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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30분, 메일 50개의 공포

아침 6시 30분, 메일 50개의 공포

아침 6시 30분, 메일 50개의 공포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이미 시작된 하루 아침 6시 30분. 여전히 어두운 침실에서 눈을 뜬다.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것이 이제는 본능이다. 아내는 여전히 자고 있고, 시계는 6시 31분을 가리킨다. 첫 번째로 하는 일은 메일함을 여는 것이다. 어제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쌓인 메일이 이미 24개.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쌓인 메일이 26개. 총 50개. 출근도 하기 전에 이미 50개의 메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는 퇴근 직전에 좋은 결과 나왔다고 했는데... 이게 뭐지?" 메일의 발신자를 슥 훑어본다. 해외 팀(인도, 싱가포르), 국내 다른 부서, 경영진 메일링리스트, 그리고 내가 참여한 12개 프로젝트의 각종 notification 메일들. 메일함을 정리하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결국 그 많은 룰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서 포기했다.이제 슬랙을 본다. 밤새 쌓인 메시지가 대략 93개. 물론 @mention은 아니지만, 내가 참여한 채널들(@박시니어 파트장)에 쓰인 메시지들이다. 인도 팀의 야간 작업 결과 공유: 15개 메시지 싱가포르 팀 아침 회의 결과: 22개 메시지 국내 다른 파트 대기 중인 질문: 8개 메시지 내 팀원들의 저녁 작업 결과 공유: 27개 메시지 CEO 메시지방 공지: 5개 메시지 무작위 팀원 한 명의 '파트장님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16개 메시지 스레드집에서는 이렇게 알림이 울린다. 울림음도 켜두지 않은데, 화면은 계속 깜빡인다. 결국 아내가 깬다. "또 일 생각해? 일어나야지." 아내의 목소리는 걱정과 체념이 섞여 있다. 이런 아침이 5일이 반복되니까 당연하다. 화장실에서 시작되는 메일 읽기 마라톤 6시 45분. 화장실에 가면서도 폰을 들었다. 한 손으로 세수하고, 한 손으로 메일을 읽는다. 이미 7년 전부터 이렇게 하고 있다. 처음엔 손에 물이 튀기도 했는데, 지금은 일종의 기술이 되었다. 우선순위를 판단해야 한다. 빨간 느낌표가 붙은 메일부터 본다. 긴급 메일 1호: "시스템 장애 보고" 어제 배포한 기능에서 성능 이슈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표는 6시간 뒤에야 모아진다고. 즉, 이 메일은 5시간 전부터 내 것이 되기로 예정된 것이다. 긴급 메일 2호: "내일 임원진 보고 자료 필요" 내일이 아니라 '오늘 오후 2시까지' 필요하다. 메일 쓴 시간이 어제 8시 27분이다. 즉, 이 사람은 금요일 밤 8시에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지금 화장실에서 이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일반 메일 1호: "프로젝트 진행 상황 공유" 이건 FYI다. 읽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항상 읽는다. 언제 누군가가 "파트장님은 이거 알고 계셨어요?" 라고 물어볼지 모르니까. 일반 메일 2호: "회의 일정 변경 알림" 원래 오전 10시였던 회의가 오전 11시로 변경되었다. 오후 회의는 또 3개가 추가되었다. 즉, 오전 10시부터 12시,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이미 다른 일이 할당된 상태로 아침이 시작된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실제 코딩할 수 있는 시간은?오전 9시 출근 오전 10시~12시: 회의 오전 9시~10시: 메일 and 슬랙 검토 점심 12시~1시 오후 1시~2시: 간신히 1시간 오후 2시~5시: 회의 오후 5시~6시: 메일 응답 오후 6시~6시 30분: 1대1 미팅 오후 6시 30분 이후: 코딩?실제로는 이 계획도 1~2번은 깨진다. 누군가는 "파트장님 5분만 시간 돼요?" 라고 슬랙을 친다. 모레 회의를 오늘로 당기자는 메일이 온다. 후배가 코드 리뷰 결과를 물어본다. 결국 오후 1시간? 그것도 낙관적인 추정이다. 출근하면서 마음 먹는 다짐 지하철에 탄다. 여전히 폰으로 메일을 읽는다. "오늘은 달라야지. 오늘은 의도적으로 시간을 만들어야지. 코딩을 할 시간을..." 이 다짐은 일주일에 5번 한다. 대략 일 년에 240번 정도 한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이 다짐이 실현된 적은 몇 번이나 될까?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실제로 의미 있는 코드를 짜본 적이 있을까? 있다. 있기는 한데... 그건 대부분 저녁 8시 이후다. 퇴근 후가 아니라, 퇴근하고도 사무실에 남아서 하는 코딩이다. 혹은 일요일 밤 10시. 아이들이 자고 아내도 잔 후에 혼자 노트북을 켜는 그때다. 그때의 코딩이 정말 재미있다. 흐름(flow)이라는 게 있다는 걸 그때서야 느낀다. 25년 전 대학교 2학년 때처럼 코드를 짠다. 시간이 안 간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까지 버티기 힘들다. 새벽 2시 코딩은 다음 날 하루 종일 좀비가 되게 만든다. 그다음 날 회의에서 눈을 감는다. 상사가 내 의견을 물어봐도 답을 못 한다. "파트장님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충 "한번 생각해볼게요" 라고 말한다. 속은 비어있다. 사무실 도착, 그리고 현실 9시 05분. 사무실 도착.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슬랙이 온다. "파트장님 아침 회의 자료 확인하셨어요?" 안 했다. 확인한 건 없다. 슬랙을 다시 켜본다. 지난 30분 동안 또 11개의 메시지가 쌓였다. 메일함도 다시 켠다. 또 8개가 왔다. 이제 정말 코딩 IDE를 켜려고 마음먹는다. 오늘은 정말. 노트북을 켜서 IntelliJ IDEA를 실행한다. 로딩된다. 0.5초 안에 슬랙이 또 울린다. "파트장님 통화 가능해요?"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여서 "네 괜찮아요" 라고 타이핑한다. 이건 마술인가? 내가 언제 이 반응을 학습했을까? 20년 전, 데이터베이스 설계에 한 달을 투자하던 나는 이런 삶을 상상했을까? 당시 나는 "관리자가 되면 높은 곳에서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결정을 한다. 하지만 그건 "누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에 대한 결정이지, "어떤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가" 에 대한 결정이 아니다. 정책은 다른 사람이 정하고, 일정은 다른 사람이 정하고, 기술 스택도 이제는 다른 사람들(그 중에는 나보다 똑똑한 후배들)이 고민한다. 내가 하는 일은... 뭐지? "파트장님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에 "좋네요" 라고 답하는 일? 회의를 소집하는 일? 문제가 터지면 "왜 이렇게 됐어?" 라고 물어보는 일? 메일 50개를 읽는 데 걸리는 현실의 1시간 결국 9시 10분부터 10시 10분까지 1시간을 메일과 슬랙 메시지 정리에 투자한다. 이제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는 알지만,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읽지 않은 메일이 50개 이상 있으면 일종의 불안감이 생긴다. "혹시 중요한 걸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놓친 중요한 메일이 가끔 있다. 따라서 모든 메일을 다 읽어야 한다. 메일을 다 읽고 나면 또 새로운 메일이 와 있다. 특히 해외 팀이 일할 때 추가되는 메일들은 피할 수 없다.결국 이 1시간은 내가 할 수 있는 실제 업무의 20%를 빼앗는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메일을 다 읽고 나면 이제 답장을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런 메일들을 30~40개 쓴다. 보통은 "좋은 의견입니다" 정도인데, 때론 정말 생각을 해야 하는 메일도 있다. "이 기술 방향 맞나요?" "이 일정 현실적인가요?" "이 결정 올바른가요?" 이런 메일에는 10분씩 생각해서 답한다. 그럼 또 1시간이 간다.결국 10시가 되는 순간, 아직 회의도 없었는데 벌써 2시간이 간다. 그리고 10시에는 첫 회의가 시작된다. 하루를 돌아보며 드는 생각 오늘도 퇴근했다. 6시 45분. 다시 정리해본다:실제 코딩한 시간: 35분 회의에 쓴 시간: 4시간 20분 메일과 슬랙 읽고 답한 시간: 2시간 30분 후배들 1대1 미팅: 50분 기타 (복도 대화, 누군가의 데스크 방문, 화장실 가는 길에 붙잡힘): 1시간35분. 30대 때는 이게 이해가 안 갔다. 선배 개발자가 "요즘엔 코딩 시간이 별로 없어" 라고 말하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뭐 하는 건데?" 이제 안다. 나는 지금 "코딩 35분짜리 관리자" 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점은, 내 급여는 순전히 코딩 경력으로 책정되었다는 것이다. 코딩을 못 하면 급여를 깎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파트장" 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임원이 되면? 그럼 코딩은 정말로 못 한다. 그때는 순수하게 관리자가 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코딩이 하고 싶다. 아이 아들이 요즘 코딩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좋지. 아빠가 가르쳐줄게" 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나온 기술이나 패러다임은 나도 모른다. Rust? Next.js? 서버리스? 이런 건 후배들이 한다. 그래서 아들에게 "흠... 이건 좀 복잡하네. 아빠가 공부하고 나중에" 라고 말한다. 아들의 눈빛이 약간 흐려진다. 그 순간, 정말 슬프다. 정말로 슬프다. 내 가치가 뭐가 되어가는 건지, 정말로 모르겠다. 기술 면접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후보자가 나한테 "현재 프로젝트에서는 어떤 기술을 주로 사용하세요?" 라고 물으면, 나는 "음... 주로 우리 후배들이 하는데, Spring이랑 이런저런 게 있어" 라고 뭉뚱그려서 말한다. 면접관인데 질문에 명확하게 못 답한다. 얼마나 불편한가. 얼마나 초라한가. 그런데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이직? 45세 개발자를 누가 뽑을까? 임원 승진? 그럼 코딩은 진짜 끝난다. 현 상태 유지? 계속 이렇게 조용히 사라져 갈 것인가? 그래도 내일은 또 6시 30분에 눈을 뜬다 내일 아침 6시 30분이면 또 이 모든 게 반복된다. 메일 50개. 슬랙 93개. 그리고 나는 또 "오늘은 좀 다르게 해야지" 라고 다짐할 것이다. 그리고 오전 10시에는 또 회의실에 앉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작은 변화들도 있다. 어제 후배가 쓴 코드를 리뷰했는데, 정말 좋았다. 나보다 더 깔끔하고, 더 창의로웠다. "이 접근 좋네. 이렇게 한 이유가 뭐야?" 라고 물었다. 그 후배가 설명해줄 때, 나는 기술적 흥분을 느꼈다. "아, 내가 이런 마음으로 코딩을 했었지." 그리고 나는 "좋은 선택이야.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훌륭한 아키텍트가 될 거야" 라고 말해줬다. 그 후배의 얼굴이 환해졌다. 혹시... 내 역할이 이게 아닐까? 코드를 짜는 게 아니라, 좋은 개발자를 만드는 것? 코딩 35분이 아니라, 사람 4시간 20분? 그건 나쁜 일일까? 근데 그렇다면, 왜 이 마음이 자꾸만 IDE로 향할까? 왜 밤 10시의 코딩이 그렇게 행복할까?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일 아침 6시 30분에는 또 폰을 들 것이다. 그리고 또 메일 50개와 마주할 것이다.아침 6시 30분은 여전히, 하루의 시작이자 동시에 절망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