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기술
- 09 Dec, 2025
주말 기술 블로그, '나 뒤처지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
주말 기술 블로그, '나 뒤처지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 토요일 아침 10시 아내가 나갔다. 아이들도 학원. 집에 혼자다. 커피 내렸다. 노트북 켰다. 습관처럼 북마크를 연다. "기술 블로그" 폴더. 안 읽은 글이 47개다. 지난주에도 47개였는데. 요새 핫하다는 Rust 글. Bun 성능 벤치마크. React 19 무슨 기능. 전부 읽어야 할 것 같다. 근데 읽으면 뭐가 달라지나. 20년 전엔 이렇지 않았다. 자바 새 버전 나와도 몇 달 뒤에 봐도 됐다. 지금은? 어제 나온 기술을 오늘 모르면 뒤처진 것 같다. 스크롤을 내린다. "2024년 개발자가 알아야 할 10가지." 클릭했다가 닫았다. 작년 글도 못 봤는데.읽기 시작하면 첫 문단은 괜찮다. "Rust는 메모리 안전성을..." 알겠다. 이건 안다. 두 번째 문단. 코드가 나온다. async fn, await, Arc<Mutex<T>>. 뭔지는 알겠는데 손으로 쳐보진 않았다. 세 번째 문단. 실전 예제. 200줄짜리 코드. "이렇게 하면 제로 카피가..." 머리가 아프다. 아들이 "아빠 이거 어떻게 해?" 하면 10분 안에 답 준다. 근데 Rust 배우려면 몇 시간이 필요한가. 아니, 몇 달. 탭을 하나 더 연다. "Next.js 14 서버 컴포넌트." 이것도 읽어야 한다. 우리 회사는 Next.js 12 쓴다. 14는 언제 쓰나. 15분 지났다. 아직 한 글도 제대로 안 읽었다. 그냥 훑었다. 훑는 것도 읽는 거라고 우기면 되나.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2010년쯤. Spring 3.0 나왔을 때. 레퍼런스 문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토요일 오후 통째로 썼다. 코드도 따라 쳤다. 그때는 재밌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이걸 월요일에 써먹어야지" 했다. 실제로 썼다. 지금은? Next.js 배워도 쓸 데가 없다. 우리 프로젝트는 JSP다. 레거시 유지보수가 80%다. Rust 배워도 마찬가지. 회사에서 자바 쓴다. 개인 프로젝트? 할 시간이 없다. 그럼 왜 읽나. 불안해서다. "요즘 개발자는 이거 다 안다"는 말이 무섭다. 면접관으로 들어간 적 있다. 27살 지원자가 말했다. "Rust로 CLI 툴 만들어봤습니다." 나는 Rust로 Hello World도 안 해봤다. 면접 끝나고 검색했다. "Rust 기초." 그 지원자 붙였다. 나보다 잘하니까. 근데 기분은 이상했다. "내가 뒤처졌구나."후배들은 당연하게 월요일 출근. 막내가 물었다. "파트장님, Bun 써보셨어요?" "아니. 그게 뭔데." "Node.js 대체하는 런타임이요. 엄청 빠르대요." "음. 우리 프로젝트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궁금해서요." 그냥 궁금해서. 이 말이 부럽다. 나도 예전엔 "그냥 궁금해서" 새 기술 공부했다. 지금은 "이거 실무에 쓸 수 있나"부터 생각한다. 쓸 수 없으면 안 본다. 근데 그러면 영영 모르는 기술이 된다. 후배는 주말에 Bun으로 토이 프로젝트 만들었단다. "3시간 걸렸어요." 나는 주말에 뭐 했나. 밀린 드라마 봤다. 틀린 건 아니다. 쉬는 것도 중요하다. 근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나만 안 쉬는 건가" 싶다가도 "나만 공부 안 하는 건가" 싶다. 읽은 척하기 팀 회의. 누가 말했다. "요즘 React Server Component가 대세래요." "맞아. 나도 봤어." 거짓말이다. 제목만 봤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장단점이 있지. 서버 부하는 늘어날 수 있고." 대충 얼버무렸다. 다행히 더 안 물었다. 회의 끝나고 검색했다. "React Server Component란." 10분 읽었다. 대충 알겠다. 아니, 대충 아는 척할 수 있을 정도로. 이게 요즘 내 공부법이다. 모르는 기술 나오면 10분 검색. 키워드만 익힌다. "SSR", "hydration", "streaming". 이 단어들 넣어서 말하면 아는 것처럼 들린다. 진짜 아는 건 아니다. 코드 못 짠다. 근데 회의에서 막히진 않는다. 이게 맞나. 모르겠다. 근데 다른 방법도 없다. 전부 깊게 공부할 시간은 없다.진짜 배우려면 Rust 제대로 배우려면 시간이 얼마나 드나. 책을 봤다. "The Rust Programming Language." 600페이지. 하루 10페이지 읽으면 2개월. 근데 읽기만 하면 안 된다. 코드 쳐야 한다. 에러 보고 고쳐야 한다. 그럼 4개월. 4개월 동안 매일 1시간. 가능한가. 평일엔 야근. 주말엔 가족. 1시간 내기도 어렵다. 그럼 짬짬이? 출퇴근 지하철에서? 가능하다. 근데 피곤하다. 지하철 타면 졸린다. 핸드폰으로 유튜브 보다가 내린다. 점심시간? 밥 먹고 나면 30분. 커피 마시면 10분. 10분으로 뭘 배우나. 퇴근 후? 9시에 집 도착. 씻고 밥 먹으면 10시. 가족이랑 얘기하면 11시. 그때부터 공부? 30분 하면 졸린다. 계산해보면 답 없다. 시간이 없다. 근데 "시간 없어"라고 하면 핑계처럼 들린다. 후배 코드 리뷰하면서 PR 올라왔다. 후배가 짠 코드. 흐름은 괜찮다. 근데 모르는 게 있다. suspend fun fetchData() = coroutineScope { val deferred = async { repository.getData() } deferred.await() }코틀린이다. 우리 팀이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자바로 짠다. suspend, coroutineScope, async. 들어본 건데 정확히 모른다. 대충 비동기라는 건 알겠다. 댓글 달았다. "Good." 뭐라고 더 쓸 말이 없다. 예전엔 코드리뷰가 신났다. "여기 이렇게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지금은? "Good", "LGTM", "Approve". 짧다. 할 말이 없어서. 후배가 물었다.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나도 코틀린 공부 중이라 확실하진 않은데." 솔직하게 말했다. 후배는 "네"라고만 했다. 표정이 이상했다. 실망한 것 같기도. 파트장인데 코틀린 모른다. 이게 말이 되나. '나중에' 리스트 북마크 폴더를 열었다. "나중에 볼 것" 폴더. 글이 312개다. 제일 오래된 건 2년 전 글. "Docker Kubernetes 완벽 가이드". 안 봤다. 작년 글도 있다. "함수형 프로그래밍 입문". 안 봤다. 이번 달 글도 있다. "AI 시대 개발자의 역할". 안 본다. 전부 언젠가 보려고 저장했다. 언젠가는 안 온다. 알고 있다. 근데 지우진 못한다. 지우면 진짜 안 볼 것 같아서. 희망 고문이다. "나중에 볼 거야"라는 희망. 실제론 안 본다. 근데 버리면 '포기'한 것 같다. 후배한테 물었다. "너는 기술 블로그 어떻게 관리해?" "저요? 안 봐요. 필요하면 그때 찾아봐요." 충격이었다. "안 봐요"를 당연하게 말한다. 나는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뒤처지는 거 걱정 안 돼?" "뒤처지면 어때요. 필요할 때 배우면 되죠."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못 한다. 불안하다. 유튜브 알고리즘 유튜브 켰다. 추천에 뜬다. "초보 개발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기술 스택." "시니어 개발자도 모르는 최신 트렌드." 클릭했다. 15분짜리 영상. 빠르게 넘긴다. 2배속으로. 7분 만에 끝. 뭐 배웠나. 기억 안 난다. "요즘은 이게 대세"라는 말만 남았다. 구체적인 건 없다. 또 클릭했다. "개발자 공부법 - 하루 30분으로 성장하기." 봤다. 내용은 뻔하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실습하기". 알고 있다. 다 안다. 근데 안 된다. 되면 벌써 했다. 영상 보는 게 공부한 기분 들게 한다. 실제론 아무것도 안 했는데. 15분 봤으니 "오늘 공부했다" 싶다. 착각이다. 알고 있다. 근데 또 본다. 내일도 볼 거다. 컨퍼런스 가면 회사에서 보냈다. "개발자 컨퍼런스 갈 사람?" 손 들었다. 금요일이라 좋다. 코엑스 갔다. 사람 많다. 다들 젊다. 20대, 30대. 나 같은 사람은 별로 없다. 첫 세션. "AI 기반 코드 생성의 미래." 들어갔다. 앞자리 앉았다. 발표 시작. GPT-4로 코드 짠다. Copilot 쓴다. "이제 개발자는 코딩 말고 설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맞는 말 같다. 근데 불안하다. '내 자리가 없어지는 거 아냐?' 옆 사람이 고개 끄덕인다. 메모한다. 열심히 듣는다. 나도 메모했다. "AI", "설계 중심", "역할 변화". 나중에 볼 일 없다. 두 번째 세션. "클라우드 네이티브 아키텍처." 어렵다. 모르는 용어 투성이. "서비스 메시", "사이드카 패턴". 30분 들었는데 이해 못 했다. 졸렸다. 커피 마시러 나왔다. 복도에 사람들 많다. 다들 얘기한다. "방금 발표 좋았어." "나도 써봐야겠어." 나는 뭐 써봐야 하나. 모르겠다. 커피만 마셨다. 월요일 출근 팀원이 물었다. "컨퍼런스 어땠어요?" "좋았어. 요즘 트렌드 알았어." "뭐가 핫해요?" "음. AI랑 클라우드 네이티브?" "구체적으로요?" 막혔다. 구체적으론 모른다. 그냥 들었다. "나중에 자료 공유해줄게." 안 했다. 자료 찾기 귀찮아서. 팀원도 안 찾았다. 다들 바빠서. 결국 컨퍼런스도 "다녀왔다"는 것만 남았다. 배운 건 없다. 돈은 회사 돈. 시간은 근무시간. 손해는 없다. 근데 얻은 것도 없다. 임원님 말씀 임원님이 말했다. "우리 회사도 AI 도입해야 해. 개발 생산성 높여야지." "네. 좋습니다." "박 파트장이 한번 검토해봐. 다음 주까지." "네." 검토? 뭘 검토하나. AI 툴은 많다. Copilot, Cursor, Tabnine. 다 써봤나? 안 봤다. 주말에 찾아봤다. "AI 코딩 툴 비교." 블로그 10개 읽었다. 다 비슷하다. "생산성 향상", "코드 품질 개선". 월요일에 보고했다. "Copilot 괜찮아 보입니다." "왜?" "많이 쓰고, 안정적이고, VS Code 연동 잘 되고." "얼마야?" "월 10달러." "팀 전체면 얼마?" "8명이니까... 960달러. 연간 만 불 좀 넘네요." "비싸네. 효과는 확실해?" 모른다. 써본 적 없다. 블로그만 봤다. "네. 보통 30% 생산성 향상된다고 합니다." "30%면 괜찮네. 진행해봐." 결정됐다. 나도 처음 써본다. Copilot 써보니 설치했다. VS Code에. 로그인하고 활성화. 코드 짰다. 주석 쓰니까 코드 자동완성. 신기하다. 맞는 코드다. 한 시간 썼다. 편하다. 타이핑 덜 한다. 근데 이상하다. 내가 코드 짠 건가, AI가 짠 건가. 경계가 모호하다. 예전엔 한 줄 한 줄 생각하면서 짰다. 지금은? 제안 보고 엔터. 또 제안 보고 엔터. 빠르긴 하다. 근데 덜 생각하게 된다. 후배한테 물었다. "너 이거 써봤어?" "네. 작년부터요." "어때?" "편해요. 근데 가끔 이상한 코드 줘요." "이상한 거 어떻게 알아?" "그냥 이상하잖아요." 그냥. 이 말이 무섭다. "그냥 안다"는 건 기본기가 있다는 거다. 나도 안다. 20년 짰으니까. 근데 새로운 언어는? 코틀린에서 이상한 코드 알아챌 수 있나. 기본기 회식 자리. 팀장님이 말했다. "요즘 신입들은 기본기가 약해." "그렇죠." "옛날엔 자료구조, 알고리즘 다 알았는데." "맞습니다." 근데 나도 까먹었다. 레드블랙트리? 10년 전 면접 때 공부했다. 지금은 설명 못 한다. "AI 시대엔 기본기가 더 중요해. AI는 도구일 뿐이야." 맞는 말이다. 근데 나도 AI 쓴다. 나도 도구에 의존한다. 차이가 뭔가. 나는 경험이 있다? 20년 경력? 그게 앞으로도 의미 있나. GPT-4가 내 20년 경험보다 더 많은 코드 본 거 아닌가. 더 다양한 문제 풀어본 거 아닌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근데 자꾸 생각난다. 토요일 저녁 결국 한 줄도 안 배웠다. Rust도 안 봤다. Next.js도 안 봤다. 유튜브만 봤다. "개발자 트렌드" 영상 5개. 본 것 같은데 기억 안 난다. 북마크는 50개 됐다. 읽을 일 없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뭐 했어?" "공부했어." "뭐?" "기술 공부." 거짓말이다. 유튜브 봤다. 근데 "유튜브 봤어"라고 하기 부끄럽다. 아내는 "음"하고 넘어갔다. 관심 없다. 나도 관심 없으면 편할까. 불안의 정체 왜 불안할까. 생각해봤다. 뒤처지는 게 무섭다? 뭐에서? 나는 파트장이다. 이미 관리직이다. 최신 기술 몰라도 일은 된다. 이직? 할 생각 없다. 여기 9년 다녔다. 연봉도 괜찮다. 그럼 뭐가 문제냐. 자존심이다. "개발자"라는 정체성. 20년 했다. 그게 나를 정의한다. 근데 최신 기술 모르면 '진짜 개발자'가 아닌 것 같다. 누가 그래? 아무도 안 그랬다. 나 혼자 생각한다. 후배들은 나 보고 뭐라 안 한다. "파트장님 옛날 사람이다" 이런 소리 안 한다. 내가 오버하는 거다. 근데 멈출 수가 없다. 습관이다. 20년 된 습관. 가끔은 가끔은 생각한다. '몰라도 되는 거 아냐?' Rust 몰라도 자바 잘하면 되잖아. Next.js 몰라도 Spring 잘하면 되잖아. 전부 다 알 순 없다. 인정해야 한다. 근데 인정하면 '포기'한 것 같다. '포기'와 '선택'은 다르다. 알고 있다. 근데 느낌은 비슷하다. "나는 Rust 안 배운다." 이렇게 선언하면 편할까. 시도 안 해봤다. 무섭다. 후배가 "Rust 어때요?"라고 물으면 "안 해봤어"라고 답하는 게 무섭다. "관심 없어"도 이상하다. "시간 없어"는 핑계 같다. 그래서 "나중에 해볼게"라고 한다. 나중은 안 온다. 임원 승진하면 내년에 임원 대상자다. 승진하면 연봉 오른다. 근데 개발은 못 한다. 예산 짜고, 보고서 쓰고, 임원 회의 들어간다. 코딩은?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아예 안 할 수도. 그럼 기술 공부는 더 안 해도 되나. 필요 없으니까. 근데 그게 더 무섭다. '개발자'에서 '관리자'로 완전히 넘어가는 거. 돌아올 수 없다. 승진 거부할까. 생각해봤다. 바보 같은 소리다. 아내가 뭐라 할까. 부모님은? "승진 안 할래요" 이러면 "왜?"라고 물을 거다. "개발하고 싶어서요" 이러면 이해할까. 안 할 거다. 승진한다. 그리고 개발은 덜 한다. 기술 공부는 더 안 한다. 이게 정답인 것 같다. 근데 마음은 불편하다. 20년 후배에게 입사 동기가 창업했다. 스타트업. 성공했다. 작년에 엑싯했다. 만나서 물었다. "기술 공부 어떻게 해?" "안 해. 직원들이 알아서 하지." "불안 안 해?" "왜 불안해? 내가 다 알 필요 없잖아." 충격이었다. "다 알 필요 없다"를 당연하게 말한다. "나는 안 그래. 모르면 불안해." "그럼 계속 공부해야지. 평생." "그게 가능해?" "모르지. 근데 너가 선택한 거잖아." 맞다. 내가 선택했다. '개발자'로 남기로. 그럼 평생 배워야 한다. 가능한가. 모르겠다. 근데 다른 길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북마크 열었다. 안 읽은 글 53개. 하나 클릭했다. "Go언어 시작하기." 읽었다. 10분. 뭐 배웠나. 모르겠다. 그래도 읽었다. 0보단 낫다. 이렇게 위로한다. 내일도 그럴 거다. 모레도. 계속.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근데 멈출 수도 없다. 토요일 오후 3시. 아내가 "나가자"고 한다. "곧" 이라고 답했다. 노트북 닫았다. 일어났다. 내일 또 열 거다. 불안은 안 없어진다. 알고 있다. 익숙해지는 것밖에. 20년 개발자의 주말. 이렇다.배워도 끝이 없고, 안 배워도 불안하다. 그래서 계속 화면만 본다.
- 03 Dec, 2025
기술 면접관이 된 후 느낀 불안감
기술 면접관이 된 후 느낀 불안감 면접관석에 앉다 작년부터 면접관으로 들어간다. 파트장이 되면서 당연한 수순이다. 첫 면접 전날 밤, 예상 질문 리스트를 정리했다. Java 기초, Spring 동작 원리, DB 최적화. 내가 20년간 써먹은 것들이다. "괜찮아, 이 정도는 눈 감고도." 그렇게 생각했다.첫 번째 당황 면접장에 들어온 지원자는 27살. 이력서에 적힌 기술 스택을 보는 순간 식은땀이 났다. Rust, Go, Kubernetes, GraphQL, Next.js. "아... 이거 하나도 안 써봤는데." 일단 내가 아는 걸로 시작했다. "Spring으로 RESTful API 설계해보셨어요?" "네, 근데 요즘은 GraphQL을 더 선호해서요." GraphQL. 들어는 봤다. REST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건 안다. 근데 실무에서 어떻게 쓰는지는 모른다. "아, GraphQL. 좋죠. 어떤 점이 좋던가요?" 지원자가 10분간 설명했다. Over-fetching, Under-fetching, Schema, Resolver.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질문은 못 했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몰랐다.역전된 시간 면접이 끝났다. 옆에 앉은 30대 후배가 물었다. "형, GraphQL 괜찮은 것 같지 않아요?" "응, 근데 우리 프로젝트에 당장은..." 변명이었다. 사실은 잘 모르니까 도입이 무섭다. 우리 팀에 아는 사람도 없다. 레퍼런스 찾아보려면 시간도 들고. 그날 저녁, 유튜브로 GraphQL 강의를 봤다. 40분짜리 영상. 10분 보다가 껐다. 피곤했다. "내일 보자." 그 내일이 아직도 안 왔다. 두 번째 면접, 더 큰 문제 한 달 후 또 면접. 이번엔 5년차 개발자. 이력서에 "대규모 트래픽 처리 경험" 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 평균 트래픽이 어느 정도였나요?" "DAU 300만, 피크 시간대 초당 5만 요청이요." 오... 우리 서비스는 많아야 1만이다. 좀 쫄렸다. "어떻게 처리하셨어요?" "Redis 클러스터 구성하고, Kafka로 비동기 처리했습니다." Redis는 안다. 캐시다. 근데 클러스터는 이론으로만 알지 직접 구성은 안 해봤다. Kafka는... 이름만 들어봤다. "Kafka 도입 과정에서 어려움은?" 질문은 했는데 대답을 이해 못 했다. Partition, Consumer Group, Offset. 모르는 단어가 3개나 나왔다. "아... 네네. 잘 처리하셨네요." 면접 끝나고 평가서에 뭐라고 쓸까 고민했다. "기술적으로 우수함" 이라고 썼다. 근데 속으로는 "나보다 잘하는 것 같음" 이었다.폭과 깊이 그날 밤 생각했다. 나는 Java를 깊이 판다고 생각했다. JVM 동작 원리, GC 튜닝, 동시성 제어. 이 정도면 시니어 맞지 않나. 근데 요즘 개발은 폭이 필요하다. 프론트도 알아야 하고. 인프라도 알아야 하고. 새로운 언어도 따라가야 하고. 나는 깊이만 팠다. 20년간 Java만. 폭은 좁았다. 후배들은 다르다. 5년 안에 Python, Go, TypeScript 다 써본다. Docker, Kubernetes도 당연히 안다. 클라우드도 익숙하다. "이게 맞나?" 깊이 없이 넓기만 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근데 면접 보면서 느낀 건. 그들의 깊이도 만만치 않더라. 면접관 자격 요즘 면접 들어갈 때마다 불안하다. "오늘은 무슨 기술이 나올까." "모르는 거 나오면 어떻게 대처하지." 면접관이 지원자한테 배우는 꼴이다. 이게 맞나. 옆 팀 박 차장은 더 심하다. 그분은 나보다 2년 선배다. 얼마 전에 면접 끝나고 하소연했다. "야, 요즘 애들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저도요." "우리 늙은 건가." "아직 45인데요." "개발자로는 늙은 거지." 씁쓸했다. 검색하는 면접관 요즘은 이력서 받으면 일단 검색한다. 모르는 기술 스택 전부. 간단하게라도 개념은 알고 들어가야 한다. 지난주 면접 전날. Rust 공부했다. 2시간 투자해서 기초 문법 봤다. "메모리 안전성, 소유권 개념." 이 정도만 알고 들어갔다. 면접 중에 "Rust 써보신 이유는?" 물었다. "C++의 메모리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능도 유지할 수 있어서요." "맞아요, 소유권 시스템이 핵심이죠?" "네, Borrow Checker 덕분에 컴파일 타임에 잡히니까요." Borrow Checker. 전날 못 본 내용이다. 또 모른다. "좋네요,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하셨어요?" 대충 넘어갔다. 면접 끝나고 또 검색했다. Borrow Checker. 공부할 게 끝이 없다. 깊이의 착각 생각해보면 나도 착각했다. Java 20년 했다고 다 아는 건 아니다. Virtual Thread 나왔을 때 개념도 몰랐다. Spring WebFlux도 제대로 안 써봤다. Reactive Programming은 이론만 안다. 깊이를 판 게 아니라. 익숙한 것만 계속 쓴 거다. 새로운 Java 기능도 안 쓴다. "레거시 코드가 많아서." "마이그레이션 비용이 커서." 핑계다. 그냥 배우기 귀찮은 거다. 체력도 떨어지고. 새로운 거 배우면 머리 아프고. 그러는 사이 후배들은 계속 배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게 새로운 거니까. 배우는 게 당연하니까. 역질문 시간 면접 끝나고 "질문 있으세요?" 하면. 요즘은 내가 더 궁금하다. "이 기술 도입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레퍼런스가 적어서 어떻게 공부하셨어요?" "주변에 아는 사람 없으면 어떻게 해결하세요?" 면접관이 물어볼 질문이 아니다. 근데 진짜 궁금하다. 어떤 지원자는 대답해준다. 친절하게. 마치 선생님처럼. "공식 문서 먼저 보고요, 안 되면 해외 포럼이요." "Discord 커뮤니티 들어가면 다들 잘 알려줘요." "일단 해보면서 삽질하는 게 제일 빠르더라고요." 나는 공식 문서 보면 영어에서 막힌다. Discord는 뭔지 잘 모른다. 삽질할 시간은 없다. 세대 차이다. 합격 통보의 무게 면접 평가회의 때마다 고민이다. 내가 제대로 평가한 건가. 이 사람이 실력자인지 아닌지. 판단할 자격이 내게 있나. 결국 다른 면접관들 의견을 따른다. "30대 후배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겠지." "기술 질문 잘 받아쳤으면 실력 있는 거겠지." 내 판단은 점점 줄어든다. 면접관인데. 합격 통보하고 나면 불안하다. "이 사람 들어와서 나한테 뭐 물어보면 어떡하지." "내가 리드할 수 있을까." 파트장인데 말이다. 관리자의 핑계 회사는 말한다. "파트장은 기술보다 관리가 중요합니다." "팀원들이 잘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기술은 팀원들이 캐치업하면 됩니다." 맞는 말이다. 근데 씁쓸하다. "기술 못 따라가도 괜찮아, 넌 관리자니까." 이렇게 들린다. 관리만 하는 개발자. 코드는 못 짜는 개발자. 후배들 실력은 못 따라가는 개발자. 그게 나다. 면접 볼 때마다 확인한다. "아, 나 진짜 뒤처졌구나." 불안의 정체 왜 불안할까. 생각해봤다. 첫째, 권위가 무너진다. 20년차 시니어인데 모르는 게 많다. 후배들이 알면 어떡하나. 둘째, 자리가 불안하다. 관리만 하는 개발자는 언제든 교체 가능하다. 기술 없으면 경쟁력 없다. 셋째, 자존심 상한다. 후배한테 배운다는 게. 면접에서 질문 못 한다는 게. 결국 다 자아 문제다. 실력은 둘째고. 내 위치, 내 자존심이 먼저다. 한심하다. 인정의 시작 지난주 면접 후 솔직하게 물어봤다. 27살 지원자에게. "저는 GraphQL 안 써봤거든요. 3분만 설명해주실 수 있어요?" 당황하더라. 면접관이 질문받는 상황. 근데 설명해줬다. 친절하게. 이해하기 쉽게.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네요." 그 사람 합격시켰다. 우리 팀에 꼭 필요하다. 내가 모르는 걸 아니까. 면접 끝나고 30대 후배가 말했다. "형, 솔직하게 물어보시는 거 멋있었어요." "아니, 그냥 진짜 몰라서." "그래도 인정하고 배우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위로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다. 근데 조금 편해졌다. 바뀐 면접 방식 요즘은 면접 스타일을 바꿨다. 모르는 기술 나오면 솔직하게 말한다. "이 기술은 저도 안 써봤는데, 어떤 점이 좋은가요?" "실무에서 어떻게 적용하셨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질문이 아니라 학습이다. 면접인지 세미나인지 모를 때도 있다. 근데 이게 더 낫다. 지원자 실력도 제대로 보인다. 설명 잘하는 사람이 실력자다. 아는 척하는 사람은 금방 티 난다. 그리고 나도 배운다. 한 번에 하나씩. GraphQL, Rust, Kafka. 면접 볼 때마다 하나씩 는다. 느리지만 방법이다. 시니어의 역할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시니어는 모든 기술을 다 알아야 하는 게 아니다.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면접에서 지원자가 Rust 얘기하면. "우리 프로젝트에 Rust가 필요할까?" 를 생각한다. 성능이 중요한가. 메모리 안전성이 핵심인가. 팀원들이 러닝 커브를 감당할 수 있나. 이건 5년차는 못 한다. 20년 경험이 필요하다. 기술은 몰라도 된다. 판단력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위한다. 매일. 다음 면접 다음 주에 또 면접이다. 이력서 받았다. 이번엔 Python 머신러닝 경험자. 모른다. Python은 문법만 안다. 머신러닝은 완전 초짜다. 주말에 공부해야 한다. "머신러닝 기초" 유튜브 영상. 1시간짜리. 볼 수 있을까. 아들이 "아빠 게임하자" 할 텐데. 일단 저장해놨다. "나중에 보기" 목록에. 거기 영상이 벌써 37개다. 다 못 본다. 알지만 계속 저장한다. 불안하니까.면접관석은 생각보다 불편하다. 판단하는 사람인데 확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