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코딩
- 15 Dec, 2025
코딩 IDE 켜자마자 '잠깐 통화 가능?' 슬랙
오후 3시, 드디어 회의가 끝났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점심 먹고 1시부터 3시까지. 총 4시간. 결론은 "다음 주 다시 논의"였다. IntelliJ를 켰다. 로딩 시간 30초. 이 시간이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다. 어제 짜던 코드가 열렸다. 리팩토링 하려던 거였다. 메서드가 200줄이 넘는다. 쪼개야 한다. 커서를 코드 중간에 올렸다. 손가락이 키보드에 닿았다. 뇌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로직은 따로 빼고, 저건 유틸로...' 띠링. 슬랙이다. "박 파트장님, 잠깐 통화 가능하신가요?" 3시 2분이다. 코딩 시작한 지 2분.통화는 15분 "네, 가능합니다."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관리자는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통화 내용은 이랬다. B팀에서 우리 API 호출할 때 500 에러가 난다. 확인 좀 해달라. 급하다. 오늘 배포해야 한다. "로그 봐야겠네요. 잠시만요." IntelliJ를 최소화했다. 키바나를 켰다. 로그를 뒤졌다. 5분 걸렸다. 에러는 없었다. "저희 쪽 로그엔 없는데요." "아, 그럼 저희 쪽 문젭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 종료. 3시 17분. 15분이 갔다. 코드는 한 줄도 안 짰다.다시 시작 IntelliJ를 다시 켰다. 코드가 거기 있다. 당연히 거기 있다. 하지만 흐름이 없다. 아까 뭘 하려고 했지? 메서드 분리. 맞다. 어디서부터? 이 for문부터? 아니면 저 if문부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쳤다. 지웠다. 다시 쳤다. 뭔가 이상하다. 흐름이 안 이어진다. 개발자는 안다. 한 번 끊긴 흐름은 다시 안 온다는 걸.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위에서부터. 천천히. 10분이 걸렸다. 코드 200줄 읽는 데. 이제 다시 감이 온다.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띠링. 또다. "파트장님, DM 확인 부탁드립니다." 3시 31분. 코딩 시작한 지 4분. DM을 열었다. 주니어 개발자다. 코드리뷰 요청이다. 급한 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 안에 머지하고 싶다"고 한다. 오늘 안에는 지금이다. 지금 아니면 오늘은 없다. "확인하겠습니다." IntelliJ를 또 최소화했다. GitHub를 켰다. PR을 열었다. 변경된 파일 15개. 코드 300줄. 집중해서 봤다. 20분 걸렸다. 댓글 5개 달았다. "LGTM" 찍었다. 3시 54분. 내 코드는 한 줄도 안 짰다.4시의 선택 IntelliJ로 돌아왔다. 코드가 여전히 거기 있다. 커서가 깜빡인다. 비웃는 것 같다. 다시 읽어야 한다. 200줄. 또. 손목시계를 봤다. 4시 2분. 5시에 또 회의가 있다. 58분 남았다. 58분에 뭘 할 수 있나. 흐름 잡는 데 10분, 코딩 30분, 테스트 10분, 커밋 5분. 가능하다. 이론상으로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심호흡을 했다. 시작하려는 순간. 팀원이 책상으로 왔다. 물리적으로. 직접. "파트장님, 잠깐 여쭤봐도 될까요?" "네." 아니다. 하지만 "네"라고 말했다. 관리자니까. "DB 스키마 변경 관련인데요..." 15분 대화했다. 좋은 대화였다. 팀원이 성장하는 게 보였다. 뿌듯했다. 하지만 시계는 4시 21분이었다. 5시 회의 39분 남았다. 코딩을 시작할 수 있나.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코드를 다시 읽었다. 세 번째다. 오늘만.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외워졌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메서드를 분리했다. 변수명을 바꿨다. 테스트를 돌렸다. 초록불. 가슴이 뛰었다. 이거다. 이 느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코드가 돌아가는 순간의 쾌감. 더 하고 싶었다. 더 고칠 게 보였다. 손가락이 빨라졌다. 띠링띠링띠링. 슬랙이 울렸다. 알람이 울렸다. 캘린더가 울렸다. "[Remind] 5시 전사 아키텍처 회의" 4시 57분. 저장했다. 커밋은 안 했다. 덜 끝났다. 푸시는 더욱 안 했다. 테스트 하나가 빨간불이었다. 회의방으로 걸어갔다. 노트북을 들고. 혹시 몰라서. 회의는 6시 반에 끝났다. 90분. 6시 반의 현실 자리로 돌아왔다. 동료들이 하나둘 퇴근했다. MZ 후배는 6시 정각에 나갔다. 부럽다. IntelliJ를 켰다. 아까 그 코드가 있다. 빨간 줄이 그어져 있다. 테스트 실패 표시. 고치려고 했다. 손가락을 올렸다. 머리가 안 돌아갔다. 4시간 회의의 후유증. 뇌가 젤리 같다. 코드를 읽었다. 네 번째. 이게 내가 짠 건가 싶었다. 분명 오늘 오후에 짰는데. 3시간 전인데. 낯설다. 아, 그렇다. 흐름이 끊겼으니까. 컨텍스트가 사라졌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200줄. 또. 시계를 봤다. 7시. 배가 고프다. 점심을 12시에 먹었다. 7시간 전. 저장하지 않고 닫았다. 내일 하자. 내일. 내일도 똑같을 거라는 걸 알면서. 집에 가는 길 지하철에서 폰을 꺼냈다. 커뮤니티를 봤다. 누가 물었다. "파트장급은 코딩 얼마나 하시나요?" 댓글들이 달렸다. "저는 거의 못 해요. 회의가 너무 많아서." "코딩은 주말에 개인 프로젝트로..." "관리가 메인이죠 뭐."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위로가 됐다. 동시에 씁쓸했다. 30대 때가 생각났다. 그땐 하루 종일 코딩했다.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까지. 점심도 까먹었다. 흐름이 끊기는 게 싫어서. 그게 10년 전이다. 지금은 흐름이 시작되는 게 신기하다. 2분 이상 지속되면 기적이다. 집에 도착했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일 많이 했어?" "응." 거짓말은 아니다. 일은 많이 했다. 회의 4시간, 통화 15분, 코드리뷰 20분, 질문 답변 15분. 5시간. 코딩은 20분. 실제로 완성된 코드는 0줄. 밤 11시 침대에 누웠다. 잠이 안 온다. 아까 그 코드가 생각난다. 빨간 줄. 테스트 실패. 왜 실패했을까. 뭘 놓쳤을까. 로직을 머릿속으로 되짚었다. 아, 저기다. null 체크를 안 했다. 거기만 고치면 된다. 1줄이면 된다. 일어나서 노트북을 켤까. 하다가 관뒀다.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1줄이 10줄 되고, 10줄이 100줄 된다. 경험상. 내일 하자. 아침 일찍 출근해서. 9시 회의 전에. 1시간이면 된다. 그렇게 다짐하고 잤다. 다음날 아침 8시에 출근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사무실이 비었다. 좋다. IntelliJ를 켰다. 어제 그 코드를 열었다. 빨간 줄을 찾았다. null 체크를 넣었다. 1줄. 테스트를 돌렸다. 초록불. 됐다. 커밋하려는 순간. 띠링. "파트장님, 아침부터 죄송한데요. 어제 배포된 거 롤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8시 23분. 코딩 시작한 지 23분. 노트북을 덮었다. 커밋은 못 했다. 점심시간에 하자. 5분이면 된다. 커밋 메시지 쓰고 푸시만 하면. 그게 오늘 안에 될까. 모르겠다. 관리자의 숙명 파트장 달고 1년 됐다. 연봉은 올랐다. 책임도 늘었다. 회의도 늘었다. 코딩 시간은 줄었다. 처음엔 적응이 안 됐다. "나는 개발자인데 왜 하루 종일 회의만 하지?" 속으로 불평했다. 지금은 안다. 이게 관리자의 일이라는 걸. 막아주는 게 일이라는 걸. 팀원들이 코딩에 집중하게. 대신 내가 회의에 들어간다. 내가 질문을 받는다. 내가 리뷰를 한다. 팀원들은 하루 5시간 코딩한다. 나는 20분. 그게 맞는 거다. 이론상으로는.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정말 맞나? 관리자도 개발자 아닌가. 코드를 볼 줄 알아야 리뷰를 하고, 아키텍처를 이해해야 방향을 제시하고, 직접 짜봐야 난이도를 안다. 근데 언제 짜나. 어떻게 짜나. 팀원이 물어본다. "이 기술 써도 될까요?" 대답한다. "좋지. 그거 좋아." 속으로 생각한다. '그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퇴근하고 검색한다. 블로그를 읽는다. 아, 이거구나. 좋네. 다음 날 팀원이 또 물어본다. "이 부분 어떻게 구현하면 될까요?" 머뭇거린다. "음... 한번 시도해봐. 내가 리뷰할게." 리뷰하면서 배운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 흐름이라는 것 개발자에겐 흐름이 있다. Flow. 몰입. 코드가 술술 나오는 순간. 손가락이 생각보다 빠른 순간. 시간이 사라지는 순간. 그 순간이 개발자의 행복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데 그 순간이 안 온다. 요즘. 흐름은 30분 이상 방해받지 않을 때 온다. 연구 결과도 있다. 딥워크라고 한다. 나는 10분도 안 간다. 평균 7분. 재봤다. 어제. 7분마다 슬랙이 온다. 전화가 온다. 질문이 온다. 회의가 온다. 7분에 뭘 하나. 코드 읽기도 부족하다. 그래서 코딩을 늦은 밤에 한다. 혹은 새벽에. 아무도 없을 때. 하지만 체력이 안 된다. 45살. 밤새면 3일 간다. 예전엔 하루면 회복됐는데. 결국 주말에 한다. 토요일 오전. 커피 마시고. 혼자. 그게 일주일에 유일하게 코딩하는 시간이다. 회사에서는 관리자. 집에서는 개발자. 이게 맞나. 모르겠다.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 후배들이 묻는다. "파트장 되면 뭐가 좋아요?" 연봉? 연봉은 좋다. 9500만원. 적지 않다. 권한? 권한도 있다. 기술 선택할 수 있다. 방향 정할 수 있다. 근데 말 못 한다. 진짜 하고 싶은 말. "코딩 시간 없어진다." 그럼 후배가 묻는다. "그럼 왜 하세요?" 모르겠다. 해야 하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개발만 하다 보면 천장이 보인다. 40대 중반. 50대. 개발자로 계속 갈 수 있나. 주변을 본다. 동기들. 선배들. 개발만 한 사람은 시니어 개발자 됐다. 연봉 7000~8000. 거기서 멈췄다. 관리 겸한 사람은 파트장 됐다. 나처럼. 9000~1억. 관리만 하는 사람은 임원 됐다. 1억 5000~2억. 숫자다. 냉정한 숫자. 코딩 시간과 연봉은 반비례한다. 이 회사에서는. 그래서 선택한다. 관리를. 돈을. 대신 잃는다. 코딩 시간을. 흐름을. 교환이다. 공정한 건 모르겠다. 그래도 짜증 난다. 솔직히. IDE 켜자마자 방해받을 때. 흐름 잡자마자 끊길 때. 빨간 줄 고치려는데 회의 들어갈 때. "아, 씨..."까지 나온다. 속으로. 하지만 참는다. 관리자니까. 대신 밤에 혼자 짠다. 주말에 혼자 짠다. 그게 내 유일한 코딩 시간이다. 아무도 방해 안 하는. 행복하다. 그 시간만큼은. 그리고 월요일이 온다. 다시 회의가 온다. 다시 슬랙이 온다. "파트장님, 잠깐 통화 가능하신가요?" "네, 가능합니다." 저장하고. 최소화하고. 전화 받는다. 코드는 거기 남는다. 커서가 깜빡이며. 나를 기다린다.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믿으며.코딩하고 싶다. 그냥 하루 종일. 방해 없이. 30대처럼.
- 03 Dec, 2025
아들이 '아빠 코딩 가르쳐줘' 했을 때
아들이 "아빠 코딩 가르쳐줘" 했을 때 그날 저녁 "아빠, 코딩 좀 가르쳐줘." 아들이 저녁 먹다가 말했다. 중2다. 학교에서 정보 과목 배운다고 했다. 내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다. 20년 개발자다. 드디어 내 전문성을 아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순간. "오케이, 뭐 배우고 싶은데?" "파이썬." 첫 번째 당황. 나는 자바다. 20년 자바. 파이썬은... 스크립트 정도만.노트북 켰다 "파이썬도 할 줄 알지, 뭐." 거짓말은 아니다. 할 줄은 안다. 근데 요즘 파이썬이 뭔지는 모른다. 아들이 노트북 켰다. VS Code다. 익숙하다. 그런데 화면이 뭔가 다르다. "아빠, GitHub Copilot 켜면 안 돼?" 두 번째 당황. 코파일럿. 들어는 봤다. AI가 코드 짜준다는 거. 우리 회사는 보안 때문에 못 쓴다. "아, 그거... 학교에서 쓰래?" "응, 선생님이 추천하셨어. 근데 유료라서..." 나는 20년 개발자다. AI 도움 없이 코딩했다. 그런데 지금 중학생들은 AI로 배운다.일단 시작했다 "좋아, 뭐부터 할까?" "함수 만드는 거 배우고 싶어." 쉽다. 함수는 함수다. 어느 언어나 비슷하다. def hello(): print("Hello")"이렇게 쓰면 돼." 아들이 봤다. 3초. "아빠, 타입 힌트는?" "...뭐?" "타입 힌트요. 파이썬도 타입 쓰잖아요." 세 번째 당황. 파이썬이 타입을? 동적 타입 언어 아닌가? "아, 그거... 요즘은 그렇게 쓰는구나." 검색했다. 아들 앞에서. def hello() -> None: 맞다. 이거다. 본 적 있다. 쓴 적은 없다. 20년 개발자가 중학생 앞에서 구글링한다.계속 물었다 "아빠, 리스트 컴프리헨션 어떻게 써?" 안다. 이건 안다. [x for x in range(10)] "오, 아빠 쩐다." 기분 좋았다. 1초. "근데 아빠, 이거 walrus operator로도 되지 않아?" "...walrus?" "응, 바다코끼리요. := 이거." 모른다. 처음 들었다. "그건... 나중에 배워도 돼." "아 네." 아들 표정이 묘했다. '아빠도 모르는구나' 하는 표정. 내가 후배 코드 리뷰할 때 짓는 표정이다. 30분 지났다 아들이 코드 짰다. 간단한 계산기. 나는 옆에서 봤다. 가끔 조언했다. "여기는 이렇게 하면 더 좋아." 근데 내 조언이 옛날 방식이다. "아빠, 그건 Python 2 방식 아니에요?" "...그래?" "우리는 Python 3.12 쓰는데." 3.12. 나는 3.6에서 멈췄다. 버전이 그렇게 올라갔나. 자바도 21까지 나왔는데 우리 팀은 11 쓴다. 기술 부채. 회사에도 있고, 나한테도 있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이거 틀렸어." 내 코드를 고쳤다. 맞다. 내가 틀렸다. 인덴트를 탭으로 했다. 파이썬은 스페이스 4개다. 알았는데 손이 자바로 갔다. "아, 미안. 습관이." "괜찮아요. 근데 아빠 회사는 뭐 써요?" "자바." "자바요? 그거 옛날 거 아니에요?" 네 번째 당황. 아니, 이건 당황이 아니라 상처다. "...옛날 거 아니야. 지금도 제일 많이 쓰는 언어야." "아 그래요? 근데 선생님이 요즘은 다 파이썬이나 자바스크립트래요." 맞는 말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근데 아들한테 듣으니까 다르다. 그날 밤 아들은 혼자 코딩했다. 나는 옆에서 일기 썼다. 지금 이거. 가끔 "아빠 이거 봐봐요" 했다. 봤다. 모르는 거 반, 아는 거 반. "오, 잘했네. 근데 여기는..." "아 그거요? YouTube에서 봤어요." YouTube. 나는 책으로 배웠다. 두꺼운 책. "Effective Java" 3번 읽었다. 아들은 10분짜리 영상으로 배운다. 더 빠르다. 더 효율적이다. 나는 늙었다. 깨달았다 내 전문성이 자산인 줄 알았다. 20년 경력. 대기업 파트장. 연봉 9500. 이게 다 내 실력이라고 믿었다. 근데 아들 앞에서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건 2010년 기술이다. 지금은 2024년이다. 14년 차이. 중학생과 아빠의 차이보다 크다. 아들이 배우는 파이썬과 내가 아는 파이썬은 다르다. 아들이 쓰는 도구와 내가 쓰는 도구는 다르다. 아들의 미래와 내 과거가 만났다. 그리고 과거가 졌다. 다음 날 출근 팀 막내가 물었다. "파트장님, Rust 스터디 하려는데 관심 있으세요?" "Rust? 그거 뭐 하는 거야?"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요. 요즘 핫해요." 또 모른다. 또 "요즘". "아, 나는 괜찮아. 너희끼리 해." "네~" 막내가 갔다. 나는 자바 코드를 봤다. 익숙했다. 편했다. 근데 아들 생각났다. "아빠 그거 옛날 거 아니에요?" 점심시간 후배랑 밥 먹었다. "파트장님, 요즘 공부 뭐 하세요?" "응? 그냥... 뭐." "저는 요즘 LLM 공부 중이에요. ChatGPT API 써서 챗봇 만들고." LLM. Large Language Model. 안다. 회의 때 나온다. 임원들이 좋아한다. 근데 코드로 못 짠다. "오, 좋네. 나도 해봐야 하는데." "같이 하시죠!" "아, 나는... 일이 좀 많아서." 거짓말이다. 일은 많다. 근데 진짜 이유는 다르다. 배우기 귀찮다. 새로운 게 겁난다. 실패하는 게 무섭다. 아들한테 본 내 모습이 싫었다. 후배한테 또 보이기 싫다. 저녁에 집 아들이 또 물었다. "아빠, 오늘도 코딩 알려줘요." "...아빠 오늘 피곤해." "에이, 조금만요." 싫었다. 솔직히. 또 모르는 거 물어볼까 봐. 또 "그거 옛날 거 아니에요?" 들을까 봐. 근데 아들 눈을 봤다. 반짝였다. 기대했다. 나를 믿었다. 나는 아들의 영웅이고 싶었다. 근데 영웅은 낡았다. 노트북 켰다 "좋아, 뭐 할까?" "오늘은 클래스 배우고 싶어요." 클래스. 이건 내 영역이다. 객체지향. 20년 했다. class Person: def __init__(self, name): self.name = name"이렇게 만들면 돼." "오 감사합니다!" 아들이 따라 쳤다. 근데 또 물었다. "아빠, dataclass는요?" "...뭐?" "dataclass요. 데코레이터 쓰는 거." 또 모른다. 검색했다. 또. @dataclass 있다. 이런 게. "아, 이거... 편리하네." "그죠? 선생님이 추천하셨어요." 선생님은 최신 기술을 안다. 나는 옛날 기술을 안다. 누가 더 나은 선생님일까. 1시간 후 아들이 코드를 완성했다. 학생 관리 프로그램. 클래스 3개. 나는 조언했다. "여기 상속 쓰면 좋겠다." "상속이요?" "응, class Student(Person): 이렇게." "아 네!" 아들이 따라 했다. 작동했다. "와, 아빠 쩐다!" 기분 좋았다. 이번엔 진짜로. 내가 아는 걸 알려줬다. 도움이 됐다. 비록 최신은 아니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감사해요." "응."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예요. 우리 아빠 개발자래." 자랑.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개발자? 어른들도 코딩 해요?" 아니면 "와 멋있다!" 일까. 모르겠다. 근데 아들은 자랑스러워했다. 그걸로 됐다. 그날 밤 생각 나는 뭘 가르쳤나. 파이썬? 별로 못 가르쳤다. 아들이 더 잘 안다. 최신 기술? 전혀. 나도 모른다. 그럼 뭘 준 거지. 생각해봤다. 아마도 "자세"다. 모르면 검색하는 것. 틀리면 고치는 것. 새로운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 (척하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이건 20년이 준 거다. 기술은 변한다. 언어도 변한다. 근데 개발자의 태도는 안 변한다. 그걸 보여줬다. 아마. 다음 날 회의 임원이 물었다. "박 파트장, AI 도입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습니다. 해야죠." "구체적으로는?" "...검토하겠습니다." 모른다는 말을 돌려 말했다. 회의 끝나고 검색했다. "기업 AI 도입 사례" 나왔다. 많이. 읽었다. 어렵다. 근데 읽었다. 아들 생각이 났다. "아빠도 배우네." 맞다. 나도 배운다. 45살에도. 주말 아들이 또 물었다. "아빠, 웹사이트 만들고 싶은데." "웹사이트?" "응, HTML이랑 CSS요." HTML. 안다. 근데 15년 전 거. CSS. 안다. 근데 float 쓰던 시절 거. 요즘은 Flexbox? Grid? "좋아, 같이 해보자." "아빠도 몰라요?" "...조금." "오케이! 같이 배워요!" 아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역할이 바뀌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같이 배우는 사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노트북 2대 거실에 노트북 2대를 놓았다. 아들 거, 내 거. 같은 튜토리얼을 켰다. "HTML 기초 - 2024년 버전" 아들이 빨랐다. 타이핑이 빠르다. 나는 느렸다. 타이핑은 빠른데 이해가 느리다. "아빠 여기 막혀요?" "응, 이게 뭔지 모르겠어." "아 이거요? 저도 모르는데." "검색하자." "네!" 둘이 검색했다. 찾았다. 해결했다. 하이파이브 쳤다. 이게 코딩이다. 혼자서도 되고, 같이 해도 된다. 깨달았다 (2) 전문성은 2가지다. 하나는 "지식". 하나는 "배우는 법". 지식은 낡는다. 빠르게. 배우는 법은 안 낡는다. 나는 지식으로 아들을 가르치려 했다. 근데 내 지식은 낡았다. 그래서 배우는 법을 보여줬다. "아빠도 모르지만, 찾아보면 돼." "틀려도 돼. 고치면 돼." 이게 20년 개발자가 줄 수 있는 거다. 최신 기술은 유튜브가 준다. 근데 태도는 내가 줄 수 있다. 월요일 출근 팀 회의. "이번 프로젝트에 새 기술 써보면 어떨까요?" 막내가 말했다. 다들 나를 봤다. 파트장이 허락해야 한다. 원래는 이렇게 말한다. "검증된 기술 쓰자. 안정성이 중요해." 근데 이번엔 달랐다. "좋아. 근데 나도 모르는 거니까, 스터디 좀 해줘." "네? 파트장님도 같이요?" "응, 같이." 팀원들 표정이 묘했다. 놀랐다. 좋아했다. "오 좋습니다!" 나도 배워야 한다. 아들한테 보여줬다. 이제 팀한테도 보여줄 차례. 저녁 아들이 말했다. "아빠, 오늘 발표 잘했어요." "오? 뭐 발표했는데?" "정보 시간에 파이썬으로 만든 거요." "오 잘했네!" "아빠가 도와줘서요." 나는 별로 도와준 게 없다. 대부분 아들이 혼자 했다. 근데 아들은 고마워했다. "아빠, 다음엔 뭐 배울까요?" "너 뭐 하고 싶은데?" "게임 만들고 싶어요." 게임. Pygame? Unity? 모른다. 둘 다. "좋아, 찾아보자." "같이요?" "응, 같이." 아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아들한테 코딩을 가르치는 게 아니었다. 같이 배우는 거였다. 그걸 깨닫는 데 20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