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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 03 Dec, 2025
아들이 '아빠 코딩 가르쳐줘' 했을 때
아들이 "아빠 코딩 가르쳐줘" 했을 때 그날 저녁 "아빠, 코딩 좀 가르쳐줘." 아들이 저녁 먹다가 말했다. 중2다. 학교에서 정보 과목 배운다고 했다. 내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다. 20년 개발자다. 드디어 내 전문성을 아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순간. "오케이, 뭐 배우고 싶은데?" "파이썬." 첫 번째 당황. 나는 자바다. 20년 자바. 파이썬은... 스크립트 정도만.노트북 켰다 "파이썬도 할 줄 알지, 뭐." 거짓말은 아니다. 할 줄은 안다. 근데 요즘 파이썬이 뭔지는 모른다. 아들이 노트북 켰다. VS Code다. 익숙하다. 그런데 화면이 뭔가 다르다. "아빠, GitHub Copilot 켜면 안 돼?" 두 번째 당황. 코파일럿. 들어는 봤다. AI가 코드 짜준다는 거. 우리 회사는 보안 때문에 못 쓴다. "아, 그거... 학교에서 쓰래?" "응, 선생님이 추천하셨어. 근데 유료라서..." 나는 20년 개발자다. AI 도움 없이 코딩했다. 그런데 지금 중학생들은 AI로 배운다.일단 시작했다 "좋아, 뭐부터 할까?" "함수 만드는 거 배우고 싶어." 쉽다. 함수는 함수다. 어느 언어나 비슷하다. def hello(): print("Hello")"이렇게 쓰면 돼." 아들이 봤다. 3초. "아빠, 타입 힌트는?" "...뭐?" "타입 힌트요. 파이썬도 타입 쓰잖아요." 세 번째 당황. 파이썬이 타입을? 동적 타입 언어 아닌가? "아, 그거... 요즘은 그렇게 쓰는구나." 검색했다. 아들 앞에서. def hello() -> None: 맞다. 이거다. 본 적 있다. 쓴 적은 없다. 20년 개발자가 중학생 앞에서 구글링한다.계속 물었다 "아빠, 리스트 컴프리헨션 어떻게 써?" 안다. 이건 안다. [x for x in range(10)] "오, 아빠 쩐다." 기분 좋았다. 1초. "근데 아빠, 이거 walrus operator로도 되지 않아?" "...walrus?" "응, 바다코끼리요. := 이거." 모른다. 처음 들었다. "그건... 나중에 배워도 돼." "아 네." 아들 표정이 묘했다. '아빠도 모르는구나' 하는 표정. 내가 후배 코드 리뷰할 때 짓는 표정이다. 30분 지났다 아들이 코드 짰다. 간단한 계산기. 나는 옆에서 봤다. 가끔 조언했다. "여기는 이렇게 하면 더 좋아." 근데 내 조언이 옛날 방식이다. "아빠, 그건 Python 2 방식 아니에요?" "...그래?" "우리는 Python 3.12 쓰는데." 3.12. 나는 3.6에서 멈췄다. 버전이 그렇게 올라갔나. 자바도 21까지 나왔는데 우리 팀은 11 쓴다. 기술 부채. 회사에도 있고, 나한테도 있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이거 틀렸어." 내 코드를 고쳤다. 맞다. 내가 틀렸다. 인덴트를 탭으로 했다. 파이썬은 스페이스 4개다. 알았는데 손이 자바로 갔다. "아, 미안. 습관이." "괜찮아요. 근데 아빠 회사는 뭐 써요?" "자바." "자바요? 그거 옛날 거 아니에요?" 네 번째 당황. 아니, 이건 당황이 아니라 상처다. "...옛날 거 아니야. 지금도 제일 많이 쓰는 언어야." "아 그래요? 근데 선생님이 요즘은 다 파이썬이나 자바스크립트래요." 맞는 말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근데 아들한테 듣으니까 다르다. 그날 밤 아들은 혼자 코딩했다. 나는 옆에서 일기 썼다. 지금 이거. 가끔 "아빠 이거 봐봐요" 했다. 봤다. 모르는 거 반, 아는 거 반. "오, 잘했네. 근데 여기는..." "아 그거요? YouTube에서 봤어요." YouTube. 나는 책으로 배웠다. 두꺼운 책. "Effective Java" 3번 읽었다. 아들은 10분짜리 영상으로 배운다. 더 빠르다. 더 효율적이다. 나는 늙었다. 깨달았다 내 전문성이 자산인 줄 알았다. 20년 경력. 대기업 파트장. 연봉 9500. 이게 다 내 실력이라고 믿었다. 근데 아들 앞에서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건 2010년 기술이다. 지금은 2024년이다. 14년 차이. 중학생과 아빠의 차이보다 크다. 아들이 배우는 파이썬과 내가 아는 파이썬은 다르다. 아들이 쓰는 도구와 내가 쓰는 도구는 다르다. 아들의 미래와 내 과거가 만났다. 그리고 과거가 졌다. 다음 날 출근 팀 막내가 물었다. "파트장님, Rust 스터디 하려는데 관심 있으세요?" "Rust? 그거 뭐 하는 거야?"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요. 요즘 핫해요." 또 모른다. 또 "요즘". "아, 나는 괜찮아. 너희끼리 해." "네~" 막내가 갔다. 나는 자바 코드를 봤다. 익숙했다. 편했다. 근데 아들 생각났다. "아빠 그거 옛날 거 아니에요?" 점심시간 후배랑 밥 먹었다. "파트장님, 요즘 공부 뭐 하세요?" "응? 그냥... 뭐." "저는 요즘 LLM 공부 중이에요. ChatGPT API 써서 챗봇 만들고." LLM. Large Language Model. 안다. 회의 때 나온다. 임원들이 좋아한다. 근데 코드로 못 짠다. "오, 좋네. 나도 해봐야 하는데." "같이 하시죠!" "아, 나는... 일이 좀 많아서." 거짓말이다. 일은 많다. 근데 진짜 이유는 다르다. 배우기 귀찮다. 새로운 게 겁난다. 실패하는 게 무섭다. 아들한테 본 내 모습이 싫었다. 후배한테 또 보이기 싫다. 저녁에 집 아들이 또 물었다. "아빠, 오늘도 코딩 알려줘요." "...아빠 오늘 피곤해." "에이, 조금만요." 싫었다. 솔직히. 또 모르는 거 물어볼까 봐. 또 "그거 옛날 거 아니에요?" 들을까 봐. 근데 아들 눈을 봤다. 반짝였다. 기대했다. 나를 믿었다. 나는 아들의 영웅이고 싶었다. 근데 영웅은 낡았다. 노트북 켰다 "좋아, 뭐 할까?" "오늘은 클래스 배우고 싶어요." 클래스. 이건 내 영역이다. 객체지향. 20년 했다. class Person: def __init__(self, name): self.name = name"이렇게 만들면 돼." "오 감사합니다!" 아들이 따라 쳤다. 근데 또 물었다. "아빠, dataclass는요?" "...뭐?" "dataclass요. 데코레이터 쓰는 거." 또 모른다. 검색했다. 또. @dataclass 있다. 이런 게. "아, 이거... 편리하네." "그죠? 선생님이 추천하셨어요." 선생님은 최신 기술을 안다. 나는 옛날 기술을 안다. 누가 더 나은 선생님일까. 1시간 후 아들이 코드를 완성했다. 학생 관리 프로그램. 클래스 3개. 나는 조언했다. "여기 상속 쓰면 좋겠다." "상속이요?" "응, class Student(Person): 이렇게." "아 네!" 아들이 따라 했다. 작동했다. "와, 아빠 쩐다!" 기분 좋았다. 이번엔 진짜로. 내가 아는 걸 알려줬다. 도움이 됐다. 비록 최신은 아니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감사해요." "응."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예요. 우리 아빠 개발자래." 자랑.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개발자? 어른들도 코딩 해요?" 아니면 "와 멋있다!" 일까. 모르겠다. 근데 아들은 자랑스러워했다. 그걸로 됐다. 그날 밤 생각 나는 뭘 가르쳤나. 파이썬? 별로 못 가르쳤다. 아들이 더 잘 안다. 최신 기술? 전혀. 나도 모른다. 그럼 뭘 준 거지. 생각해봤다. 아마도 "자세"다. 모르면 검색하는 것. 틀리면 고치는 것. 새로운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 (척하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이건 20년이 준 거다. 기술은 변한다. 언어도 변한다. 근데 개발자의 태도는 안 변한다. 그걸 보여줬다. 아마. 다음 날 회의 임원이 물었다. "박 파트장, AI 도입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습니다. 해야죠." "구체적으로는?" "...검토하겠습니다." 모른다는 말을 돌려 말했다. 회의 끝나고 검색했다. "기업 AI 도입 사례" 나왔다. 많이. 읽었다. 어렵다. 근데 읽었다. 아들 생각이 났다. "아빠도 배우네." 맞다. 나도 배운다. 45살에도. 주말 아들이 또 물었다. "아빠, 웹사이트 만들고 싶은데." "웹사이트?" "응, HTML이랑 CSS요." HTML. 안다. 근데 15년 전 거. CSS. 안다. 근데 float 쓰던 시절 거. 요즘은 Flexbox? Grid? "좋아, 같이 해보자." "아빠도 몰라요?" "...조금." "오케이! 같이 배워요!" 아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역할이 바뀌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같이 배우는 사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노트북 2대 거실에 노트북 2대를 놓았다. 아들 거, 내 거. 같은 튜토리얼을 켰다. "HTML 기초 - 2024년 버전" 아들이 빨랐다. 타이핑이 빠르다. 나는 느렸다. 타이핑은 빠른데 이해가 느리다. "아빠 여기 막혀요?" "응, 이게 뭔지 모르겠어." "아 이거요? 저도 모르는데." "검색하자." "네!" 둘이 검색했다. 찾았다. 해결했다. 하이파이브 쳤다. 이게 코딩이다. 혼자서도 되고, 같이 해도 된다. 깨달았다 (2) 전문성은 2가지다. 하나는 "지식". 하나는 "배우는 법". 지식은 낡는다. 빠르게. 배우는 법은 안 낡는다. 나는 지식으로 아들을 가르치려 했다. 근데 내 지식은 낡았다. 그래서 배우는 법을 보여줬다. "아빠도 모르지만, 찾아보면 돼." "틀려도 돼. 고치면 돼." 이게 20년 개발자가 줄 수 있는 거다. 최신 기술은 유튜브가 준다. 근데 태도는 내가 줄 수 있다. 월요일 출근 팀 회의. "이번 프로젝트에 새 기술 써보면 어떨까요?" 막내가 말했다. 다들 나를 봤다. 파트장이 허락해야 한다. 원래는 이렇게 말한다. "검증된 기술 쓰자. 안정성이 중요해." 근데 이번엔 달랐다. "좋아. 근데 나도 모르는 거니까, 스터디 좀 해줘." "네? 파트장님도 같이요?" "응, 같이." 팀원들 표정이 묘했다. 놀랐다. 좋아했다. "오 좋습니다!" 나도 배워야 한다. 아들한테 보여줬다. 이제 팀한테도 보여줄 차례. 저녁 아들이 말했다. "아빠, 오늘 발표 잘했어요." "오? 뭐 발표했는데?" "정보 시간에 파이썬으로 만든 거요." "오 잘했네!" "아빠가 도와줘서요." 나는 별로 도와준 게 없다. 대부분 아들이 혼자 했다. 근데 아들은 고마워했다. "아빠, 다음엔 뭐 배울까요?" "너 뭐 하고 싶은데?" "게임 만들고 싶어요." 게임. Pygame? Unity? 모른다. 둘 다. "좋아, 찾아보자." "같이요?" "응, 같이." 아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아들한테 코딩을 가르치는 게 아니었다. 같이 배우는 거였다. 그걸 깨닫는 데 20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