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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회의, 점심 회의, 저녁 회의 - 코딩할 시간은?

아침 회의, 점심 회의, 저녁 회의 - 코딩할 시간은?

오늘의 캘린더아침 9시. 캘린더를 켰다. 빨간색 블록 3개. 파란색 블록 4개. 노란색 블록 2개. "오늘도 회의 9개네." 커피를 마신다. 첫 잔. 9시 30분, 주간회의. 10시 30분, 기획팀 미팅. 11시, 임원 보고. 점심 먹고 1시, 협력사 미팅. 2시, 기술검토 회의. 3시, 1on1. 4시, 전사 타운홀. 5시, 긴급 이슈 회의. "코딩은 언제 해?" 6시 이후만 비어있다. 그것도 '긴급 회의 없으면'. 파트장 된 지 1년. 이게 맞나 싶다. 회의의 종류회의는 크게 3종류다. 첫째, 내가 있어야 하는 회의. 기술 검토, 아키텍처 결정, 코드리뷰. 이런 건 파트장이 빠지면 안 된다. 전체 회의의 30% 정도. 둘째, 내가 없어도 되는 회의. 정보 공유, 진행상황 보고, 일정 조율. 이메일이나 슬랙으로 되는데 왜 모이나. 40% 정도. 셋째, 뭐하는 건지 모르겠는 회의. 시작할 때는 A 얘기, 끝날 때는 Z 얘기. 결론 없음. 다음 회의 약속만 생김. 나머지 30%. 오늘 오전 회의 3개 끝났다. 첫째 유형 1개, 둘째 유형 1개, 셋째 유형 1개. 코딩한 시간: 0분. 작성한 코드 줄 수: 0줄. 마신 커피: 3잔. 점심시간의 함정 점심 먹고 돌아왔다. 12시 50분. "1시 회의까지 10분 남았네." IDE를 켠다. 어제 하던 코드 열었다. public class UserService { // TODO: 리팩토링 필요TODO 주석을 본다. 언제 달았더라. 지난주? 손가락을 올린다. 키보드 위에. 슬랙 알림. "박 파트장님, 1시 회의 5분 전인데 자료 미리 보시면..." 자료를 연다. PDF 37페이지. 1시 회의 시작. "오늘은 30분이면 끝날 것 같습니다." 2시에 끝났다. 다음 회의까지 1시간. 이제 코딩 가능. IDE를 켠다. 다시. public class UserService { // TODO: 리팩토링 필요손가락을 올린다. "박 파트장님, 잠깐 여쭤볼 게 있는데요..." 후배가 온다. 책상으로. "이 부분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까요?" 설명한다. 20분. 시계를 본다. 2시 30분. 다음 회의까지 30분. "30분이면 뭘 하나." 메일을 확인한다. 47개. 3시 회의 시작. 저녁이 되면6시 15분. 마지막 회의 끝. 사무실이 조용하다. 후배들은 다 퇴근했다. "이제 코딩 시작이네." IDE를 켠다. 세 번째. public class UserService { // TODO: 리팩토링 필요손가락이 움직인다. 30분 지났다. 코드 50줄 짰다. 1시간 지났다. 테스트 코드 작성 중. 1시간 30분 지났다. 리팩토링 완료. "이 맛이지." 시계를 본다. 8시. 배가 고프다. 점심 이후 아무것도 안 먹었다. 피곤하다. 회의 9개 했다. 집에 가야 한다. 아들이 기다린다. 하지만 지금 집중된다. 이 흐름을 끊고 싶지 않다. 30분만 더. 이 기능만 끝내면. 9시에 퇴근했다. 오늘 작성한 코드: 150줄. 오늘 참석한 회의: 9개. 오늘 코딩한 시간: 3시간. "뭔가 이상한데." 20년 전과 지금 20년 전, 신입 때. 출근하면 코딩. 점심 먹고 코딩. 저녁 먹고 코딩. 회의는 주 1회. 그것도 30분. 하루 코딩 시간: 8시간 이상. 코드 리뷰는 옆자리 선배한테 바로. 5분이면 끝. 이슈 생기면 팀원들 모아서 화이트보드 앞에서 토론. 30분 안에 결정. 빠르고 단순했다. 지금은 뭐든 '회의'다. 코드 리뷰 회의. 30분. 기술 검토 회의. 1시간. 이슈 대응 회의. 1시간 30분. "회의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계산해봤다. 회의 9개 × 평균 50분 = 450분 = 7시간 30분. 회의 자료 준비, 사전 검토, 사후 정리까지 합치면 9시간. 근무시간 9시간. "아, 그래서 코딩을 못 하는 거구나." 파트장의 역설 후배가 물었다. 지난주에. "파트장님은 요즘 코딩 많이 하세요?" "응... 저녁에 좀 하지." "부럽다. 저는 하루 종일 코딩만 해요." "..." 부러운 건 나다. 파트장 달기 전에는 나도 하루 종일 코딩했다. 지금은 하루 종일 회의한다. 아이러니다. 개발 경력 쌓아서 파트장 됐는데, 정작 개발은 못 한다. 기술 실력 인정받아서 올라왔는데, 정작 기술은 녹슨다. "이게 승진인가, 퇴보인가." 동기한테 말했다. 전화로. "그게 관리자야.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시키는 거지." "난 시키고 싶어서 개발자 된 게 아닌데." "그럼 임원 승진 포기해." "..." 딜레마다. 임원 되면 연봉 오른다. 1억 넘는다. 하지만 개발은 진짜 못 한다. 회의만 더 늘어난다. 평 개발자로 남으면 코딩 할 수 있다. 하지만 45살 평 개발자.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회의 중독 사회 우리 회사만 그런 게 아니다. 지인들 만나면 다들 비슷하다. 대기업은 더 심하다. 회의의 회의, 보고의 보고. 스타트업도 요즘 그렇다. '애자일'이라면서 매일 스탠드업, 스프린트 리뷰, 레트로스펙티브. "회의가 업무가 된 거다." 실제 일은 회의 시간 외에. 개발은 저녁에. 기획은 야근 시간에. 디자인은 주말에. 정규 근무시간은 회의로 가득 차고, 실제 업무는 그 외 시간에 하는 시스템. "이게 정상인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하지만 아무도 바꾸지 못한다. 왜냐면 모두가 회의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도 만든다. 이번 주에 회의 2개 잡았다. "필요해서 잡았는데..." 정말 필요한가? 솔직히 슬랙으로 물어보면 될 것도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정하려면' 회의를 한다. 그렇게 회의가 늘어난다. 악순환이다. 6시 이후의 개발자 요즘 깨달았다. 나는 '낮의 개발자'와 '밤의 개발자'가 다르다. 낮의 나: 회의 참석자, 의견 제시자, 조율자, 관리자. 밤의 나: 프로그래머. 낮에는 말을 한다. 많이. 밤에는 코드를 짠다. 조용히. 낮에는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밤에는 에너지가 생긴다. "본업은 밤에 하는 거네." 이상하다. 개발자인데 개발은 부업 시간에 한다. 본업 시간에는 회의를 한다. "이러다 진짜 개발 못 하는 관리자 되겠다." 두렵다. 10년 후, 55살. 임원 달고 회의만 하는 '전직 개발자'. 코드는 읽을 수 있지만 짤 수는 없는 사람. 기술은 아는데 적용은 못 하는 사람. "그건 되고 싶지 않은데." 작은 저항 이번 주부터 실험 중이다. '코딩 타임' 블록을 캘린더에 넣었다. 매일 오후 4시~6시. 2시간. 빨간색으로 표시. 제목은 "Focus Time - 회의 불가". 첫날, 누가 4시 30분에 회의 잡으려고 했다. "죄송한데 그 시간은 어려워서요." "아, 네. 그럼 6시 이후로 할까요?" "6시 이후도 어렵습니다. 내일 오전은 어떠세요?" 회의가 미뤄졌다. 신기했다. 거절할 수 있구나. 둘째 날, 4시에 슬랙이 왔다. "파트장님, 급한 건데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10초 고민했다. 답장했다. "6시 이후 통화 드릴게요. 급하면 메시지로 먼저 남겨주세요." 메시지로 왔다. 읽어보니 그렇게 급한 건 아니었다. 6시에 전화했다. 5분 만에 해결. "2시간 회의할 뻔했네." 셋째 날, 4시부터 6시까지 코딩했다. 방해 없이. 집중해서. 200줄 짰다. "이 맛이었지." 불편한 진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코딩 타임'을 지키려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한다. 저녁 약속은 늘어난다. 4시 회의가 6시로 밀리니까. 급한 이슈는 대응이 늦어진다. 2시간 후에야 보니까. 팀원들은 답답해한다. 바로 물어볼 수 없으니까. "이기적인 건가?" 고민된다. 파트장이 2시간씩 연락 안 되면, 팀 운영에 문제 생긴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나는 개발을 못 한다. 어디까지가 파트장의 책임이고, 어디까지가 개인의 권리인가. 정답은 모르겠다. 그냥 해보는 거다. 실험. 망하면 방법을 바꾸면 된다. 숫자로 보는 현실 지난달 통계를 냈다. 실제로. 총 근무 시간: 220시간 (주 55시간 × 4주) 회의 시간: 143시간 (65%) 코딩 시간: 48시간 (22%) 이메일/슬랙: 22시간 (10%) 기타: 7시간 (3%) "회의가 3분의 2네." 신입 때 통계도 찾아봤다. 20년 전 기록. 총 근무 시간: 240시간 (야근 많았음) 회의 시간: 8시간 (3%) 코딩 시간: 210시간 (88%) 기타: 22시간 (9%) "코딩이 거의 9할이었네." 20년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코딩 88% → 22% 회의 3% → 65% "이게 성장인가, 변질인가." 동료들의 선택 팀장급 동료들과 술 먹었다. 지난주. A형: "나는 포기했어. 코딩은 후배들이 잘해. 난 방향만 잡아주면 돼." B형: "새벽에 해. 5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집에서 코딩." C형: "휴가 쓰고 코딩해. 일년에 휴가 10일은 코딩용." D형: "이직했어. 작은 회사로. 회의 적은 데로." 다들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나는 어떤 타입일까. A형은 되기 싫다. 아직. B형은 체력이 안 된다. 새벽 5시는 무리. C형은... 가족한테 미안하다. D형은 용기가 안 난다. 45살 이직. "5번째 타입을 만들어야 하나." 후배에게 들은 말 1on1 하다가 들었다. 29살 후배. "파트장님은 코딩 안 하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왜?" "관리하시잖아요. 방향 정하시고, 리뷰하시고." "나도 코딩하고 싶은데." "그럼 파트장 안 하시면 되죠." "..." 틀린 말은 아니다. 파트장 달면 회의가 많은 거 알고 올라왔다. 코딩 시간 줄어드는 거 알고 승진했다. "내가 선택한 거잖아." 하지만 이렇게까지 줄어들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그리울 줄도 몰랐다. 코딩이. 이번주 목표 캘린더를 본다. 이번 주. 빨간색 블록 15개. 회의. 파란색 블록 5개. 새로 만든 '코딩 타임'. "5일 × 2시간 = 10시간." 10시간이면 뭘 할 수 있나. 리팩토링 하나 끝낼 수 있다. 새 기능 하나 만들 수 있다. 기술 부채 하나 갚을 수 있다. "해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10시간이 5시간이 돼도 괜찮다. 지금보다 나으면 된다. 회의는 줄이지 못해도, 코딩은 늘릴 수 있다. 관리자가 돼도, 개발자는 유지할 수 있다. "아직은."회의 9개 하고 코드 150줄. 이게 정상은 아닐 것 같다.

회의 중 손가락으로 노트북 만지작대며 생각나는 것

회의 중 손가락으로 노트북 만지작대며 생각나는 것

회의 중 노트북을 만지작대는 손가락들 출근한다. 9시 정각. 메일 함에 메시지 52개. 슬랙, 읽지 않음: 147개. 회의실로 간다. 오늘 회의는 3개. 점심 먹고도 회의. 그 다음에도 회의. 노트북을 켠다. 화면이 켜진다. 손가락이 움직인다. 회의실의 손가락 누군가 말한다. "Q3 로드맵 검토입니다." 들린다. 안 들린다. 뭐라고 하는 건지는 알겠는데. 손가락이 트랙패드를 만진다. 마우스 커서가 이리저리. 더블클릭, 싱글클릭. 브라우저 탭을 연다. 닫는다. 다시 연다. 실제로는 하는 게 없다. 그냥 손가락이 하고 싶어 한다.회의실의 온도는 21도. 책상은 회색. 의자는 검은색. 내 손은 자꾸만 움직인다. 누군가 나를 본다. '파트장님 어떤 의견 있으세요?' 잠깐. 뭐였지? 손가락을 멈춘다. 입을 연다. "네, 좋은 의견들이 있네요." 그리고 또 손가락. 멈출 수 없는 손가락 이게 언제부터였나. 20년 전에는 이런 거 없었다. 그땐 회의실에 들어가도 손은 한 곳에 있었다. 음... 그건 아니고. 30대 때는 회의도 짧았다. 기술 얘기하고. 의견 나누고. 끝. 요즘은 다르다. 회의는 끝나지 않는다. 끝난다고 해도. 다음 회의가 30초 후에 시작된다. 노트북이 날 따라간다. 프로젝터 보면서도. 손은 자동으로. 누군가가 웃는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스크린샷을 찍고 있었나 보다. 아니다. 그냥 트랙패드를 만지고 있었다. '파트장님, 쉬세요.' 후배가 말한다. 쉬고 있다. 이게 쉬는 거다. 손가락이. 손가락이 하고 싶은 이야기 손가락은 뭔가를 해야 한다. 그게 손가락의 규칙이다. 문서 작성. 코드 작성. 무언가. 회의실에서 40분을 손가락 없이 있을 수는 없다. 그건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서 만진다. 목적 없이. 의미 없이.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로 전환하면...' 누군가의 목소리. 뒷배경음. 손가락은 메모장을 연다. 아무것도 안 쓴다. 커서만 깜빡인다. 내 뇌는 이미 다른 곳에 있다. 어제 본 버그 리포트. 'NullPointerException 발생'. 어디가 문제인지 봤다. 근데 왜 아직도 생각나지? 손가락이 또 움직인다. 검색창에 'Spring Boot actuator'. 치다가 지운다. 지우고 또 친다. 회의 중엔 멀티태스킹이 답이라는 건가.아니다. 멀티태스킹 아니다. 뭐라고 부르지? 반반채스킹. 회의 반. 다른 거 반. 50% 들으면서. 50% 딴 생각. 근데 손가락은 그걸 안다. 진짜 집중하려고 해도. 손가락이 배신한다. 커피 마신다. 손가락이 또 움직인다. 이번엔 슬랙을 본다. 팀 채널. '배포 완료했습니다.' 좋아. 준수네. 손가락이 엄지손가락을 up emoji로 바꾼다. 아니다. 안 누른다. 회의 중이니까. 노트북을 덮는다. 10초. 다시 킨다. 이건 강박이 아니다. 습관이다. 아니다. 둘 다다. 노트북이 없었던 시간들 2000년. 회의실엔 화이트보드만 있었다. 손가락은? 손가락은 펜을 들었다. 종이에 썼다. 메모를 했다. 회의가 끝나면. 종이에 뭔가 남았다. 지금은? 회의가 끝난다. 노트북을 닫는다. 뭐가 남나? 슬랙에 회의록 하나 뜬다. AI가 요약한 거. 내가 쓴 게 아니다. 손가락은 뭘 했나? 트랙패드를 만졌다. 그뿐이다. 옛날에 나는. 펜과 종이를 쥐고 있었다. 무엇이 나에게서 사라졌나. 손가락이 아니라. 다른 게 사라졌나. 노트북을 닫는다. 정말로. 손가락이 울컥한다. 뭘 해야 하지? 40분의 침묵 오후 2시. 회의실. 누군가 말한다. 나는 못 들었다. 노트북은 닫혀 있었다. 손가락이 할 게 없다. 손가락이 책상 위에 있다. 펼쳐져 있다. 모두가 보인다. 그 손가락이 뭘 할 수 있나. 회의를 듣는다. 아, 첫 번째 손가락 역할. 누군가가 질문한다. 나를 본다. 손가락이 떨린다. 노트북이 없으니까. "네, 맞습니다." 이게 나다.손가락은 지금 뭘 하나. 또 안 한다. 그냥 있다.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이게 더 힘들다. 3년이 5분 만에 끝났다 2021년. 코로나였다. 원격근무. 회의는 줌이었다. 카메라는 어깨 위. 손가락은 안 보였다. 손가락이 자유로웠다. 코드도 짰다. 기술도 공부했다. 손가락도 했다. 그걸 했다. 남들도 했다. 오피스 복귀. 2024년. 3년이 다 사라졌다. 손가락은 또 노트북을 만진다. 이젠 카메라가 앞이다. 모두가 본다. 손가락이. 손가락과 나 손가락은 좋은 도구다. 코드를 친다. 문서를 쓴다. 메일을 보낸다. 손가락은 나쁜 도구다. 회의 중에 불안을 표현한다. 집중력 부족을 드러낸다. 나를 배신한다. "파트장님 주의 산만한데요?" 아직 아무도 이렇게 안 했다. 근데 저 손가락 때문에. 언젠가는 들을까. 8명 팀. 그 중에 신입이 있다. 저 신입이가 나를 보며 배운다. 손가락이. "회의 중엔 이렇게 하는 거군." 아니다. 그러지 마. 손가락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근데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내 손가락이 내 말을 안 듣는다. 멈추고 싶다 회의실 들어가기 전에 다짐한다. "이번엔 노트북 만지지 말자." 회의실 들어간다. 5분. 손가락이 움직인다. 내가 명령을 한다. '멈춰.' 손가락이 말한다. '싫어.' 이건 내 손가락이 아니라. 내 몸이. 내 뇌가. 회의가 지루하단 뜻이다. 집중 못 한단 뜻이다. 아니면. 그냥 나이다. 20년을 코드로 산 팔뚝. 20년을 키보드로 단련된 손가락. 이젠 안 해도 되니까. 더 하고 싶어 한다. 역설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본다 회의가 끝난다. 누군가가 다가온다. "파트장님, 괜찮으세요?" 뭐가. "조금 피곤해 보였어서." 아. 손가락이 말했나. 내 피곤이 손가락으로 새어나갔나. "괜찮아. 그냥 집중하고 있었어." 거짓말이다. 손가락이 알고 있다. 손가락이 쉬는 시간 밤 11시. 집에 간다. 아내는 이미 잠들었다. 아들은 자기 방에. 딸은 자기 방에. 혼자다. 노트북을 켠다. 손가락이 산다. 코드를 친다. 이때가 다르다. 회의실이 아니니까. 손가락이. 자유롭다. 무의식적으로 만지작대지 않는다. 목표가 있으니까. 버그를 찾는다. 로직을 짠다. 뭔가를 만든다. 손가락이 일한다. 정말로. 3시간. 4시간. 시간이 안 간다. 이때 손가락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내 생각을 읽는다. 손가락이 나다. 아침이 온다 다시 7시. 알람. 손가락이 스누즈를 누른다. 5분. 또 누른다. 5분. 또. 출근한다. 메일이 있다. 슬랙이 있다. 회의가 있다. 노트북을 켠다. 손가락이 또 움직인다. 이번엔 회의실에서. 또 손가락이 해줄 수 없는 일들. 손가락은 지친다. 나도 지친다. 그래도 움직인다. 후배의 손가락 옆에 앉은 후배를 본다. 30대 초반. 회의 중에 노트북 없다. 손가락이 책상 위에 있다. 펜을 든다. 아날로그 메모장. 손가락이 움직인다. 의미 있게. 뭔가를 쓴다. 뭔가를 남긴다. 나는. 20년 전에 그랬다. 이제 안 한다. 손가락이 달라졌다. 나도 달라졌다. 내일은 어떨까 회의가 또 있다. 내일도. 모레도. 손가락이 또 노트북을 만질까. 근데 이제 알았다. 손가락이 하는 말. "파트장님, 바빠요." "파트장님, 더 하고 싶어요." "파트장님, 지쳐있어요." 손가락은. 나의 또 다른 목소리다. 손가락이 말한다. 나는 듣지 않는다. 그래도. 듣고 있다.밤 11시, 손가락이 다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