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주말
- 09 Dec, 2025
주말 기술 블로그, '나 뒤처지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
주말 기술 블로그, '나 뒤처지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 토요일 아침 10시 아내가 나갔다. 아이들도 학원. 집에 혼자다. 커피 내렸다. 노트북 켰다. 습관처럼 북마크를 연다. "기술 블로그" 폴더. 안 읽은 글이 47개다. 지난주에도 47개였는데. 요새 핫하다는 Rust 글. Bun 성능 벤치마크. React 19 무슨 기능. 전부 읽어야 할 것 같다. 근데 읽으면 뭐가 달라지나. 20년 전엔 이렇지 않았다. 자바 새 버전 나와도 몇 달 뒤에 봐도 됐다. 지금은? 어제 나온 기술을 오늘 모르면 뒤처진 것 같다. 스크롤을 내린다. "2024년 개발자가 알아야 할 10가지." 클릭했다가 닫았다. 작년 글도 못 봤는데.읽기 시작하면 첫 문단은 괜찮다. "Rust는 메모리 안전성을..." 알겠다. 이건 안다. 두 번째 문단. 코드가 나온다. async fn, await, Arc<Mutex<T>>. 뭔지는 알겠는데 손으로 쳐보진 않았다. 세 번째 문단. 실전 예제. 200줄짜리 코드. "이렇게 하면 제로 카피가..." 머리가 아프다. 아들이 "아빠 이거 어떻게 해?" 하면 10분 안에 답 준다. 근데 Rust 배우려면 몇 시간이 필요한가. 아니, 몇 달. 탭을 하나 더 연다. "Next.js 14 서버 컴포넌트." 이것도 읽어야 한다. 우리 회사는 Next.js 12 쓴다. 14는 언제 쓰나. 15분 지났다. 아직 한 글도 제대로 안 읽었다. 그냥 훑었다. 훑는 것도 읽는 거라고 우기면 되나.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2010년쯤. Spring 3.0 나왔을 때. 레퍼런스 문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토요일 오후 통째로 썼다. 코드도 따라 쳤다. 그때는 재밌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이걸 월요일에 써먹어야지" 했다. 실제로 썼다. 지금은? Next.js 배워도 쓸 데가 없다. 우리 프로젝트는 JSP다. 레거시 유지보수가 80%다. Rust 배워도 마찬가지. 회사에서 자바 쓴다. 개인 프로젝트? 할 시간이 없다. 그럼 왜 읽나. 불안해서다. "요즘 개발자는 이거 다 안다"는 말이 무섭다. 면접관으로 들어간 적 있다. 27살 지원자가 말했다. "Rust로 CLI 툴 만들어봤습니다." 나는 Rust로 Hello World도 안 해봤다. 면접 끝나고 검색했다. "Rust 기초." 그 지원자 붙였다. 나보다 잘하니까. 근데 기분은 이상했다. "내가 뒤처졌구나."후배들은 당연하게 월요일 출근. 막내가 물었다. "파트장님, Bun 써보셨어요?" "아니. 그게 뭔데." "Node.js 대체하는 런타임이요. 엄청 빠르대요." "음. 우리 프로젝트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궁금해서요." 그냥 궁금해서. 이 말이 부럽다. 나도 예전엔 "그냥 궁금해서" 새 기술 공부했다. 지금은 "이거 실무에 쓸 수 있나"부터 생각한다. 쓸 수 없으면 안 본다. 근데 그러면 영영 모르는 기술이 된다. 후배는 주말에 Bun으로 토이 프로젝트 만들었단다. "3시간 걸렸어요." 나는 주말에 뭐 했나. 밀린 드라마 봤다. 틀린 건 아니다. 쉬는 것도 중요하다. 근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나만 안 쉬는 건가" 싶다가도 "나만 공부 안 하는 건가" 싶다. 읽은 척하기 팀 회의. 누가 말했다. "요즘 React Server Component가 대세래요." "맞아. 나도 봤어." 거짓말이다. 제목만 봤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장단점이 있지. 서버 부하는 늘어날 수 있고." 대충 얼버무렸다. 다행히 더 안 물었다. 회의 끝나고 검색했다. "React Server Component란." 10분 읽었다. 대충 알겠다. 아니, 대충 아는 척할 수 있을 정도로. 이게 요즘 내 공부법이다. 모르는 기술 나오면 10분 검색. 키워드만 익힌다. "SSR", "hydration", "streaming". 이 단어들 넣어서 말하면 아는 것처럼 들린다. 진짜 아는 건 아니다. 코드 못 짠다. 근데 회의에서 막히진 않는다. 이게 맞나. 모르겠다. 근데 다른 방법도 없다. 전부 깊게 공부할 시간은 없다.진짜 배우려면 Rust 제대로 배우려면 시간이 얼마나 드나. 책을 봤다. "The Rust Programming Language." 600페이지. 하루 10페이지 읽으면 2개월. 근데 읽기만 하면 안 된다. 코드 쳐야 한다. 에러 보고 고쳐야 한다. 그럼 4개월. 4개월 동안 매일 1시간. 가능한가. 평일엔 야근. 주말엔 가족. 1시간 내기도 어렵다. 그럼 짬짬이? 출퇴근 지하철에서? 가능하다. 근데 피곤하다. 지하철 타면 졸린다. 핸드폰으로 유튜브 보다가 내린다. 점심시간? 밥 먹고 나면 30분. 커피 마시면 10분. 10분으로 뭘 배우나. 퇴근 후? 9시에 집 도착. 씻고 밥 먹으면 10시. 가족이랑 얘기하면 11시. 그때부터 공부? 30분 하면 졸린다. 계산해보면 답 없다. 시간이 없다. 근데 "시간 없어"라고 하면 핑계처럼 들린다. 후배 코드 리뷰하면서 PR 올라왔다. 후배가 짠 코드. 흐름은 괜찮다. 근데 모르는 게 있다. suspend fun fetchData() = coroutineScope { val deferred = async { repository.getData() } deferred.await() }코틀린이다. 우리 팀이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자바로 짠다. suspend, coroutineScope, async. 들어본 건데 정확히 모른다. 대충 비동기라는 건 알겠다. 댓글 달았다. "Good." 뭐라고 더 쓸 말이 없다. 예전엔 코드리뷰가 신났다. "여기 이렇게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지금은? "Good", "LGTM", "Approve". 짧다. 할 말이 없어서. 후배가 물었다.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나도 코틀린 공부 중이라 확실하진 않은데." 솔직하게 말했다. 후배는 "네"라고만 했다. 표정이 이상했다. 실망한 것 같기도. 파트장인데 코틀린 모른다. 이게 말이 되나. '나중에' 리스트 북마크 폴더를 열었다. "나중에 볼 것" 폴더. 글이 312개다. 제일 오래된 건 2년 전 글. "Docker Kubernetes 완벽 가이드". 안 봤다. 작년 글도 있다. "함수형 프로그래밍 입문". 안 봤다. 이번 달 글도 있다. "AI 시대 개발자의 역할". 안 본다. 전부 언젠가 보려고 저장했다. 언젠가는 안 온다. 알고 있다. 근데 지우진 못한다. 지우면 진짜 안 볼 것 같아서. 희망 고문이다. "나중에 볼 거야"라는 희망. 실제론 안 본다. 근데 버리면 '포기'한 것 같다. 후배한테 물었다. "너는 기술 블로그 어떻게 관리해?" "저요? 안 봐요. 필요하면 그때 찾아봐요." 충격이었다. "안 봐요"를 당연하게 말한다. 나는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뒤처지는 거 걱정 안 돼?" "뒤처지면 어때요. 필요할 때 배우면 되죠."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못 한다. 불안하다. 유튜브 알고리즘 유튜브 켰다. 추천에 뜬다. "초보 개발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기술 스택." "시니어 개발자도 모르는 최신 트렌드." 클릭했다. 15분짜리 영상. 빠르게 넘긴다. 2배속으로. 7분 만에 끝. 뭐 배웠나. 기억 안 난다. "요즘은 이게 대세"라는 말만 남았다. 구체적인 건 없다. 또 클릭했다. "개발자 공부법 - 하루 30분으로 성장하기." 봤다. 내용은 뻔하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실습하기". 알고 있다. 다 안다. 근데 안 된다. 되면 벌써 했다. 영상 보는 게 공부한 기분 들게 한다. 실제론 아무것도 안 했는데. 15분 봤으니 "오늘 공부했다" 싶다. 착각이다. 알고 있다. 근데 또 본다. 내일도 볼 거다. 컨퍼런스 가면 회사에서 보냈다. "개발자 컨퍼런스 갈 사람?" 손 들었다. 금요일이라 좋다. 코엑스 갔다. 사람 많다. 다들 젊다. 20대, 30대. 나 같은 사람은 별로 없다. 첫 세션. "AI 기반 코드 생성의 미래." 들어갔다. 앞자리 앉았다. 발표 시작. GPT-4로 코드 짠다. Copilot 쓴다. "이제 개발자는 코딩 말고 설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맞는 말 같다. 근데 불안하다. '내 자리가 없어지는 거 아냐?' 옆 사람이 고개 끄덕인다. 메모한다. 열심히 듣는다. 나도 메모했다. "AI", "설계 중심", "역할 변화". 나중에 볼 일 없다. 두 번째 세션. "클라우드 네이티브 아키텍처." 어렵다. 모르는 용어 투성이. "서비스 메시", "사이드카 패턴". 30분 들었는데 이해 못 했다. 졸렸다. 커피 마시러 나왔다. 복도에 사람들 많다. 다들 얘기한다. "방금 발표 좋았어." "나도 써봐야겠어." 나는 뭐 써봐야 하나. 모르겠다. 커피만 마셨다. 월요일 출근 팀원이 물었다. "컨퍼런스 어땠어요?" "좋았어. 요즘 트렌드 알았어." "뭐가 핫해요?" "음. AI랑 클라우드 네이티브?" "구체적으로요?" 막혔다. 구체적으론 모른다. 그냥 들었다. "나중에 자료 공유해줄게." 안 했다. 자료 찾기 귀찮아서. 팀원도 안 찾았다. 다들 바빠서. 결국 컨퍼런스도 "다녀왔다"는 것만 남았다. 배운 건 없다. 돈은 회사 돈. 시간은 근무시간. 손해는 없다. 근데 얻은 것도 없다. 임원님 말씀 임원님이 말했다. "우리 회사도 AI 도입해야 해. 개발 생산성 높여야지." "네. 좋습니다." "박 파트장이 한번 검토해봐. 다음 주까지." "네." 검토? 뭘 검토하나. AI 툴은 많다. Copilot, Cursor, Tabnine. 다 써봤나? 안 봤다. 주말에 찾아봤다. "AI 코딩 툴 비교." 블로그 10개 읽었다. 다 비슷하다. "생산성 향상", "코드 품질 개선". 월요일에 보고했다. "Copilot 괜찮아 보입니다." "왜?" "많이 쓰고, 안정적이고, VS Code 연동 잘 되고." "얼마야?" "월 10달러." "팀 전체면 얼마?" "8명이니까... 960달러. 연간 만 불 좀 넘네요." "비싸네. 효과는 확실해?" 모른다. 써본 적 없다. 블로그만 봤다. "네. 보통 30% 생산성 향상된다고 합니다." "30%면 괜찮네. 진행해봐." 결정됐다. 나도 처음 써본다. Copilot 써보니 설치했다. VS Code에. 로그인하고 활성화. 코드 짰다. 주석 쓰니까 코드 자동완성. 신기하다. 맞는 코드다. 한 시간 썼다. 편하다. 타이핑 덜 한다. 근데 이상하다. 내가 코드 짠 건가, AI가 짠 건가. 경계가 모호하다. 예전엔 한 줄 한 줄 생각하면서 짰다. 지금은? 제안 보고 엔터. 또 제안 보고 엔터. 빠르긴 하다. 근데 덜 생각하게 된다. 후배한테 물었다. "너 이거 써봤어?" "네. 작년부터요." "어때?" "편해요. 근데 가끔 이상한 코드 줘요." "이상한 거 어떻게 알아?" "그냥 이상하잖아요." 그냥. 이 말이 무섭다. "그냥 안다"는 건 기본기가 있다는 거다. 나도 안다. 20년 짰으니까. 근데 새로운 언어는? 코틀린에서 이상한 코드 알아챌 수 있나. 기본기 회식 자리. 팀장님이 말했다. "요즘 신입들은 기본기가 약해." "그렇죠." "옛날엔 자료구조, 알고리즘 다 알았는데." "맞습니다." 근데 나도 까먹었다. 레드블랙트리? 10년 전 면접 때 공부했다. 지금은 설명 못 한다. "AI 시대엔 기본기가 더 중요해. AI는 도구일 뿐이야." 맞는 말이다. 근데 나도 AI 쓴다. 나도 도구에 의존한다. 차이가 뭔가. 나는 경험이 있다? 20년 경력? 그게 앞으로도 의미 있나. GPT-4가 내 20년 경험보다 더 많은 코드 본 거 아닌가. 더 다양한 문제 풀어본 거 아닌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근데 자꾸 생각난다. 토요일 저녁 결국 한 줄도 안 배웠다. Rust도 안 봤다. Next.js도 안 봤다. 유튜브만 봤다. "개발자 트렌드" 영상 5개. 본 것 같은데 기억 안 난다. 북마크는 50개 됐다. 읽을 일 없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뭐 했어?" "공부했어." "뭐?" "기술 공부." 거짓말이다. 유튜브 봤다. 근데 "유튜브 봤어"라고 하기 부끄럽다. 아내는 "음"하고 넘어갔다. 관심 없다. 나도 관심 없으면 편할까. 불안의 정체 왜 불안할까. 생각해봤다. 뒤처지는 게 무섭다? 뭐에서? 나는 파트장이다. 이미 관리직이다. 최신 기술 몰라도 일은 된다. 이직? 할 생각 없다. 여기 9년 다녔다. 연봉도 괜찮다. 그럼 뭐가 문제냐. 자존심이다. "개발자"라는 정체성. 20년 했다. 그게 나를 정의한다. 근데 최신 기술 모르면 '진짜 개발자'가 아닌 것 같다. 누가 그래? 아무도 안 그랬다. 나 혼자 생각한다. 후배들은 나 보고 뭐라 안 한다. "파트장님 옛날 사람이다" 이런 소리 안 한다. 내가 오버하는 거다. 근데 멈출 수가 없다. 습관이다. 20년 된 습관. 가끔은 가끔은 생각한다. '몰라도 되는 거 아냐?' Rust 몰라도 자바 잘하면 되잖아. Next.js 몰라도 Spring 잘하면 되잖아. 전부 다 알 순 없다. 인정해야 한다. 근데 인정하면 '포기'한 것 같다. '포기'와 '선택'은 다르다. 알고 있다. 근데 느낌은 비슷하다. "나는 Rust 안 배운다." 이렇게 선언하면 편할까. 시도 안 해봤다. 무섭다. 후배가 "Rust 어때요?"라고 물으면 "안 해봤어"라고 답하는 게 무섭다. "관심 없어"도 이상하다. "시간 없어"는 핑계 같다. 그래서 "나중에 해볼게"라고 한다. 나중은 안 온다. 임원 승진하면 내년에 임원 대상자다. 승진하면 연봉 오른다. 근데 개발은 못 한다. 예산 짜고, 보고서 쓰고, 임원 회의 들어간다. 코딩은?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아예 안 할 수도. 그럼 기술 공부는 더 안 해도 되나. 필요 없으니까. 근데 그게 더 무섭다. '개발자'에서 '관리자'로 완전히 넘어가는 거. 돌아올 수 없다. 승진 거부할까. 생각해봤다. 바보 같은 소리다. 아내가 뭐라 할까. 부모님은? "승진 안 할래요" 이러면 "왜?"라고 물을 거다. "개발하고 싶어서요" 이러면 이해할까. 안 할 거다. 승진한다. 그리고 개발은 덜 한다. 기술 공부는 더 안 한다. 이게 정답인 것 같다. 근데 마음은 불편하다. 20년 후배에게 입사 동기가 창업했다. 스타트업. 성공했다. 작년에 엑싯했다. 만나서 물었다. "기술 공부 어떻게 해?" "안 해. 직원들이 알아서 하지." "불안 안 해?" "왜 불안해? 내가 다 알 필요 없잖아." 충격이었다. "다 알 필요 없다"를 당연하게 말한다. "나는 안 그래. 모르면 불안해." "그럼 계속 공부해야지. 평생." "그게 가능해?" "모르지. 근데 너가 선택한 거잖아." 맞다. 내가 선택했다. '개발자'로 남기로. 그럼 평생 배워야 한다. 가능한가. 모르겠다. 근데 다른 길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북마크 열었다. 안 읽은 글 53개. 하나 클릭했다. "Go언어 시작하기." 읽었다. 10분. 뭐 배웠나. 모르겠다. 그래도 읽었다. 0보단 낫다. 이렇게 위로한다. 내일도 그럴 거다. 모레도. 계속.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근데 멈출 수도 없다. 토요일 오후 3시. 아내가 "나가자"고 한다. "곧" 이라고 답했다. 노트북 닫았다. 일어났다. 내일 또 열 거다. 불안은 안 없어진다. 알고 있다. 익숙해지는 것밖에. 20년 개발자의 주말. 이렇다.배워도 끝이 없고, 안 배워도 불안하다. 그래서 계속 화면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