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8 Dec, 2025
관리직인가, 개발직인가 - 파트장이라는 정체성의 혼란
관리직인가, 개발직인가 - 파트장이라는 정체성의 혼란 파트장이라는 애매한 자리 작년에 파트장 달았다. 승진 축하한다고 팀장이 저녁 쏘고. 집에 와서 명함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개발 파트장. 이게 관리직인가, 개발직인가. 월요일 아침부터 회의다. 주간계획, 분기목표, 리소스배분. 10시부터 12시까지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점심 먹고 오후 2시, 또 회의. 타팀 협업 논의. 코드 짤 시간은 언제 나오나. 퇴근 전에 IDE 켰다. 일주일 전에 만들던 기능. 코드 보는데 뭘 하려던 건지 기억이 안 난다. 주석도 안 써놨다. 6시 반, 후배가 퇴근 인사하고 나간다. 나는 이제 시작인데.코드 리뷰는 언제 후배들이 PR 올린다. 하루에 10개씩 쌓인다. 아침에 출근하면 슬랙 알림 15개. "파트장님 코드리뷰 부탁드립니다" 점심시간에 본다. 급하게 본다. 제대로 못 본다. 어제 승인한 코드에서 버그 났다. 내가 놓친 거다. 후배한테 미안하다. "괜찮습니다"라고 하는데. 괜찮을 리가 없다. 예전엔 코드리뷰가 즐거웠다. 후배 코드 보면서 "이렇게 하면 더 좋아" 알려주고. 같이 고민하고. 지금은 체크리스트 확인하듯 본다. 테스트 있나, 네이밍 괜찮나, 로직 문제 없나. 5분 안에 끝낸다. 이게 리뷰인가 싶다. 팀장한테 말했다. "코드리뷰 시간이 부족합니다" "회의 줄여볼게요" 다음 주에 회의 하나 더 생겼다.1on1은 또 언제 팀원 8명. 한 달에 한 번씩 1on1 한다. "요즘 어때요?" "괜찮습니다" 괜찮을 리 없다는 거 안다. 근데 물어볼 시간이 없다. 1on1 30분 잡는데. 10분은 근황 얘기. 10분은 업무 얘기. 나머지 10분에 진짜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다음 미팅 시간이라 이만" 끊기는 거다. 신입 후배 하나가 있다. 작년에 들어왔다. 코드 짜는데 어려워한다. "시간 날 때 같이 짜봅시다" 석 달째 시간이 안 난다. 어제 그 후배가 또 PR 올렸다. 똑같은 실수가 있다. 지난번에도 지적했던 거다. "이 부분 다시 확인해 주세요" 댓글 달고 나서 죄책감 든다. 내가 제대로 안 가르쳐줘서 그런 건데. 예전엔 후배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화면 보면서. "여기 이렇게, 저기 저렇게" 했는데. 지금은 댓글로 끝이다.내 코드는 언제 짜나 이번 분기 목표가 있다. 신규 기능 개발. 내가 맡았다. 설계는 한 달 전에 끝났다. 구현은 아직 시작도 못 했다. 매일 "오늘은 코딩한다" 다짐한다. 출근하면 메일부터 본다. 답장하다 보면 1시간. 슬랙 확인한다. 긴급한 거 처리한다. 또 1시간. 회의 시간이다. 점심 먹고 오후. 후배가 질문한다. "이 부분 어떻게 하면 될까요?" 30분 같이 본다. 다른 후배가 온다. "배포 이슈 있습니다" 로그 확인한다. 원인 찾는다. 1시간 지났다. 6시다. 이제 코딩 시작할까. 팀장이 부른다. "내일 발표 자료 좀 봐줘요" 8시 되어서 퇴근한다. 코드 한 줄 못 짰다. 집에 와서 노트북 켠다. 피곤하다. 잠깐만 누웠다가. 새벽 2시에 깬다. 내일도 회의다. 개발자인가 관리자인가 기술 블로그 본다. 요즘 트렌드가 뭔지. "Rust로 고성능 API 만들기" "Kubernetes 실전 가이드" "AI 시대의 백엔드 아키텍처" 읽다가 만다. 읽을 시간도 없고. 읽어도 써먹을 곳이 없다. 우리 팀은 Java Spring이다. 15년 된 레거시다. 바꿀 수도 없고. 바꿀 이유도 없다. 그래도 읽는다. 뒤처지는 게 무섭다. 기술 면접관 들어간 적 있다. 지원자가 물었다. "요즘 MSA 전환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답하다가 막혔다. 이론은 안다. 실무는 모른다. 지원자가 나보다 더 잘 알았다. 합격시켰다. 그 사람 지금 우리 팀에 있다. 기술적인 건 그 후배한테 물어본다. 이게 맞나 싶다. 친구 만났다. 대학 동기다. 걔는 CTO다. "요즘 뭐 해?" "회의하고, 리뷰하고" "코딩은?" "못 한다" 친구가 웃었다. "넌 관리자야"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개발자인가. 관리자인가. 둘 다 아닌 것 같다. 승진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작년 이맘때. 팀장이 불렀다. "파트장 제안이 들어왔어요" 고민했다. 파트장 되면 연봉 오른다. 팀원 관리도 해야 한다. 코딩은 줄어든다. "며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틀 고민했다. 아내한테 물었다. "연봉 얼마나 올라?" "1000만원쯤" "해" 승진했다. 첫 달은 괜찮았다. 회의도 신선하고. 팀 관리도 재미있고. 두 번째 달부터 이상했다. 코딩할 시간이 없다. IDE 켜는 횟수가 줄었다. 석 달 지나니까. 내가 개발자가 맞나 싶었다. 동료들이 축하한다. "승진 축하해요" "이제 편하시겠어요" 편할 리가 없다. 더 바쁘다. 더 피곤하다. 더 불안하다. 코드 짜는 시간은 줄었는데. 책임은 늘었다. 팀원이 실수하면 내 책임. 일정 밀리면 내 책임. 장애 나면 내 책임. 예전엔 내 코드만 책임지면 됐다. 지금은 8명 코드를 책임진다. 밤에 잠 안 올 때가 있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승진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다. 팀원들의 눈빛 신입 후배가 물어본다. "파트장님은 어떻게 공부하세요?" 대답이 막힌다. "틈날 때 블로그 보고..." 거짓말이다. 요즘 공부 안 한다. 다른 후배가 말한다. "저도 나중에 파트장 되고 싶어요" 웃으면서 답한다. "열심히 해봐" 속으로 생각한다. "안 되는 게 나을 거야" 팀원들이 나를 본다. 궁금해한다. 저 사람은 코드를 짜나. 저 사람은 개발자가 맞나. 증명하고 싶다. "나도 개발자야" 근데 증명할 방법이 없다. 예전엔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코드 잘 짜고. 문제 잘 해결하고. 기술 리드하고. 지금은 직급으로 인정받는다. 파트장이니까. 경력 20년이니까. 실력은 모른다. 나도 모른다. 무서운 거다. 어디로 가야 하나 임원 제안 들어왔다. 내년쯤. 승진하면 연봉 1억 넘는다. 개발은 영영 못 한다. 고민 중이다. 임원 되면 완전히 관리자다. 전략 짜고. 예산 관리하고. 경영진 미팅하고. 코드는 못 본다. 기술은 몰라도 된다. 이게 내가 원하던 길인가. 20년 전에 개발 시작했다. 처음 코드 짤 때. "Hello World" 찍을 때. 그때가 좋았다. 밤새 코딩하고. 새벽에 배포하고. 에러 잡고.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지금은 재미가 없다. 회의록 쓰고. 일정 관리하고. 보고서 만들고. 이게 내가 하고 싶던 일인가. 퇴사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작은 회사 가서. 다시 개발자로. 근데 현실이다. 나이 45에. 연봉 9500에. 다시 개발자로 취직되나. 아니, 개발자로 일할 수 있나. 체력도 문제다. 밤샘 코딩은 이제 못 한다. 그냥 이 길로 가는 거다. 파트장에서 임원으로. 관리자로. 개발자는 아닌 사람으로. 그래도 어제 신입 후배가 PR 올렸다. 내가 조언했던 거 반영했다. 코드가 깔끔했다. 칭찬 댓글 달았다. "잘했어요" 후배가 답했다. "파트장님 덕분입니다" 기분이 좋았다. 조금. 오늘 회의에서. 내가 제안한 아키텍처. 팀장이 채택했다. "역시 박 파트장" 기분이 좋았다. 조금. 퇴근 전에 코드 짰다. 30분. 겨우 30분. 그래도 짰다. IDE 켜고. 함수 하나 만들고. 테스트 돌리고. 손에 익은 동작들. 이게 좋다. 아직은. 파트장이 뭔지 모르겠다. 개발자인지 관리자인지 모르겠다. 그냥 하는 거다. 오늘도. 내일도. 회의하고. 리뷰하고. 가끔 코딩하고. 이게 내 일이다. 지금은.파트장 1년 차.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뭔지.
- 07 Dec, 2025
슬랙 100개 알림, 진짜 중요한 건 뭐지?
슬랙 100개 알림, 진짜 중요한 건 뭐지? 오전 9시 10분.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슬랙이 뜬다. 빨간 숫자가 보인다. 127개. "어제 퇴근할 때 다 읽었는데."127개의 정체 스크롤을 내렸다.전사 공지 8개 다른 팀 채널 잡담 40개 내 팀 채널 업무 15개 DM 12개 멘션 6개 리액션 알림 46개리액션이 거의 반이다. "누가 내 메시지에 👍 눌렀습니다" 알아서 뭐하나. 멘션 6개부터 읽었다. 진짜 중요한 건 2개였다. 나머지는 "파트장님 의견 궁금합니다" 류. 의견 안 내도 진행되는 것들. DM 12개. 급한 건 1개. "통화 가능하세요?" 30분 전 메시지다. 이미 해결됐을 거다. 읽는 데 1시간 9시 10분에 시작했다. 10시 5분에 끝났다. 55분 걸렸다. 읽기만 한 게 아니다.답장 8개 리액션 20개 "확인했습니다" 5개확인했다는 답장을 안 하면 불안하다. "파트장님 못 보신 건가" 생각할까봐.10시 5분. 이제 일을 시작한다. 아, 10시 30분에 회의가 있다. 25분 남았다. 코드를 짤까? 25분이면 뭘 하나. 환경 세팅만 10분이다. 메일이나 볼까. 메일 47개. 됐다. 2시간 뒤 회의 끝났다. 12시 20분. 점심 먹고 왔다. 1시 30분. 슬랙을 켰다. 42개. 1시간 30분 만에 42개. 계산해봤다. 하루 8시간이면 약 224개. 실제로는 퇴근 후에도 온다. 자기 전까지 치면 300개는 된다. 예전엔 이메일이었다. 하루 한두 번 확인하면 됐다. 지금은 실시간이다. 5분마다 확인 안 하면 불안하다. "나만 그런가?" 팀원들 보면 다들 슬랙 켜놓고 산다. 알림 소리 나면 바로 본다. 나도 봐야 하나?코딩하려고 하면 2시. 드디어 코딩 시간이다. 레거시 리팩토링 작업. 집중이 필요하다. IntelliJ를 켰다. 코드를 읽기 시작했다. "이 로직은..." 띵. 슬랙이다. "파트장님 잠깐 봐주세요" 링크가 있다. 클릭했다. 코드 리뷰 요청이다. 리뷰했다. 10분 걸렸다. 다시 내 코드로 돌아왔다. "아, 뭐 보고 있었지?"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띵. 또 왔다. "프로덕션 에러 확인 부탁드립니다" 로그를 봤다. NullPointerException. 원인을 찾았다. 15분. "수정해서 배포하세요" 답장. 다시 내 코드. "이 메서드가..." 띵띵. 두 개가 동시에 왔다. 포기했다. 진짜 중요한 건 저녁 6시. 팀원들이 하나둘 퇴근한다. "먼저 가겠습니다" "들어가세요" 6시 30분.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슬랙도 조용하다. 이제 코딩한다. 집중한다. 드디어 된다.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끊김 없이 짰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생산적인 시간. 9시 10분. 퇴근 준비. 슬랙을 봤다. 저녁 6시 이후 메시지 3개. 3개. 낮 8시간 동안 200개. 저녁 3시간 동안 3개. "진짜 중요한 메시지는 하루에 몇 개나 될까?" 계산해봤다. 오늘 받은 슬랙 300개 중내가 직접 답해야 하는 것: 15개 시급한 것: 3개 나만 할 수 있는 것: 5개진짜 중요한 건 5개였다. 나머지 295개는 뭐였나. 30대 후배의 말 어제 후배랑 술 마셨다. 35살 시니어 개발자. 잘한다. 실력 있다. "형, 슬랙 알림 다 꺼놨어요" "네?" "DM하고 멘션만 켜놨어요" 충격이었다. "그럼 팀 채널은?" "점심 먹고 한 번, 퇴근 전에 한 번만 봐요" "급한 건 어떡하는데?" "진짜 급하면 전화 와요" "..." "형도 그렇게 하세요" "내가 파트장인데 그래도 되나?" "더 그래야죠. 형이 계속 답장하니까 애들도 물어보는 거예요" "..." 맞는 말이다. 내가 5분 안에 답장하니까 팀원들도 5분 안에 답 기대한다. 악순환이다. 실험 오늘 실험했다. 알림을 껐다. 멘션만 남겼다. 불안했다. 10분마다 슬랙을 켰다. 습관이다. 참았다. 30분에 한 번만 봤다. 급한 건 없었다. 점심 먹고 한 번 봤다. 밀린 메시지 47개. 중요한 건 2개. 10분 만에 처리했다. 오후 3시에 한 번 봤다. 32개. 중요한 건 1개. 놀라운 건 세상은 잘 돌아갔다. 내가 즉답하지 않아도 팀원들은 알아서 했다. 오히려 좋았다. "파트장님 의견 듣고 결정할게요" 대신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가 늘었다. 코딩 시간 알림을 끈 첫날. 오전에 2시간 코딩했다. 끊김 없이. 20년 개발했다. 코딩은 몰입이 중요하다. 15분 집중하면 로직이 보인다. 1시간 집중하면 구조가 보인다. 5분마다 끊기면 영원히 15분을 못 채운다. 겉핥기만 하다 끝난다. 요즘 퇴근 후에 집에서 코딩한 이유가 이거였다. 낮엔 집중을 못 하니까. 근데 이제 낮에도 된다. 알림만 껐을 뿐인데. 파트장의 역할 고민했다. "파트장이 메시지 늦게 확인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아니다. 파트장의 역할은 즉답이 아니다.방향 잡아주기 막힌 거 뚫어주기 의사결정하기 성장 도와주기이걸 하려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슬랙 100개 읽을 시간 말고. 즉답은 주니어도 한다. "스펙 확인했고, 코드 짰고, PR 올렸습니다" 빠르다. 정확하다. 파트장은 다른 걸 해야 한다. "이 방향이 맞나?" "3개월 뒤를 보면?" "기술 부채가 쌓이진 않나?" 이런 생각은 슬랙 알림 띵띵 울릴 때 안 된다. 규칙을 만들었다 팀 회의에서 얘기했다. "슬랙 사용 규칙 만들자"긴급: 전화 또는 멘션 중요: DM 참고: 채널 메시지 잡담: 따로 채널 만들기"슬랙은 실시간 답장 기대하지 않기" "1시간 내 답장 없어도 재촉 안 하기" "급하면 전화하기" 팀원들 반응이 좋았다. "사실 저도 슬랙 스트레스였어요" "알림 때문에 집중이 안 돼요" 다들 불편했던 거다. 말을 안 했을 뿐. 2주 후 규칙 만든 지 2주 됐다. 슬랙 메시지가 줄었다. 하루 평균 300개에서 150개로. 반으로 줄었다. 중요한 건 늘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의 질이 올랐다. "급한데 봐주세요" 가 사라졌다. 코딩 시간이 늘었다. 낮에 3시간은 집중한다. 예전엔 불가능했다. 팀원들 표정도 좋아졌다. "요즘 일하기 편해요" "집중이 잘 돼요" 전화는 늘었나? 아니다. 오히려 줄었다. 진짜 급한 일이 별로 없었던 거다. 다른 팀 파트장 옆팀 파트장이 물어봤다. "요즘 슬랙 적게 쓰네?" "알림 껐어요" "그게 되냐?" "되던데요" "나도 해볼까..." "해보세요. 팀도 편해져요" 2주 뒤에 다시 만났다. "진짜 되네" "그죠?" "근데 처음엔 불안했어" "저도요. 일주일 적응 기간 필요해요" "애들이 자기들끼리 해결하더라" "원래 할 수 있었던 거죠" 우리가 너무 빨리 답해줘서 팀원들이 생각할 기회를 못 가진 거다. 임원의 슬랙 우리 임원은 슬랙을 안 한다. 메일만 한다. 하루 두 번 확인한다. 예전엔 답답했다. "왜 슬랙 안 보세요?" 이제 안다. 저래야 맞다. 임원은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슬랙 100개 읽을 시간에 전략을 짜야 한다. 파트장도 마찬가지다. 코드 짜고 방향 잡을 시간이 필요하다. 슬랙 읽느라 하루 가면 안 된다. 20대의 슬랙 팀 막내가 말했다. "저는 슬랙이 편한데요" "응?" "이메일보다 빠르고 가볍잖아요" 맞다. 그건 맞다. 하지만. "너 하루에 슬랙 몇 개 와?" "음... 한 200개?" "다 읽어?" "대충요. 중요한 것만" "중요한 거 몇 개?" "10개요?" "나머지 190개는?" "그냥... 스쳐 지나가요" 그렇다. 20대는 스쳐 지나간다. 45세는 다 읽는다. 이게 차이다. 세대 차이 30대 중반부터는 슬랙에 피로하다. 40대는 슬랙이 고역이다. 20대는 즉각 반응한다. 40대는 숙고하고 답한다. 20대는 동시에 10개 처리한다. 40대는 하나씩 깊게 판다. 틀린 게 아니다. 다른 거다. 근데 회사는 20대 방식을 요구한다. "빠른 소통" "실시간 협업" 40대는 적응해야 한다. 아니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결론 슬랙 100개. 진짜 중요한 건 5개다. 나머지 95개는정보 공유 단순 확인 리액션 잡담다 필요하다. 하지만 즉각 반응할 필요는 없다. 파트장의 일은 모든 슬랙에 답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5개에 집중하는 거다. 알림을 껐다. 하루 3번 확인한다. 급하면 전화 온다. 코딩 시간이 늘었다.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팀원들도 만족한다. 20년 개발했다. 이제 안다. 빠른 답장보다 깊은 생각이 중요하다.슬랙은 껐다. 근데 이메일이 늘었다. 이것도 줄여야 하나.
- 06 Dec, 2025
1on1 면담에서 진심으로 후배를 칭찬하려고 노력하는 이유
1on1 일정 잡기 월요일 아침이다. 캘린더를 연다. 이번 주 1on1 면담 4건. 김대리, 이대리, 최사원, 박사원. 각 30분씩 잡혀 있다. 솔직히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시간에 코드 한 줄이라도 더 볼 수 있다. 하지만 안 할 수는 없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받는 입장이었다. 그때 우리 파트장은 1on1 시간에 그냥 업무 얘기만 했다. "진행 상황 어때? 일정 괜찮아?" 5분 만에 끝났다. 허탈했다. '이게 1on1이야?' 그래서 다짐했다. 내가 파트장 되면 진짜로 하자.칭찬 준비하기 1on1 전날 밤이다. 집에서 노트북을 켠다. 각 팀원의 최근 커밋 기록을 본다. 코드 리뷰 히스토리도 확인한다. 김대리는 지난주에 레거시 코드 리팩토링했다. 700줄짜리 클래스를 4개로 쪼갰다. "오, 잘했네." 혼자 중얼거린다. 이대리는 신규 API 문서를 엄청 잘 썼다. 예제 코드까지 다 있다. 최사원은 버그를 3시간 만에 찾았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 종일 헤맸던 거다. 박사원은... 음. 좀 고민된다. 성과가 명확하지 않다. 근데 매일 9시까지 남아서 공부한다. 이것도 칭찬할 거리다. "노력하는 모습 보기 좋다" 이건 너무 뻔하다. "최근에 공부하는 거 보니까 성장 속도가 빠르네." 이게 낫다. 노트에 적는다. 내일 면담 때 쓸 거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예전에 그냥 즉흥적으로 칭찬했다가 망한 적이 있다. "요즘 열심히 하는 것 같아." 후배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네..." 진심이 안 느껴졌던 거다. 준비 없이 던진 말은 가볍다.김대리와의 면담 화요일 오후 2시. 회의실에 들어간다. 김대리가 먼저 와 있다. 노트북 들고 약간 긴장한 표정이다. "편하게 앉아." 커피 한 잔 건넨다. "요즘 어때?" 일단 가볍게 시작한다. "바쁘긴 한데 괜찮습니다." 표준 답변이다. "지난주 레거시 리팩토링 봤어." 본론으로 들어간다. 김대리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봤구나' 하는 눈빛이다. "700줄짜리를 쪼갰더라. 어떻게 접근했어?" 이게 중요하다. 그냥 "잘했어" 하면 끝이다. 구체적으로 물으면 다르다. 진짜 봤다는 걸 안다. 김대리가 설명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기능별로 나눌까 했는데요..." 5분 동안 열심히 얘기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그 판단 좋았어. 책임 분리가 명확해졌어." "SRP 원칙 적용한 거 보이더라. 요즘 클린 코드 공부하나?" "네, 퇴근하고 조금씩 보고 있습니다." "효과 있네. 코드에서 보여." 김대리가 웃는다. 진짜 웃음이다. 이게 진심이 전달되는 순간이다. 준비한 게 빛을 발한다. "다만 테스트 코드가 좀 아쉬웠어." 칭찬만 하면 오히려 어색하다. "리팩토링은 좋은데 커버리지가 떨어졌거든." "아... 맞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이해해. 근데 다음엔 테스트부터 보강하고 시작하면 어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칭찬 7, 피드백 3. 이 비율이 적당하다. 면담 끝나고 나가면서 김대리가 말한다. "감사합니다. 파트장님." 표정이 밝다. 이런 게 보람이다.세대 차이의 벽 수요일 오전이다. 최사원과 면담이다. 27살, 입사 2년차. 완전히 다른 세대다. 면담 준비하면서 고민했다. 내가 꼰대처럼 보이면 어쩌지. "요즘 젊은 애들은" 이런 말은 절대 안 한다. 근데 가끔 튀어나올 뻔하다. 최사원이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밝다. 우리 때와는 다르다. "편하게 앉아. 커피?" "전 아아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한겨울에도 아이스다. "요즘 프로젝트 어때?" "재밌어요! 새로운 기술 써보는 게 좋습니다." '재밌다'는 표현을 쓴다. 우리 때는 '배울 게 많다' 했는데. "지난주 버그 찾은 거 봤어." "아, 그거요? 운이 좋았어요." 겸손하다. 근데 진짜 실력이다. "운이 아니야. 로그 추적 방식이 체계적이더라." "네트워크 탭 보면서 하나씩 지워가는 거 어디서 배웠어?" "유튜브요. 요즘 좋은 영상 많아요." 유튜브. 나는 책으로 배웠는데. 세대 차이를 느낀다. 근데 방법이 뭐가 중요한가. "효과적이면 되는 거지. 좋아." "저도 파트장님 코드 리뷰 보면서 많이 배워요." "내 리뷰에서?" "네, 주석 다는 방식이랑 네이밍 센스가 좋으세요." 순간 뿌듯하다. 역으로 칭찬받았다. "고마워. 근데 너도 네이밍은 잘해." "REST API 엔드포인트 설계 보면 직관적이야." 최사원이 활짝 웃는다. "감사합니다!" 이 순간이 좋다. 세대가 달라도 통한다. 진심으로 대하면 전달된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박사원의 고민 목요일 오후다. 마지막 면담이다. 박사원, 입사 1년차. 가장 막내다. 얘는 좀 걱정이다. 성과가 눈에 안 보인다. 회의실에 들어온다. 표정이 어둡다.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괜찮습니다." 거짓말이다. 표정에 다 나온다. "편하게 얘기해. 여긴 평가하는 자리 아니야." "...사실 요즘 좀 힘듭니다." "뭐가?" "다들 너무 잘하세요. 저만 못하는 것 같아요." 신입 특유의 고민이다. 나도 겪었다. "네가 못한다고 생각해?" "네... 김대리님이랑 이대리님 보면..." 비교하고 있다. 위험한 신호다. "걔네 경력이 몇 년인데." "그건 알죠. 근데 저는 1년 됐는데도..." 말을 잇지 못한다. 여기서 "넌 잘하고 있어" 하면 안 된다. 공허하다. 구체적으로 가야 한다. "너 매일 9시까지 남아서 공부하지?" "...네." "뭐 공부해?" "요즘은 알고리즘이랑 자바 심화..." "왜 그걸 하는데?"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코드 짤 때 막히는 게 있어?"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럼 됐어." 박사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지난달에 네가 짠 사용자 인증 로직 봤어." "예외 처리가 꼼꼼했어. 엣지 케이스까지 다 고려했더라." "그건... 그냥..." "그냥이 아니야. 1년차가 그거 생각하기 쉽지 않아." "저도 1년차 때 예외 처리 대충 했거든." "버그 터져서 혼났어. 너는 미리 막았어." 박사원 표정이 조금 풀린다. "그리고 문서화 잘해. 리드미 파일 보면 이해하기 쉬워." "코드만 잘 짜면 뭐해. 남이 못 알아보면 소용없어." "너는 그걸 알고 있어." "..."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건 실력이 늘고 있다는 거야." "작년 이맘때 네 코드랑 지금 비교해봐." "완전 다를 거야." 박사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한 가지만 조언하면." "네." "남이랑 비교하지 마. 어제의 너랑 비교해." "매일 조금씩 나아지면 돼." 진부한 말 같지만 사실이다. 나도 이렇게 배웠다. "알고리즘 공부는 좋은데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회사 일 잘하는 게 먼저야." "네... 감사합니다." 나가면서 박사원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이게 1on1의 진짜 의미다. 업무 점검이 아니다. 사람을 보는 시간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금요일 저녁이다. 이번 주 면담 다 끝났다. 피곤하다. 정신적으로 소모가 크다. 그냥 "잘하고 있어" 하면 10분이면 끝난다. 근데 30분씩 쓴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면. 10년 전 생각이 난다. 내가 대리였을 때다. 당시 파트장은 관심이 없었다. 1on1 해도 형식적이었다. "고생 많아. 계속 잘해봐." 끝이었다.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몰랐다. 어디를 개선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다짐했다. 내가 파트장 되면 다르게 하자. 후배들이 나처럼 표류하지 않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꼰대 소리 듣기 싫다. "요즘 파트장들은 소통이 안 돼." 이런 말 듣고 싶지 않다. MZ 세대랑 일하려면 방식을 바꿔야 한다. 명령하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격려하는 거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진심이 없으면 티가 난다. 형식적으로 하면 역효과다. 그래서 준비한다. 구체적으로 관찰한다. "잘했어"가 아니라. "이 부분이 좋았어" 라고 말한다. 차이는 크다. 후배들 표정이 달라진다. '아, 진짜 봤구나.' 이게 신뢰다. 실패한 적도 있다 작년 일이다. 신입이 한 명 들어왔다. 첫 1on1 면담 때였다. 준비를 덜 하고 갔다. "요즘 적응 잘돼?" "네, 괜찮습니다." "힘든 거 없어?" "없습니다." 대화가 안 이어졌다. 그래서 급하게 말했다. "열심히 하는 거 보기 좋아." 신입이 어색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분위기가 싸했다. 면담 끝나고 반성했다. '내가 준비를 안 했구나.' 얘가 뭘 했는지 몰랐다. 그냥 대충 칭찬했다. 들통났다. 다음 면담은 달랐다. 일주일 동안 지켜봤다. 코드 커밋 5개 확인했다. 질문한 내용 3개 기억했다. "지난주 로그인 기능 구현 봤어." "유효성 검사 로직 깔끔하더라." 신입 표정이 달라졌다. "아, 봐주셨어요?" "응, 다만 비밀번호 암호화 부분은..." 대화가 이어졌다. 자연스러웠다. 준비의 차이였다. 칭찬은 공짜가 아니다. 관심과 시간이 필요하다. 세대 차이 극복하기 솔직히 어렵다. 요즘 애들 문화를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워라밸, 수평적 문화, 즉각적 피드백. 우리 때와 완전히 다르다. 처음엔 답답했다. '이 정도 야근이 뭐가 문제야.' 근데 생각을 바꿨다. '시대가 변했구나.' 억지로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얘네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 면담할 때 물어본다. "너는 일할 때 뭐가 제일 중요해?" 대답이 다양하다. "성장이요." "워라밸이요." "좋은 팀 분위기요." 다 다르다. 그럼 그에 맞춰 대화한다. 성장을 원하면 학습 기회를 준다. "다음 프로젝트에서 새 기술 써볼래?" 워라밸을 원하면 일정 조율을 해준다. "이번 주 급한 거 아니니까 여유 있게 해." 분위기를 원하면 소통을 늘린다. "점심 같이 먹을래?"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1on1이 필요하다. 개별적으로 알아가는 시간이다. 임원들의 압박 한 달 전 임원 미팅이 있었다. "1on1 면담이 생산성에 도움이 되나?" 질문이 날아왔다. "네, 됩니다." "수치로 보여줘." 난감했다. 이걸 어떻게 수치로 보여주나. "이직률이 낮아졌습니다." "작년에 우리 팀 이직자 0명이었습니다." "다른 팀은 평균 2명이었고요." 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1on1 때문이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영향은 있다고 봅니다." "팀원들 만족도 조사에서도 우리 팀이 높았고요." 겨우 넘어갔다. 사실 수치로 증명하기 어렵다. 눈에 안 보이는 효과다. 팀 분위기, 신뢰, 동기부여. 이런 건 숫자로 못 재는데. 중요하다. 이직률 0명이 우연일까? 아니다. 후배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돈만이 아니다. 인정받지 못해서. 성장하지 못해서. 소통이 안 돼서. 1on1이 이걸 해결한다. 힘들 때도 있다 솔직히 매번 즐겁진 않다. 면담 준비하는 게 귀찮을 때도 있다. '오늘은 그냥 대충 할까.' 근데 안 한다. 시작하면 책임감이 생긴다. 한 번 대충 하면 다음에도 대충 한다. 후배들도 느낀다. '아, 형식적이구나.' 그럼 의미가 없다. 가끔 후배가 같은 고민을 반복할 때도 있다. "저 아직도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지난달에도 같은 얘기 했다. 또 해야 한다. "넌 잘하고 있어. 이번 주에..." 인내심이 필요하다. 근데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자신감은 하루아침에 안 생긴다. 계속 확인해줘야 한다. 보람 느낄 때 지난달 있었던 일이다. 김대리가 슬랙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파트장님, 감사합니다." "?" "제가 다른 회사에서 러브콜 받았는데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가는 건가?' "거절했습니다." "왜?" "여기서 더 배우고 싶어서요." "파트장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성장하는 게 느껴져요." 울컥했다. 연봉이 더 높았을 텐데. 여기 남았다. 내 면담이 도움이 됐구나. 이럴 때 보람을 느낀다. 후배가 성장하는 게 보일 때. 코드가 나아질 때. 자신감이 생길 때. 이게 파트장 역할이다. 코드만 잘 짜는 게 아니다. 사람을 키우는 거다. 앞으로도 다음 주 월요일이다. 또 1on1 일정이 잡혔다. 4건. 준비해야 한다. 커밋 기록 볼 거고. 코드 리뷰 확인할 거고. 칭찬할 포인트 찾을 거다. 귀찮을까? 아니다. 이제 루틴이다. 습관이 됐다. 후배들 표정 보는 게 좋다. 면담 끝나고 밝아지는 얼굴. "감사합니다, 파트장님." 이 한마디가 힘이 된다. 나도 언젠가 임원이 될 거다. 그럼 1on1 못 할 수도 있다. 그때까지는 계속할 거다. 진심으로. 꼰대 소리 안 들으려고. 후배 성장 돕고 싶어서. 그리고 솔직히. 나도 배운다. 후배들 얘기 들으면서. 요즘 기술도 알게 되고. 새로운 관점도 얻고. 1on1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서로 성장하는 시간이다.오늘도 면담 준비한다. 30분이 아깝지 않다.
- 05 Dec, 2025
MZ 후배들의 칼같은 퇴근 시간, 부럽고 야속한 이유
6시 10분 퇴근 시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퇴근 시간은 아니다. 신입 김대리가 가방을 챙긴다. 6시 5분이다. 노트북 덮고, 슬랙 상태 '자리비움'으로 바꾸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선이 깔끈하다. 연습한 것처럼.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내 대답도 연습한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제 익숙하다. 3년 전만 해도 달랐다. 6시에 가방 챙기는 후배 보면 속으로 '저게 뭐야' 했다. 입 밖으로는 안 냈지만. 지금은 그냥 당연하다. 아니, 당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창밖을 본다. 아직 해가 있다. 6월이니까. 나는 9시쯤 나갈 것이다. 특별한 일 없어도. 습관이다. 나 때는 2005년이었다. 신입사원 박시니어. 첫 출근. 선배가 말했다. "우리 팀은 10시 출근 10시 퇴근이야. 참고로 오전 10시, 저녁 10시." 웃으면서 했던 말인데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로 밤 10시에 퇴근했다. 매일. 금요일도. 야근 수당? 없었다. 대신 야식은 나왔다. 치킨이나 족발. 밤 9시쯤 시켜 먹으면서 '이거라도 건지는 거지' 했다. 주말 출근도 많았다. 특히 배포 있는 주는 거의 확정. 토요일 오전에 나와서 배포하고, 모니터링하고, 오후 5시쯤 퇴근. 그게 일상이었다. 불만? 당연히 있었다. 근데 다들 그랬다. 선배들도, 동기들도. '원래 그런 거' 였다.그렇게 10년을 했다. 20대가 다 갔다. 연애? 주말에 했다. 결혼? 30 넘어서 했다. 아이? 35에 낳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깝다. 그 시간. 근데 그땐 몰랐다. 다들 그러니까. 변화의 시작 2018년쯤부터였나. 신입들이 달랐다. 면접 볼 때부터 물어봤다. "야근 많나요?" "주말 출근 있나요?" "워라밸은 어떤가요?" 처음엔 당황했다. '이걸 면접에서 물어?' 싶었다. 근데 점점 많아졌다. 이제는 안 물어보는 애가 이상한 정도. 그리고 입사하면 진짜로 6시에 퇴근했다. 일 끝나면. 아니, 일 안 끝나도. "내일 하면 안 되나요?" 처음 들었을 때 할 말이 없었다.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급한 거 아니면. 팀장들 모임에서 얘기 나왔다. "요즘 애들 야근 안 하더라." "주말 출근 부탁하면 거절해."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다들 비슷했다. 불만 반, 부러움 반. 부럽다 솔직히 부럽다. 김대리는 저녁 7시면 헬스장 간다. 주 3회. 몸도 좋다. 나는 헬스장 등록만 3번 했다. 한 번도 석 달 못 채웠다. 이과장은 퇴근하고 영어 학원 다닌다. 회사 돈으로. 근데 진짜 실력 늘었다. 지난번 화상회의 때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거 봤다. 나보다 잘한다. 최주임은 주말마다 등산 간다. SNS에 사진 올린다. 정상에서 찍은 셀카. 맑은 눈. 나는 주말에 소파에서 넷플릭스 본다. 아니면 잔다.부럽다. 20대를 제대로 사는 것 같아서. 나는 20대를 회사에 줬다. 돌려받은 건 경력과 연봉. 나쁘지 않다. 근데 가끔 아깝다. 지금 김대리 나이 때 나는 뭐 했나. 코딩하고, 야근하고, 치킨 먹고. 그게 다였나. 야속하다 근데 야속하기도 하다. 프로젝트 데드라인 코앞인데 6시에 퇴근하는 거 보면. 솔직히 화난다. 참는다. 티 안 낸다. 근데 속으로는 '저게 뭐야' 한다. "내일까지인데 오늘 좀 더 하면 안 돼?"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요. 내일 아침 일찍 와서 하겠습니다." 약속. 친구 만나는 거래. 급한 것도 아니고. 참았다. '내가 꼰대가 되는 건가' 싶어서. 근데 다음 날 아침. 10시에 출근했다. 일찍 온다며? 코어타임이 10시니까 지각은 아니래. 그날 저녁에 내가 야근했다. 12시까지. 혼자. 다음 날 김대리한테 말했다. "어제 내가 마무리했어." "아, 감사합니다. 제가 했어야 하는데."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녁 6시 10분. 퇴근했다. 역시. 내가 틀렸나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야근한 20년. 그게 맞았나. 회사는 내게 연봉 줬다. 경력 줬다. 파트장 직함 줬다. 공정한 거래 아닌가. 근데 내 20대는 안 줬다. 건강도 안 줬다. 작년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나왔다. 허리디스크도 있다. 아내한테 물어봤다. "당신은 어때? 요즘 젊은 애들." "부러워.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어." "우리 때랑 다르지?" "다르지. 근데 걔네가 맞는 것 같아."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가 틀렸던 건가. 아니면 시대가 바뀐 건가. 파트장의 딜레마 요즘 고민이다. 팀원 8명. 반은 MZ. 반은 30대 후반. MZ는 칼퇴근. 30대는 눈치 본다. 어정쩡하게. 박차장이 물어봤다.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6시 퇴근." "나쁘지 않지. 일 끝나면." "근데 다 같이 있어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때는 부탁해야지." "부탁하면 거절하던데요." 할 말이 없었다. 관리자로서는 난감하다. 프로젝트는 돌아가야 하는데, 강제할 수도 없고. 근데 개발자로서는 이해한다. 나도 6시에 퇴근하고 싶다. 이게 파트장의 딜레마다. 세대 차이 지난주 회식 때였다. 김대리가 물어봤다. "팀장님은 왜 매일 늦게 퇴근하세요?" "일이 있어서." "내일 해도 되는 일 아닌가요?" 순간 뜨끔했다. 솔직히 맞는 말이었다. "습관이야. 오래 된." "불편하지 않으세요?" "익숙해서 안 불편해." 거짓말이었다. 불편하다. 매일. 이과장이 끼어들었다. "저희 세대는 달라요. 일은 일, 삶은 삶." "부럽네." "팀장님도 하시면 되잖아요." 안 된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안 된다. 바뀌려고 노력 중 작심삼일을 여러 번 했다. '이번 주는 7시에 퇴근하자' - 화요일에 포기. '주말은 쉬자' - 토요일 오전에 출근. '연차 다 쓰자' - 올해도 5일 남았다. 12월인데. 안 된다. 몸이 안 움직인다. 근데 조금씩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후배들 6시 퇴근할 때 '잘 가' 한다. 진심으로. 금요일엔 먼저 말한다. "주말 출근 없으니까 푹 쉬어." 회의 시간도 줄였다. 1시간 회의 30분으로. 30분 회의 15분으로. 급하지 않은 슬랙은 '내일 답장해도 돼' 라고 쓴다. 작은 변화지만 변화다. 인정하는 중 받아들이기로 했다. MZ의 칼퇴근. 그게 맞다. 우리가 틀렸다. 일과 삶의 균형. 듣기만 해도 좋다. 나도 하고 싶다. 부럽고 야속한 감정. 그게 내 문제다. 걔네 문제 아니다. 바뀌려고 노력 중이다. 천천히. 어제는 8시에 퇴근했다. 9시보다 1시간 빨랐다. 오늘은 7시 반 목표다. 언젠가는 나도 6시에 퇴근할까. 모르겠다. 근데 해보려고 한다. 후배들이 부럽다. 솔직히. 많이. 그래도 괜찮다. 부러워하는 거. 인정하는 게 시작이니까.오늘도 9시 퇴근. 목표는 7시 반이었는데. 내일은 진짜 해보자. 아마도.
- 04 Dec, 2025
30대는 밤새 코딩했는데, 45세 이후는 10시 반이면 지쳐
10시 반이면 지친다 새벽 3시의 추억 30대 때는 가능했다. 새벽 3시까지 코딩하고 4시간 자고 출근. 점심에 캔커피 한 잔 마시면 또 밤까지 버텼다. 지금은 10시 반만 넘으면 모니터가 흐릿해진다. 눈이 먼저 포기한다. 키보드 두드리는 손가락도 느려진다. 어제 긴급 배포가 있었다. 밤 11시까지 작업했다. 집에 가서 씻고 누웠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은 새벽 2시에나 들었다. 오늘 아침 8시 알람이 울렸다. 몸이 안 일어났다. 5분만 더, 5분만 더 하다가 9시에 눈 떴다. 회사 도착은 10시.점심 먹고 오후 회의. 1시간 내내 졸았다. 파트원이 발표하는데 내용이 하나도 안 들어왔다. 커피를 세 잔 마셨다. 소용없었다. 저녁 6시. 드디어 코딩할 시간. IDE를 켰다. 화면을 봤다. 집중이 안 됐다. 30분 동안 10줄 짰다. 지웠다. 다시 짰다. 체력은 거짓말을 안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44세와 45세의 차이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 주말에 농구하던 걸 끊었다. 월요일에 출근 못 할 것 같아서. 계단 오르면 숨이 찬다. 우리 사무실은 7층인데 엘리베이터가 느려서 가끔 걸어 올라갔었다. 이제는 무조건 엘리베이터다. 점심 먹고 나면 졸립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요즘은 화장실 가서 변기 뚜껑 닫고 10분 눈 붙인다. 타이머 맞춰놓고. 안 그러면 오후를 못 버틴다.후배 김대리가 물었다. "파트장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안 좋으신데." "어, 그래? 괜찮아. 어제 좀 늦게 잤어." "요즘 야근 많으시죠? 저희가 더 할 수 있는데." 고맙긴 한데. 내가 안 하면 불안하다. 그게 더 문제다. 야근의 대가 월요일에 야근했다. 화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온몸이 뻐근했다.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파스를 붙이고 출근했다. 화요일에 또 야근했다. 수요일은 하루 종일 멍했다. 회의 때 내가 뭔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점심 메뉴도 기억 안 난다. 수요일 저녁에 와이프가 말했다. "여보, 요즘 너무 피곤해 보여. 좀 쉬어." "다음 주 배포 끝나면 쉴게." "지난주에도 그렇게 말했잖아." 맞는 말이다. 목요일 오후 3시. 갑자기 어지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휘청했다. 벽을 짚었다. 옆자리 이대리가 놀라서 물었다. "파트장님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잠깐 어지러웠어." "병원 가보세요." "아니야,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9시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았다. 팀원들은 다 퇴근했다. 6시 반에. 칼퇴했다. 나는 아직 코딩 중이다. 리팩토링하고 있다. 이 코드가 맘에 안 든다. 3년 전에 내가 짠 건데 지금 보니까 엉망이다. 시계를 봤다. 9시 10분. 배가 고프다.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었다. 사무실 서랍에 초코바가 있다. 꺼내서 먹었다.모니터가 흐릿해진다. 눈을 비볐다. 코드가 안 보인다. 아니다. 보이는데 이해가 안 된다. 내가 뭘 짜고 있었지? 저장하고 껐다. 집에 가야겠다. 일어서려는데 다리에 힘이 없다. 의자를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가방을 챙겼다. 노트북을 넣었다. 무겁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누가 봐도 피곤해 보인다. 45세 개발자의 얼굴이다. 30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30대 때는 체력이 자산인 줄 몰랐다. 무한정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밤새 코딩하고 아침에 헬스장 가고 저녁에 술 마시고. 다음 날 멀쩡했다. 35세까지는 그랬다. 36세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술 마신 다음 날 힘들어졌다. 38세에는 야근하면 이틀이 갔다. 40세 넘어서는 주말에 쉬어야 월요일을 버텼다. 42세에 건강검진 받았다. 의사가 말했다. "혈압이 높네요. 스트레스 받으세요?" "개발자인데요." "아, 그러시구나. 운동 좀 하세요." 운동할 시간이 어딨나. 43세에 허리가 아팠다. 디스크 초기래. 물리치료 3개월 받았다. 지금도 가끔 아프다. 의자에 오래 앉아있으면. 44세에는 눈이 침침했다. 안경을 바꿨다. 도수를 올렸다. 모니터 보는 시간을 줄이라고 했다. 불가능하다. 45세인 지금. 10시 반이면 지친다. 그래도 코딩은 해야 하는데 관리 업무만 하면 편할까. 아니다. 더 답답하다. 회의만 하고, 보고서만 쓰고, 일정만 관리하면. 그게 개발자인가. 파트장이라는 직함이 붙었지만 나는 개발자다. 코드를 짜야 개발자다. 근데 체력이 안 따라준다. 이게 문제다. 오전에는 회의. 오후에는 이메일 답장하고 코드리뷰하고 1on1 하고. 실제로 코딩할 시간은 저녁 이후다. 그때는 이미 지쳐있다. 주말에 하면 되지 않냐고? 주말에는 가족이 있다. 아들 학원 데려다주고 딸 학교 행사 가고 와이프랑 마트 가고. 그것도 해야 한다. 틈틈이 기술 공부도 해야 한다. 요즘 애들이 쓰는 거 모르면 뒤처진다. Next.js도 봐야 하고 Rust도 봐야 하고 Kubernetes도 제대로 공부해야 하고. 시간은 24시간인데 해야 할 건 48시간 치다. 체력은 12시간 치다. 현실을 인정하는 중 어제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유튜브를 봤다. 개발자 유튜버가 말했다. "40대 개발자는 체력 관리가 중요합니다." 맞는 말이다. 근데 어떻게 관리하나. 운동? 시간이 없다. 식단 관리?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이고 저녁은 편의점이다. 수면? 11시에 자면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새벽 1시에 자면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야근을 줄이는 것뿐이다. 근데 그러면 일이 안 끝난다. 팀원들한테 더 시킬 수도 없다. 다들 자기 일도 바쁘다. 결국 나한테 돌아온다. 파트장이니까. 책임자니까. 그래서 야근한다. 체력이 딸려도 한다. 다음 날 피곤해도 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 근데 이게 맞나 싶다. 45세에 이렇게 살아야 하나. 50세 되면 어떻게 하나. 55세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나. 답은 없다. 알고 있다. 오늘도 10시 반 지금 시각 10시 27분. 졸립다. 코드를 짜고 있는데 집중이 안 된다. 이 함수를 왜 짜고 있는지 까먹었다. 위로 스크롤해서 주석을 읽었다. 아, 맞다. 이거 하고 있었지. 다시 코드를 짠다. 5줄 짰다. 컴파일 에러. 오타다. 고쳤다. 다시 컴파일. 성공. 테스트 코드를 돌렸다. 실패. 로직이 틀렸다. 어디가 틀렸지. 디버거를 켰다. 한 줄씩 따라갔다. 아, 여기다. 고쳤다. 다시 테스트. 성공. 시계를 봤다. 10시 43분. 16분 동안 한 일이 이게 다다. 30대 때는 5분이면 끝났을 일. 저장하고 푸시했다. 노트북을 껐다. 가방을 챙겼다. 내일도 10시 반이면 지칠 것이다. 모레도. 다음 주도. 그래도 출근한다. 코딩한다. 개발자니까. 45세 개발자의 하루는 그렇다.체력은 거짓말을 안 한다. 45세의 10시 반은 30대의 새벽 3시보다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