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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으면
- 11 Dec, 2025
기술 선택을 물으면 '둘 다 장단점이 있어' 로 시작하는 이유
또 그 말이 나왔다 "파트장님, React랑 Vue 중에 뭐가 나을까요?" 회의실에 앉은 후배 넷이 날 본다. "음... 둘 다 장단점이 있어서..." 내 입에서 또 나왔다. 이 말. 후배들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아, 또 저 말 하시네. 그 표정이다. 나도 안다. 이게 답이 아니라는 거.5년 전엔 달랐다. "React 가자. 생태계가 넓어."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확신이 없다. 확신이 사라진 이유 20년 개발했다. 기술 스택을 수십 개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게 최고야" 했던 것들이 3년 뒤 사라지는 걸. 2010년, Backbone.js가 최고였다. 지금 쓰는 사람? 거의 없다. 2015년, Angular가 대세였다. 지금은? React한테 밀렸다. 2020년, React가 답이었다. 지금? Svelte, Solid, Qwik 나온다. 그러니까 말이다. "이게 답이야" 하고 싶어도, 3년 뒤 내가 틀렸을까봐 무섭다.어제 회의에서도 그랬다. "MySQL이 나을까요, PostgreSQL이 나을까요?" "둘 다 장단점이..." 막내가 물었다. "그럼 뭘 선택해야 하나요?" 할 말이 없었다. 진짜로. 후배가 원하는 건 확신이다 점심 먹으면서 옆 팀 김 과장이 말했다. "요즘 애들, 답 바로 안 주면 답답해해." 맞다. 후배들은 명쾌한 답을 원한다. "A 하세요. 왜냐하면..." 이렇게 말해주길 바란다. 근데 나는? "음... 상황에 따라... 둘 다..." 후배 입장에선 답답할 것이다. 신입 때 나도 그랬다. 선배한테 물으면 명확한 답을 원했다. "자바 해. Spring이 대세야." 그 한마디에 3년을 공부했다. 지금 내 후배들도 그런 한마디를 원한다. 근데 난 못 준다. 확신이 없으니까.작년에 신입이 물었다. "TypeScript 배워야 하나요?" "음... JavaScript 먼저 잘하고..." 신입이 답답한 표정으로 "네..." 했다. 그리고 혼자 TypeScript 공부했다. 3개월 뒤 나보다 잘했다. 내가 확신 있게 "배워. 필수야" 했으면 더 빨랐을 텐데. 사실은 모르는 거다 솔직히 말하자. "둘 다 장단점이 있어"는 현명한 답이 아니다. '나도 잘 모르겠어'의 포장이다. 요즘 기술은 진짜 모른다. Next.js 13 App Router? 써본 적 없다. Rust? 들어만 봤다. WebAssembly? 개념만 안다. 그러니까 후배가 "이거 어때요?" 물으면, 정확히 판단할 근거가 없다. 그래서 나오는 말. "둘 다 장단점이..." 안전한 답이다. 틀릴 일이 없다. 지난주 코드 리뷰 때였다. 후배가 Zustand로 상태관리 했다. "Redux 말고 Zustand 썼어요. 더 간단해서요." 나는 Zustand를 써본 적이 없다. "음... 그것도 좋지. Redux도 나쁘진 않은데..." 후배가 물었다. "그럼 뭐가 나아요?" "...상황에 따라 다르지." 후배 표정이 '아 또 저러시네' 였다. 집에 와서 Zustand 문서 봤다. 30분 읽었다. ...확실히 간단하긴 하다. 근데 production에서 괜찮을까? 모르겠다. 결국 또 "둘 다 장단점이 있다"로 귀결된다. 나이가 만든 신중함인가, 비겁함인가 동기 녀석이 말했다. 걔는 스타트업 CTO다. "우린 그냥 빠르게 결정해. 틀려도 돼." 부럽다. 그 확신. 나는 대기업 파트장이다. 틀리면 안 된다. 프로젝트 기술 스택 잘못 선택하면? 팀 전체가 고생한다. 그래서 더 신중해진다. 아니, 비겁해진다. "이것도 저것도 괜찮아요" 하면 안전하다. 나중에 문제 생겨도 "내가 둘 다 장단점 있다고 했잖아" 할 수 있다. 이게 경험에서 나온 지혜인가, 책임 회피인가. 밤에 혼자 생각한다. 답이 없다. 오늘도 후배가 물었다. "MongoDB랑 DynamoDB 중에..." "둘 다 장단점이..." 말하다가 멈췄다. 후배가 날 본다. "...MongoDB 가자. 우리 상황엔 맞아." 후배 눈이 반짝였다. "네!" 확신은 없었다. 근데 말했다. 혹시 틀릴까? 그럴 수도 있다. 근데 명확한 방향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선배로서의 무게 파트장이 됐을 때. '이제 기술 리더구나' 생각했다. 실제로는? 매일 불안하다. 후배들은 내 말 한마디로 3개월을 공부한다. 그 무게가 무겁다. 틀린 방향 제시하면? 그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둘 다 장단점"이 나온다. 안전한 답. 무책임한 답. 3년 전 신입이 지금 시니어 됐다. 걔한테 물어봤다. "내가 도움 됐어?" "파트장님 말씀이 항상 중립적이셔서... 스스로 판단하게 됐어요." 좋게 들리지만, 사실 이거다. '명확한 답을 못 줘서, 네가 알아서 했구나.' 미안하다. 변명을 해보자면 기술은 정말 빠르다. 내가 20년 개발했지만, 요즘 프론트엔드는 다른 세상이다. 6개월마다 새 프레임워크 나온다. 다 써볼 수 없다. 그러니 "이게 최고"라고 못 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걸 어떻게 확신하나. 근데 후배들은 그걸 모른다. '파트장님은 20년 차니까 다 아실 거야' 생각한다. 아니다. 나도 모른다. 어제 막내가 SolidJS 써보고 싶다고 했다. "음... React도 있는데..." "React는 너무 무겁지 않나요?" 맞는 말이다. 근데 SolidJS는 생태계가 작다. 뭐라고 해야 하나. "둘 다 장단점이..." 또 나왔다. 막내가 "네..." 하고 돌아갔다. 실망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정답일 수도 가끔 생각한다. "둘 다 장단점 있다"가 사실 진실 아닐까. 은탄환은 없다. Silver bullet은 없다. 모든 기술은 trade-off다. React는 생태계가 넓지만 무겁다. Vue는 배우기 쉽지만 기업에서 덜 쓴다. Svelte는 빠르지만 생태계가 작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럼 "둘 다 장단점이 있다"는 정답 아닌가? 근데 후배들은 이런 답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뭘 선택해야 하나요?" 이게 진짜 질문이다. 며칠 전 1on1에서 주니어가 말했다. "파트장님, 결정을 잘 안 내리시는 것 같아요." 찔렸다. "뭐든 양쪽 다 얘기하시면... 저희가 헷갈려요." 맞다. 인정한다. "미안. 앞으론 명확하게 말할게." 근데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오늘의 선택 점심 후 회의. 신입이 또 물었다. "GraphQL이랑 REST 중에..." 습관적으로 입이 열렸다. "둘 다..." 멈췄다. 팀원들이 날 본다. "...GraphQL 가자. 우리 프로젝트 특성상 맞아." "이유가 뭔가요?" "클라이언트가 여러 개고, 데이터 요구사항이 제각각이야. GraphQL이 유연해." 신입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신은 50%다. 근데 100%처럼 말했다. 이게 맞나? 모르겠다. 틀릴 수도 있다. 그럼 그때 가서 바꾸면 된다. 배운 것 "둘 다 장단점이 있다"는 진실이다. 근데 리더는 진실만 말하면 안 된다.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틀릴 수 있다. 그래도 제시해야 한다. 후배들은 완벽한 답이 아니라, 확신 있는 방향을 원한다. "이렇게 가자. 이유는 이거야." 이게 리더의 말이다. 나는 그걸 못 했다. 2년 동안. 이제는 해야 한다.회의 끝나고 신입이 말했다. "오늘 결정 시원시원하셨어요." 기분이 좋으면서도 무섭다. 내가 틀리면 어쩌지. 근데 어쩔 수 없다. 파트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