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5년차, 아내가 전업주부인 세상은 여전한가

결혼 15년차, 아내가 전업주부인 세상은 여전한가

월급날의 무게 월급날이다. 통장에 650만원이 찍혔다. 세전 9500만원의 12분의 1. 웃긴 건 이 돈이 내 돈이 아니라는 거다. 관리비 62만원, 대출 이자 180만원, 생활비 250만원, 학원비 120만원. 계산기 두드리면 남는 건 고작이다. 아내한테 카톡 보냈다. "들어왔어." 답장은 없다. 읽음 표시만. 15년 전엔 이렇지 않았다. 맞벌이였으니까. 아내도 개발자였다. 우리 연봉 합치면 1억 2천이었다. 둘 다 야근하고, 주말엔 같이 카페 가서 코딩했다. 아들 낳고 1년 후 아내가 말했다. "나 그만둘까 봐." 나는 대답 못 했다. 육아휴직 끝나고 복직했는데 아이가 아프면 늘 아내가 조퇴했다. 회의 중에 어린이집에서 전화 오면 아내 얼굴이 굳었다. 6개월 버티다가 퇴사했다. 그때부터다. 내가 가족의 '전부'가 된 게.커리어 선택이 내 것이 아닐 때 작년에 스타트업에서 연락 왔다. CTO 제안이었다. 연봉은 비슷한데 스톡옵션 있다고. 기술도 재미있어 보였다. Rust, Kubernetes, 요즘 핫한 거 다 쓴다고. 저녁에 아내한테 얘기했다. "스타트업에서 제안이 왔어." 아내 표정이 굳었다. "망하면?" 나는 말 못 했다. 스타트업 5년 생존율이 30%라는 거. 우리 둘 다 안다. "애들 학원비만 해도 120이야. 대출 이자는 180이고." 맞는 말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거절했다. 메일 쓰는 데 2시간 걸렸다. "가족 사정상" 이라고 썼다. 진짜 이유는 안 썼다. '내가 무너지면 집이 무너져서'라고. 40대 후배가 그 회사로 갔다. 지금 잘 되고 있다. 페이스북에 신기술 자랑한다. 부럽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대기업 IT 자회사에서 20년째다. 안정적이다. 망하진 않는다. 그런데 재미는 없다. 레거시 코드 유지보수하고, 회의하고, 보고서 쓴다. 이게 내가 원한 개발자 인생인가. 모르겠다.8명의 무게 파트장 달았다. 팀원 8명. 이게 영광인지 족쇄인지. 매주 월요일 1on1 한다. 8번. 한 명당 30분. 4시간. 오전이 사라진다. 28살 신입이 물었다. "파트장님, 저 이직 고민인데요." 속으로 생각했다. '가라. 젊을 때 가.' 입으로는 다르게 말했다. "왜? 여기 안 좋아?" "아뇨. 그냥 새로운 거 해보고 싶어서요." 부럽다. 이직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거면. 나는 '할 수 없어서' 못 하는데. 32살 기혼 팀원도 고민 상담했다. "파트장님은 어떻게 하세요? 커리어랑 가정." 나는 웃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다. '선택 못 해. 가정 때문에.' 그런데 그 말이 안 나왔다. 팀원들 연봉 협상도 내가 한다. 올해 인상률 3%. 8명 중 6명이 불만이다. 당연하다. 나도 불만이니까. 상사한테 얘기했다. "팀원들 사기가 떨어져요." "알아. 그래도 예산이 이래." 결국 내가 중간에서 샌드백이다. 위에서는 "팀 관리 잘해", 아래에서는 "연봉 너무 적어요". 코딩이라도 하면 스트레스 풀리는데 그럴 시간도 없다.퇴근길의 계산 퇴근한다. 8시 30분. 야근 아니라고 한다. 우리 팀 기준으로. 지하철 탄다. 앉았다. 핸드폰 본다. 요즘 AI 개발자가 핫하다는 기사. 연봉 2억. 나는 9500. 반도 안 된다. 그런데 AI 공부하려면 퇴근 후에 해야 한다.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가능은 하다. 20대 때는 했으니까. 지금은 못 한다. 체력이 안 된다. 새벽에 공부하면 다음 날 회의에서 졸고, 그러면 팀원들한테 '파트장님 요즘 피곤하세요?' 소리 듣는다. 그럼 주말에? 토요일은 아들 학원 픽업. 일요일은 가족 외식. 이게 15년간 패턴이다. 아내한테 말했다. 한 달 전에. "나 주말에 공부 좀 해야 할 것 같아." "뭐 공부?" "AI. 요즘 트렌드거든." 아내가 웃었다. 비웃는 건 아니었다. 그냥 피곤해 보이는 웃음. "당신 주말에도 노트북 보잖아. 그것도 모자라?" 할 말이 없었다. 맞으니까. 집에 도착했다. 9시 40분. 아이들은 자고 있다. 아내가 밥 데워뒀다. 혼자 먹는다. TV 켠다. 뉴스 나온다. "2024년 평균 퇴직 연령 53세." 나는 45세. 8년 남았다. 8년 후에 뭐 하지. 은퇴하면 수입 제로다. 아내는 15년간 경력 단절. 애들은 고등학생, 중학생. 돈 제일 들어갈 때. 계산기 두드렸다. 대학 등록금, 생활비, 노후 자금. 최소 5억은 있어야 한다. 지금 모은 돈? 1억 2천. 부족하다. 많이. 대학 동기 모임 분기별로 만난다. 대학 동기 5명. 다들 컴공 출신. 한 명은 임원. 연봉 1억 8천. 두 명은 창업. 한 명은 대박, 한 명은 망해서 재창업 중. 나머지 한 명은 프리랜서. 연 매출 2억. 나는? 대기업 자회사 파트장. 9500. 술 마시면서 물었다. 임원 된 친구한테. "형은 개발 아예 안 해?" "못 하지. 미팅이 하루에 8개야." "후회 안 해?" "후회? 돈은 두 배인데."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눈은 안 웃었다. 창업 친구한테 물었다. "너는 좋겠다. 하고 싶은 거 하잖아." "좋긴. 3개월째 월급 못 받았어. 투자 받으려고 IR 30번 넘게 했고." "그래도 네 선택이잖아." "선택? 빚이 5억이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다들 힘들다. 다만 힘든 방향이 다를 뿐. 집 가는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뭐가 힘들지. 가족 때문에 선택지가 없는 게 힘들다. 도전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게. 망해도 되는 판에 혼자 있었으면. 아니다. 그런 생각 하면 안 된다. 아내한테 카톡 보냈다. "조금 있다 도착해." 읽음. 답장 없음. 자는 것 같다. 아내의 시간 주말 아침이다. 10시. 늦잠 잤다. 거실 나왔다. 아내가 설거지한다. 아이들은 학원 갔다. "어제 늦었네." 아내가 말했다. "응. 동기 모임." "요즘 피곤해 보여." "괜찮아." 괜찮지 않다. 둘 다 안다. 커피 내렸다. 둘이 마신다. 아내가 물었다. "회사 일 재미있어?" "글쎄." "이직 생각은?" "있지. 근데..." 말을 못 했다. '당신 때문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왔다. 삼켰다. 아내가 말했다. "내가 미안해." "뭐가?" "일 그만둔 거." 나는 고개 저었다. "아니야. 선택한 거잖아. 우리 둘 다." 그런데 진심인지 모르겠다. 15년 전에 아내가 퇴사할 때 나는 찬성했다. "그래, 아이가 중요하지." 그게 진심이었나. 아니면 '어차피 내 연봉이 더 높으니까' 였나. 아내가 계속 일했으면 지금 어땠을까. 맞벌이 연봉 1억 5천. 리스크 분산. 나도 자유롭게 이직하고, 도전하고. 그런데 그러면 아이들은? 둘 다 야근하면 누가 돌봐. 학원 픽업은? 아플 때는? 결국 누군가는 포기해야 했다. 아내가 했다. 그게 전부다. "당신 때문 아니야." 내가 말했다. "알아." 아내가 웃었다. "그냥 가끔 생각해. 나도 계속 개발했으면 어땠을까." 나도 가끔 생각한다. 아내가 계속 개발했으면 나는 어땠을까. 다음 15년 회사에서 임원 승진 대상자 명단 돌았다. 내 이름 있다. 승진하면 연봉 1억 2천. 그런데 개발은 못 한다. 완전히 관리직. 전략 기획, 예산 편성, 임원 회의. 팀원들은 축하한다. "파트장님 임원 되시겠네요!" 웃으면서 답했다. "아직 몰라." 사실 확정이다. 나이, 연차, 성과. 다 맞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하고 싶지 않다. 임원 된 선배한테 물었다. "형, 임원 생활 어때요?" "돈은 좋지. 근데 코드는 진짜 못 봐. 볼 시간도 없고, 보면 이해도 안 돼." "후회는?" "후회? 그런 거 할 여유 없어. 애 둘 대학생이거든." 다 똑같다. 돈 때문에 못 그만둔다. 나도 마찬가지다. 임원 안 하면? 파트장으로 5년 더. 그러다 권고사직. 50살에 짤리면 갈 데가 없다. 임원 하면? 연봉 1억 2천. 은퇴까지 10년. 그동안 3억 모은다. 부족하지만 버틸 수는 있다. 선택지가 없다. 가족이 있으니까. 저녁에 아내한테 말했다. "나 임원 승진 대상자래." "진짜? 축하해!" "응..." "왜? 안 좋아?" "아니. 좋지. 당연히." 거짓말이다. 좋지 않다. 그런데 거절할 수도 없다. 아내가 물었다. "연봉 얼마야?" "1억 2천." "와. 좋네." 좋다.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는 모르겠다. 15년차의 답 결혼 15년. 아내 전업주부. 이게 잘못된 선택이었나. 모르겠다. 아이들은 잘 자랐다. 아들은 수학 전국 30등. 딸은 피아노 콩쿨 금상. 아내가 케어했다. 나는 못 했다. 시간이 없었으니까. 집은 안정적이다. 대출 있어도 갚는 중. 밥은 매일 따뜻하게 있고. 빨래는 항상 돼 있고. 나는? 개발자로서는 정체됐다. 관리자로서는 성장했다. 가장으로서는 책임 다했다. 행복한가. 모르겠다. 불행한가. 그것도 모르겠다. 그냥 살고 있다. 가족 먹여 살리면서. 이게 45살 기혼 개발자의 현실이다. 20대 때는 상상 못 했다. '커리어'가 '내 것'이 아니게 될 줄. 모든 선택에 가족이 변수로 들어올 줄. 후회하냐고? 모르겠다.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이 할 것 같다. 왜냐면 나는 겁쟁이니까. 리스크 못 지는. 혼자였으면 달랐을까. 스타트업도 가고, 창업도 하고, 망해도 다시 일어서고. 그런데 나는 혼자가 아니다. 15년 전에 선택했다. 가족을. 그래서 오늘도 출근한다. 회의하고, 코드 리뷰하고, 보고서 쓴다. 임원 승진 준비한다. 연봉 1억 2천 받으려고. 이게 책임이다. 한 가정의 기둥으로서. 무겁다. 가끔 버거울 때도 있다. 그래도 내려놓을 수는 없다. 왜냐면 나 말고는 없으니까. 이 집을 떠받치는 사람이. 월급날이 돌아온다.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통장에 돈이 찍힌다. 그리고 사라진다. 관리비, 대출, 생활비, 학원비. 남는 건 없다. 그래도 괜찮다. 이게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결혼 15년차, 아내 전업주부, 연봉 9500. 이게 2024년 한국 40대 개발자의 평범한 무게다.

칠순 부모님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

칠순 부모님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

토요일 오전 10시 일어났다. 토요일이다. 아내가 부산하다. "오늘 부모님 댁 가는 거 알죠?" 안다. 달력에 표시해뒀다.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 토요일. 아들이 거실에서 게임 중이다. 딸은 아직 잔다. "야, 11시까지 준비해." "에이 아빠, 꼭 가야 돼?" 가야 한다. 내가 45살 때까지 내 부모님한테 했던 질문이다. 차에 짐 실었다. 과일 두 박스, 건강식품, 엄마 좋아하시는 한과. 25만원 들었다. 매달 이렇다. 아내가 김밥 쌌다. "점심 때 되면 배고프시잖아요." 고맙다. 근데 엄마가 또 밥 차려놓으셨을 거다.차 안 1시간 고속도로 탔다. 1시간 거리다. 아들이 에어팟 끼고 있다. 딸은 틱톡 본다. "야, 할머니 할아버지 뵈면 인사 잘 해." "네." 대답은 하는데 눈은 폰이다. 우리 세대는 달랐다. 차 안에서 부모님이 "저기 봐" 하면 봤다. 지금 애들은 폰이 세상이다. 아내가 옆에서 말한다. "어머님 요즘 허리 안 좋으시대요." 안다. 지난주에 전화로 들었다. "병원 모시고 가야 하나..." "이번 주는 안 되고, 다음 주 평일에..." 평일에. 회사 휴가 써야 한다. 연차 17개 남았다. 아껴야 한다. 애들 방학 때도 써야 하고. 부모님이 아프시면 내가 간다. 형은 미국에 있다. 5년째 못 왔다. 명절 때 전화만 한다. 그래서 다 내 몫이다.부모님 댁 도착했다. 30평 아파트. 30년 사셨다. 초인종 눌렀다. 엄마가 나오셨다. "어머, 왔어?" 아빠는 안방에 계신다. TV 본다. 요즘 거동이 불편하시다. "아버지, 왔어요." "그래, 왔나." 시선은 TV다. 트로트 프로그램이다. 엄마가 상 차리신다. 김밥 가져왔는데 이미 음식이 가득이다. 불고기, 잡채, 전, 나물 반찬 여섯 가지. "엄마, 이거 언제 준비하셨어요?" "새벽부터 했지." 새벽부터. 칠순 넘으신 분이. 우리 보려고. 가슴이 먹먹하다. 아들 딸이 젓가락 든다. 먹는다. 맛있다고 한다. 엄마가 웃으신다. "많이 먹어라." 애들은 10분 먹고 폰 본다. 엄마 표정이 조금 굳는다. 내가 말한다. "야, 폰 그만 봐." "할머니 댁에서는 예의 좀 지켜." 아들이 툴툴거린다. 딸은 모른 척한다. 30년 전, 내가 똑같았다. 할머니 댁 가서 심심해했다. 빨리 가고 싶어 했다. 지금 엄마가 우리 할머니였다. 돌고 도는 거다. 오후 2시 아빠랑 얘기한다. "요즘 회사 어떠냐." "그냥 그렇죠." "임원은 언제 되냐." 또 그 얘기다. 아빠는 임원 되는 게 중요하시다. 50년 전 기준이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 안다. 올해 안에 결정 난다. 되면 1억 넘는다. 안 되면 이 회사 10년 더 다녀야 한다. 근데 임원 되면 개발 못 한다. 그게 싫다. 아빠는 이해 못 하신다. "임원 되면 좋은 거 아니냐." "뭐가 싫어." 설명할 수 없다. 세대가 다르다. 아빠 세대는 직급이 전부였다.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올라가는 게 성공이었다. 우리 세대는 다르다. 직급보다 뭘 하는지가 중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근데 아들 세대는 또 다르다. 걔는 유튜버 되고 싶다고 한다. 세 세대가 한 집에 앉아 있다. 각자 다른 세상에 산다.엄마와 부엌에서 설거지 도왔다. 엄마가 말리신다. "괜찮아, 내가 할게."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한다. 엄마가 옆에서 닦는다. "너 요즘 힘들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얼굴이 피곤해 보인다." 거울 안 봐도 안다. 피곤하다. 매일 피곤하다. "회사 일이 좀 많아요." "몸 챙겨라. 건강이 최고다." 이 말을 몇 번 들었나. 30년은 들었다. 예전엔 잔소리였다. 지금은 걱정이다. 엄마가 물었다. "우리 너무 짐 되나?" 심장이 뜁니다. "무슨 소리세요." "한 달에 한 번도 힘들지?" 힘들다. 솔직히 힘들다. 토요일 오전 일어나서 '오늘 쉬고 싶다' 생각한다. 근데 할 수 없다. 엄마는 나 때문에 70평생 사셨다. 학교 보내시려고, 대학 보내시려고, 결혼 시키시려고. 이제 내 차례다. "아니에요. 자주 올게요." 거짓말이다. 자주는 못 온다. 한 달에 한 번도 빠듯하다. 엄마는 안다. 표정으로 안다. "고맙다." 그 말에 눈물 날 뻔했다. 오후 4시 돌아가려고 짐 챙긴다. 엄마가 또 짐을 싸주신다. 반찬 통 다섯 개. 과일 한 박스. 김 세 봉지. "엄마, 이거 너무 많아요." "가져가. 애들 먹여." 차 트렁크 열었다. 올 때보다 짐이 더 많다. 항상 그렇다. 아빠가 나오셨다. 지팡이 짚고. "조심히 가거라." "네, 아버지." 차에 탔다. 시동 걸었다. 백미러로 부모님 보인다. 손 흔드신다. 작아 보인다. 언제 이렇게 작아지셨나. 30년 전엔 크셨다. 무서우셨다. 지금은 작고 여리다. 차 출발했다. 아내가 말한다. "어머님 많이 힘드셔 보여." 안다. 나도 봤다. 근데 어쩔 수 없다. 나도 힘들다. 집 가는 길 고속도로 탔다. 저녁때라 차가 막힌다. 아들이 물었다. "아빠,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되는 거야?" "뭐가?" "할아버지처럼. 늙고, 아프고." "그렇지." "그럼 아빠도?" "당연하지." "나도?" "너도." 침묵이다. 딸이 말한다. "아빠, 나중에 나 자주 올게." "뭐?" "아빠 할아버지 되면, 나 자주 올게. 한 달에 한 번 말고." 목이 멘다. "그래, 고맙다." 근데 안다. 못 온다. 애도 45살 되면 바쁘다. 회사 다니고, 애 키우고, 살기 바쁘다. 한 달에 한 번도 잘 오면 효자다. 나처럼. 집 도착 7시에 도착했다. 피곤하다. 반찬 통 꺼냈다. 냉장고에 넣었다. 가득 찼다. 아내가 저녁 차렸다. 엄마가 싸준 반찬이다. 먹는다. 맛있다. 30년 먹은 맛이다. 아들이 말한다. "할머니 음식 맛있다." 맞다. 맛있다. 근데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10년? 20년? 계산하기 싫다. 폰에 알람 설정했다. '다음 달 부모님 댁'. 3주 후 토요일. 또 간다. 25만원 쓰고, 4시간 쓰고, 체력 쓰고. 힘들다. 근데 할 거다. 부모님이 날 키우셨다. 45년 동안. 나도 부모님 모신다. 남은 시간 동안. 그게 내 세대의 책임이다. 위로는 부모님, 아래로는 애들. 샌드위치다. 눌리면서 산다. 일요일 아침 일어났다. 9시다. 아들이 또 게임한다. 딸은 틱톡 본다. 거실 청소했다. 설거지했다. 빨래 돌렸다. 일주일이 시작된다. 내일이면 월요일이다. 회의 여섯 개다. 코딩은 못 한다. 근데 괜찮다. 토요일에 부모님 뵀으니까. 그거면 됐다. 다음 달에 또 간다.부모님 댁 다녀오면 항상 피곤한데, 안 가면 더 불편하다. 그게 45살이다.

아침 회의, 점심 회의, 저녁 회의 - 코딩할 시간은?

아침 회의, 점심 회의, 저녁 회의 - 코딩할 시간은?

오늘의 캘린더아침 9시. 캘린더를 켰다. 빨간색 블록 3개. 파란색 블록 4개. 노란색 블록 2개. "오늘도 회의 9개네." 커피를 마신다. 첫 잔. 9시 30분, 주간회의. 10시 30분, 기획팀 미팅. 11시, 임원 보고. 점심 먹고 1시, 협력사 미팅. 2시, 기술검토 회의. 3시, 1on1. 4시, 전사 타운홀. 5시, 긴급 이슈 회의. "코딩은 언제 해?" 6시 이후만 비어있다. 그것도 '긴급 회의 없으면'. 파트장 된 지 1년. 이게 맞나 싶다. 회의의 종류회의는 크게 3종류다. 첫째, 내가 있어야 하는 회의. 기술 검토, 아키텍처 결정, 코드리뷰. 이런 건 파트장이 빠지면 안 된다. 전체 회의의 30% 정도. 둘째, 내가 없어도 되는 회의. 정보 공유, 진행상황 보고, 일정 조율. 이메일이나 슬랙으로 되는데 왜 모이나. 40% 정도. 셋째, 뭐하는 건지 모르겠는 회의. 시작할 때는 A 얘기, 끝날 때는 Z 얘기. 결론 없음. 다음 회의 약속만 생김. 나머지 30%. 오늘 오전 회의 3개 끝났다. 첫째 유형 1개, 둘째 유형 1개, 셋째 유형 1개. 코딩한 시간: 0분. 작성한 코드 줄 수: 0줄. 마신 커피: 3잔. 점심시간의 함정 점심 먹고 돌아왔다. 12시 50분. "1시 회의까지 10분 남았네." IDE를 켠다. 어제 하던 코드 열었다. public class UserService { // TODO: 리팩토링 필요TODO 주석을 본다. 언제 달았더라. 지난주? 손가락을 올린다. 키보드 위에. 슬랙 알림. "박 파트장님, 1시 회의 5분 전인데 자료 미리 보시면..." 자료를 연다. PDF 37페이지. 1시 회의 시작. "오늘은 30분이면 끝날 것 같습니다." 2시에 끝났다. 다음 회의까지 1시간. 이제 코딩 가능. IDE를 켠다. 다시. public class UserService { // TODO: 리팩토링 필요손가락을 올린다. "박 파트장님, 잠깐 여쭤볼 게 있는데요..." 후배가 온다. 책상으로. "이 부분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까요?" 설명한다. 20분. 시계를 본다. 2시 30분. 다음 회의까지 30분. "30분이면 뭘 하나." 메일을 확인한다. 47개. 3시 회의 시작. 저녁이 되면6시 15분. 마지막 회의 끝. 사무실이 조용하다. 후배들은 다 퇴근했다. "이제 코딩 시작이네." IDE를 켠다. 세 번째. public class UserService { // TODO: 리팩토링 필요손가락이 움직인다. 30분 지났다. 코드 50줄 짰다. 1시간 지났다. 테스트 코드 작성 중. 1시간 30분 지났다. 리팩토링 완료. "이 맛이지." 시계를 본다. 8시. 배가 고프다. 점심 이후 아무것도 안 먹었다. 피곤하다. 회의 9개 했다. 집에 가야 한다. 아들이 기다린다. 하지만 지금 집중된다. 이 흐름을 끊고 싶지 않다. 30분만 더. 이 기능만 끝내면. 9시에 퇴근했다. 오늘 작성한 코드: 150줄. 오늘 참석한 회의: 9개. 오늘 코딩한 시간: 3시간. "뭔가 이상한데." 20년 전과 지금 20년 전, 신입 때. 출근하면 코딩. 점심 먹고 코딩. 저녁 먹고 코딩. 회의는 주 1회. 그것도 30분. 하루 코딩 시간: 8시간 이상. 코드 리뷰는 옆자리 선배한테 바로. 5분이면 끝. 이슈 생기면 팀원들 모아서 화이트보드 앞에서 토론. 30분 안에 결정. 빠르고 단순했다. 지금은 뭐든 '회의'다. 코드 리뷰 회의. 30분. 기술 검토 회의. 1시간. 이슈 대응 회의. 1시간 30분. "회의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계산해봤다. 회의 9개 × 평균 50분 = 450분 = 7시간 30분. 회의 자료 준비, 사전 검토, 사후 정리까지 합치면 9시간. 근무시간 9시간. "아, 그래서 코딩을 못 하는 거구나." 파트장의 역설 후배가 물었다. 지난주에. "파트장님은 요즘 코딩 많이 하세요?" "응... 저녁에 좀 하지." "부럽다. 저는 하루 종일 코딩만 해요." "..." 부러운 건 나다. 파트장 달기 전에는 나도 하루 종일 코딩했다. 지금은 하루 종일 회의한다. 아이러니다. 개발 경력 쌓아서 파트장 됐는데, 정작 개발은 못 한다. 기술 실력 인정받아서 올라왔는데, 정작 기술은 녹슨다. "이게 승진인가, 퇴보인가." 동기한테 말했다. 전화로. "그게 관리자야.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시키는 거지." "난 시키고 싶어서 개발자 된 게 아닌데." "그럼 임원 승진 포기해." "..." 딜레마다. 임원 되면 연봉 오른다. 1억 넘는다. 하지만 개발은 진짜 못 한다. 회의만 더 늘어난다. 평 개발자로 남으면 코딩 할 수 있다. 하지만 45살 평 개발자.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회의 중독 사회 우리 회사만 그런 게 아니다. 지인들 만나면 다들 비슷하다. 대기업은 더 심하다. 회의의 회의, 보고의 보고. 스타트업도 요즘 그렇다. '애자일'이라면서 매일 스탠드업, 스프린트 리뷰, 레트로스펙티브. "회의가 업무가 된 거다." 실제 일은 회의 시간 외에. 개발은 저녁에. 기획은 야근 시간에. 디자인은 주말에. 정규 근무시간은 회의로 가득 차고, 실제 업무는 그 외 시간에 하는 시스템. "이게 정상인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하지만 아무도 바꾸지 못한다. 왜냐면 모두가 회의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도 만든다. 이번 주에 회의 2개 잡았다. "필요해서 잡았는데..." 정말 필요한가? 솔직히 슬랙으로 물어보면 될 것도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정하려면' 회의를 한다. 그렇게 회의가 늘어난다. 악순환이다. 6시 이후의 개발자 요즘 깨달았다. 나는 '낮의 개발자'와 '밤의 개발자'가 다르다. 낮의 나: 회의 참석자, 의견 제시자, 조율자, 관리자. 밤의 나: 프로그래머. 낮에는 말을 한다. 많이. 밤에는 코드를 짠다. 조용히. 낮에는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밤에는 에너지가 생긴다. "본업은 밤에 하는 거네." 이상하다. 개발자인데 개발은 부업 시간에 한다. 본업 시간에는 회의를 한다. "이러다 진짜 개발 못 하는 관리자 되겠다." 두렵다. 10년 후, 55살. 임원 달고 회의만 하는 '전직 개발자'. 코드는 읽을 수 있지만 짤 수는 없는 사람. 기술은 아는데 적용은 못 하는 사람. "그건 되고 싶지 않은데." 작은 저항 이번 주부터 실험 중이다. '코딩 타임' 블록을 캘린더에 넣었다. 매일 오후 4시~6시. 2시간. 빨간색으로 표시. 제목은 "Focus Time - 회의 불가". 첫날, 누가 4시 30분에 회의 잡으려고 했다. "죄송한데 그 시간은 어려워서요." "아, 네. 그럼 6시 이후로 할까요?" "6시 이후도 어렵습니다. 내일 오전은 어떠세요?" 회의가 미뤄졌다. 신기했다. 거절할 수 있구나. 둘째 날, 4시에 슬랙이 왔다. "파트장님, 급한 건데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10초 고민했다. 답장했다. "6시 이후 통화 드릴게요. 급하면 메시지로 먼저 남겨주세요." 메시지로 왔다. 읽어보니 그렇게 급한 건 아니었다. 6시에 전화했다. 5분 만에 해결. "2시간 회의할 뻔했네." 셋째 날, 4시부터 6시까지 코딩했다. 방해 없이. 집중해서. 200줄 짰다. "이 맛이었지." 불편한 진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코딩 타임'을 지키려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한다. 저녁 약속은 늘어난다. 4시 회의가 6시로 밀리니까. 급한 이슈는 대응이 늦어진다. 2시간 후에야 보니까. 팀원들은 답답해한다. 바로 물어볼 수 없으니까. "이기적인 건가?" 고민된다. 파트장이 2시간씩 연락 안 되면, 팀 운영에 문제 생긴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나는 개발을 못 한다. 어디까지가 파트장의 책임이고, 어디까지가 개인의 권리인가. 정답은 모르겠다. 그냥 해보는 거다. 실험. 망하면 방법을 바꾸면 된다. 숫자로 보는 현실 지난달 통계를 냈다. 실제로. 총 근무 시간: 220시간 (주 55시간 × 4주) 회의 시간: 143시간 (65%) 코딩 시간: 48시간 (22%) 이메일/슬랙: 22시간 (10%) 기타: 7시간 (3%) "회의가 3분의 2네." 신입 때 통계도 찾아봤다. 20년 전 기록. 총 근무 시간: 240시간 (야근 많았음) 회의 시간: 8시간 (3%) 코딩 시간: 210시간 (88%) 기타: 22시간 (9%) "코딩이 거의 9할이었네." 20년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코딩 88% → 22% 회의 3% → 65% "이게 성장인가, 변질인가." 동료들의 선택 팀장급 동료들과 술 먹었다. 지난주. A형: "나는 포기했어. 코딩은 후배들이 잘해. 난 방향만 잡아주면 돼." B형: "새벽에 해. 5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집에서 코딩." C형: "휴가 쓰고 코딩해. 일년에 휴가 10일은 코딩용." D형: "이직했어. 작은 회사로. 회의 적은 데로." 다들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나는 어떤 타입일까. A형은 되기 싫다. 아직. B형은 체력이 안 된다. 새벽 5시는 무리. C형은... 가족한테 미안하다. D형은 용기가 안 난다. 45살 이직. "5번째 타입을 만들어야 하나." 후배에게 들은 말 1on1 하다가 들었다. 29살 후배. "파트장님은 코딩 안 하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왜?" "관리하시잖아요. 방향 정하시고, 리뷰하시고." "나도 코딩하고 싶은데." "그럼 파트장 안 하시면 되죠." "..." 틀린 말은 아니다. 파트장 달면 회의가 많은 거 알고 올라왔다. 코딩 시간 줄어드는 거 알고 승진했다. "내가 선택한 거잖아." 하지만 이렇게까지 줄어들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그리울 줄도 몰랐다. 코딩이. 이번주 목표 캘린더를 본다. 이번 주. 빨간색 블록 15개. 회의. 파란색 블록 5개. 새로 만든 '코딩 타임'. "5일 × 2시간 = 10시간." 10시간이면 뭘 할 수 있나. 리팩토링 하나 끝낼 수 있다. 새 기능 하나 만들 수 있다. 기술 부채 하나 갚을 수 있다. "해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10시간이 5시간이 돼도 괜찮다. 지금보다 나으면 된다. 회의는 줄이지 못해도, 코딩은 늘릴 수 있다. 관리자가 돼도, 개발자는 유지할 수 있다. "아직은."회의 9개 하고 코드 150줄. 이게 정상은 아닐 것 같다.

기술 선택을 물으면 '둘 다 장단점이 있어' 로 시작하는 이유

기술 선택을 물으면 '둘 다 장단점이 있어' 로 시작하는 이유

또 그 말이 나왔다 "파트장님, React랑 Vue 중에 뭐가 나을까요?" 회의실에 앉은 후배 넷이 날 본다. "음... 둘 다 장단점이 있어서..." 내 입에서 또 나왔다. 이 말. 후배들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아, 또 저 말 하시네. 그 표정이다. 나도 안다. 이게 답이 아니라는 거.5년 전엔 달랐다. "React 가자. 생태계가 넓어."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확신이 없다. 확신이 사라진 이유 20년 개발했다. 기술 스택을 수십 개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게 최고야" 했던 것들이 3년 뒤 사라지는 걸. 2010년, Backbone.js가 최고였다. 지금 쓰는 사람? 거의 없다. 2015년, Angular가 대세였다. 지금은? React한테 밀렸다. 2020년, React가 답이었다. 지금? Svelte, Solid, Qwik 나온다. 그러니까 말이다. "이게 답이야" 하고 싶어도, 3년 뒤 내가 틀렸을까봐 무섭다.어제 회의에서도 그랬다. "MySQL이 나을까요, PostgreSQL이 나을까요?" "둘 다 장단점이..." 막내가 물었다. "그럼 뭘 선택해야 하나요?" 할 말이 없었다. 진짜로. 후배가 원하는 건 확신이다 점심 먹으면서 옆 팀 김 과장이 말했다. "요즘 애들, 답 바로 안 주면 답답해해." 맞다. 후배들은 명쾌한 답을 원한다. "A 하세요. 왜냐하면..." 이렇게 말해주길 바란다. 근데 나는? "음... 상황에 따라... 둘 다..." 후배 입장에선 답답할 것이다. 신입 때 나도 그랬다. 선배한테 물으면 명확한 답을 원했다. "자바 해. Spring이 대세야." 그 한마디에 3년을 공부했다. 지금 내 후배들도 그런 한마디를 원한다. 근데 난 못 준다. 확신이 없으니까.작년에 신입이 물었다. "TypeScript 배워야 하나요?" "음... JavaScript 먼저 잘하고..." 신입이 답답한 표정으로 "네..." 했다. 그리고 혼자 TypeScript 공부했다. 3개월 뒤 나보다 잘했다. 내가 확신 있게 "배워. 필수야" 했으면 더 빨랐을 텐데. 사실은 모르는 거다 솔직히 말하자. "둘 다 장단점이 있어"는 현명한 답이 아니다. '나도 잘 모르겠어'의 포장이다. 요즘 기술은 진짜 모른다. Next.js 13 App Router? 써본 적 없다. Rust? 들어만 봤다. WebAssembly? 개념만 안다. 그러니까 후배가 "이거 어때요?" 물으면, 정확히 판단할 근거가 없다. 그래서 나오는 말. "둘 다 장단점이..." 안전한 답이다. 틀릴 일이 없다. 지난주 코드 리뷰 때였다. 후배가 Zustand로 상태관리 했다. "Redux 말고 Zustand 썼어요. 더 간단해서요." 나는 Zustand를 써본 적이 없다. "음... 그것도 좋지. Redux도 나쁘진 않은데..." 후배가 물었다. "그럼 뭐가 나아요?" "...상황에 따라 다르지." 후배 표정이 '아 또 저러시네' 였다. 집에 와서 Zustand 문서 봤다. 30분 읽었다. ...확실히 간단하긴 하다. 근데 production에서 괜찮을까? 모르겠다. 결국 또 "둘 다 장단점이 있다"로 귀결된다. 나이가 만든 신중함인가, 비겁함인가 동기 녀석이 말했다. 걔는 스타트업 CTO다. "우린 그냥 빠르게 결정해. 틀려도 돼." 부럽다. 그 확신. 나는 대기업 파트장이다. 틀리면 안 된다. 프로젝트 기술 스택 잘못 선택하면? 팀 전체가 고생한다. 그래서 더 신중해진다. 아니, 비겁해진다. "이것도 저것도 괜찮아요" 하면 안전하다. 나중에 문제 생겨도 "내가 둘 다 장단점 있다고 했잖아" 할 수 있다. 이게 경험에서 나온 지혜인가, 책임 회피인가. 밤에 혼자 생각한다. 답이 없다. 오늘도 후배가 물었다. "MongoDB랑 DynamoDB 중에..." "둘 다 장단점이..." 말하다가 멈췄다. 후배가 날 본다. "...MongoDB 가자. 우리 상황엔 맞아." 후배 눈이 반짝였다. "네!" 확신은 없었다. 근데 말했다. 혹시 틀릴까? 그럴 수도 있다. 근데 명확한 방향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선배로서의 무게 파트장이 됐을 때. '이제 기술 리더구나' 생각했다. 실제로는? 매일 불안하다. 후배들은 내 말 한마디로 3개월을 공부한다. 그 무게가 무겁다. 틀린 방향 제시하면? 그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둘 다 장단점"이 나온다. 안전한 답. 무책임한 답. 3년 전 신입이 지금 시니어 됐다. 걔한테 물어봤다. "내가 도움 됐어?" "파트장님 말씀이 항상 중립적이셔서... 스스로 판단하게 됐어요." 좋게 들리지만, 사실 이거다. '명확한 답을 못 줘서, 네가 알아서 했구나.' 미안하다. 변명을 해보자면 기술은 정말 빠르다. 내가 20년 개발했지만, 요즘 프론트엔드는 다른 세상이다. 6개월마다 새 프레임워크 나온다. 다 써볼 수 없다. 그러니 "이게 최고"라고 못 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걸 어떻게 확신하나. 근데 후배들은 그걸 모른다. '파트장님은 20년 차니까 다 아실 거야' 생각한다. 아니다. 나도 모른다. 어제 막내가 SolidJS 써보고 싶다고 했다. "음... React도 있는데..." "React는 너무 무겁지 않나요?" 맞는 말이다. 근데 SolidJS는 생태계가 작다. 뭐라고 해야 하나. "둘 다 장단점이..." 또 나왔다. 막내가 "네..." 하고 돌아갔다. 실망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정답일 수도 가끔 생각한다. "둘 다 장단점 있다"가 사실 진실 아닐까. 은탄환은 없다. Silver bullet은 없다. 모든 기술은 trade-off다. React는 생태계가 넓지만 무겁다. Vue는 배우기 쉽지만 기업에서 덜 쓴다. Svelte는 빠르지만 생태계가 작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럼 "둘 다 장단점이 있다"는 정답 아닌가? 근데 후배들은 이런 답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뭘 선택해야 하나요?" 이게 진짜 질문이다. 며칠 전 1on1에서 주니어가 말했다. "파트장님, 결정을 잘 안 내리시는 것 같아요." 찔렸다. "뭐든 양쪽 다 얘기하시면... 저희가 헷갈려요." 맞다. 인정한다. "미안. 앞으론 명확하게 말할게." 근데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오늘의 선택 점심 후 회의. 신입이 또 물었다. "GraphQL이랑 REST 중에..." 습관적으로 입이 열렸다. "둘 다..." 멈췄다. 팀원들이 날 본다. "...GraphQL 가자. 우리 프로젝트 특성상 맞아." "이유가 뭔가요?" "클라이언트가 여러 개고, 데이터 요구사항이 제각각이야. GraphQL이 유연해." 신입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신은 50%다. 근데 100%처럼 말했다. 이게 맞나? 모르겠다. 틀릴 수도 있다. 그럼 그때 가서 바꾸면 된다. 배운 것 "둘 다 장단점이 있다"는 진실이다. 근데 리더는 진실만 말하면 안 된다.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틀릴 수 있다. 그래도 제시해야 한다. 후배들은 완벽한 답이 아니라, 확신 있는 방향을 원한다. "이렇게 가자. 이유는 이거야." 이게 리더의 말이다. 나는 그걸 못 했다. 2년 동안. 이제는 해야 한다.회의 끝나고 신입이 말했다. "오늘 결정 시원시원하셨어요." 기분이 좋으면서도 무섭다. 내가 틀리면 어쩌지. 근데 어쩔 수 없다. 파트장이니까.

옛날에 짠 코드 다시 보면서 '이때가 좋았지' 하는 감정

옛날에 짠 코드 다시 보면서 '이때가 좋았지' 하는 감정

토요일 오후의 발견 회사 레포지토리를 뒤지다가 10년 전 코드를 발견했다. 프로젝트명: CRM v2.0 마지막 커밋: 2014년 3월 15일 커밋 메시지: "결제 모듈 리팩토링 완료. 테스트 통과." 파일을 열었다. 스크롤을 내렸다. "아, 이거..."깨끗했다. 정말 깨끗했다. 메서드 하나가 20줄. 주석도 적절히. 변수명도 명확하고. 테스트 커버리지 85%. 지금 내가 짜는 코드는 이렇지 않다. 2014년의 나 당시 나는 35살이었다. 선임 개발자. 팀원 3명. 관리 업무는 거의 없었다. 회의는 주 2회. 나머지는 다 코딩. 그때는 시간이 있었다.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까지. 점심 1시간 빼고 전부 코딩. 회의 끝나면 바로 IDE 켰다. 슬랙 알림은 10개도 안 왔다. 코드 리뷰는 내가 받는 입장이었다. 부장님이 꼼꼼하게 봤다. "여기 왜 이렇게 했어?" 물으면 설명했다. 고칠 건 고쳤다. 지금은 내가 리뷰하는 입장이다. 하루에 PR 5개. 제대로 보려면 2시간. 하지만 회의 때문에 10분씩 쪼개서 본다. "LGTM" 달고 승인. 미안하다.그때는 리팩토링할 시간이 있었다. "이 부분 좀 이상한데?" 싶으면 바로 고쳤다. 3시간 걸려도 괜찮았다.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일단 돌아가게" 하고 넘어간다. 리팩토링은 다음 스프린트에. 하지만 다음 스프린트에는 새 기능이 들어온다. 리팩토링은 또 미뤄진다. 기술 부채가 쌓인다. 코드를 읽으면서 오래된 코드를 한 줄씩 읽었다. public class PaymentService { private final PaymentGateway gateway; private final TransactionRepository repository; public PaymentResult process(PaymentRequest request) { validateRequest(request); Transaction transaction = createTransaction(request); PaymentResponse response = gateway.charge(transaction); return saveAndReturn(transaction, response); } }단순했다. 명확했다. 한눈에 들어왔다. 요즘 코드는 이렇지 않다. 어노테이션 10개. 추상화 레이어 3개. "확장성을 위해서" 라고 했는데 결국 안 쓴다. 그때는 필요한 것만 만들었다. YAGNI. You Aren't Gonna Need It. 그 원칙을 지켰다. 지금 필요한 기능만.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 추가. 지금은 "나중에 이거 필요할 수도..." 하면서 미리 만든다. 기획자가 "혹시 이것도..." 하면 "네" 한다. 시간 없다고 하면 "파트장님이 안 된대요" 소리 듣는다. 그래서 코드가 복잡해진다.테스트 코드도 있었다. @Test public void 결제_성공_테스트() { // given PaymentRequest request = createValidRequest(); // when PaymentResult result = service.process(request); // then assertThat(result.isSuccess()).isTrue(); }Given-When-Then. 깔끔했다. 요즘은 테스트 코드 짤 시간이 없다. "일정이 빡빡해서요." 후배들한테 "테스트 좀 써" 하면서 나도 안 쓴다. 이중잣대다. 알고 있다. 그때가 좋았던 이유 커밋 로그를 더 봤다. 2014년 3월 한 달간 커밋 60개. 거의 매일. 주말에도 몇 번. 지금은? 한 달에 10개. 대부분 "회의록 업데이트", "문서 수정". 실제 코드 커밋은 3개. 관리자가 되면서 달라졌다. 파트장 달고 나서 회의가 늘었다. 일정 조율. 리소스 배분. 타 부서 협업. 임원 보고. 코딩은 "남는 시간에" 하는 거다. 하지만 남는 시간은 없다. 오전 10시: 데일리 스탠드업 오전 11시: 주간 계획 회의 오후 1시: 점심 오후 2시: 기획팀 미팅 오후 4시: 임원 보고 준비 오후 5시: 임원 보고 오후 6시: 1on1 (후배 2명) 코딩은 언제? 저녁 8시. 사무실 조용해지면. 하지만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다. 한 시간 하면 피곤하다. 그때는 4시간도 했는데. 코드가 아니라 시간 사실 코드가 문제가 아니었다. 10년 전 코드가 더 좋은 게 아니다. 그때 나한테 시간이 있었던 거다. 생각할 시간. 설계할 시간. 리팩토링할 시간. 테스트 짤 시간. 지금은 그 시간이 없다. "파트장님 잠깐만요." 하루에 10번. "이거 언제까지 되나요?" 하루에 5번. "회의 하나 잡아도 될까요?" 하루에 3번. IDE 켜고 5분 지나면 누가 부른다. 집중은 불가능하다. 깊은 작업(Deep Work)은 옛날 얘기다. 지금은 얕은 작업(Shallow Work)만 가능하다. 10분씩 쪼개서. 그래서 코드 품질이 떨어진다. 시간 부족은 핑계가 아니다. 현실이다. 후배들의 코드 팀 후배들 코드를 봤다. 김 대리 코드: 깔끔하다. 주석도 있다. 테스트도 있다. 이 사원 코드: 최신 기술 잘 쓴다. 코틀린 코루틴까지. 부럽다. 걔네는 시간이 있다. 회의 적다. 관리 업무 없다. 순수하게 개발만. 나도 그랬다. 10년 전에. "대리님,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대리가 물었다. 페이먼트 모듈 설계. "음... 이렇게 하면 어때?" 조언했다. 20년 경력의 노하우. 설계 패턴. 예외 처리. "오, 좋네요!" 김 대리가 구현한다. 내가 조언한 대로. 더 잘 만든다. 기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내 지식으로 후배가 좋은 코드를 짠다. 나는 직접 못 짠다. 이게 관리자의 역할인가? 임원이 되면 부장님이 말했다. "박 파트장, 내년에 임원 트랙 타면 어때?" 임원. 연봉 1억 2천. 스톡옵션. 전용 주차. 사무실도 따로. 대신 코딩은 완전히 못 한다. "생각해보겠습니다." 거짓말이다. 이미 답은 정했다. 안 한다. 임원 되면 개발자 아니다. 경영자다. 숫자 보고 사람 관리하고 전략 짜고. 코드는 안녕이다. 그건 싫다. 차라리 지금처럼 반반이 낫다. 관리 50%, 개발 50%. 비록 개발 시간이 부족하지만 아예 없는 것보단 낫다. 10년 전 코드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때로 돌아갈 순 없지." 35살로 돌아가면? 지금의 연봉은 포기. 지금의 직급도 포기. 지금의 영향력도 포기. 대신 코딩 시간은 얻는다. 안 할 거다.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가끔 상상한다. 타협점 완벽한 코드는 못 짠다. 인정한다. 하지만 아예 안 짤 순 없다. 최근에 규칙을 정했다.주 2회, 2시간씩 "개발 시간" 캘린더 블락 그 시간엔 회의 안 잡음 (임원 부르면 어쩔 수 없지만) 작은 거라도 직접 구현 (버그 수정, 리팩토링) 한 달에 최소 5개 실제 코드 커밋완벽하진 않다. 10년 전처럼은 못 한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어제 작은 기능 하나 구현했다. 로그 포맷 개선. 2시간 걸렸다. PR 올렸다. 후배들이 리뷰했다. "오 깔끔하네요!" "역시 파트장님" 기분이 좋았다. 10년 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레거시와 향수 저녁 9시. 회사 불 껐다. 10년 전 코드 파일을 닫았다. "그때가 좋았지." 사실이다. 그때가 더 좋았다. 하지만 그때로는 못 돌아간다. 지금의 나는 관리도 하고 개발도 하는 사람이다. 둘 다 완벽하게는 못 한다. 타협하면서 산다. 그게 45살 파트장의 현실이다. 집에 가는 길. 핸드폰을 봤다. 김 대리가 PR 올렸다. "결제 모듈 v3.0 - 리팩토링 완료" 코드를 열어봤다. 깔끔했다. 내가 조언한 대로. 아니, 더 잘했다. "Approve" 눌렀다. 댓글 달았다. "Good job. 10년 전 내 코드보다 낫네요." 김 대리가 답했다. "ㅋㅋㅋ 과찬이십니다. 파트장님 코드 보고 배웠습니다." 웃었다. 내 코드는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내 지식은 후배들에게 간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옛날 코드는 박물관에 두고, 오늘 할 수 있는 거라도 한다.