑계처럼 들린다. 후배 코드 리뷰하면서 PR 올라왔다. 후배가 짠 코드. 흐름은 괜찮다. 근데 모르는 게 있다. suspend fun fetchData() = coroutineScope { val deferred = async { repository.getData() } deferred.await() }코틀린이다. 우리 팀이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자바로 짠다. suspend, coroutineScope, async. 들어본 건데 정확히 모른다. 대충 비동기라는 건 알겠다. 댓글 달았다. "Good." 뭐라고 더 쓸 말이 없다. 예전엔 코드리뷰가 신났다. "여기 이렇게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지금은? "Good", "LGTM", "Approve". 짧다. 할 말이 없어서. 후배가 물었다.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나도 코틀린 공부 중이라 확실하진 않은데." 솔직하게 말했다. 후배는 "네"라고만 했다. 표정이 이상했다. 실망한 것 같기도. 파트장인데 코틀린 모른다. 이게 말이 되나. '나중에' 리스트 북마크 폴더를 열었다. "나중에 볼 것" 폴더. 글이 312개다. 제일 오래된 건 2년 전 글. "Docker Kubernetes 완벽 가이드". 안 봤다. 작년 글도 있다. "함수형 프로그래밍 입문". 안 봤다. 이번 달 글도 있다. "AI 시대 개발자의 역할". 안 본다. 전부 언젠가 보려고 저장했다. 언젠가는 안 온다. 알고 있다. 근데 지우진 못한다. 지우면 진짜 안 볼 것 같아서. 희망 고문이다. "나중에 볼 거야"라는 희망. 실제론 안 본다. 근데 버리면 '포기'한 것 같다. 후배한테 물었다. "너는 기술 블로그 어떻게 관리해?" "저요? 안 봐요. 필요하면 그때 찾아봐요." 충격이었다. "안 봐요"를 당연하게 말한다. 나는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뒤처지는 거 걱정 안 돼?" "뒤처지면 어때요. 필요할 때 배우면 되죠."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못 한다. 불안하다. 유튜브 알고리즘 유튜브 켰다. 추천에 뜬다. "초보 개발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기술 스택." "시니어 개발자도 모르는 최신 트렌드." 클릭했다. 15분짜리 영상. 빠르게 넘긴다. 2배속으로. 7분 만에 끝. 뭐 배웠나. 기억 안 난다. "요즘은 이게 대세"라는 말만 남았다. 구체적인 건 없다. 또 클릭했다. "개발자 공부법 - 하루 30분으로 성장하기." 봤다. 내용은 뻔하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실습하기". 알고 있다. 다 안다. 근데 안 된다. 되면 벌써 했다. 영상 보는 게 공부한 기분 들게 한다. 실제론 아무것도 안 했는데. 15분 봤으니 "오늘 공부했다" 싶다. 착각이다. 알고 있다. 근데 또 본다. 내일도 볼 거다. 컨퍼런스 가면 회사에서 보냈다. "개발자 컨퍼런스 갈 사람?" 손 들었다. 금요일이라 좋다. 코엑스 갔다. 사람 많다. 다들 젊다. 20대, 30대. 나 같은 사람은 별로 없다. 첫 세션. "AI 기반 코드 생성의 미래." 들어갔다. 앞자리 앉았다. 발표 시작. GPT-4로 코드 짠다. Copilot 쓴다. "이제 개발자는 코딩 말고 설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맞는 말 같다. 근데 불안하다. '내 자리가 없어지는 거 아냐?' 옆 사람이 고개 끄덕인다. 메모한다. 열심히 듣는다. 나도 메모했다. "AI", "설계 중심", "역할 변화". 나중에 볼 일 없다. 두 번째 세션. "클라우드 네이티브 아키텍처." 어렵다. 모르는 용어 투성이. "서비스 메시", "사이드카 패턴". 30분 들었는데 이해 못 했다. 졸렸다. 커피 마시러 나왔다. 복도에 사람들 많다. 다들 얘기한다. "방금 발표 좋았어." "나도 써봐야겠어." 나는 뭐 써봐야 하나. 모르겠다. 커피만 마셨다. 월요일 출근 팀원이 물었다. "컨퍼런스 어땠어요?" "좋았어. 요즘 트렌드 알았어." "뭐가 핫해요?" "음. AI랑 클라우드 네이티브?" "구체적으로요?" 막혔다. 구체적으론 모른다. 그냥 들었다. "나중에 자료 공유해줄게." 안 했다. 자료 찾기 귀찮아서. 팀원도 안 찾았다. 다들 바빠서. 결국 컨퍼런스도 "다녀왔다"는 것만 남았다. 배운 건 없다. 돈은 회사 돈. 시간은 근무시간. 손해는 없다. 근데 얻은 것도 없다. 임원님 말씀 임원님이 말했다. "우리 회사도 AI 도입해야 해. 개발 생산성 높여야지." "네. 좋습니다." "박 파트장이 한번 검토해봐. 다음 주까지." "네." 검토? 뭘 검토하나. AI 툴은 많다. Copilot, Cursor, Tabnine. 다 써봤나? 안 봤다. 주말에 찾아봤다. "AI 코딩 툴 비교." 블로그 10개 읽었다. 다 비슷하다. "생산성 향상", "코드 품질 개선". 월요일에 보고했다. "Copilot 괜찮아 보입니다." "왜?" "많이 쓰고, 안정적이고, VS Code 연동 잘 되고." "얼마야?" "월 10달러." "팀 전체면 얼마?" "8명이니까... 960달러. 연간 만 불 좀 넘네요." "비싸네. 효과는 확실해?" 모른다. 써본 적 없다. 블로그만 봤다. "네. 보통 30% 생산성 향상된다고 합니다." "30%면 괜찮네. 진행해봐." 결정됐다. 나도 처음 써본다. Copilot 써보니 설치했다. VS Code에. 로그인하고 활성화. 코드 짰다. 주석 쓰니까 코드 자동완성. 신기하다. 맞는 코드다. 한 시간 썼다. 편하다. 타이핑 덜 한다. 근데 이상하다. 내가 코드 짠 건가, AI가 짠 건가. 경계가 모호하다. 예전엔 한 줄 한 줄 생각하면서 짰다. 지금은? 제안 보고 엔터. 또 제안 보고 엔터. 빠르긴 하다. 근데 덜 생각하게 된다. 후배한테 물었다. "너 이거 써봤어?" "네. 작년부터요." "어때?" "편해요. 근데 가끔 이상한 코드 줘요." "이상한 거 어떻게 알아?" "그냥 이상하잖아요." 그냥. 이 말이 무섭다. "그냥 안다"는 건 기본기가 있다는 거다. 나도 안다. 20년 짰으니까. 근데 새로운 언어는? 코틀린에서 이상한 코드 알아챌 수 있나. 기본기 회식 자리. 팀장님이 말했다. "요즘 신입들은 기본기가 약해." "그렇죠." "옛날엔 자료구조, 알고리즘 다 알았는데." "맞습니다." 근데 나도 까먹었다. 레드블랙트리? 10년 전 면접 때 공부했다. 지금은 설명 못 한다. "AI 시대엔 기본기가 더 중요해. AI는 도구일 뿐이야." 맞는 말이다. 근데 나도 AI 쓴다. 나도 도구에 의존한다. 차이가 뭔가. 나는 경험이 있다? 20년 경력? 그게 앞으로도 의미 있나. GPT-4가 내 20년 경험보다 더 많은 코드 본 거 아닌가. 더 다양한 문제 풀어본 거 아닌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근데 자꾸 생각난다. 토요일 저녁 결국 한 줄도 안 배웠다. Rust도 안 봤다. Next.js도 안 봤다. 유튜브만 봤다. "개발자 트렌드" 영상 5개. 본 것 같은데 기억 안 난다. 북마크는 50개 됐다. 읽을 일 없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뭐 했어?" "공부했어." "뭐?" "기술 공부." 거짓말이다. 유튜브 봤다. 근데 "유튜브 봤어"라고 하기 부끄럽다. 아내는 "음"하고 넘어갔다. 관심 없다. 나도 관심 없으면 편할까. 불안의 정체 왜 불안할까. 생각해봤다. 뒤처지는 게 무섭다? 뭐에서? 나는 파트장이다. 이미 관리직이다. 최신 기술 몰라도 일은 된다. 이직? 할 생각 없다. 여기 9년 다녔다. 연봉도 괜찮다. 그럼 뭐가 문제냐. 자존심이다. "개발자"라는 정체성. 20년 했다. 그게 나를 정의한다. 근데 최신 기술 모르면 '진짜 개발자'가 아닌 것 같다. 누가 그래? 아무도 안 그랬다. 나 혼자 생각한다. 후배들은 나 보고 뭐라 안 한다. "파트장님 옛날 사람이다" 이런 소리 안 한다. 내가 오버하는 거다. 근데 멈출 수가 없다. 습관이다. 20년 된 습관. 가끔은 가끔은 생각한다. '몰라도 되는 거 아냐?' Rust 몰라도 자바 잘하면 되잖아. Next.js 몰라도 Spring 잘하면 되잖아. 전부 다 알 순 없다. 인정해야 한다. 근데 인정하면 '포기'한 것 같다. '포기'와 '선택'은 다르다. 알고 있다. 근데 느낌은 비슷하다. "나는 Rust 안 배운다." 이렇게 선언하면 편할까. 시도 안 해봤다. 무섭다. 후배가 "Rust 어때요?"라고 물으면 "안 해봤어"라고 답하는 게 무섭다. "관심 없어"도 이상하다. "시간 없어"는 핑계 같다. 그래서 "나중에 해볼게"라고 한다. 나중은 안 온다. 임원 승진하면 내년에 임원 대상자다. 승진하면 연봉 오른다. 근데 개발은 못 한다. 예산 짜고, 보고서 쓰고, 임원 회의 들어간다. 코딩은?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아예 안 할 수도. 그럼 기술 공부는 더 안 해도 되나. 필요 없으니까. 근데 그게 더 무섭다. '개발자'에서 '관리자'로 완전히 넘어가는 거. 돌아올 수 없다. 승진 거부할까. 생각해봤다. 바보 같은 소리다. 아내가 뭐라 할까. 부모님은? "승진 안 할래요" 이러면 "왜?"라고 물을 거다. "개발하고 싶어서요" 이러면 이해할까. 안 할 거다. 승진한다. 그리고 개발은 덜 한다. 기술 공부는 더 안 한다. 이게 정답인 것 같다. 근데 마음은 불편하다. 20년 후배에게 입사 동기가 창업했다. 스타트업. 성공했다. 작년에 엑싯했다. 만나서 물었다. "기술 공부 어떻게 해?" "안 해. 직원들이 알아서 하지." "불안 안 해?" "왜 불안해? 내가 다 알 필요 없잖아." 충격이었다. "다 알 필요 없다"를 당연하게 말한다. "나는 안 그래. 모르면 불안해." "그럼 계속 공부해야지. 평생." "그게 가능해?" "모르지. 근데 너가 선택한 거잖아." 맞다. 내가 선택했다. '개발자'로 남기로. 그럼 평생 배워야 한다. 가능한가. 모르겠다. 근데 다른 길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북마크 열었다. 안 읽은 글 53개. 하나 클릭했다. "Go언어 시작하기." 읽었다. 10분. 뭐 배웠나. 모르겠다. 그래도 읽었다. 0보단 낫다. 이렇게 위로한다. 내일도 그럴 거다. 모레도. 계속.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근데 멈출 수도 없다. 토요일 오후 3시. 아내가 "나가자"고 한다. "곧" 이라고 답했다. 노트북 닫았다. 일어났다. 내일 또 열 거다. 불안은 안 없어진다. 알고 있다. 익숙해지는 것밖에. 20년 개발자의 주말. 이렇다.배워도 끝이 없고, 안 배워도 불안하다. 그래서 계속 화면만 본다.
- 03 Dec, 2025
아들이 '아빠 코딩 가르쳐줘' 했을 때
아들이 "아빠 코딩 가르쳐줘" 했을 때 그날 저녁 "아빠, 코딩 좀 가르쳐줘." 아들이 저녁 먹다가 말했다. 중2다. 학교에서 정보 과목 배운다고 했다. 내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다. 20년 개발자다. 드디어 내 전문성을 아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순간. "오케이, 뭐 배우고 싶은데?" "파이썬." 첫 번째 당황. 나는 자바다. 20년 자바. 파이썬은... 스크립트 정도만.노트북 켰다 "파이썬도 할 줄 알지, 뭐." 거짓말은 아니다. 할 줄은 안다. 근데 요즘 파이썬이 뭔지는 모른다. 아들이 노트북 켰다. VS Code다. 익숙하다. 그런데 화면이 뭔가 다르다. "아빠, GitHub Copilot 켜면 안 돼?" 두 번째 당황. 코파일럿. 들어는 봤다. AI가 코드 짜준다는 거. 우리 회사는 보안 때문에 못 쓴다. "아, 그거... 학교에서 쓰래?" "응, 선생님이 추천하셨어. 근데 유료라서..." 나는 20년 개발자다. AI 도움 없이 코딩했다. 그런데 지금 중학생들은 AI로 배운다.일단 시작했다 "좋아, 뭐부터 할까?" "함수 만드는 거 배우고 싶어." 쉽다. 함수는 함수다. 어느 언어나 비슷하다. def hello(): print("Hello")"이렇게 쓰면 돼." 아들이 봤다. 3초. "아빠, 타입 힌트는?" "...뭐?" "타입 힌트요. 파이썬도 타입 쓰잖아요." 세 번째 당황. 파이썬이 타입을? 동적 타입 언어 아닌가? "아, 그거... 요즘은 그렇게 쓰는구나." 검색했다. 아들 앞에서. def hello() -> None: 맞다. 이거다. 본 적 있다. 쓴 적은 없다. 20년 개발자가 중학생 앞에서 구글링한다.계속 물었다 "아빠, 리스트 컴프리헨션 어떻게 써?" 안다. 이건 안다. [x for x in range(10)] "오, 아빠 쩐다." 기분 좋았다. 1초. "근데 아빠, 이거 walrus operator로도 되지 않아?" "...walrus?" "응, 바다코끼리요. := 이거." 모른다. 처음 들었다. "그건... 나중에 배워도 돼." "아 네." 아들 표정이 묘했다. '아빠도 모르는구나' 하는 표정. 내가 후배 코드 리뷰할 때 짓는 표정이다. 30분 지났다 아들이 코드 짰다. 간단한 계산기. 나는 옆에서 봤다. 가끔 조언했다. "여기는 이렇게 하면 더 좋아." 근데 내 조언이 옛날 방식이다. "아빠, 그건 Python 2 방식 아니에요?" "...그래?" "우리는 Python 3.12 쓰는데." 3.12. 나는 3.6에서 멈췄다. 버전이 그렇게 올라갔나. 자바도 21까지 나왔는데 우리 팀은 11 쓴다. 기술 부채. 회사에도 있고, 나한테도 있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이거 틀렸어." 내 코드를 고쳤다. 맞다. 내가 틀렸다. 인덴트를 탭으로 했다. 파이썬은 스페이스 4개다. 알았는데 손이 자바로 갔다. "아, 미안. 습관이." "괜찮아요. 근데 아빠 회사는 뭐 써요?" "자바." "자바요? 그거 옛날 거 아니에요?" 네 번째 당황. 아니, 이건 당황이 아니라 상처다. "...옛날 거 아니야. 지금도 제일 많이 쓰는 언어야." "아 그래요? 근데 선생님이 요즘은 다 파이썬이나 자바스크립트래요." 맞는 말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근데 아들한테 듣으니까 다르다. 그날 밤 아들은 혼자 코딩했다. 나는 옆에서 일기 썼다. 지금 이거. 가끔 "아빠 이거 봐봐요" 했다. 봤다. 모르는 거 반, 아는 거 반. "오, 잘했네. 근데 여기는..." "아 그거요? YouTube에서 봤어요." YouTube. 나는 책으로 배웠다. 두꺼운 책. "Effective Java" 3번 읽었다. 아들은 10분짜리 영상으로 배운다. 더 빠르다. 더 효율적이다. 나는 늙었다. 깨달았다 내 전문성이 자산인 줄 알았다. 20년 경력. 대기업 파트장. 연봉 9500. 이게 다 내 실력이라고 믿었다. 근데 아들 앞에서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건 2010년 기술이다. 지금은 2024년이다. 14년 차이. 중학생과 아빠의 차이보다 크다. 아들이 배우는 파이썬과 내가 아는 파이썬은 다르다. 아들이 쓰는 도구와 내가 쓰는 도구는 다르다. 아들의 미래와 내 과거가 만났다. 그리고 과거가 졌다. 다음 날 출근 팀 막내가 물었다. "파트장님, Rust 스터디 하려는데 관심 있으세요?" "Rust? 그거 뭐 하는 거야?"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요. 요즘 핫해요." 또 모른다. 또 "요즘". "아, 나는 괜찮아. 너희끼리 해." "네~" 막내가 갔다. 나는 자바 코드를 봤다. 익숙했다. 편했다. 근데 아들 생각났다. "아빠 그거 옛날 거 아니에요?" 점심시간 후배랑 밥 먹었다. "파트장님, 요즘 공부 뭐 하세요?" "응? 그냥... 뭐." "저는 요즘 LLM 공부 중이에요. ChatGPT API 써서 챗봇 만들고." LLM. Large Language Model. 안다. 회의 때 나온다. 임원들이 좋아한다. 근데 코드로 못 짠다. "오, 좋네. 나도 해봐야 하는데." "같이 하시죠!" "아, 나는... 일이 좀 많아서." 거짓말이다. 일은 많다. 근데 진짜 이유는 다르다. 배우기 귀찮다. 새로운 게 겁난다. 실패하는 게 무섭다. 아들한테 본 내 모습이 싫었다. 후배한테 또 보이기 싫다. 저녁에 집 아들이 또 물었다. "아빠, 오늘도 코딩 알려줘요." "...아빠 오늘 피곤해." "에이, 조금만요." 싫었다. 솔직히. 또 모르는 거 물어볼까 봐. 또 "그거 옛날 거 아니에요?" 들을까 봐. 근데 아들 눈을 봤다. 반짝였다. 기대했다. 나를 믿었다. 나는 아들의 영웅이고 싶었다. 근데 영웅은 낡았다. 노트북 켰다 "좋아, 뭐 할까?" "오늘은 클래스 배우고 싶어요." 클래스. 이건 내 영역이다. 객체지향. 20년 했다. class Person: def __init__(self, name): self.name = name"이렇게 만들면 돼." "오 감사합니다!" 아들이 따라 쳤다. 근데 또 물었다. "아빠, dataclass는요?" "...뭐?" "dataclass요. 데코레이터 쓰는 거." 또 모른다. 검색했다. 또. @dataclass 있다. 이런 게. "아, 이거... 편리하네." "그죠? 선생님이 추천하셨어요." 선생님은 최신 기술을 안다. 나는 옛날 기술을 안다. 누가 더 나은 선생님일까. 1시간 후 아들이 코드를 완성했다. 학생 관리 프로그램. 클래스 3개. 나는 조언했다. "여기 상속 쓰면 좋겠다." "상속이요?" "응, class Student(Person): 이렇게." "아 네!" 아들이 따라 했다. 작동했다. "와, 아빠 쩐다!" 기분 좋았다. 이번엔 진짜로. 내가 아는 걸 알려줬다. 도움이 됐다. 비록 최신은 아니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감사해요." "응."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예요. 우리 아빠 개발자래." 자랑.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개발자? 어른들도 코딩 해요?" 아니면 "와 멋있다!" 일까. 모르겠다. 근데 아들은 자랑스러워했다. 그걸로 됐다. 그날 밤 생각 나는 뭘 가르쳤나. 파이썬? 별로 못 가르쳤다. 아들이 더 잘 안다. 최신 기술? 전혀. 나도 모른다. 그럼 뭘 준 거지. 생각해봤다. 아마도 "자세"다. 모르면 검색하는 것. 틀리면 고치는 것. 새로운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 (척하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이건 20년이 준 거다. 기술은 변한다. 언어도 변한다. 근데 개발자의 태도는 안 변한다. 그걸 보여줬다. 아마. 다음 날 회의 임원이 물었다. "박 파트장, AI 도입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습니다. 해야죠." "구체적으로는?" "...검토하겠습니다." 모른다는 말을 돌려 말했다. 회의 끝나고 검색했다. "기업 AI 도입 사례" 나왔다. 많이. 읽었다. 어렵다. 근데 읽었다. 아들 생각이 났다. "아빠도 배우네." 맞다. 나도 배운다. 45살에도. 주말 아들이 또 물었다. "아빠, 웹사이트 만들고 싶은데." "웹사이트?" "응, HTML이랑 CSS요." HTML. 안다. 근데 15년 전 거. CSS. 안다. 근데 float 쓰던 시절 거. 요즘은 Flexbox? Grid? "좋아, 같이 해보자." "아빠도 몰라요?" "...조금." "오케이! 같이 배워요!" 아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역할이 바뀌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같이 배우는 사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노트북 2대 거실에 노트북 2대를 놓았다. 아들 거, 내 거. 같은 튜토리얼을 켰다. "HTML 기초 - 2024년 버전" 아들이 빨랐다. 타이핑이 빠르다. 나는 느렸다. 타이핑은 빠른데 이해가 느리다. "아빠 여기 막혀요?" "응, 이게 뭔지 모르겠어." "아 이거요? 저도 모르는데." "검색하자." "네!" 둘이 검색했다. 찾았다. 해결했다. 하이파이브 쳤다. 이게 코딩이다. 혼자서도 되고, 같이 해도 된다. 깨달았다 (2) 전문성은 2가지다. 하나는 "지식". 하나는 "배우는 법". 지식은 낡는다. 빠르게. 배우는 법은 안 낡는다. 나는 지식으로 아들을 가르치려 했다. 근데 내 지식은 낡았다. 그래서 배우는 법을 보여줬다. "아빠도 모르지만, 찾아보면 돼." "틀려도 돼. 고치면 돼." 이게 20년 개발자가 줄 수 있는 거다. 최신 기술은 유튜브가 준다. 근데 태도는 내가 줄 수 있다. 월요일 출근 팀 회의. "이번 프로젝트에 새 기술 써보면 어떨까요?" 막내가 말했다. 다들 나를 봤다. 파트장이 허락해야 한다. 원래는 이렇게 말한다. "검증된 기술 쓰자. 안정성이 중요해." 근데 이번엔 달랐다. "좋아. 근데 나도 모르는 거니까, 스터디 좀 해줘." "네? 파트장님도 같이요?" "응, 같이." 팀원들 표정이 묘했다. 놀랐다. 좋아했다. "오 좋습니다!" 나도 배워야 한다. 아들한테 보여줬다. 이제 팀한테도 보여줄 차례. 저녁 아들이 말했다. "아빠, 오늘 발표 잘했어요." "오? 뭐 발표했는데?" "정보 시간에 파이썬으로 만든 거요." "오 잘했네!" "아빠가 도와줘서요." 나는 별로 도와준 게 없다. 대부분 아들이 혼자 했다. 근데 아들은 고마워했다. "아빠, 다음엔 뭐 배울까요?" "너 뭐 하고 싶은데?" "게임 만들고 싶어요." 게임. Pygame? Unity? 모른다. 둘 다. "좋아, 찾아보자." "같이요?" "응, 같이." 아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아들한테 코딩을 가르치는 게 아니었다. 같이 배우는 거였다. 그걸 깨닫는 데 20년 걸렸다.
- 03 Dec, 2025
대학 동기 모임, 임원 둘에 창업가 하나 (나는?)
20년 만의 모임토요일 저녁 7시. 강남역 근처 삼겹살집. 동기 모임이다. 대학 졸업하고 20년. 문 열고 들어가니 셋이 먼저 와 있다. "야, 박시니어!" 민호다. 임원 달았다는. "오랜만이다." 악수했다. 손에 힘이 있다. 옆에 앉은 게 준석. 얘도 임원. "형님, 요즘 어때?" 형님이라니. 대학 땐 그냥 이름 불렀는데. "그냥 그렇지 뭐." 마지막이 성우. 창업했다는 애. "박시니어, 너 아직도 코딩해?" "응." "대단하다. 나는 손 뗀 지 5년 됐어." 소주 두 병 시켰다. 삼겹살 구워진다. 임원 A와 임원 B민호가 명함 꺼냈다. "이거 새로 만들었어." 전무이사. 대기업 계열사. "와, 전무네." "올해 달았어. 겨우." 겨우라니. 45살에 전무면 빠른 거다. 준석도 명함 내밀었다. "나도 올해." 상무. 역시 대기업. "연봉은?" 민호가 웃는다. "2억 좀 넘어. 스톡옵션 포함이면 3억?" 준석이 고개 끄덕인다. "나도 비슷해. 근데 세금 떼면..." 둘이 웃는다. 연봉 얘기를 농담처럼. 나는 소주 한 잔 마셨다. 9500만원. 내 연봉. 절반도 안 된다. "박시니어 너는?" "비슷해." 거짓말이다. 전혀 안 비슷하다. "아직도 코딩해? 관리는 안 해?" "파트장이야. 8명 관리." "오, 그래도 코딩?" "응. 저녁에." 민호가 고개를 젓는다. "나는 코드 본 지 3년 됐어. 볼 시간이 없어." 준석도 맞장구. "나도. 하루 종일 회의." 성우가 끼어든다. "나도 마찬가지. 창업하면 코딩 못 해." 셋이 웃는다. 나만 웃지 않았다. 창업가의 이야기 성우 얘기가 시작됐다. "작년 매출 50억." "대박." "올해는 100억 목표." "직원은?" "30명. 개발자가 20명." 민호가 감탄한다. "잘됐네. IPO는?" "내년쯤 준비하려고." 준석이 묻는다. "지분은 얼마 들고 있어?" "40%. 공동창업자랑 반반." 계산해봤다. 기업가치 500억이면 200억. 성우 혼자 200억이다. "힘들지 않아?" 내가 물었다. "힘들지. 개발자 뽑기도 어렵고." "연봉 얼마 줘?" "시니어급은 1억 넘게. 안 주면 안 와." 1억. 내가 받는 돈보다 많다. 내가 20년 개발한 값보다 신입 시니어가 비싸다. "박시니어, 너 올래? 우리 회사." 농담이다. 진담 같기도 하다. "생각해볼게." 역시 농담으로 받았다. 성우가 웃는다. "CTO 자리 비어 있어. 1억 5천." 1억 5천만원. 내 연봉의 1.5배다. "근데 야근 많아. 주말도 일해." "그럼 됐어." 진담이다. 나는 뭔가화장실 갔다. 거울 봤다. 45살. 주름 생겼다. 흰머리 보인다. 파트장. 20년차. 9500만원. 민호는 전무. 2억. 준석은 상무. 2억. 성우는 대표. 200억. 나는? 개발자. 코딩하는 개발자. 손 씻으면서 생각했다. 뭔가 잘못된 건가. 20년 전 같은 학교 다녔다. 같은 교수 밑에서 배웠다. 같은 알고리즘 문제 풀었다. 20년 후 차이가 이렇게 크다. 내가 게으른 건가. 아니다. 나도 열심히 했다. 밤새 코딩했다. 주말도 일했다. 20년 동안 한 번도 안 쉬었다. 그런데 왜. 화장실 나왔다. 셋이 웃고 있다. "박시니어, 괜찮아?" "응." 앉았다. 고기 구웠다. 코딩이 좋은 이유 민호가 물었다. "너 임원 안 달아?" "모르겠어." "승진하면 개발 못 하잖아." "그게 문제지." 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그랬어. 근데 어쩔 수 없어." "왜?" "먹고살아야지." 성우가 끼어든다. "박시니어는 개발 진짜 좋아하나 봐." "응." "부럽다. 나는 이제 싫어." "왜?" "손 떼니까 재미가 없어. 근데 돌아갈 수도 없고." 민호도 동의한다. "맞아. 나도 가끔 코드 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준석이 웃는다. "우리 다 똑같네." 셋이 웃는다. 나도 웃었다. 진짜 웃음이다. 돈은 적게 번다. 임원도 아니다. 창업도 안 했다. 근데 나는 코딩한다. 저녁 6시 넘어서. 팀원들 퇴근하고. 혼자 IDE 켜고 코드 짠다. 새로운 기능 만든다. 버그 고친다. 리팩토링한다. 테스트 짠다. 그게 좋다. 코드가 돌아가는 게 좋다. 문제가 해결되는 게 좋다. 20년 해도 안 질린다. 이게 내 답이다. 집 가는 길 모임 끝났다. 11시. 택시 잡았다. 민호가 먼저 탔다. "박시니어, 나중에 또 보자." "그래." 준석이 손 흔든다. "다음엔 내가 살게." "알았어." 성우가 악수했다. "진짜 올 생각 있으면 연락해." "그럴게." 거짓말이다. 안 갈 거다. 지하철 탔다. 2호선. 창밖 봤다. 강남 빌딩들 반짝인다. 저 안에서 민호가 일한다. 준석도 일한다. 성우 회사도 저 어디쯤 있다. 나는 판교에서 일한다. IT 자회사. 9층 건물. 내 자리는 7층 구석. 듀얼 모니터. 기계식 키보드. IntelliJ 켜놓고 코드 짠다. 그게 내 자리다. 20년 동안 지킨 자리. 돈과 코드 집 도착했다. 12시. 아내가 자고 있다. 아이들도. 침대에 누웠다. 오늘 생각했다. 돈. 민호 2억. 준석 2억. 성우 200억. 나 9500만원. 차이가 크다. 부럽다. 솔직히. 2억 받으면 뭐 할까. 집 바꾼다. 차 바꾼다. 아이들 학원 더 보낸다. 근데 그게 다인가. 코드는? 코드는 못 짠다. 민호 말대로 시간이 없다. 준석 말대로 어쩔 수 없다. 성우 말대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럼 난? 돈은 적게 번다. 근데 코드는 짠다. 매일 짠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키보드 두드린다. 화면에 글자 찍힌다. 빌드 돌린다. 테스트 돈다. 성공한다. 그게 좋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거. 내일도 내일 월요일이다. 출근한다. 메일 50개 읽는다. 회의 3개 한다. 점심 먹고 1on1 한다. 코드리뷰 한다. 저녁 6시 넘어서 코드 짠다. 민호처럼 2억은 못 번다. 준석처럼 상무는 아니다. 성우처럼 200억은 없다. 근데 괜찮다. 나는 코드 짠다. 45살. 20년차. 아직도 현역이다. 키보드 두드리는 개발자다. 그게 내 정체성이다. 돈 많이 버는 것도 좋다. 임원 달는 것도 좋다. 창업하는 것도 좋다. 근데 나는 이게 좋다. 코드 짜는 게 좋다. 20년 후에도 짤 거다. 65살까지 짤 거다. 은퇴하는 날까지. 그게 내 길이다.동기들은 다들 임원이고 대표다. 나는 여전히 개발자다. 부럽지만, 내 길이 틀린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